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제104군사우체국
장병들의 사기 올려 주는 군사우체국
대한민국 남아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군 생활. 그 생활 속에서 장병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역시 편지이다. 이렇듯 장병들에게 소중한 우편물을 전해 주는 곳이 군사우체국이다.
민통선에서 차량으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제 104군사우체국은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에 위치해 있으며, 염만호 국장과 여직원 한영금씨, 그리고 군우병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염 국장은 군사우체국의 고객은 당연히 군 장병들이라며 그들을 위한 고객 만족에 힘 쓰는 한편, 부대장과의 면담과 테니스 등을 통해 친목
을 다짐으로써 상호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협조를 바탕으로 설 • 추석과 어버이날에는 벌꿀 • 치커리 • 청국장 등의 상품을 부모에게 전해 주는 효도우편물보내기운동과, 가족이나 친지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 그 뜻을 표하기 위한 경조카드보내기운동을 순조롭게 펼치고 있다.
작년에는 김남진 화천우체국장이 부임 인사차 관할 부대인 육군 칠성부대(부대장 : 김홍영 소장)를 방문해 우체국의 신상품인 ‘나만의우표’를 소개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부대장이 흔쾌히 승낙함으로써 입대를 기념하고자 하는 신병들을 대상으로 나만의우표를 접수하게 됐다. 그런데 신병교육대의 훈련이 없는 휴일에나 사진 촬영이 가능해 염 국장은 휴일도 반납한 채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장병들의 최대 명절인 발렌타인데이 때는 1만 통이 넘는 우편물이 폭주해 며칠 동안 밤샘 작업을 했지만, 염 국장은 늘 신바람 나게 일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저도 몇 년 있으면 군에 갈 자식이 있거든요. 군에 가면 아들 녀석이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 그게 편지더군요. 제가 우체국 상품을 적극 소개하고 추진하는 이유는 제 본연의 업무이기도 하지만, 현재 복무하는 장병들과 앞으로 입대하게 될 제 자식의 사기 진작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체국과 부대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조직이죠.”
그런데 군인에게 우편물을 보낼 때는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모든 군사우편물은 군사우체국을 거쳐가기 때문에 부대가 위치한 지역의 우편번호가 아닌, 그 부대 를 관할하는 군사우체국 우편번호를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에 있는 부대는 홍천 101군사우체국 관할인데, 그 지명대로 우편번호를 쓰면 간성우체국으로 갔다가 다시 101군사우체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군에 간 자식이 처음 집에 부쳐온 편지의 우편번호를 메모해 두었다가 그 우편번호를 써야 한다.
군사우체국과 부대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조직이다.
“오빠, 그거 알아? 오빠 군대 가던 날, 내가 울면 오빠 힘들까봐 눈에 힘주고 울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제야 고백하는데, 그 날 나 엄청 울었어. 손 흔들고 부대로 들어간 오빠 뒷모습 보면서 말야.
이젠 괜찮아. 오빠도 잘 있지? ……
난 오빠를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깐 힘 내구. 절대 탈영 같은 거 생각 말구. 알았지? 사랑해.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이 말을 하기 위해 늘어놓은 넋두리일 뿐야.”
믿음직한 초병의 모습에서 신세대 장병이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전공 세운 육군 칠성부대
육군 칠성부대는 1949년 6월 10일 창군과 함께 창설돼 전군에서 유일하게 한 자릿수 연대로 편성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부대로, 그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 5명 등 많은 지도급 인사를 배출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1950년 9월 영천대회전 때 적 2개 사단을 섬멸해 북진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1950년 10월 18일에는 연합작전부대 중 최초로 평양에 입성하는 등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달성했다. 6 • 25 전사에는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 15연대가 최초로 평양에 입성 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실제는 “한국군이 먼저 입성해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칠성부대 8연대가 먼저 대동강을 건너 인민군사령부가 있던 김일성대학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높은 긍지를 자랑하는 칠성부대는 해발 1,178미터의 백암산을 비롯해 깎아지른 산악 지형으로 형성된 중 동부 전선을 방어하고 있다. 이 지역은 휴전선 155마일 중 에서도 가장 험준한 지역이며, 한겨울에는 영하 30도, 체감온도 영하 40도의 혹한 및 폭설과도 싸워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 신세대 장병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신세대 장병이 나약하다는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신세대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목적의식이 주어졌을 때는 누구보다 성실히 일을 해내요. 지난 연평 해전이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보여준 병사들의 모습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잖아요.”
정훈공보장교 허범용 대위는 이렇게 신세대 장병을 평한다. 특히 요즘 입대하는 장병들은 학력이 높아 능률적인 업무 처리와 다양한 창의력으로 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철책선을 지키는 믿음직한 초병의 모습을 보면서 허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마저 되지 않는 GOP 근무 장병들은 험악한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도 견뎌내야 한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PC통신도 보안상 허용되지 않는다.
다행히 각 소초마다 일반전화가 설치돼 있어 가족이나 친구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단다. 그러나 그리운 사람에게 받는 한 통의 편지야말로 장병들에게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최고의 식사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한 소대원의 여자 친구가 전소대원에게 카드를 보내와 배부름을 함께 나눴다고 한다.
장병들에게 한 통의 편지는 가장 큰 기쁨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최고의 식사이다.
군사우체국의 고객은 당연히 군인, 이곳에서도 고객 만족이 필요하다.
비목의 고장에 가꾸는 무농약 농산물
104군사우체국은 영외에 위치해 있어 이 지역 군인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우체국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중한 이웃으로 자리잡았다.
염만호 국장은 무농약 쌀인 토고미와 재래식 방법으로 만든 장만동 청국장 등 이 지역의 특화 상품을 우체국으로 유치하고 있다.
토고미(土雇米)는 이곳 신대리의 별칭으로, 이 지역은 옥토가 기름져 부자가 많았기 때문에 농사일에 품을 팔면 꼭 쌀로 품삯을 받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무농약 오리농법으로 생산되는 이 고장 쌀이 토고미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열 환경농업 작목반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평소 저는 환경농업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6년 전 제가 위암 선고를 받고 나자 그때부터 부랴부랴
유기농 곡물과 채소를 찾았는데, 그런 걸 찾기도 쉽지 않고 구한다 해도 믿음이 가지 않았죠. 결국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직접 환경농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병원에서는 5년이 지나면 위암도 완치된 거라 보던데, 올해 6년째이니 이게 무농약 농산물 덕분이 아닐까요?”
자신이 직접 재배한 무농약 농산물 덕분에 위암마저 나았다는 한상열씨(왼쪽은 염만호 국장)
한상열씨는 홈페이지(www.sindae.org)를 개설해 환경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매년 6월 6일에는 오리를 논에 방사하는 토고미오리쌀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오리는 벼는 먹지 않고 풀과 벌레만 잡아먹어 농약이 필요 없으며, 오리의 배설물은 훌륭한 거름이 돼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한편, 강원도 화천은 ‘비목’의 고장으로 불린다. 유명한 가곡인 비목이 이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1964년 백암산 기슭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했던 한명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녹슨 철모와 이끼 낀 돌무덤에 세워진 비목을 발견하고, 그 무명용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노랫말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 ”으로 시작되는 비목이다. 화천군은 평화의 댐 근처에 비목 공원을 조성하고, 1996년부터 현충일을 전후해 순국 선열들을 추모하는 비목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 현충일에는 가족과 함께 화천에 들러 토고미오리쌀 축제와 비목문화제를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또한 군에 간 장병에게 위문 편지를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