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특급우편 시장, 우리가 지킨다.
임인식 국장
生居 鎭川, 死生居龍仁 할 때의 그 충북 진천땅을 찾았다. 예로부터 풍수해나 한 해가 없어 흉년을 모르던 전형적인 농업지역에서 근래 진천은 농공병진지역으로 급속히 탈바꿈하고 있다. 농공단지를 조성할 용지가 충분하고, 금강 상류인 미호천의 발원지답게 용수가 풍족하며, 중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청주공항으로 통하는 등 중부권의 교통 요충지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진천 쌀은 농산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에 빛나며, 카디날 · 롯데로즈·산드라 등 11종의 장미를 생산해내는 진천장미단지는 전국 제일의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국내의 내로라하는 관상어는 매년 10월 이곳에 모여 품평회를 거친 뒤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그밖에 미싯가루 · 나물세트 · 조미료세트 · 호박엿·조청 등이 지역 특산품으로서 우편주문판매를 통해 팔도에 진천의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오는 고객 웃음으로, 가는 고객 감동으로
진천우체국(국장: 임인식)은 4개의 6급관서와 2개의 별정우체국을 소속국으로 거느린,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 5급관서이다. 직원 수도 감독국과 소속국을 합쳐 모두 75명일 정도로 단출하다. 그러나 이 같은 외양에 구애됨이 없이 온 직원이 똘똘 뭉쳐 우편세입을 짭짤하게 올리고 있어 칭찬이 자자하다.
진천우체국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게 만든 우편 상품은 다름아닌 국제특급우편(Express Mail Service: EMS). EMS는 이를 취급하는 모든 나라 상호간에 긴급한 서류나 상품 견본 등을 특별 우편운송망을 통해 가장 신속하고 안전하게 송달하는 제도이다. 우리 나라는 1979년 7월 1일 홍콩 및 일본과 처음으로 EMS를 교환하기 시작 해 현재는 120여개 국가와 취급하고 있는데, 세계화·개방화시대에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우 EMS 망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충청체신청은 작년 한 해 동안 3만 5,700여건의 EMS를 취급하고 10억 30만여원의 매출 실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관내 29개 감독국 중 4,000만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한 곳은 대전·서대전·대전유성·천안·청주·충주 · 진천우체국 등 7개 관서이다. 서기관국 가운데 대전대덕·공주·제천우체국이 4,000만원 고지에 오르지 못한 반면, 진천우체국은 사무관국 가운데 유일하게 4,000만원대의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진천우체국의 우편세입 실적은 충청청 관내에서 매년 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실적은 우편세입의 증가를 위한 특별한 활동 내지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세에 힘입은 바 크다.
1998년의 상황은 급변했다. IMF 사태 이후 국내 경기와 지역 경제는 한껏 움츠러들었고, 사회 각 분야는 구조 조정이라는 몸살로 비틀거렸다. 나라 전체, 국민 모두가 경영합리화'를 화두로 삼아 속을 끓였다.
국가기관이라는 우체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융사업은 물론이고 비교적 안이하게 수행해 왔던 우편사업에도 찬바람이 몰아쳤다. 안으로는 인원 감축, 경비 절감, 매출 증대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으며, 밖으로는 택배 서비스나 퀵 서비스 등 민간 사송업체의 거센 도전에 부딪혀야만 했다.
“각종 사업 실적이 상위권인 진천우체국의 1997년도 경영자립도가 겨우 44% 수준인 점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이와 아울러 국제화 시대에 국제특급우편 시장이 DHL, UPS, 한진택배 등에게 거의 점유 당한 현실도 뼈아팠고요. 그래서 EMS 이용을 활성화시켜 우편세입을 증가시켜야만 경영자립도가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해 EMS 마케팅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겁니다.'
1997년 12월부터 1998년 10월까지 진천우체국에 근무하면서 EMS 마케팅을 진두지휘 했던 하병준 전임 국장의 설명이다.
하병준 전임 국장은 1998년을 '우편 생산성향상의 해'로 정하고, 진천우체국 전 직원을 우편사업 마케팅요원으로 만들었다. 먼저 모든 평직원에 대한 호칭을 주임으로 통일하고, 그 전원에게 명함을 배부함으로써 대외적인 영업활동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관리과 직원 4명으로 EMS마케팅팀을 구성하고, 그 중 세입담당인 이훈구씨를 마케팅실장으로 임명하여 EMS홍보 및 거래처 개발, 방문접수 등의 업무를 전담토록 했다. 또한 업무과의 영업부서는 EMS 접수 및 발송과 종적 조회 등의 행정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우편세입은 자연발생적'이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허물고 공무원이 장사꾼으로 새 출발을 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이뤄졌던 것이다.
우체국내에 마련된 생활편의점
EMS 방문접수
아늑하고 깨끗한 진천우체국 창구
작은 열의가 큰 결실을 맺는다.
