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대체 왜 하는 겁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야근은 잔무가 남았을 때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수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는 이유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몹쓸 야근을 하는 것일까?
일도 많고 분위기도 그렇고 <매경이코노미>가 여론조사업체 ‘오픈서베이’와 함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칼퇴근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7명(67.1%)은 정시퇴근하는 날이 ‘주 3회 이하’라고 답했다. 또 직장인의 정시퇴근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이 조사되었다.
‘기본적으로 업무가 많다(37%)’, ‘야근을 안 하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20.8%)’, ‘퇴근 직전 업무를 지시하는 상사(17.9%)’, ‘제때 일을 마치지 못하는 동료나 거래처(11.1%)’, ‘잦은 회식과 술자리(8.1%)’, ‘귀가 꺼리는 기혼상사 혹은 애인 없는 미혼상사(5.1%)’가 그 뒤를 이었다. 조사 내용을 보면 직장인이 야근을 하는 이유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야근을 조장하는 회사 분위기가 20.8%를 차지하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업무를 마쳐놓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 뜻이다. 또 몇몇 개념 없는 상사들의 배려 없는 행동도 눈에 띈다.
퇴근을 하려고 가방을 정리하는 찰나, 상사의 ‘아까 말한 그 건은 다 됐어?’라는 말에 동작이 얼어버린 경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여기에 거래처까지 도와주지 않으면 별 보고 퇴근하는 건 기정사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사내에 만연한 야근 풍토다.
이는 하루 빨리 뿌리 뽑아야 할 우리 사회의 병폐이기도 하다.
야근 꼭 필요한 겁니까?
물론 야근은 무작정 없앨 수는 없다.
직장은 놀이터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곳이므로, 그 날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마쳐야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근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야근, 세대에 따라 개념 달라 야근이 필요한지를 묻기 전에, 과연 ‘야근’이란 무엇인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상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근에 대한 개념은 연령별로 달랐다. 20~30대 직장인들은 ‘퇴근시간 후 30분이라도 있으면 야근’이라고 여겼다. 특히 20대 초반 직장인들은 46.7%가 이같이 답했다. 그러나 40대 이상 직장인들은 ‘9~10시까지 회사에 남았을 때’ 비로소 야근이라 생각했다. 세대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1일 8시간, 한주 40시간을 초과하여 근로를 제공할 때에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연장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20~30대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야근의 기준’이 더 타당하다. 목표 잃은 야근 표류기 그렇다면, 이제 야근이 꼭 필요한지 짚어보자.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 (cafe.naver.com/goodlab)가 직장인 1,9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인 야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야근이 회사 경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에 야근하는 직장인의 82.8%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8.4%는 ‘오히려 업무 속도가 저하되고 생산성이 낮아진다’고 꼬집었으며, ‘일을 위한 일거리가 계속 늘어난다(18%)’, ‘수동적인 업무가 관행으로 굳어진다(15.5%)’, ‘자기계발의 기회를 박탈당한다(12.8%)’,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진다(9.4%)’, ‘조직과 상사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다(5.1%)’ 등이 뒤를 이었다. 이쯤 되면, 야근은 조직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이 아니라, 조직을 해롭게 하는 기생충으로 바라봐야 한다.
야근을 퇴치합시다
여성가족부는 야근을 없애고 정시퇴근을 하기 위해 ‘업무집중을 통한 정시퇴근제, 365 Happy Life’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다. 캠페인의 6대 수칙은 ‘업무 집중시간(오전 9~12시)에 직원 상호 간 전화 안 하기’, ‘타 부서 방문 안 하기’, ‘메신저 사용 안 하기’, ‘회의소집 안 하기’, ‘업무지시 자제하기’ 등이다. 야근을 줄이기 위한 또 다른 방법과 저녁 있는 삶에 대한 직장인들의 로망을 알아보았다.
야근을 안 한다면?
그렇다면, 과연 정시퇴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매경이코노미-오픈 서베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꼽았다. 첫째, 정시퇴근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퍼뜨릴 필요가 있다고 전체 28.8%의 직장인들이 이같이 답했다. 둘째, 스스로 업무 효율을 향상시켜 제시간 내 일을 끝내는 방법(26.1%)이다. ‘PC 오프제 등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22.7%)’고 답한 직장인도 많았다.
많은 직장인들은 정시퇴근을 하게 된다면 ‘취미와 문화생활(40.9%)’을 즐기겠다고 답했다. ‘휴식과 부족한 취침을 보충(23.9%)’하거나, ‘가족과의 모임을 늘리겠다(16.1%)’고 답한 사람도 상당수였다. 그러나 외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에 치중하겠다는 사람은 13.4%에 그쳤다. 결국 야근을 줄여 남는 시간은 좀 더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 직장인들의 소박한 바람인 셈이다.
노력하면 줄일 수 있어
LG경제연구원은 ‘야근문화 퇴출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우선, ‘업무 생산성을 높일 것’, 이를 위해 전날 업무를 마치기 전, 다음 날의 업무 스케줄을 점검하고 당일 아침에 한번 더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 좋다. 각 업무 당 처리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회의 자료를 1시간 전에 공유하고 회의시간도 일정 시간 제한하여 진행한다면 업무 생산성도 높이면서 퇴근 시간을 좀 더 당길 수 있다. 둘째는 ‘의사결정은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바로 처리할 것’.
의사결정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사업목표, 현안 직시, 효과적인 데이터 분석・도출 등이 선행돼야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또 수많은 의사결정 사항을 직급에 맞게 이양함으로써 불필요한
결재라인을 줄이고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 주인의식, 업무 몰입도와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셋째, ‘야근을 자제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 집중 업무 시간제를 운영해 비업무적인 활동을 제한한다거나 간단한 회의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대체하기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넷째, ‘야근을 없애려는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추진
의지는 필수조건’. 야근문화 퇴출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는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최고경영자가 효율적인 운영을 중시하면 효율적인 업무방식으로
변화할 것이고, 오래 일하는 것을 중시하면 야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야근 후유증까지 극복해야 프로 직장인
야근은 무엇보다 직장인 자신에게 좋지않다. 야근으로 인해 수면 시간이 줄면 바이오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은 물론 면역력에도 이상이 생긴다. 또 야근을 하며 야식을 먹게 되면 비만을 초래하기도 한다.
야근 후 회포를 푼다며 기름진 안주와 알콜을 흡입한다면 간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가족 간의 대화나 스킨십이 부족하게 되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는 경우라면, 가족에게 전화나 이메일, SNS로 틈틈이 연락하여 소원함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한답시고 하루 종일 침대나 소파에 몸을 묻고 있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일광욕을 즐기며 가족 간의 사랑과 신체리듬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견딘다’는 정신보다 ‘즐긴다’는 정신으로 야근 후유증을 극복한다면, 자신에게도 또 가족에게도 보다 윤택한 생활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