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담양우체국 집배원 김신석씨
올해 열 살인 혜원이는 예쁜 소녀이다. 다른 집 아이들
같으면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한창 뛰어 놀기도 할 나이지만, 혜원이는 어릴 적에 뇌성마비에 걸려 아직도 기저귀를 차야 하고 말은 한마디도 못한다. 무엇이든 입으로 들여가는 버릇이 있어 곧잘 비누나 치약 등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곤 해서 병원에도 자주 실려간다.
아무리 보아도 대여섯 살 난 아이의 발육상태를 넘을 것 같지 않은 성천씨는 놀랍게도 서른 살이다. 가끔 찡그릴 때 얼굴에 잡히는 주름살만이 나이를 짐작케 해줄 뿐이다. 성천씨는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씻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고 목욕을 하려고 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전라남도 담양군의 한 산자락에는 혜원이나 성천씨 같은 장애인들이 35명 정도 모여 사는 곳이 있다. 그들 모두는 지체 장애와 정신 장애자들로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다.
“가난한 집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태어났기에 부모들이 그만 내다버렸대요. 포대기에 싸인 채 파출소나 동사무소 앞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또 사회에서 버림받아 갈 곳이 없다 보니 스스로 이곳을 찾아서 온다는군요.”
담양우체국 집배원 김신석씨(29세)는 갓난애로부터 65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 「빛고 을공동체」에 작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전남체신청과 담양우체국 직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의 일원인 그는 매주 이곳을 방문하여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목욕시켜 주고, 세탁물을 정리해 주며, 주변 청소까지 도맡아 한다.
사은품으로 받은 냉장고가 봉사의 길 걷게 해
방송이나 신문에서 남을 돕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면 김신석씨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었다. 그런 자신이 봉사 활동으로 매스컴을 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저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전남체신청과 담양우체국 직원들과 함께 합심하여 봉사 활동을 한 것뿐인데… 그저 사은품으로 받은 냉장고를 단지 우리 집보다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 기증했던 것인데, 매스컴에서는 저를 대단한 사람으로 기사화하더라구요.”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에서 실시한 「두리하나 정기적금」 사은 행사 때 1등상인 우정상에 당첨되어 부상으로 받은 100만원 상당의 냉장고를 「빛고을공동체」에 기증함으로써 지방 신문에 그의 선행이 보도되자 김신석씨는 일약 봉사 스타가 되었다. 자신은 조그만 사랑을 나눠 준 것인데, 돌아오는 반대 급부가 너무 크다고 얘기한다.
‘제가 남을 도우며 산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어요. 젊은 시절 제 자신이 오히려 밤업소를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아버님께서 저를 구해 주 셨죠. 집배 일을 권유하시면서 바르게 살기를 원하셨죠. 올해로 9년째로 접어드는데, 원해서 한 것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돌이켜 보면 집배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에 있어 크나큰 행운이죠.”
집배원이 되지 않았으면 아직도 어둠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라는 그는 집배원이 되면서 비로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은품으로 받은 냉장고가 계기가 되어 앞으로 조그마한 것이라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부분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힘들죠. 제 아내도 처음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냉장고가 욕심이 나서, 제가 기증을 한다고 했을 때 선뜻 동의를 하지 않더 라구요. 그러다 빛고을공동체 사람들의 딱한 얘기를 들려 주고, 냉장고를 받은 그곳으로부터도 너무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전해 듣자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 아내도 조그마한 것이지만 베푼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며, 얘들이 조금 크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용 기술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저희 부부는 늘 남을 도우며 살자고 마음을 굳혔어요.”
김은수 담양우체국장은 냉장고를 타던 날 “이 냉장고는 제 것이 아닙니다. 소중하고 뜻깊은 곳에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김신석씨의 말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며, 본연의 우편 배달 업무도 성실히 수행하여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를 요즘 보기 드문 신세대 젊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운영되다 보니 시설과 재원이 크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빛고을공동체 박정숙 원장은 의지할 곳 없는 장애인들 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1991년 광주에서 이 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원생들 대부분이 밥 한술 뜨는 것에서부터 세수와 목욕은 물론 대소변을 보는 일까지 모두 다른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죠. 그런 면에서 전남체신청과 담양우체국 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그분들이 매주 오셔서 소독을 해 주시는 바람에 모기 없는 여름을 보냈다니까요.”
박원장은 자원 봉사를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 힘들 어서인지 두 번 다시 들르려 하지 않는데, 우체국 직원들은 꾸준히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다며 고마움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빛고을공동체에 냉장고가 2대 있었는데 한 대가 고장이 나서 고민하고 있을 때 김신석씨가 도움을 주어 아주 긴요하게 쓰고 있단다.
‘저의 바람은 우리 원생들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갔으면 하는 겁니다. 꼭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조그마한 정성이라도 저희에게는 큰 것입니다.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거나 자원 봉사를 하는 이들을 만나보면,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봉사 정신을 잊지 않고 살고 있지만, 그들조차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병들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이들을 봉사의 길로 나서게 한다.
임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디지털 포스트」를 읽는 독자들도 이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눠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락처 : 빛고을공동체 (061)381-2165
후원금 송금 계좌 : 우체국 503565-0053054-12 예금주 : 박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