진천우체국에서 18km쯤 떨어진 곳에 '프리미어 코리아'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해 전량 수출하는 외국인 기업으로, 사원이 150여명 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경영 상태가 건실하다. 프리미어 코리아외에도 진천군내에는 115개의 수출업체가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사원 수 20~30명의 소기업들이며, 아직 공단이 조성되지 못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진천우체국 이훈구 마케팅실장은 작년 삼복 더위에 이옥녀 팀장과 함께 프리미어 코리아를 방문했다. 처음으로 우편 마케팅을 나섰을 때의 두려움은 많이 가셨지만, 경비실은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었다. 준비해 가져간 우체국 선장품을 경비원에게 건네자, 잡상인 취급을 면한 것은 물론 친절한 안내까지 받았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을 안고 이실장 등 두 사람은 회사 안으로 들어섰다. 서로의 용모를 점검해 주며, 마주치는 직원마다에 고개 숙여 인사를 보내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우람한 회사의 위용에 비해 인사담당 이사실은 5평 남짓했다. 김이사의 책상 위에는 PC외에 영문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인사말의 단계를 거쳐 이실장은 우체국 업무 소개와 함께 EMS의 이용을 권장했다. 그러자 김이사는 국제우편 발송담당자가 따로 있다며 누군가를 호출했다. 불려온 직원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EMS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머쓱해하는 이실장을 김이사가 위로했다.
'연간 DHL에 지불하는 송달료가 3~4천만원인데, 서비스 면에서 아무런 불만이 없다. 또 지난 6년 동안 거래하면서 DHL 직원들과는 한 가족 같이 지내 왔으며, 우리 사장과 DHL사 전무와는 가끔씩 골프도 한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훈구 실장이 느낀 낭패감과 수치심은 엄청났다. 퇴근 후 자택의 아파트 호수를 잘못 찾아 들어갈 정도였다. 며칠간 마음을 정리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에서 홍보 요령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했다. 요금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에 즉시 대응할 자료가 미비했던 것이다.
어렵사리 DHL 요금표를 입수하여 EMS와의 요금 비교표를 작성했다. 그 결과, 10kg의 우편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 EMS가 중국의 경우는 11만 19,900원, 일본의 경우는 91,900원이 쌌다.
다시 김이사에게 세 차례나 전화를 걸어 단 3분의 면담시간을 잡았다. 이번에는 이성숙 관리과장과 동행을 하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홍보물을 펴든 채 조목조목 설명을 해나가는 이실장을 주시하며 김이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사님, 우리 공무원은 사무실에서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정해진 월급이 나옵니다. 그러나 진천우체국 직원들은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주민을 위한 좋은 상품을 더 잘 알리기 위해, 또 국가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러니 도와 주십시오.”라는 대목은 감동적이기조차 했다.
김이사는 즉석에서 생산관리부장과 담당 계장을 불러 “진천우체국의 EMS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보라. 회사 경비를 줄일 수 있다면 이번 기회에 줄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서 부장과 계장의 실무적인 문의가 계속되었다. EMS의 경우 우편물 종적조회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지적에는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프리미어 코리아측은 며칠 후 진천우체국에서 제시한 포장박스 샘플을 만족스러워했다. 그 대신 종적 조회에 대하여는 최대한의 성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다짐받았다. 그리고는 “일단 우체국의 EMS를 믿어 보겠다.”고 결론짓는 것이었다.
EMS 포장작업을 살펴보는 이훈구 실장 ( 왼쪽 )
승산 없는 싸움에서의 값진 승리
솔직히 말해, EMS는 DHL 서비스에 비하여 약점이 없지 않다. 우선 우편물 종적 조회가 매끄럽지 않은데다가, 우편물 포장박스도 통일된 규격이 없어 우체국마다 제각기 조제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 반면 요금 면에서 다소 경쟁력이 있다고는 하나,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국제간의 상거래에 있어서는 저렴한 요금보다 신속·정확하고 안전한 송달이 더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그런데도 이훈구 실장을 비롯한 진천우체국 직원들은 개척자의심정으로 관내의 수출 업체들을 하나하나 파고들어 오랫동안 민간 사송 서비스를 이용하던, 무려 17개 회사로부터 EMS 우편물을 유치해 들였다.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싸움에서의 두터운 장벽을 뚫고 이뤄낸 값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EMS 마케팅을 다니면서 경제 전쟁을 실감 했습니다. 그리고 30여년 동안 정보통신부에 몸담아 오면서 참으로 편하게도 월급을 타먹었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죠.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직 때까지 내 직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로 결심했던 건데, 이 일로 뜻밖에 옥조근정훈장을 받게 되어 함께 애쓴 동료들에게 아주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진천우체국 마케팅실장 이훈구씨(53세)의 말이다.
이훈구 실장은 매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약속된 각 업체를 돌며 EMS 우편물 수집에 나선다.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방문접수를 하는 것이다. 수집해 들인 EMS 우편물은 손이 비는 모든 직원이 매달려 단 시간내에 포장작업을 마친 뒤 5시 40분에 발송된다. 1997년의 매출액 497만원에서 1년 남짓한 사이에 4,000만원 이상으로 껑충 뛰어오를 정도로 EMS에 기울인 마케팅 노력이 스스로도 대견스러워 일손마다에 신바람이 묻어났다.
진천우체국의 1998년도 우편영업수입은 8억 5,319만원이다. 그 대부분은 우표류 판매대금, 소포·등기요금, 별후납요금이지만 EMS 취 급 실적이 4,337만원, 우편주문판매 실적이 3,000 만원이나 된다.
'민간 사송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천우체국이 EMS 서비스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 놓은 점은 값진 성공임과 아울러 다른 우체국들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직원들의 열의와 단결력이 상당히 자랑스럽죠. 또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발로 뛰지 않으면 경쟁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기업 논리가 직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계기가 됨으로써 다른 주요 사업에서도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져진 토대 위에서 금년에는 50 개 기업을 유치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연초부터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임인식 진천우체국장의 패기에 넘치는 포부가 믿음직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