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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찾고 인생 바꾼 감식초의 힘
그야말로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이 피어났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새 길이 열린 다는 말처럼 임장옥 명인에게 ‘대한민국 감식초 명인 1호’라는 타이틀이 주어지기까지 그 이야기의 출발은 그가 건강을 잃고 난 뒤 시작되었다. “가만히 생각하면 인생이 참 재미있는 게임 같어요. 고것이 말이지. 건강을 잃지 않았더라면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진 우리 집안의 감식초 제조가 나까지 넘어오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어쩌면 명맥을 이으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도 몰러.”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0년대 중반 직장생활을 하던 임 명인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루에 담배 다섯 갑은 기본, 소주도 마셨다 하면 한 자리에서 다섯 병은 거뜬히 해치웠던 그다. 위와 장이 크게 상한 것을 알고 나서야 건강을 돌보게 된 임 명인은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녔고, 소화제와 간장약을 달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효과는 잠시 잠깐뿐이더군요. 약력이 떨어지면 속이 쓰리고 변도 제대로 못 볼만큼 하루하루가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그의 건강은 직장 선배의 말 한마디에 대전환점을 맞았다. ‘감식초를 구해서 한번 먹어보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임 명인은 무작정 감식초 구하기에 나선 것이었다. “말만 들어서는 감식초가 약인 줄 알았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해봤는데 그 당시에는 감식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어요. 1990년대 초 들어서 감식초가전국에 시판되기 시작했으니까.” 등잔 밑을 살피지 못했던 임명인은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돈 후에야 자신의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던 식초가 바로 감식초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번쩍 생각이 나더라고. 어렸을 때 배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를 불러서는 종지에 초 몇 방울 따라주고 그걸 마시라고 했었어요. 마시고 나면 어머니가 등을 세 번 두드려줬는데 그걸로 아픈 배가 싹 낫곤 했었죠. 그게 바로 그 초구나 싶었지.” 한 주먹 약보다 좋다는 감식초의 효능을 몸소 체험한 임 명인은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 3대째 가업을 이어 감식초 제조 및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청정지역 정읍 먹시감 그 맛 그대로
감식초와 끈끈한 연을 맺고 나자 바쁜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놓치고 있던 옛 기억이 임 명인을 에워쌌다. “식초는 술을 빚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누룩을 만들어 틀에 넣어주면 그걸 발로 밟아서 장난 삼아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더군요. 어머니가 애써서 가마솥에 술밥 쪄놓으면 몰래 훔쳐다 먹고 그랬어요. 집안 곳곳 배어든 누룩 냄새가 참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잊고 지냈던 겁니다.” 뒤늦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서일까, 감식초를 향한 임 명인의 열의는 남달랐다. 어머니로부터 감식초 전통 제조법을 전수받은 그는 1700년대 발간된 <살림경제>와 같은 옛 문헌을 다각도로 분석해 식초 연구에 매진했다. “초는 우리 인체로 말하자면 ‘간’과 같아요. 여러 장기 중에 간 하나 다스리는 것이 나머지 모두를 다스리는 것보다어렵다고 하듯 간이 상하면 나머지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조미료가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식초예요. <동의보감>에서 초를 약이라 칭한 것도 이와 결부되는 얘기죠.”
임 명인은 1994년 전통식품을 보전하고 감식초의 효능을 널리 알리고자 금계식품을 창업해 공장 설립을 단행했다. 창업 과정에서 그는 가장 먼저 질 좋은 감을 찾는 데 중점을 뒀다. 오랜 세월 그가 살던 전북 김제를 떠나 정읍으로 단박에 터를 옮긴 것도 정읍이 예로부터 감 주산지로 명성이 자자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홍시가 되기 직전 설익어 떫고 탱탱한 먹시감이 감식초의 주재료다. 먹시감은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자 항암성분인 타닌 함량이 가장 높아 건강에는 최고로 친다. 철저하게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관리하고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은 감을 사용하는 등 재료에 대한 임 명인의 확고한 고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 감식초의 특징은 3년이란 긴 세월을 첨가물 없이 오로지 먹시감 하나로 완성된다는 데 있죠. 3년 이상 숙성과 발효를 거쳐야 감칠맛이 나고 향도 좋은 감식초가 만들어집니다.” 숱한 연구와 도전, 그리고 실패를 거듭하며 최적의 숙성기간을 밝혀낸 그는 2012년 3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1호로 지정되면서 국내 유일무이한 감식초 제조 및 연구 최고 권위자로 인정 받았다.
올바른 식문화, 식초에서 답을 찾다
임 명인이 우체국쇼핑과 연을 맺은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1997년 우체국 관계자로부터 입점을 제안받게 되면서 그가 정성 들여 만든 샘고을 감식초가 우체국쇼핑 고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입점하자마자 판매가 꽤 잘 됐어요. 우체국 직원들이 하나같이 제품 홍보에 열의가 넘쳤지. 비단 제품 판매에만 집중한 게 아니었어. 식초가 몸에 좋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또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를 인식하게 하는 데 앞장섰지.” 예전과 달리 쇼핑 채널이 많아지고 다양해지면서 변화가 생겼지만 임 명인에게 우체국쇼핑은 오래 사귄 벗과 같이 특별하다. 고운 정 미운 정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벗처럼 말이다. 그렇다 보니 우체국쇼핑과 관련해 때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다. “우체국쇼핑에 판매되고 있는 감식초 제품이 다양한데 가격이 아주 천차만별이에요. 그게 화가 나더라고. 싼값에 제품을 잘 팔아도 값비싼 제품이 옆에 버티고 있으니 고객은 의심을 하게 돼요. 그렇다고 고객이 값비싼 제품을 선택하냐고 하면 또 그게 아니거든. 이런 가격 구조가 고객들에게 의심만 사고 결국엔 제 살 깎아먹기가 되는 겁니다.”
가격에만 급급해 제품을 판단하고 구매하려는 일부 소비자들의 태도에도 임 명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 시간 식초 연구와 우리 감식초를 세계 곳곳에 알리기 위해 수년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그는 식초를 제대로 알고 먹는 유럽과 일본의 식문화에 감탄한 일화가 많았다. “스위스의 한 백화점에 갔더니 식초 100ml 한 병이 40만원에 판매되고 있지 뭡니까. 그 식초가 20년산이었는데 연산을 따져가며 식초를 먹고 즐길 줄 안다는 사실에 감복했지. 특히 유럽은 식당의 급에 따라 사용하는 식초의 급도 달라져요. 우리나라의 경우 고급식당이건 일반식당이건 99%가 빙초산을 사용하고 있으니 식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개념부터가 다른 거지.” 대한민국 감식초 명인 1호로서 갖는 그의 사명감은 전통식품을 보전하는 것만큼이나 올바른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명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비결이랄 게 없어요. 예로부터 해왔던 것 그대로, 하던 대로 하는 거지. 전통은 한결같은 마음에서 비롯돼요. 그것에서 건강하고 올바른 식문화가 나고 자라는 거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빚어낸 감식초의 맛과 가치, 향후 10년산, 20년산 감식초 제품을 시중에 내놓을 것이라는 임 명인의 포부가 실현될 날이 머지 않았다.
임장옥 명인(금계식품)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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