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3월과 달리 여러가지 복병 같은 날씨에 구애받을 필요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4월은 답사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 철을 맞은 봄꽃들의 살랑거리는 자태에도 취해 보고, 꽃내음 가득한 봄길 위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계절에, 문화유산 답사까지 겸하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최선의 선택 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4월의 첫 문화유적 답사 코스는 충청남도 지역이다. 산과 들과 강이 한반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유순하고, 부드럽고, 느 릿한 느낌을 주고 있어 봄이라는 계절과 걸맞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이 지역은 백제문화의 보존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백제의 문화유적 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불교문화 유적들의 강한 지역적 특성이 백제의 정취를 전해주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따라서 어느 답사 코스보다도 이 지역의 답사는 백제인들의 정취를 느껴보는데 중점을 둘 것을 권한다.
일반적으로 충남의 답사 여행 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 공주와 부여이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진열하고 있는 국립 공주박물관 답사로 시작되는 공주의 답사는 많은 볼거리와 공산성, 금강 등의 산책 코스로 크게 나뉠 수 있다. 또한 부여는 백마강에 얽힌 여러가지 사연을 통해 백제의 향기를 더듬는 데 적절한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공주 일대
갑사 : '갑사 가는 길’이라는 수필로도 유명한 이 절은, 글은 글일 뿐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할 정도로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랜 내력과 은은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전해주는 곳이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봄철에 유난히 좋은 마곡사와 더불어 공주 답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인 이곳은 백제 구미신왕 원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기록으로 분명한 것은 무령왕 3년에 천불전을 중창했다는 것이 정설. 특히 통일신라 때 세웠다고 짐작되는 철 당간과 고려 때의 부도는 이 절이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도 꿋꿋하게 제 면모를 지녀왔음을 말해준다.
갑사의 자랑거리로는 선조 2년에 새긴 월인석보 판목을 꼽을 수 있다. 보물 582호로 지정 되어 있는 윌인석보는 월인천강 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엮은 것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칭송한 것. 본래 쌍계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우리 나라 유일본으로도 유명하다. 대적전 앞을 지나 대웅전 경역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공우탑도 볼거리. 절에서 짐을 져 주면 혼자서 암자로 짐을 나르던 영리한 소가 있었는데, 그 소가 늙어 죽은 후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산성 : 공주에 입성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금강교 바로 왼쪽으로 공주 시가를 외호 하고 있는 둔덕을 이르는 공산 성은 백제의 공주 도읍 때에 궁성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의 웅진성이 바로 이곳이다. 사적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의 가운데에 이르는 길 오른쪽에는 인조가 1624년 이괄의 난 때 난을 피해 머물다가 평정 소식을 듣고 나무 두 그루에 벼슬을 내렸던 쌍수정이 있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진남루를 볼 수 있다. 공산성의 마지막 코스는 공북루. 1603년 옛 망북루터에 세운 2층 다락집인 공북루로 가는 길목에는 민가가 몇 채 있어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 이채롭다. 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걸터앉아 노을지는 금강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 공산성 맞은편에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은 공주가 백제 수도였음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1호에서 6호까지의 고분들 중에서 5, 6호분이 공개되어 있다. 특히 6호분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고, 네 벽에 진흙과 호분을 바른 위에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이 특징이다. ‘송산리 벽화고분’으로 불리는 이 벽화는 부여 능산리 고분의 것과 함께 오직 둘뿐인 백제의 벽화로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은 5호분과 6호분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무덤은 왕과 왕비의 합장묘로서 왕비가 무령왕보다 3년 뒤인 526 년에 돌아가자 마찬가지로 3년 상을 치르고 이곳에 함께 묻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발굴 된 유물은 총 108종 2,096점에 이르는데, 그 중 12점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부장품들 모두가 국립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특히 지금의 공주박물관 건물은 무령왕릉 유물을 전시하려고, 또 그 모양을 본떠 새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마곡사 : 봄 경치가 수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마곡사는 절이 앉은 자리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명당으로 꼽힐 정도로 오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찾아가는 맛에 있어서는 어떤 곳에도 비기지 못할 정도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절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때의 보조국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오충석탑, 대광보전, 대웅보전, 영산전 둥 자랑할 것들이 많지만 처마 끝에 매달린 목어만큼 절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아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이 목어는 보면 볼수록 봄철 답사에 나선 나른 하면서 여유있는 분위기와 절묘 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주에서 예산으로 가는 32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사곡에서 시도로로 빠져 가면 된다.
