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된 화폐, 70년의 역사 신용카드… 다음은?
표준화된 형태의 화폐는 기원전 550년 중동의 고대국가 리디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금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금화와 은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됐고, 중국에서는 칼 모양의 철전이 사용되기도 했다.
지폐 형태의 화폐가 등장한 것은 중세 유럽이다. 거래금액이 커지면서 금속화폐는 들고 다니기 불편하고 위험했기 때문에 원거리 교역을 하는 상인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은행업자에게 현금을 맡기고, 대신 예금증서를 받아 들고 다니며 외상거래를 했다. 은행 계좌이체도 이 무렵 만들어졌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아예 금속화폐 대신 종이화폐를 만들었는데, 너무 남발하는 바람에 결국 폐지되었다.
현재와 같은 은행권 화폐는 16세기 런던 상인들이 금화를 금 세공인에게 맡긴 것에서 시작됐다. 금 세공인들은 금화를 맡아 놓고 대신 보관증을 써주었고, 이것을 현금처럼 사용했다. 이것이 은행권의 시초다. 이후 1694년 영국은행이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설립됐고, 국가 개념의 화폐를 첫 발행했다.
신용카드의 개념은 1894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의 한 호텔에서 단골 고객에게 종이 신분증을 발급하고, 현금이 없어도 이것을 제시하면 투숙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현재 형태의 첫 신용카드는 1951년 등장한 다이너스클럽이다.
국내에서는 1969년에 처음 신세계백화점을 시작으로 미도파, 롯데, 현대백화점 등이 매장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아는 범용 신용카드의 역사는 1978년 시작됐다. 당시 외환은행이 비자(VISA)와 제휴를 맺고 해외여행자를 겨냥해 내놓았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라 신용카드 소유 자체가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내에서 신용카드가 크게 확산된 것은 1997년 IMF사태 이후로 불과 20여년 남짓 되었다. 그리고 그 20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현금사용률은 23.3%다. 신용카드 사용률(57.9%)과 체크·직불카드 사용률(18%) 등에 비추어볼 때 현금사용률은 카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덴마크 노숙자의 QR코드를 통한 기부 구걸
1978년 등장한 국내 첫 신용카드.
당시 외환은행이 비자(VISA)와 제휴를 맺고 해외여행자를 겨냥해 내놓았다.
현금 없는 사회, ‘캐시리스(Cashless) 넘어 카드리스(Cardless)로’
이제는 현금을 넘어 실물 플라스틱카드까지 사라지는 카드리스(Cardless)까지 언급되는 시대다. 핀테크(Finance +Technology) 기반 각종 전자지급 서비스가 넘쳐난다.대중교통, 식당, 편의점 등 가릴 것 없이 전자지급 서비스가 대세다. 간편 결제와 모바일 뱅킹을 등록한 휴대전화만 있다면 지갑 없이 온종일 외출해도 불편이 없다.
북유럽에 위치한 일부 강소국들은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노숙자마저 모바일로 기부를 받을 정도로 전자화폐 사용이 활발하다. 직접 생산하던 동전과 지폐는 2017년부터 다른 나라에 생산을 맡겼다. 장기적으로는 전자화폐 ‘e크로네’를 도입해 운용할 방침이다.황당한 은행 강도 사연을 가진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현금을 쓰지 않는 나라다. 2030년까지 완전히 현금 없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스웨덴 소매점들은 합법적으로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아예 현금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웃나라 중국도 현금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드 결제가 쉽지 않았던 노점상까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결제한다.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카드 단계를 건너뛰고 모바일 결제가 대중화되는 추세다. 일본은 은행마다 인감을 지참해 현금을 인출하는 고객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현금 결제를 선호하는 나라다.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한 매장도 적지 않다. 일본 여행 시 환전이 필수일 정도다. 이런 일본에서도 최근 새로운 기술에 주목하고 있는데, 바로 QR 코드다. 미리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통신사에 관계없이 대금을 지불할 수 있고, 자동 정산도 가능하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LINE)이 최근 일본 후쿠오카현 북서부 후쿠오카시가 추진하는 캐시리스 사업 시범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네이버는 각 지자체와 연계해 라인페이 도입을 확대하고 캐시리스화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아프리카 국가인 케냐는 은행 없이도 전자 결제 수단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나라다. 제3세계 국가의 성공 모델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줬다. 2007년 케냐의 최대 통신사인 사파리콤은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엠페사(M-Pesa)’ 를 선보였고, 케냐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고 있다.
