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거나 살다 온 사람들이 자주 들먹이는 화제거리 가운데 하나는 우체국 이용과 거기에 깃들인 추억이다. 특별한 서비스나 고객 감동이 있어서가 아니다. 늘 이웃처럼 지내면서 우체국을 이용할 때마다 국민을 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잘 발달된 미국의 우편제도가 미국에 사는 맛을 더 달게 하고, 그 단맛이 미국을 떠나더라도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미국은 우리와 달리 모든 공공요금의 납부나 개인 결제 등에 개인 수표가 반드시 쓰인다. 아니 개인 수표가 아니면 결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개인 수표가 사용되기 때문에 자금의 흐름이 한 눈에 드러나 미국 전체가 투명한 사회가 된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납부할 때나 할부금을 지불하거나 자동차 보험료를 지불하거나 월세를 집주인에게 낼 때 등등 모든 결제가 바로 개인 수표에 의해야 되고, 이 개인 수표는 우편으로 보내진다. 그러니까 우체통과 우체국은 하루에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된다.
미국의 우체국은 각 타운에 하나씩 자리잡는다. 우체국 마당에는 3~4개 정도의 우체통이 있다. 이 우체통에는 'out of town” 즉, 우리 동네를 벗어나는 우편물을 담는 우체통 3개 정도와 'town only' 즉, 우리 동네로 가는 우편물을 담는 우체통이 하나 정도 비치된다. 우체통의 높이는 차를 타고 온 고객이 운전석에 앉은 채 바로 우편물을 집어 넣을 수 있도록 운전석과 같은 높이를 갖고 있다. 오늘 하루의 집배 시간을 우체통 앞에 크게 적어 놓고 있다. 하루 두번, 오전 10시와 저녁 6시라고 적고 있다.
마지막 집배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무슨 공과금을 낼 때 오늘이 마감이라고 치면 우체국의 ‘오늘 자 소인을 받기 위해 내가 지켜야 할 시각이 오늘 오후 6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 본다. 미국의 어느 우체국이나 그 앞에는 우표 자동판매기가 있다. 미국에 4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번도 이 자동판매기가 고장 난 것을 본 적이 없다. 또 우리의 커피 자동판매기처럼 동전이 없다는 안내 표시를 본 적도 없다. 우체국 입구를 지나 우체국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처럼 카운터가 있다. 그 카운터 안에 3~4명의 직원들이 근무를 하는데, 이들의 표정이나 모습이 무척 여유롭다.
이웃보다 가깝다.
우체국을 찾는 고객의 용무는 다양하다. 우리처럼 일반 우편물을 보내는 것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 우체국은 아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우체국에서는 여권의 신청을 받아 준다. 아니 우체국에서 해야 한다. 우체국을 들어섰을 때 맨 오른쪽에 여권 접수창구가 배치된다.
미국에 오래 살던 친구가 딸을 늦게 봐서 이 늦게 난 딸의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함께 우체국을 찾았다. 여권 수수료는 20달러. 우리는 현찰 20달러를 들고 긴 줄을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 단 한 장뿐인 여권 신청서류와 늦게 난 딸의 출생증명서를 제출했다(여권 서류가 아주 간단하다). 체격이 큰 흑인 지웍은 신청 서류를 점검하더니 웃으면서 우리가 모르고 안 쓴 곳을 친절히 우리에게 물어 자기가 대신 적어 넣어 준다. 다된 것 같다.
이제 수수료 20달러를 지불할 차례다. 그런데 우리가 내민 현찰 20달러를 본 흑인 직원이 아주 곤란한 듯한 인상을 짓는다. 여권 수수료는 모두 우편환으로 받는다는 것이다(미국의 모든 행정 수수료는 우편환으로 처리된다. 현찰은 우편으로 받지 않는다).
우편환으로 바꾸는 창구를 보니 줄이 어지간히 길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옮길 양 발길을 떼려 하는데, 그 덩치 큰 흑인 직원이 '아, 움직이실 것 뭐 있어요. 제가 움직이면 더 가까운데요. 그냥 계세요. 내가 바꿔서 할께요. 손님들은 우편환으로 바꾸는 수수료나 내세요.” 하면서 그 큰 덩치에 느린 걸음으로 우편환 바꾸는 창구로 가서 자기가 바꿔 준다.
친절하다는 생각보다는 이웃끼리의 불편을 나눠 주는 인간적 정이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미국식 비즈니스 문화가 정말 편리하고 고맙다고 감탄했다.
일년에 한번 하는 소득세 신고도 우체국에서 한다. 출생신고 등 우리 동네 행정관청에 접수시켜야 할 서류가 비치된 곳도 우체국이다. 우체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우체국 수입을 늘리려 애쓴다.
