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주머니쥐의 노래
“외교부에서 조약문이 없어졌거나/ 해군 본부에서 설계도를 잃어버렸 을 때/ 복도나 계단에 종잇조각이 떨어졌을지 몰라도/ 조사해봐야 소용없어. 마카비티는 거기 없다네!/ 분실사고가 생기면, 정보부는 말하지/ 마카비티 짓이야. 그러나 마카비티를 찾아보면/ 십 리는 떨어진 곳에서 쉬거나 발가락을 핥거나/ 복잡하고 긴 나눗셈에 빠져 있을 거야”(T.S. 엘리엇, 〈마카비티 정체불명 고양이〉)‘현대시 선구자’ 엘리엇은 자신의 대자(代子·Godson)를 위해 ‘고양이 동시’를 썼다. 고양이 마카비티는 셜록 홈즈의 악당 ‘모리아티’에서 따왔다.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고양이 버전도 있다.
“그런데 지붕 위에서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요. 분명 난롯가에 웅크리고 있는데/ 때로는 난롯가에서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요. 분명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데/ 어쨌든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르랑 소리를 들었어요/ 그건 남다른 마력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T.S. 엘리엇,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아이들은 그의 고양이 연작시를 좋아했지만 비평가들의 평은 가혹했다. 1939년 연작 동시들이 <늙은 주머니쥐의 지혜로운 고양이에 대한 지침서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이하 고양이 지침서)로 묶이자 비평가 존 홀름스가 “이 시집의 출판을 막았어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엘리엇은 자신의 시에 대한 비판에 매우 예민했는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척 반응했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늙은 주머니쥐(Old Possum)’라는 별명을 붙인 건 시인 에즈라 파운드였다. 주머니쥐는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체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이 별명을 시집 제목에 넣을 정도로, 파운드는 누구보다 엘리엇을 잘 아는 동료였다.
파운드는 ‘무명’에 가까웠던 영국 런던 로이드은행 직원 엘리엇의 시를 알아보고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끈 후원자이기도 했다. 엘리엇이 은행을 그만둬도 생활비 걱정 없이 시를 지을 수 있도록 ‘벨 에스프리(Bel Esprit·아름다운 영혼)’란 모임을 만들고 후원금을 받았다. 회원 30명이 엘리엇에게 1년에 10파운드(미화 50달러)씩만 후원해도 1년에 300파운드(미화 1500달러)를 지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벨 에스프리의 회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즈음 나의 가장 행복한 꿈은 자유의 몸이 된 엘리엇을 은행 밖에서 만나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엘리엇이 문학평론지 <크라이티어리언 Criterion>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귀족 재력가를 소개시켜 준 이도 파운드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위대한 발견이었다.”*
*요하네스 클라인슈튀크. 《T.S. 엘리엇》, 김이섭 역. 한길사 1997
캣츠, 투자해볼까?
1981년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고양이 지침서>에 곡을 붙이고,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연출가 트레버 넌이 뮤지컬로 만든 게 ‘캣츠’다. 1981년 초연 이후 전 세계 30개국, 300여 개 도시에서 9000회 이상 공연됐고 7300만 명이 관람했다. 토니상 7개 부문을 포함해 올리비에상, 그래미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7년 내한공연에서 캣츠는 2개월 동안 10만 명 이상이 관객을 모았다. 이 캣츠가 다시 돌아왔다. 7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내한공연에 들어간다.캣츠는 한국에서 마케팅 비용 일부를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조달키로 했다. 자본금 5만 원짜리 ‘캣츠크라우드펀딩 주식회사’가 만들어졌고,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인 ‘와디즈’를 통해 3억 원을 마련키로 했다. 일반인들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고 1인당 투자 금액은 최소 10만 원, 최대 200만 원이다.
