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대보우체국
주민들이 살린 작지만 오래 된 우체국
호미곶은 현재는 포항시 대보면에 편입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영일군 장기곶으로 불리던 곳이다. 포항에서 925번 지방도로를 타고 호미곶으로 가다보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가 이어 지며,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포구는 한 폭의 겨울바다 풍경화로 다가온다.
호미곶에 우체국이 들어선 것은 1920년 3월. 이곳을 어업 전진기지로 개발하던 일본인들이 통신을 위해 대 보우편소를 개소했다. 그 뒤 1953년 대보우체국으로 개칭했고, 1973년에는 도로 확장 공사로 우체국 자리가 밀려나 한때 폐국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지역 주민들이 마을회관을 기부체납해 명맥을 유지했다. 대보우체국은 이 지역 주민들 스스로 뜻을 모아 살린, 작지만 오래 된 우체국이다.
주민들이 뜻을 모아 살린 작지만 오래 된 대보우체국
호미곶은 주민들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작은 어촌이다. "고기 많이 잡는 게 소망"이라고 말한 어느 어부의 말처럼 주민들은 소박한 꿈을 위해 매일 배를 띄운다. 그런데 최근 해돋이로 유명해지면서 호미곶은 이제 새로운 관광 명소로 탈바꿈되고 있다.
호미곶이 해돋이 명소로 부상한 것은 최동단에 있다는 지리적 상징성 외에도 독특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중종 때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 선생은 그의 저서 「산수비록」에서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 즉 ‘호미(虎尾)’ 라고 칭하면서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토끼로, 호미곶을 토끼 꼬리로 둔갑시켜 폄하 하며, 우리 민족의 정기를 차단하고자 이곳에 쇠말뚝을 박기도 했다.
이에 포항시는 호랑이 형상인 한반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꼬리 부분이 튼튼해야 한다는 믿음을 살리기 위 해 그 동안 부르던 장기곶 대신 호미곶으로 명칭을 통일했다. 2000년에는 ‘한민족 해맞이 축제’ 행사지로 지정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때 변산반도의 천년대 마지막 일몰 햇빛과 호미곶의 새 천년 일출 햇빛을 채화해 ‘영원의 불‘로 간직해 놓았는데, 이 불은 각종 국제대회 때 성화의 씨불로 사용되고 있다. 해 맞이 광장 앞 바다에는 ‘상생의 손’이라는 거대한 손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등대박물관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고기 많이 잡는 것이 소망"이라며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활력 가져다 줄 호미곶으로의 명칭 변경
대보우체국에는 현재 송성동 국장과 여직원 김영순 씨만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이 두 명밖에 없어 송국장 의 말처럼 여간불편한 점이 많은 게 아니다.
“특히 요즘은 가만히 앉아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우체국도 책임경영평가니 마케팅 이니 하며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우리는 인원이 둘뿐이니 제가 자리를 자주 비울 수가 없어요. 그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이에 김영순씨도 거든다.
“맞아요. 우체국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국장님이 안계실 때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요. 무거운 소포 같은 것은 저 혼자 들지도 못하고, 국장님 혼자서 일을 다 하다시피 하는데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 참 안타까워요.”
이런 열악한 환경이지만 송국장은 이 구역 담당 집배원의 협조를 얻어 택배를 유치하는 등 나름대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 일도 만만치 않다. 1,200여 세대 3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어촌에 민간 택배업체가 무려 10여 개나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송국장은 소포요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서라도 올해는 택배 물량을 더 끌어들일 각오이다.
민족 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우체국과 등대의 명칭도 호미곶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최장 위원장
(왼쪽은 송성동 국장)
올해 대보우체국의 가장 큰 소망은우체국의 명칭 변경이다. 호미곶이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부상함에 따라 지역 발전 상황에 부합되도록 우체국 명칭을 현재의 대보우체국에서 호미곶우체국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우체국 이미지를 심고, 앞으로 지역 특화 상품 개발시 지명도가 높은 호미곶을 이용하면 홍보에도 유리하리라는 판단이다. 한편, 우체국뿐만 아니라 이 지역 주요 관공서의 이름을 호미곶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는데, 그 일에 발벗고 나선 사람이 최장 대보면개발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다. 대보면개발자문위원회는 대보면 지역 시의원 및 주요 단체 대표들과 10개리 이장 등으로 구성된 지역 주민들의 대표기관이다.
“이제는 일제에 의해 말살됐던 정기를 되살리고, 장래의 국운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 후손들이 이곳을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로 인식 하게끔 하기 위해 호미로 부르자는 것이죠. 그것이 우 체국의 명칭을 호미곶으로 변경해 달라고 건의하게 된 이유입니다.”
최위원장은 장기곶등대박물관의 이름도 호미곶등대 박물관으로 변경해 달라는 건의서를 함께 올렸다. 높이 가 2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1903년에 세워져 인천 월미도 등대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호미곶 등대는 철근 없이 벽돌로만 지은 건물로 아래로부터 위로 균형감 있게 좁아지는 르네상스 양식이어서 이국적인 경치를 자아낸다.
올해 소망을 묻자 “너무 오래 살았어”라고 대답한 90세의 박수달 할머니
식당을 운영하면서 관광객들의 소망을 듣고 격려해 준다는 서춘이씨
최위원장은 이 등대의 위치가 명당 중의 명당이라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이 자리에 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재적 가치가 커 등대를 헐 수는 없지만, 명칭만은 호미곶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며 소망이기도 하다.
“해돋이를 보고 온 손님들 중에는 부도난 사람, 부모의 반대로 결혼 못한 사람처럼 애절한 소원을 가진 사 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여기에서 해를 보고 소원 빌면 다 성취된다’며 등을 쳐주죠. 그렇게 걱정만 하지 말고 더 열심히 살라고 말이죠.”
식당을 운영하는 서춘이씨의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그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서춘이 씨 말처럼 소망 성취의 여부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오늘 태양을 못봤으면 어떠랴. 내일 태양은 다시 떠오를 테니. 바다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배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