우체국 창구 앞에는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다. 미국 우편국의 마크가 들어간 티셔츠와 머그컵이 주류를 이루고, 추수감사절이나 미국 독립기념일 등에는 새로 개발된 상품들이 추가된다. 특히 이 자리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우체국들도 보다 비즈니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품은 우표이다. 이른바 기념우표를 미국 사람들은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이 기념우표가 우리처럼 무슨 무슨 기념일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늘 아무 때나 나오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흘러간 유명 배우들의 시리즈 우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마릴린 몬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청춘의 반항아 제임스 딘, 심지어는 만화영화의 주인공 '미키 마우스' 까지.... 이런 우표들은 보기 좋은 액자에 들어있는 상태로 또는 그 우표판(? ) 통째로 팔리는데 아주 인기 있는 상품이다.
서비스가 고객 중심적이다.
미국은 휴가철이 길다. 휴가를 가느라 집을 한참 비울 때는 우체국을 찾아 신고(? )를 해야 한다. 우체국에 내가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우편물을 배달하지 말고 우체국에 그대로 잡아 놓고 있어 달라는 신청을 해야 한다. 이를 영어로 MAIL HOLDING이라 한다. 또 집을 이사하는 경우 내가 살던 전 주소로 들어오는 우편물을 새 주소로 자동적으로 보내 달라는 신청을 하게 되는데 이를 FORWARDING이라 한다.
이런 서비스를 위해서는 우체국을 방문해 신청 용지에 적고 우체국 직원 앞에서 자기가 사인을 해야 한다. 휴가를 다녀온 뒤에는 다시 우체국을 찾아 우편의 배달 재개를 부탁하게 되고, 그 동안 우체국에 보관해 뒀던 우편물을 찾아오게 된다.
이런 서비스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침에 우체국을 찾으면 항상 긴 줄이 서있다. 이런 고객, 아니 동네 주민들을 위해 우체국 한쪽 구석에는 늘 갓 끓인 듯한 커피가 비치돼 있으며, 간혹 도넛과 과자 등 간단한 요기거리도 볼 수 있다.
우체국의 모습이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체국을 약속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양로원처럼 우체국 앞의 긴 벤치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큰 건물을 갖고 있지 않아도 이들의 우편문화는 인간적이며 정감이 있다.
우체국은 참 좋은 직장이다.
우체국 직원은 연방 공무원이다. 따라서 신분이 보장되고 미국 사회가 특징으로 갖는 해고의 위험이 없다.
따라서 아주 좋은 직장이다. 보수는 적다. 그러나 BENEFIT(복지 혜택)이 아주 좋다. 의료보험이라든지 좋은 공연의 입장권을 싸게 살 수 있다든지 휴가가 보장되고 하는 등의 복지 혜택이 아주 좋다. 따라서 미국에 이민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직장 중 하나이다. 한국인 우체국 직원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만족해 한다. 일년에 두세 차례 우체국 직원 시험을 보는데, 일년 전 미국에 사는 형님의 주선으로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의 한 젊은이는 한달 정도 공부해서 우체국 직원 시험에 붙었다.
시험에 붙으면 우선 연고지를 위주로 해서 또 붙은 사람이 근무를 원하는 지역을 우선 순위로 해서 근무처를 배정해 준다. 연방 공무원이기 때문에 내가 뉴욕에 살다 서부의 끝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하면 그 로스앤젤레스 우체국에 가서 근무를 할 수 있다.
진급은 대단히 느리다. 그러나 연수가 쌓이면 봉급도 올라간다. 미국은 공무원들이라 하더라도 시간외 근무를 철저히 따지기 때문에 새벽근무나 심야근무를 하면 일년에 세금을 떼기 전 수입이 약 6만불(10년정도 일한 사람의 경우) 정도 된다.
주민들은 늘 고마움을 표시한다.
미국의 우편집배원들은 크리스마스 때 자기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각 가정집의 우체통에 꽂힌 작은 봉투를 받게 된다. 주민들이 일년 동안 우편물을 배달해준 집배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얼마간 돈을 넣어 성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 돈의 액수는 10달러를 넘지 않는다. 우리 돈으로 만원을 조금 넘는 액수이다. 그래도 이들은 대단히 기뻐한다. 돈을 받은 다음날에는 집배원들은 고맙다는 표시의 카드 Thank you card'를 자기에게 돈을 준 가정의 우체통에 다른 우편물과 함께 집어넣는다.
물론 우리처럼 자기가 맡은 동네 주민들의 신상도 잘 꿰고 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우편물은 직접 전달도 하고, 그 노인이 밖으로 보낼 우편물을 직접 접수도 하며 또 우편배달 이외의 다른 심부름도 하게 된다. 이처럼 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에 집배원이 자주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집배원이라는 직업이 좋은 직업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우편문화를 보면 요즘 한창 떠들고 있는 우리의 구조 조정작업이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며, 그 목표가 어떻게 잡혀져야 하는가를 절로 알게 된다.
나는 미국의 우체국을 늘 그리워한다. 그 편안한 분위기와 정겨운 사람들, 그리고 그 편리함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