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미술의 기원
: 서양미술의 근원을 찾아서
(좌)그리스 신전 (우)성소피아 성당(비잔틴)
미술의 역사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과 종교가 생겼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전파했다. 동굴에 벽화를 그리며 종교의식을 치렀으며 토기에 그들의 문화를 새겨 넣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는 점점 자연의 규칙을 깨달았고 이에 따라 이성이 발달하고 과학탐구가 활성화된다. 자연에 대한 물리학적 개념이 생기고,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이 발달한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정치와 철학 개념을 확립해 나갔다. 그리스의 건축 하면 신전이 떠오르는데 신전의 건립자는 도시국가나 시민이었다고 한다. 훗날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주한 한 집단이 로마 제국을 형성하였고,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술을 응용한다. 로마인들이 오랜 시간 유럽 전역을 통치하면서 그리스의 미술은 서양미술의 근간이 된다.
5세기 ~ 15세기
비잔틴, 로마네스크,고딕
: 신의 메시지를 담다
325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중세시대로 접어든다. 400년경부터 1400년경까지 약 천 년의 시대를 중세라고 부른다. 중세 미술의 주요 소재는 신의 메시지나 교리였다. 이 시기에는 천 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상을 우상으로 생각하여 회화나 조각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395년 로마제국은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었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했으며 그 시대의 미술 양식을 비잔틴이라고 부른다. 비잔틴 양식은 그리스·로마 문화에 동방문화가 융합되어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를 띤다. 대표적으로 성 소피아 성당을 들 수 있는데, 거대한 돔이 얹어진 형태의 건축물과 화려한 모자이크가 특징이다. 한편 서로마 제국은 476년 멸망한다. 서로마 지역은 프랑크, 서고트, 앵글로색슨 등 호전적인 왕국으로 흡수되어 켈트족, 게르만족의 새로운 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서로 다른 왕국의 문화가 부딪히고 융합되면서 미술의 외연은 넓어진다.
14세기 ~ 16세기
르네상스
: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전승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_모나리자(르네상스)
장인 계급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생산의 대리인으로 여겨져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 생산의 대리인이 된 중산층은 정치와 문화의 무대에서 두각을 내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중부지방 피렌체 공화국의 메디치가문은 은행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14세기 후반부터 부흥하던 르네상스 운동을 후원한다. 르네상스란 ‘학문 또는 예술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전승하자’는 문화 운동이다. 중세시대, 약 천 년간 신의 메시지를 주제로 미술작품을 만들었다면,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그것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처럼 실제의 세계를 닮은 미술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메디치가문의 후원으로 15~16세기에 걸쳐 많은 미술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해부학이나 원근법과 같은 과학적 지식이 발전되면서 회화와 조각이 더욱 정교해졌다. 피렌체에서 시작한문화 부흥 운동은 로마와 베네치아로 전파되었고, 1500년경에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불릴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화가였다. 그는 생전에 20개의 작품밖에 제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모나리자>다. <모나리자>는 액자에 넣어 벽에 걸 목적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으로 그 작품성뿐만이 아니라 현대까지 모방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재생산된 그림이기도 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7세기 ~ 18세기
바로크, 로코코
: 화려함으로 시선을 압도하다
렘브란트 반 레인 _ 야경(바로크)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_ 그네(로코코)
17세기 미술사조는 르네상스의 진일보한 미술 기술에 웅장한 규모가 더해져 ‘가장 화려한 시기’라고 일컫는 바로크 시대로 접어든다. 17세기경 로마교황청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사치스러운 성당이나 예술작품을 그려 신도들을 끌어모았으며, 그들의 시선을 압도하기 위해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이는 프랑스로 퍼져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바로크 형식으로 화려하게 지었다. 바로크의 화려함은 루이 15세가 통치하면서 극에 달했으며, 지나치게 장식적이었던 이 시대의 미술양식을 로코코라고 한다.
19세기 ~ 현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 격변의 시대, 미술 변화를 거듭하다
장 프랑수아 밀레 _ 이삭 줍는 사람들(사실주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는 세력을 잃었고 군주제는 무너졌다. 산업혁명으로 도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도시 빈민이 급증했다. 복잡한 시대상만큼이나 19세기 미술 또한 사조에 대응하는 또 다른 사조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신고전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신고전주의는 말 그대로 고전의 열기를 다시 찾자는 사조로, 고대의 역사나 신화에 나온 진지하고 서사적인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당대의 사회가 쾌락적이었기 때문에 규율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으로 도덕적인 주제가 강조된 것이다. 신고전주의의 이성적인 객관주의가 미술계를 사로잡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감수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특히, 영국의 화가 터너는 자연적인 풍경에 영웅적 요소를 가미하여 풍경화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된다. 한편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발달하자 사람들은 신고전주의를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으며, 낭만주의를 현실 도피적인 그림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사실주의 미술 사조가 생겨났다. 사실주의를 따르는 화가들은 시각적으로 인지된 것만 수정하지 않고 정확하게 따라 그렸다. 사실주의가 미술사에 두각을 나타낼 때쯤 ‘사진’이 발명되었다. 사진이 발명되자 어느 낭만주의 화가는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고, 몇몇 사실주의 화가는 “사진을 활용하여 미처 몰랐던 포즈를 잡아낼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림을 정확하게 묘사하자, 인상주의 사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을 포착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 등이 있다. 이후 미술은 뭉크의 <절규>에서 나타나는 초기 표현주의를 거쳐, 20세기에는 생생한 색채를 사용한 마티스의 <생의 기쁨>에서 표현된 야수주의, “나는 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는 피카소의 입체주의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며 개성을 드러냈다. 오늘날에는 첨단 기술이 더해져 더욱 색다른 미술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가다. 모네는 어느 날 문득 노르망디 해안을 유람하며 그림을 그리다가 햇살을 가득 품은 풍경에 빠지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자연의 인상을 기록하는 인상주의 선두주자가 된다. 1874년 첫 인상주의 전람회에 <인상 : 해돋이>를 출품한 후 모네는 죽을 때까지 “빛은 색채다” 라는 인상주의 신조에 충실한 삶을 산다. 그는 빛을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집념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0개의 캔버스를 늘어놓고 빛의 변화되는 현상을 화폭에 담았다. 빛에 대한 집착, 그 인상과 색채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모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면 봄날에 따스한 햇볕이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생각을 입혀 표현하였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들이 그린 세상을 바라보고, 여행하며, 영감을 얻는다. 하나의 미술작품에는 그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술작품들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당신의 마음을 두드린 작품은 무엇인가. 그 작품은 무엇을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