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주식시장이 오르면 환호한다. 하지만 부동산, 구체적으로 ‘집값’이 급등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 듯 걱정하고 힘들어한다. 연초 어린이 경제교육 강의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집값은 떨어져야만 하는 거죠? 올라야 좋은 거 아닌가요?”
심오한 질문이었다. 이 학생에게 지난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를 모두 설명할 수 없었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地代, Rent)의 문제점을 말할 자리도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열심히 일해 저축한 아빠는 ‘가난한 아빠’로, 강남에 집 산 아빠는 ‘부자 아빠’로 확정돼 이젠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더욱 할 수 없었다. 난 이렇게 답했다.
“집값이 오르면 집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그러면 사회 전체가 어려워지거든요. 아직 우리나라는 집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리고 집 있는 사람도 삶의 의욕이 확 떨어질 수 있어요. 우리 집 가격은 그대로인데, 다른 곳은 1년 새 3억 원이…”
순간 말을 멈췄다. 말을 하면 할수록 ‘어린이 경제교육’의 목적에서 벗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살짝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봤다. 나의 강박관념인지 몰라도 몇몇의 눈빛에는 ‘너는 집 있다고 자랑하는 거냐?’면서 질문한 친구를 바라보는 것도 같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집값만큼은 반드시 잡겠다”고 자신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강력한 규제책들을 치밀한 계획하에 발표해 나갔다. 지난 2017년 정부는 총 5번의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6.19 대책(조정대상지역 지정) → 8.2 대책(투기 및 투기과열지구 지정+대출 규제 강화) → 9.5 추가대책(투기과열지구 추가) →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 주거복지로드맵(공공주택 100만호 공급) 등 숨 가쁘게 시장을 압박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아쉬움이었다. 지방 아파트 가격은 하락하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는 작년 5월 이후 평균 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만 보면 10% 상승에 육박하고 개별 단지의 경우 10개월 만에 4억 원 넘게 오른 곳도 실존한다. 그렇게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품에 안은 채 2018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규제의 마지막 정점인 ‘보유세 인상’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집을 사야 하나. 아니면 정부 규제의 효과를 한 번 더 믿어야 할까. 이런 결정에 앞서 이번 시간엔 올해부터 위력을 발휘할 부동산 규제들을 점검해보려고 한다. 어쨌거나 올해 한국 부동산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삼각파도(三角波濤)를 만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파도. 대출규제와 금리인상
1월 말부터 본격화된 대출규제는 이미 작년 8.2 대책이나 10.24가계부채 종합대책을 통해 결정된 사안이다. 핵심은 서울·부산·세종 등 청약조정지역에는 신(新) DTI(총부채상환비율)가 적용된다는 것. 신 DTI는 돈 빌리는 사람의미래소득추이를 감안해 대출액을 조절해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규제에는 돈 빌릴 때 기존 주택담보대출과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모두 고려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금까지는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사람이 다시 대출 받아 집을 추가 매수할 경우 기존 대출액의 이자만 반영했다. 하지만 신 DTI에서는 무조건 원리금 합산이다. 따라서 서울 또는 일부 수도권에서 기존 주택담보대출자는 또 대출을 일으켜 집을 더 사는 게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8월부터는 대출규제 결정판이라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적용된다.
DSR은 돈 빌린 사람의 주택담보대출에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자동차할부금, 전세담보대출(이자) 등 모든 대출 원리금을 합산한 다음 자신의 소득과 비교해 대출 한도를 잡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올 여름부터는 연봉이 5억 원쯤 된다면 몰라도 투자로 부동산에 접근하기는 힘들어진다.
이처럼 대출규제가 부동산에 치명적인 건 수요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이 대출 없이 집을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는 세계적인 금리인상 추세와 맞물릴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강한 긴축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주식시장은 금리상승 공포에 큰 폭으로 급락했다.
그런데 이 대출규제와 금리인상 효과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대표적인 게 1,100조 원에 달하는 단기 부동자금이다. 시중에선 2일 내에 현금으로 찾을 수 있을 돈이 1,100조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일각에선 “강남에 집 사는 사람들은 대출 없어도 됩니다” 라든가 “돈 있는 사람만 서울 아파트를 싹쓸이할 것”이라고 볼멘 소리도 낸다.
