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乙玄年, 돼지띠이다.
올해 연하우표에는 커다란 복주머니를 지게에 진 돼지아저씨와 복조리를 한아름 안고 그를 뒤따르는 돼지아줌마의 만화 풍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난 갑술년의 삽살개 연하우표에 못지않는 가작이며, 최근의 연하 우표는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
12지의 마지막 동물인 돼지는 24방위에서 북서북을 다스리는 地神이며, 음력 10월과 오후 9 〜11시를 가리킨다.
금년도 연하우표의 도안이 보여주듯, 돼지는 재물의 상징이며, 한국에는 이 짐승과 관련된 민속과 무속이 많다.
돼지꿈은 길하여 복과 음식을 얻으며, 꿈에 돼지를 잡으면 대길이라 하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광에게는 다시 없는 길몽이다.
돼지는 家計의 기본적 재원이므로 정월 上玄日에 장사를 시작하면 좋다는 속신이 있고, 돼지의 한자음 돈(隊)이 돈(金)과 같은 데서 길조의 고리를 찾는 언어학자도 있다.
지난 달 초순 극단 은행나무의 창단공연물 「아시나말리」를 구경하였는데, 먼저 잡신을 내 쫓는 고사를 지냈다. 이 극단의 번영을 기원하여 돼지머리를 차려 놓고 모두들 그 주둥이에 돈을 쑤셔 넣고는 절을 하였다. 어미돼지가 10여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그림은 흔히 시중의 가게에서 볼 수 있다.
三國史記 권13 高句麗本紀에 돼지의 신통력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유리왕 21년, 하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인 교시(郊豕)가 달아나서 뒤쫒아가 붙잡고, 그곳 민가에서 기르게 하였다.
돌아온 신하가 그곳은 산수가 깊고 험하며, 오곡을 심기에 알 맞고, 짐승과 물고기가 풍부하므로 국도를 그곳으로 옮기기를 진언하였다. 그곳이 후일의 국내성 위대암이다.
고려 왕조에서도 돼지의 신통력으로 도읍을 송도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돼지를 흉조나 금기시 하는 속신도 있다.
꿈에 돼지가 죽으면 나쁘다는 생각, 임산부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피부가 거칠고 부스럼이 많다고 한다. 돼지를 탐 욕 · 불결 · 나태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돼지의 속성과 외모에 연유하였으리라.
서양인들의 돼지에 대한 정서는 부정적인 면이 강하며,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종교적 · 도덕적으로 죄악과 不淨으로 매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돼지고기는 금기 식품이며, 이를 어기면 신이 천벌인 문둥병을 내린다고 믿는다.
몇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KLM의 렘브란트 편을 탑승한 적이 있다. 점심의 기내식 뚜껑에는 돼지 그림에 X표 한 카드가 얹혀 있었으며, 이것은 이 음식에 돼지고기가 들어 있지 않다는 표지였다. 행선지가 이슬람국가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중동지역의 유대교인이나 이슬람교도들이 부패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금기시하게 된 이유에는 그 지역의 기후와 유목생활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며, 그 들은 양 · 낙타 · 소 따위 반추 동물은 먹되 굽은 갈라졌어도 반추하지 않는 돼지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돼지에게 진주, 탕아의 비유 등과 같이 신약에서도 돼지는 여전히 불결 · 타락의 상징으로 다루어졌고, 성서의 이러한 선입관념은 서양문학으로 이어져 곳곳에서 돼지가 푸대접을 받았다.
1980년대말 해발 고도 마이너스인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주변을 여러 차례 답사하였다. 편평한 호반을 따라 길이 뻗어 있지만 동쪽 골란고원 연안 한 군데만 길이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졌고, 급한 낭떠러지가 호수에 면해 있었다. 이곳 커시(c-ursi)에서 귀신들린 두 사나이를 만난 예수는 귀신들을 가까이에 있던 돼지 무리에게 옮겨가도록 하고, 이에 놀란 돼지들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몰사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오늘날 이곳에는 비잔틴시대의 교회 유적이 있다.
東夷伝에 혼인할 때 남자의 집에서 여자의 집으로 돼지고기와 술을 보낸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 사람은 옛 부터 돼지고기를 즐겼다. 굿할 때는 돼지머리를, 동제에서는 통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돼지가 들어간 우리 나라 땅 이름은 무려 2천개가 넘는데, 제일 많은 것은 돼지의 모습과 관련된 것이며, 제사에 사용될 돼지의 목을 자르는 곳이 있다고 하여「돼지목자른만댕이」라는 지명이 경남 창녕군 고암면에 있다.
한국 사람은 세겹살을 비롯한 살점 · 머리고기 · 콩팥 · 간 · 염통 · 껍데기에 이르기까지 돼지를 깡그리 먹어 치운다. 산모가 젖이 모자라면 족발을 달여 먹이고, 간질환자에게는 염통을 구워 먹이며, 순대는 한국의 대표적 서민 음식의 하나이다.
서양에서도 그리스도교인은 돼지를 기피하지 않고 오늘날 서양 요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바이에른州의 남쪽 퓌센에서 먹은 Jagersschnizel (사냥꾼의 컷렛)은 이곳 향토요리인데 돼지고기를 향료와 더불어 튀긴 것으로 특유의 소스와 함께 드는 맛이 일품이었다. 뮌헨지역에는 흰 소세지를 맥주안주 삼아 먹었다.
전라도 지방에서 뱃속의 돼지 새끼를 통째로 쪄서 요리한 애저찜은 나라 상감에게도 바쳤다는 보신 요리인데, 스페인의 古都 아빌라에서도 애저찜을 발견하고 그 공통점에 놀란 적이있다.
중국 · 타이완 · 일본 · 홍콩 · 마카오 등 해마다 연하우표를 발행하는 동양권에서는 돼지의 우표가 이미 여러 차례 발행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개를 도안으로 한 1958년용 연하우표가 처음 발행되었고, 다음 해는 돼지 띠였으므로 당연히 돼지우표가 나오리라 기대하였는데, 3종의 연하우표에 단 한마리의 돼지도 들어 있지 않아 첫번째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돼지는 12년 뒤인 19기년도 연하우표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부와 재화의 상징인 돼지 저금통이었다.
1983년도 연하우표에는 김유 신장군 묘의 호석에 부각되어 있는 玄神像을 도안으로 하였으며, 이 12支神像은 도안의 기법을 달리하여 전후 11번 연하우표에 등장하였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본격적인 가축우표가 발행되지 않고 있으나, 장차 토종돼지를 비롯한 돼지의 여러 품종이나 사실적인 도안의 돼지우표도 발행되었으면 한다. 다만 1987년 한국의 대표적 야생 포유류로서 호랑이 · 여우 · 삵과 더불어 멧 돼지의 諸突的인 모습이 우표로 발행되어 그나마 체면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