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에세이
프린트버튼
금요일 오후, 갑자기 거래처에서 K과장에게 전화로 급히 제안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주간 업무회의를 주재하던 K과장은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긴 셈인데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어, 팀원들에게 누구 한 사람이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모두 애써 K과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며 수첩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평소 팀원들의 자발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K과장은 다시 지원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눈초리는 신참인 Y씨에게 쏠렸고, 결국 이번에도 Y씨가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K과장은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화가 나서 이젠 자발성을 존중하려는 자신의 원칙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Y 씨가 그 눈초리에 떠밀려 막 손을 들려고 하는 순간 '제게 맡겨주십시오.' 하며 앞으로 성큼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엊그제 부친상을 치르고 첫 출근을 한 J씨였다. 그는 우울하고 지친 얼굴이었지만 담담하고 진지했다. 그러자 이를 옆에서 본 동기인 H씨 역시 주저 않고 나섰다. 'J씨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K과장은 스멀스멀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직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집단의 심리는 처음 상황처럼 거의 이렇게 곤란한 일을 피해가려고 한다. 이것은 실험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옆방에서 간질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도와줄 확률이 혼자 있을 때는 85%지만, 다섯 명이 함께 들었다는 걸 알 때는 31%로 떨어지며, 행동으 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집단이 커질수록 그 속의 한 개인이 느끼는 '내가 먼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 여기는 '누군가 하겠지.'라는, 집단 내에서 조용히 숨어 있고 싶은 방관자 심리도 한 몫을 거들 것이 분명하다.
이제부터는 먼저 하는 즐거움을 누리자. 떠밀려서 하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솔선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이것은 자기 성장을 낳는 가장 소중한 씨앗이 된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