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 불편을 초래한다. 아침마다 교통체증에 시달린다든지, 몸이 아픈 상태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린다든지,다가오는 취직시험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교통체증이 풀리고, 몸이 건강해지고, 취직이 되면 해결되는 고통이다.상황이 종료되면 고통도 함께 끝나는 것이 스트레스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다르다. 트라우마는 외부의 위기상황이 끝나도 지속되는 고통이며, 심지어 ‘이제는 다 치료 되었어’라고 생각한 뒤에도 불쑥 평온한 삶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린 고통, 죽음과 삶의 영원한 간극을 너무 일찍 경험해버린 고통, 자신의 신체 일부가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아픔, 전쟁 통에 목격한 온갖 트라우마는 인간의 마음에 영구적인 상흔을 남긴다.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힘써왔던 정혜신 박사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라는 책에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스트레스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지만,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라고, 즉 스트레스는 아프면서도 어느 정도 그 아픔을 견디고 나면 내적인 성숙이 가능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픔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심각하게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강도’ 자체가 다르다. 트라우마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죽음’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라는 느낌을 공유한다. 죽음 저편의 세계를 엿볼 만큼 아프고 쓰라린 것,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생한 공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 상황인 것이다. 스트레스는 누구나 어느 정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트라우마는 그 상처 때문에 또 다른 질병이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아픔이다.
사회적 폭력과 트라우마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은 더 많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약자일수록, 수명이 짧아지고 사고나 재해에도 더 많이 노출되는 사회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게다가 ‘말할 수 있는 아픔’과 ‘말하지 못하는 아픔’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구직 과정의 차별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대답한 여성노동자들, 학교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학교 폭력에 대해 ‘아무 느낌 없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에 대해 여러 사람들을 통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사회적 폭력은 심리적 트라우마로 각인되고, 그 마음의 상처는 결국 신체의 질병이나 문제로 번져가게 되어 있다. 우선 ‘내 아픔을 말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인 것이다.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똑같은 폭염이 대한민국을 덮쳐도, 더 많이 건강을 상하고, 더 많이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사회적 고립’을 든다. 혼자 사는 사람들, 폭염이 아무리 심해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이 사망했다. 트라우마는 ‘가난’과도 직결된다. 더 많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린 사람이,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죽었던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 해부학 실습에서 사용되었던 시체의 99퍼센트 이상이 빈곤계층을 수용하던 구빈원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해부용 시체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의학 연구 또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만 해부되고 기록되면서 해부학의 역사에는 여러 오점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가난은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미 각종 폭력과 얽힌 기억으로 쇼크 상태에 빠져있는 트라우마환자에게 ‘그때 기분이 어땠냐,
상황을 자세히 말해보라’는 식으로 다그치는 것도 또 한 번 2차, 3차 트라우마를 초래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마치 얇은 유리병에 가득 담긴 물을 옮기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아픔을 지우는 방법
심리학자 프랜신 샤피로의 《트라우마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남녀노소를 만나보며 그들 사이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랜신 샤피로 박사는 강연을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창피를 당한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그 나라가 어디든, 청중이 어떤 사람들이든 상관없이 거의 96퍼센트가 ‘그렇다’고 손을 든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질책이나 아이들의 따돌림, 학교 폭력 등은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트라우마의 자기 치유 기법을 연구해 온 프랜신 샤피로 박사는 ‘아픔을 지우는 기법’ 하나를 소개해준다.
이 실험을 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눈을 감고 초등학교때 굴욕을 당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생각해보자. 그리고 몸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에 주목하자. 자연스럽게 그것에만 집중해보자. 그런 다음 고압의 급수용 호스나 커다란 지우개로 그 장면을 깨끗이 지우는 것을 상상하고 눈을 뜬다. 이것은 부정적으로 저장된 이미지를 바꿀 때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법이다. 지금 한번 시도해보자. -프랜신 샤피로, 《트라우마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 중에서
나에게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누군가 내 아픔을 완전히 집중해서 들어주고 그 아픔을 치유하려 함께 노력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지금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던 누군가가 있다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 치유에서 그 어떤 전문적인 치료나 약물보다도 더욱 지속적으로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의 요소들이다. 사람의 마음에 난 상처를 ‘그건 네 문제야, 네 상처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처리하는 사회가 트라우마 치유에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네 아픔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시지’라는 냉혹한 태도야말로 상처를 더욱 심화시키며 결국 바로 그런 말을 한 당사자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도 언젠가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 상처를 입었을 때 누군가 그 똑같은 말을 한다면, 그는 그제야 자신의 잔혹성을 눈치챌 수 있을까. 이렇듯 ‘사회적 상처’로 함께 치유해도 모자란 트라우마를 ‘개인적 상처’로 치부해버리는 문화야말로 트라우마 치유의 대표적 장애물이다. 또한 이미 각종 폭력과 얽힌 기억으로 쇼크 상태에 빠져있는 트라우마 환자에게 ‘그때 기분이 어땠냐, 상황을 자세히 말해보라’는 식으로 다그치는 것도 또 한 번 2차, 3차 트라우마를 초래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마치 얇은 유리병에 가득 담긴 물을 옮기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나를 끊임없이 응원해주는 타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얼마든지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두가지를 깨달을 때 상처는 비로소 아름다운 치유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작가소개 정여울 작가
소통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공부할 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