캣츠는 한국에서 마케팅 비용 일부를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조달키로 했다. 자본금 5만 원짜리
‘캣츠크라우드펀딩 주식회사’가 만들어졌고,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인 ‘와디즈’를 통해 3억 원을 마련키로 했다. 일반인들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고 1인당 투자 금액은 최소 10만 원, 최대 200만 원이다.
뮤지컬 <캣츠> 크라우드펀딩 | 와디즈 홈페이지 캡쳐
캣츠의 손익분기점은 유료관객 9만 명으로 예상된다. 9만5000명 관람 시 투자금의 2.5%, 10만 명이 봤을 때는 5.0%, 10만5000명일 때는 8.0%, 11만 명 관람 시에는 11.0%를 수익으로 지급키로 했다. 현재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 이자가 1.10~1.50%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물론 수익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15.4%)를 내야 한다. 100만 원 이상을 투자할 경우 캣츠 뮤지컬 예매 시 50% 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원금과 수익을 돌려받는 크라우드펀딩을 ‘증권형(채권형) 크라우드펀딩’이라고 한다. 캣츠처럼 이익참가부사채(일정 이율의 이자를 지급받고 기업의 이익분배에 참가할 권리가 부여된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도 있고, 채권 만기 시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에 투자하는 방식도 있다. 투자를 위해선 증권사에서 계좌부터 개설해야 한다. 이후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 14곳의 홈페이지에 가서 투자처를 ‘윈도 쇼핑하듯’ 찾아보면 된다. 각각의 중개업체가 소개하는 프로젝트들은 모두 다르다. 투자설명서에 공개된 증권 발행조건,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등을 확인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중개업체의 프로젝트 소개 글에서 청약 버튼을 누르면 청약이 진행된다. 청약 기간이 끝나고 총 펀딩 참여 금액이 목표 금액의 80% 이상이면 증권이발행, 투자자의 계좌로 입고된다. 80% 미만이면 발행이 취소되고 청약 증거금에서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 계좌로 환급된다.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캣츠에 투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미안하지만, 사실 캣츠 크라우드펀딩은 지난 4월 청약이 마감됐다. 당초 3억 원을 목표로 했던 펀드는 청약 시작 3시간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고 5억 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총 519명의 소액 투자자가 총 5억3030만 원을 투자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지난해 1월 도입된 제도다. 일반 투자자는 동일 기업에 한해 연간 200만 원, 누적 500만 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근로소득금액과 사업 소득금액 총액이 1억 원 이상인 소득요건 구비 투자자는 동일 기업에 대해 연간 1000만 원, 누적 2000만 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소득공제도 가능하다. 투자 기업이 벤처기업이나 창업 4년 내 기술성 우수기업에 해당하면 1500만 원 이하 투자자는 100%, 1500만 원 초과~5000만 원 이하는 50%, 5000만 원 초과는 3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수익이 높은 만큼 원금 손실 위험도 높다. 크라우드펀딩은 원금을 5000만 원까지 보장해주는 예금자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투자기업이 부도날 경우 원금을 날린다는 소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까지 약 17개월 동안 187개 기업이 펀딩에 성공해 1만3221명의 투자자로부터 295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서울에서 친환경 사회주택(입주자들이 공유차·주차장·마당 등을 함께 쓰는 소형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업체, 2003년 단종된 ‘갤로퍼’ 차량을 개조해 새로운 자동차로 만드는 수제 자동차 업체, 수제 햄버거 매장 등은 3차례나 펀딩에 성공했다.
기존의 공모나 사모펀드 등을 통해서는 자금을 모집할 수 없었던 업체들이 상당수다. 이 때문에 크라우드펀딩은 ‘롱테일 경제’를 실현 시킨다고 평가받는다. 미국의 경영전문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만든 용어로, 인터넷의 발달로 상위 20%가 아닌 나머지 80%가 중요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류 20%가 나머지 80%를 압도한다는 경제학의 ‘파레토 법칙’을 뒤집은 개념이다. 주류 20%에 속하지 못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살아남고, 다수의 소액 투자가 전체 투자금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현상들을 통칭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까지 약 17개월 동안 187개 기업이 펀딩에 성공해 1만3221명의 투자자로부터 295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서울에서 친환경 사회주택(입주자들이 공유차·주차장·마당 등을 함께 쓰는 소형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업체, 2003년 단종된 ‘갤로퍼’차량을 개조해 새로운 자동차로 만드는 수제 자동차 업체, 수제 햄버거 매장 등은 3차례나 펀딩에 성공했다.
