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논술수업을 받았던 남자 아이가 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잘생기고 성실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최고의 학생이었다. 그룹논술수업의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다. 그날은 그러니까 부모님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는 날이었다.
평소 그렇게 글을 잘 쓰던 아이가 미동도 없이 노트만 바라본다. 내가 새벽만 되면 한글파일을 열어놓고 커서만 쳐다보는 것과 같았다. 그 마음이 짐작가고도 남았다. 나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섣불리 중단시키지도 보채지도 못할 일이 글쓰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결국 한 글자도 못쓰고 수업시간이 끝나버렸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들의 노트를 거두었다. 주섬주섬 늑장을 부리며 자리를 정리하던 아이가 집에 가서 써오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부담 가질 필요 없다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날, 아이가 먼저 노트를 내밀었다. 전문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가 써 온 시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아빠의 야채가게
나는 야채가게 배달부
엄마아빠는 새벽부터 야채를 팔고
엄마아빠를 도와 시장배달을 가는 아이
한 건에 천 원씩
그 돈을 모아 학용품을 사고 간식을 사먹는다
엄마아빠가 열심히 사니까
나도 열심히 공부할거다
그날 아이는 엄마아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글을 만드는 과정은 어린 아이에게도 많은 사유와 선별의 시간을 요구한다. 아이가 집에 가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기특하고 고마웠다.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학부모에 대해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알게 되기도 한다. 아이가 왜 이렇게 성숙한지, 공부를 왜 열심히 하는지, 학원을 왜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지, 그날 아이가 쓴 글이 모두 말해주었다.
어느 날, 여러 학원 셔틀에 지친 아이가 책상 앞에 엎드려 있었다. 아프냐고 물었더니 그냥 피곤한 거란다. 나는 아이가 안쓰러워 조언을 해 주었다.
“너무 힘들면 엄마아빠한테 말해서 학원 좀 줄여달라고 해. 우리 학원이라도 괜찮아.”
자세를 바로잡던 아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는 엄마아빠처럼 새벽부터 일하진 않잖아요.”
아뿔싸. 내가 나쁜 딸이라는 건 그날로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