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보다 존경심이 먼저
사람의 기억력이란 쉬 망각되기 마련이라, 일단 팀장급으로 올라서면 과거 신입사원 시절은 흐릿해지기 쉽다. 그래서 선후배 간 생각의 격차는 상상외로 크다. 선배 입장에서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을 전해줬다고 생각했어도 후배 입장에서는 일방적 잔소리로 치부될 수 있다. 입장을 바꿔서 후배 입장에서는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선배의 눈에는 그저 뺀질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후배에게
감사를 받는 선배나 상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후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배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가
취업포털 ‘커리어’는 직장인 696명을 상대로 직속 상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5.9%가 “직속 상사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존경하지 않는 이유로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업무지시’가 47.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기분파식 행동(44.5%)’과 ‘책임 전가(40.8%)’가 뒤를 이었다. 이어 ‘업무능력 부재(35.8%’), ‘인격모독(22.5%)’, ‘차별하는 태도(22.0%)’ 등의 순이었다.
존경하는 이유로는 ‘부하를 배려하는 인품·가치관’이 70.2%를 차지했다.
‘업무능력 및 성과(51.7%)’, ‘직원들 간의 소통능력(47.2%’), ‘리더십(33.1%)’, ‘부하를 향한 칭찬과 격려(27.5%)’, ‘자기계발 등의 꾸준한 노력(24.7%)’ 등의 답이 다음으로 많았다. 응답자들이 매긴 직속 상사에 대한 점수는 평균 2.3점(5점 만점)으로 집계됐다. ‘3점’이 20.2%로 가장 많았고 ‘0점’을 준 응답자도 18.7%나 됐다.
다음으로 ‘2점(18.8%)’, ‘4점(14.1%)’, ‘5점(13.1%)’의 순이었다.
이 결과를 보면, 후배들이 책정하는 ‘제대로 된 선배’의 기준은 매섭기 그지없다. 일은 일대로 잘해야 하고, 인성도 좋아야 하며, 세심한 배려심에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려는 인간적인 노력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멋진 선배’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쉽게 고마워지지 않는 이유
우리 사회가 좋은 선배나 상사에게 붙여주는 멋들어진 이름이 있다. 바로 ‘멘토’다.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봤다. 이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렇다, 멘토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멘토라 느낄 때, 비로소 ‘땡큐’ 등장
취업 포털사이트 ‘미디어통’은 올 초 직장인 354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이 생각하는 상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사가 가장 고마울 때는, ‘힘든 것을 헤아려서, 멘토 역할을 해줄 때’가 48%로
1위를 차지했다.
직장인들은 “힘든 걸 알아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맙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며 좋은 말씀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해주는 상사를 보면 괜히 의지가 된다.”,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줄
알았던 상사가 지나가면서 좋은 말씀 해줄 때 고마움이 배가된다.”라고 1위를 뽑은 이유를 설명했다. ‘인센티브, 생일, 휴가 등 나를 챙겨줄 때’가 37.2%로 2위에 올랐으며, 그 뒤를 이어 ‘임원 앞에서 나를 칭찬해 줄 때’, ‘혼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줄 때’, ‘맛집 데리고 가서 마음대로 시키라고 할 때’가 3, 4, 5위를 차지했다. 그러고 보면 후배와의 관계에서도 ‘밀당’이 중요하다.
한없이 친절하기만 하면 카리스마가 없다. 일을 가르칠 때는 똑부러지게, 칭찬할 때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여기에 은근한 배려까지 가미하면 후배에게 사랑받는 선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선배님, 말 좀 예쁘게 하세요
직장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 대해 일반 기업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현대엠엔소프트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선후배 관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후배들이 선배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는 ‘고생이 많아. 고맙다’로 응답자의 34%가 선택했으며,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선배들의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수고했어. 역시 최고야(30%)’, ‘어려운 것 있으면 얘기해. 도와줄게(20%)’, ‘자네만 믿어. 자네라면 잘할 거야(12%)’ 순으로 선정됐다. 한편 후배들이 선배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53%)’가 선정돼 후배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선배의 말을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로는 ‘그동안 뭐했어? 빨리 좀 해(23%)’가 선정됐다. 이와 더불어 ‘직장에서 선·후배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서는 46%의 직원이 ‘나의 업무를 본인의 일처럼 도와줄 때’가 1위로 선정됐다. 이어 ‘따뜻한 격려의 말로 위로해줄 때(32%)’, ‘경조사를 잊지 않고 챙겨줄 때(11%)’,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솔직하게 조언을 해줄 때(10%)’ 고마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말 한마디의 파급력에 대해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즉, 말이라도 곱게 하는 선배라면 중간은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선배 입장도 다르지 않다. 선배들이 후배 직원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는 응답자의 36%가 선택한 ‘역시 선배님!’으로 후배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제가 하겠습니다(29%)’와 ‘이것 좀 가르쳐 주세요(26%)’가 각각 2,
3위를 차지해 솔선수범하고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의 자세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배도 사람이다
예전보다 후배 눈치를 보는 선배들이 많다.
젊고, 능력도 좋고, 할 말은 정확하게 하는 요즘 후배들은 선배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가끔은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왜곡된 방법으로 후배들의 기를 죽이려는 선배들도 있다. 그러나
후배도 사람이다. 당당하고 쿨 해 보여도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마음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여린 존재들이다. 그런 후배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베푼다면 사무실은 언제나 봄일 것이다.
후배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후배들이 질색하는 선배의 행동은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꼽자면, 우선 ‘업무를 허투루 넘기는 선배’다. 자세한 설명이나 코멘트 없이 타부서의 메일을 그대로 토스한다거나, 질문을 귀찮아하는 행동 등은 후배를 곤혹스럽게 한다. 둘째는 ‘후배의 일정을 배려하지 않는 선배’다. 일을 하다 보면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후배의 일정은 개의치 않고 무조건 토요일에 출근하라고 명령한다면 그 후배는 과연 회사 다닐 맛이 날까. 셋째는 ‘윗사람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선배’다. 무조건 일을 받아온 후 후배들에게 모두
나눠주는 행동은 원망을 자초하는 행위다. 넷째는 ‘지나치게 간섭하는 선배’다. 믿고 일을 맡겼으면 지그시 기다려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5분 단위로 잘 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면 후배의 의욕은 금세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워커홀릭형 선배’다. ‘5년 뒤 내 모습이 저렇다면 OMG!’ 후배에게 들을 수 있는 최악의 평가다. 자신의 생활은 온데 간데 없고 일에만 파묻힌 모습, 또 그런 모습을 후배에게 강요하는 태도로는 결코 좋은 선배로 인정받을 수 없다. 가뜩이나 일도 힘든데 후배 눈치까지 봐야 하냐고? 잘 둔 후배 하나는 열 아군 부럽지 않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후배를 존중하며
대할 것. 그것이 결국 자신에게 금은보화로 돌아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