내 ‘안목’으로 ‘스타 키우기’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음반을 사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표를 몰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스타’를 후원하는데 사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기부·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해 소액의 돈을 보태는 팬들도 있다. 보상형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 ‘메이크스타’ 홈페이지에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콘서트·화보 비용 등을 마련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선망하는 스타에게는 기꺼이 지갑을 열려는 팬심을 이용한 것으로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싸인CD’, ‘화보집’, ‘명예제작자 증서’, ‘스페셜 팬 미팅’등의 보상이 따른다. 팬들에게는 ‘희귀템’이다. 펀딩 대상은 신인급 아이돌이 대부분이지만, 그룹 ‘유리상자’의 앨범 비용을 마련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보상형 펀딩의 대표적인 곳이 세계 최대 크라우드펀딩업체 ‘킥스타터’ 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시제품 아이디어를 올려놓으면 투자자들은 나중에 개발될 상품을 미리 할인된 가격에 산다. 스타트업들은 이 돈을 모아 상품 개발에 나선다. 오큘러스VR의 가상현실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가 킥스타터를 통해 개발됐다.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은 스타트업 기업이 제품의 적정 가격과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이 외에 대출형 크라우드펀딩도 있다. 흔히 ‘P2P대출’, ‘P2P’로 줄여 부른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이 직업, 재산, 대출총액 등 자신의 정보를 P2P 중개업체 사이트에 공개하면, 소액 투자자들이 중금리(8~10%)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한류스타 크라우드펀딩 | 메이크스타 홈페이지 캡쳐
경마에 쓰든, 투자에 쓰든
증권형이나 대출형 펀딩은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뜻에 맞는 기부·보상형 펀딩에 소액을 투자(후원)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돈을 쓰는 것엔 언제나 ‘복병’이 있기 마련. 벨 에스프리에 돈을 보태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던 헤밍웨이조차 때때로 ‘후원이냐, 경마냐’를 놓고 갈등했다. 엘리엇을 위해 따로 떼놓았던 돈을 들고 엥기엥 경마장을 찾은 날, 내기에서 진 헤밍웨이는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달랬다.
“지나치게 많은 흥분제가 투여된 말이었어. 출발 신호가 울리기도 전에 기수를 떨어뜨리면서 혼자 튀어 나가 환상적인 기량과 속도로 장애물 경주 코스를 멋지게 완주했지. 결국 그 말은 붙잡혀 와서 기수를 태우고 다시 경주를 시작해야 했는데 프랑스 경마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자면 ‘훌륭하게 뛰었지만 등외로 들어와서’ 상금은 없었어. 내가 그 경마에 걸었던 돈이 벨 에스프리에 보태졌더라면 내 만족감은 더 컸을 거야. 그러나 그 경마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원래 계획했던 기부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벨 에스프리에 기부할 수도 있었겠지.”
항상 그렇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고, 항상 기회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벨 에스프리도 실패한 ‘펀딩’이었다. 일단 엘리엇 본인이 은행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은행을 그만둔 건 몇 년이 지난 뒤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엘리엇은 전 세계 은행원 중에서 가장 은행원 같은 은행원”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크라우드펀딩도 마찬가지다. 경마에 돈을 쓰든, 투자에 돈을 쓰든 수익과 위험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함께 다닌다. ‘위대한 발견’도 항상 그렇게 나온다.
작가소개 이재덕 기자
경향신문 기자.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은행, 시중은행, 카드사 등에 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