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이란 자부심으로 광화문우체국 이귀영 집배원
20대 청년이 50대 중년이 되기까지
광화문우체국 집배1실 이귀영 실장은 광화문우체국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2009년 집배1실 실장이 되면서 광화문우체국 총 123명의 집배원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우편사업의 호황기부터 지금까지, 광화문우체국과 함께 해왔습니다. 90년대엔 우편물량이 상당히 많았던 때였어요.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엔 우편물이 폭주해 사무실을 가득 채울 정도였죠. 또 90년대 후반부터는 각종 이동통신고지서가 엄청나게 늘어나기도 했고요. 매일 야근이 이어져 가족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언제나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광화문우체국의 집배원’이라는 자부심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광화문우체국은 종로 1·2·3 ·4동과 사직동, 삼청동을 비롯해 17개의 행정동이 관할지역이에요. 총 123명의 집배원들이 하루 평균 편지 1,300통, 등기 14,000통, 택배 6,000건을 배달합니다. 택배는 외부인력도 함께 일하고 있어요.”
사실상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편물량이 20% 이상 감소했다. 우편물량을 배달하는 집배원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정사업본부의 대표이자, 광화문우체국의 대표’란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여러 직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대표’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있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시간외 절감 등 비용 절감 부분에서도 더욱 신경 쓰고 노력하게 되지요. 또 최근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힘을 모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적으로 택배사업이 활성화되고 있기에 집배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더 발전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귀영 실장. 그의 성실한 열정이 소중하고 값진 이유다.
즐거움은 나의 힘! 고양일산우체국 이봉숙 집배원
백석동 곳곳을 누비는 여성 집배원
“집배원으로 일한지 어느새 15년이 됐네요. 꽤 오랫동안 집배원 업무를 해왔지만 저는 여전히 배달이 참 즐거워요.”
이봉숙 팀장은 지난 2000년 당시 딱 2명 선발했던 여성 집배원 중 1명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집배원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 우리 백석팀이 배달한 편지는 총 1575통이고 일반등기는 180통, 택배는 14건입니다. 월요일은 일주일 중 우편이나 택배 물량이 가장 적은 날이에요. 주말에 접수된 택배가 화요일부터 배달되는데 내일부터는 하루 50건 이상 물량이 들어오죠.”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우편물량이 감소했지만 고양일산우체국은 경인지방우정청 중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지역에 속한다. 신도시답게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고 백석동은 일산 지역에서도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 선물용 택배가 많이 오가는 특징이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자
이봉숙 팀장은 백석팀 10명의 팀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자’ 는 것이다.
물론 집배원 업무를 하다보면 가끔 울컥할 때도 있지만 이봉숙 팀장은 ‘고맙다, 수고한다 인사해주는 고객도 많다’며 그런 말 한마디에 힘이 솟는다고 전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교육부와 연계해 학생들에게 편지 쓰는 습관을 길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죠. 또 일을 하다 보니 요새 정말 1인 가구가 급증했음을 느껴요. 낮에 우편물을 받아줄 가족이 없으니 퇴근 후에 등기를 찾으러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우정사업본부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면 어떨까요?”
이봉숙 팀장은 100년 후, 200년 후에도 우정사업본부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봉숙 팀장은 오늘도 밝은 미소로 행복을 배달한다.
지나칠 수 없는 이들 화천간동우체국 최원석 집배원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
3가구가 사는 강원도 화천군 오지 마을에 손님이라고는 화천간동우체국 최원석 집배원이 유일하다. 지난 1년 동안 최원석 집배원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과 안타까운 한숨의 연속이었다.
“지난 4월10일 이었습니다. 길 옆 배수로로 추락한 할아버지를 발견했어요. 출혈이 심했고 의사소통이 안돼 통화가 되는 지역까지 나와 구조요청을 하고 돌아와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시키고 마을의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알렸어요. 지금은 일반병실로 옮겨서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그에 앞서 마을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할머니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날따라 오토바이 고장으로 30여 분을 늦게 출발했던 최원석 집배원은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원석 집배원은 어느새 집배원의 책임감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으로 새기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사명감의 그늘
최원석 집배원은 선배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지만 가장 크게 느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우편물을 배달할 때 우편함에 넣어놓고 그냥 오지 말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전해주고 오라는 조언을 모든 선배들이 해주셨어요.” 산골 오지 마을은 주거환경이 열악해 사고에 대한 대응 또한 열악하다. 그들의 유일한 소통은 집배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집배원 스스로 느끼는 사명감의 무게는 무거웠다고 했다. 경영환경이 열악해지고 우정사업종사자수도 지속적으로 줄이겠다는 정책 발표 후 집배원은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우정사업의 얼굴로 국민 접점에서 성실히 일해 온 집배원은 오늘의 우정사업을 있게 한 주인공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 보편적 서비스를 실천하는 우정사업을 이끄는 모든 우정가족이 보편적 행복을 함께 누릴 권리도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