인도는 최근 캐시리스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다. 2016년 11월 인도는 500루피(한화 약 8,000원)와 2,000루피(약 32,000원) 신권을 발행하면서 기존 500루피와 1,000루피 구권 사용을 금지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유통되던 현금의 86%를 대상으로 한 달 정도 유예기간을 주고 교환이나 은행에 예치하지 않은 구권은 사용을 금지했다. 대신 신용카드 및 전자결제를 이용하면 할인 혜택을 줘 현금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극약처방은 통했다.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거래 투명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도 발전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인도에서 휴대폰 등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결제금액이 2020년 5,000억 달러(약 539조 원)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 최대 모바일 결제 기업 페이티엠은 이용자가 2억8,000만 명에 이른다. 페이티엠의 모기업인 원97커뮤니케이션스는 기업가치가 57억 달러(약 6조1,400억 원)로 세계 20위권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인도(페이티엠)
카카오페이
아마존고(계산대 없는 식료품점)
미래 결제시장 선진국 위해 '잰걸음'
IT강국 명성에는 미흡
우리나라도 비현금 결제 비율이 지속 상승하며 현금 없는 사회로 다가서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2016년의 현금 결제 건수 비중이 2014년 대비 37.7%에서 26%로 크게 감소했다. 금액 기준으로도 17%에서 13.6%로 줄었다.
반면에 대표적인 비현금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는 동기간 기준으로 결제 건수가 34.2%에서 50.6%로 크게 상승했고, 금액 기준으로도 50.6%에서 54.8%로 늘었다. 적어도 결제수단으로서 현금은 신용카드 등의 비현금 결제수단에 이미 밀려난 것이다. 최근에는 완벽한 인프라를 갖춘 신용카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 기반 전자지급 서비스까지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일평균 전자지급서비스 이용금액은 4,688억 원으로 36.5% 증가했다. 또 일평균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건수는 2,259만 건으로 11.5% 늘었다. 전자지급 서비스 하루 평균 결제액은 매년 2~3배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은 온라인쇼핑 일반화, 모바일을 통한 소액송금의 확산 등에 힘입어 이용실적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간편결제·송금 서비스는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지급카드 정보를 모바일기기에 미리 저장해놓고 거래 시 비밀번호 입력이나 단말기 접촉을 통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간편결제·송금 서비스의 일평균 이용실적은 전년보다 각각 180.1%, 212% 증가한 281만 건과 1,023억 원을 기록했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앱투앱’ 결제시장에 진출하면 관련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간편결제는 2016년 삼성페이가 출시되면서 보편화됐다. 현재는 △포털이나 SNS 회사가 제공하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금융사가 제공하는 신한FAN카드, KB국민앱카드, 포스트페이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가 제공하는 KG이니시스 K페이 △유통기업의 신세계 SSG페이, 롯데 L페이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결제형태도 모바일 플랫폼을 넘어 지문이나 정맥, 홍채를 활용한 생체인증으로 편리함을 더하고 있어 카드 가맹점들도 앞다투어 전자지급 서비스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올해 4월부터 3곳(판교H스퀘어점, 삼성역점, 구로에이스점)에서 현금 없는 매장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롯데는 하이마트와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에 생체인증(정맥)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외신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이 계산대 없는 식료품 매장 사업을 놓고 정면충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내 간편결제는 2016년 삼성페이가 출시되면서 보편화됐다.
기계가 결제하는 사물인터넷(IoT) 세상, 그늘도 살펴야
현금 없는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금 유통의 투명성 확보다. 신용카드 등의 비현금 결제는 온라인상으로 기록이 남아 자금 유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지하경제에서 악용되는 자금을 양성화할 수 있다. 화폐개혁 단행 이후 연간 1,000만 명이 소득세를 납부하여 세원을 확대한 인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화폐 발행량을 감소시키면 제조비도 줄어든다. 10원짜리 동전 제조비용은 약 20원이다. 비현금 결제가 활성화된다면 덴마크처럼 화폐 제조량을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그렇다고 현금 없는 사회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금융전산망이 해킹당하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국가 자금유통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그리고 노인, 빈곤층 등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약자들이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현금 결제 수단이 어렵기 때문에 현금 사용이 필요한 계층이다.
그런데도 IT기술 발전에 따라 비현금 결제 수단의 확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최근 제공되는 IT서비스들은 결제라는 과정 자체가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생략되기 때문이다. 실제 차량 공유(쏘카)나 카풀(풀러스) 등의 모바일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는 사전에 등록한 신용카드를 통해서만 결제가 이뤄진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요금을 별도로 정산할 필요 없이 플랫폼에서 자동 결제가 진행된다. 결제 수단 선택, 쿠폰 적용 등의 결제 과정을 간소화해 서비스 만족도를 상승시켰다.
향후 사물인터넷(IoT) 결제에서도 비현금 결제는 유일한 결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냉장고가 우유를 주문하고, 세탁기가 세제를 주문하는 등 사물인터넷 디바이스가 스스로 상품을 구매하고 미리 등록된 비현금 수단으로 자동 결제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 거래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간 거래, 사물과 사물 간 거래에서 ‘캐시리스(Cashleess)’는 숙명이다.
2015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아일랜드의 한 대학 강연에서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뭔지 모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5년 안에 중국을 무현금 사회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2022년, 중국에서 진짜 현금이 사라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