두 번째 파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올해부터 대한민국 부동산에 몰아치는 두 번째 파도가 있으니 바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부활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규제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으로 발생한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토해내는 제도이다. 새롭게 완공된 재건축아파트의 입주시점 가격에서 기존 아파트 가격과 개발비용, 그리고 건축기간 동안 주변 집값 상승분 등을 뺀 ‘실질적 이익’에 10~50%를 세금으로 낸다. 가령 1억 1,000만 원이 넘는 개발이익이 발생했다면 입주 시점에 절반을 재건축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지난 1월 당국에선 일부 재건축아파트 단지는 이 부담금이 8억 원이 넘는다고 했고, 해당 지역 주민들은 미(未)실현이익에 대한 세금은 위헌이라고 소송도 불사한다고 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대한민국 부동산 가격 상승의 스타트를 끊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파워가 상당히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오는 4월 1일 이후부터는 다(多) 주택자 대상으로 양도소득세 중과(重課) 제도가 시행된다. 다주택자가 청약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양도(매도)할 때 양도차익에 대해 기존 양도세율(6~42%)에 더해 2주택자는 1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 각각 가산된다. 즉, 집을 5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집을 팔았을 때 이익의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정말 무서운 건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배제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직접 거주하지 않았더라도 10년 이상 보유했다면 최대 30%의 공제율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제 4월부터 다주택자는 이 세제혜택을 누릴 수 없다.
가령 5주택 보유자 A씨가 11년 동안 보유한 서울 아파트를 5억 원 남기고 매도한다고 해보자. 만약 올 4월 이전에 매도하면 1억 2,900만 원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4월이 지나면 양도세가 20%포인트 중과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사라져 총 양도세는 3억 원이 넘는다. 무려 1억 7,600만 원 정도 세금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강남 쪽의 다주택자들은 대부분 15년 이상 장기보유자들이고 양도차익 역시 웬만해선 7~8억 원 정도는 훌쩍 넘고, 결국 세부담도 3배 가까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은 올 1분기 중 선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 1분기 중 다주택자들이 물량을 던져서 가격도 하락하고 공급 초과 상태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가령 이럴 수 있다. 어차피 강남 아파트는 10년 후에도 오를 테니 지금 돈이 급해 매도할 것도 아닌데 그냥 보유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증여세를 내면서 자식과 손주에게 증여를 해주기도 한다. 이런 말도 있다. “재건축 못 하면 서울이나 강남 쪽 아파트 공급은 더 줄어드는데, 이게 강남 사람에겐 악재인가요? 호재 아닙니까?”
세 번째 파도. 정녕 보유세뿐인가
강남 아파트 매매시장은 여전히 매도자의 압도적 우위이다.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15억 원을 싸들고 가도 매도자의 눈치를 봐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강남 아파트가 버티면 서울 아파트 가격도 절대 잡히지 않는다. 대공황이 찾아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국민 다수가 집을 뺏기지 않는다면, 집주인들은 강남을 바라보며 악착같이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에게 남은 카드는 무엇일까. 그렇다. 예상했겠지만 바로 보유세이다.
보유세는 ‘부동산을 보유할 때 발생하는 세금’ 으로 크게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로 구분된다. 재산세는 토지, 주택, 상가 등을 소유한 사람이 내는 지방세이고, ‘종부세’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는 6억 원이 넘는 주택(1세대 1주택자는 9억 원 이상)이나 5억 원이 넘는 토지소유자에 누진세 형식으로 부과되는 세금이다. 재산세율 ▲6,000만 원 이하 0.1% ▲6,000만 원~1억5,000만 원 0.15% ▲1억5,000만 원~3억 원 이하 0.25% ▲3억 원 초과 0.4% 등이다. 종부세율 ▲6억 원 이하 0.5% ▲6억~12억 원 0.75% ▲12억~50억 원 1% ▲50억~94억 원 1.5% ▲94억 원 이상 2% 등 누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지금으로선 재산세는 두고 종부세의 대상과 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민감한 사안이라 지속적인 검토 중이다. 참고로 지난 2016년 기준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약 40만 명 정도이다. 다만 보유세 인상을 하려면 반드시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계약갱신 청구권 같은 세입자 보호 정책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집주인들이 본인들의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지 못한다.
자, 그런데 이렇게 해도 올 가을에도 서울 강남 아파트가 여전히 급등랠리를 펼친다면 어떻게 하나? 정말 그런 상황이 나온다면 난 차라리 시장친화적으로 돌아서는 역발상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강남 재건축사업 무조건 100층 이상’ 같은 대규모 공급확대정책으로 돌아서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게 진정한 삼각파도의 완성이 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정부의 규제 카드 외에 살펴볼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입주물량이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해 2019년 초까지 쏟아질 입주물량(오피스텔 포함)이 대략 86만 가구 정도인데 의외의 복병이 될 수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일명 ‘역(逆) 전세난’이 나왔다. 만약 여기에 앞서 첫 번째로 언급한 시중금리 상승이 파괴적으로 겹칠 경우 장밋빛 전망 일색인 서울 아파트 가격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부동산은 너무 올라도, 너무 빠져도 모두 걱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