국립 공주박물관 : 벽돌로 지었다는 것과 건물 입구를 무령 왕릉 벽의 등잔을 놓는 감실처럼 만드는 등, 안팎의 느낌이 전체적으로 무령왕릉의 이미지를 본뜬 것으로 알려진 국립 공주박물관은 공주 답사에서 빼 놓아서는 안될 코스. 박물관 안에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금동관음보살입상, 계유명 삼존천불비상 등의 백제 때 불상들은 백제 특유의 온화한 맛이 도는 토기류, 부드러운 연꽃잎이 새겨진 와당 둥과 함께 웅진시대 백제문화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찾아가는 길 : 서울에서 가려면 천안에서 국도 23번을 따라 차령고개를 넘어 공주로 들어가는 것과, 호남고속도로 유성 인 터체인지에서 국도 32번을 따라계룡산 동북쪽을 돌아 공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숙박 및 맛집 : 리버사이드호텔(0416-55-1001), 공주호텔 (0416-55-4023) 등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는 버섯요리. 마곡사 입구의 태화식당(0416-841-8020) 의 버섯요리는 일반 버섯요리가 아닌 빈대떡과 능이버섯회로 유 명하다.
부여 일대
능산리 고분군 : 부여 답사에서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이곳은 백제의 많은 고분들 가운데 부여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봉 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규모면에서도 큰 죽에 드는 무덤 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의 고분들은 흔히 신라 왕릉들이 그 규모의 거대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반면에 옹기종기 모여 납작하게 수그린 품이 매우 아늑한 느낌을 줘 죽음조차도 한가롭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인 백제 왕릉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 능산리 고분들은 이미 1915년 무렵 부터 일본인들이 발굴했는데, 그 중 ‘동하총’이라고도 하는 1호분에는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분 안에 벽화를 그리는 것은 고구려 사람들의 문화이고, 또 내세의 수호신으로서 사신도를 중심으로 그리는 것으로 볼 때 7세기 경에 백제와 고구려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도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소산성 : 백제탑의 저녁 노을,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봄날 백마강가의 아지랑이,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 소리, 노을진 부소 산에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프게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빛 등 부여의 팔경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부소산에 위치한 부소 산성은 왕궁과 시가를 방비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백제의 성으로 538년경 완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곽은 산정에 머리띠 식으로 산성을 쌓고, 그 주위에 다시 포곡식(성의 내부에 낮은 분지가 있는 형식)으로 둘렀으며 축조방식은 흙과 돌을 섞어 다진 토석혼축식이다.
부소산 가장 높은 곳에는 사자루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의 아래쪽으로는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육모지붕의 백화정이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낙화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 왕궁터도 둘러보길 권한다.
정림사터 : 백제 때의 유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부여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흔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닌 이곳은 백제시대의 부여를 대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림사터는 1942년에 절터를 발굴 했을 때 기와 조각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그러나 백제 때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백제 때에 세워진 오층석탑과 고려 때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발굴에서 찾아낸 백제와 고려 때의 기와 조각들과 벼루, 소조불상 조각 등은 국립 부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궁남지 : 현존하는 우리 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 조원으로 알려진 궁남지는 경주의 안압지보다도 40년 먼저 만들어 져 안압지의 모형이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낳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계획적인 인공 연못인 이 궁남지는 물을 능산리 동 쪽의 산골짜기에서부터 끌어올 정도로 규모가 큰데, 안압지에 비해 묘미는 떨어지지만 화지산의 망해정이 푸른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워 신선경을 방불케 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당시에는 큰 규모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조사 : 백마강이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너른 평야 가운데 나지막이 솟은 성홍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대조사는 거대한 미륵보살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절집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 미륵보살은 그저 거대한 바위가 단단히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으로만 느껴질 정도로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 돌아가서 살펴 보면 마치 땅에서 솟아난 부처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줄 정도. 특히 옆 바위에 뿌리를 두고 불상의 머리 위로 가지를 뻗어 불상을 보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나무 가지와의 절묘한 조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지방 사람들의 미감에 대해서 충분히 느끼는데 손색이 없다.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논산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3km정도 달리다 오른쪽 1번 국도를 탄다. 여기서 8.2km쯤 북상하면 논산. 논산 사거리에서 1번 국도를 버리고 직진하다가 4번 국도로 갈아타면 능산리 고분군을 만날 수 있다.
숙박 및 별미 : 부여 시내에 삼정 부여 국민호텔 (0463-835-3101)을 비롯해서 깨끗하고 시설 좋은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는 민물고기 매운탕. 낙화암 인근에 있는 나루터 식당 (0463으35-3155)과 백제대교 건너편에 있는 백마강식당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