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모임 날짜와 시간을 잡게 되면 그 전에 '간다, 못간다.' 확답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날이 되어서는 '응… 몇 분 늦을 거 같아.'라는 말을 당연하듯 내뱉는다.
그렇게 우리에게 친숙해진 코리안 타임. 모임 때면 으레 늦을 것을 고려하고 시간을 잡아야 한다. 제 시간에 온 사람은 바보처럼 멀뚱하니 서서 그 누군가가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여론조사를 했더랬다. 미국은 15분, 우리나라는 30분에서 한 시간, 중남미는 좀 길어서 두어 시간이란다. 누군 가와의 약속에서 기다려 주겠다고 답한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빨리 빨리' 에 젖어 있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제 시간을 더욱더 잃어 버렸다. 제 시간에 못 갈 것 같으면 전화로 사정 얘기를 하면 그만이다. 그동안 기다렸던 사람은 전화를 받았으니 다른 행동을 할 테지…. 그렇지만 갑작스런 그러한 전화는 기다렸던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고 생뚱맞게 만든다. 더군다나 기다리게 한 사람은 그 전화 한 통으로 미안함이라는 양심의 가책 같은 감정을 벗게 하고, 기다렸던 사람은 다른 할 말이 없게 된다.
약속! '어떤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미리 정해 놓고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이 '어떻게 하기로 미리 정해 놓았으나 수시로 변경할 수도 있는'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물론 사정에 따라 약속이 변경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당연시되고 일반화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약속을 지킴은 최소한의 예의이며,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에 둔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신뢰가 깨어진 상태에서 더 큰 신뢰는 어떻게 지켜질 것이며, 그러한 일반화된 사고가 서로에게 끼칠 불편을 그리고 잃어버리는 양심들을 어찌 채워 갈 것인가.
대통령의 국민과의 약속, 국회의원들이 한 공약 등을 언급하고 싶진 않다. 아마 그분들에게 그것은 이미 너무나 지키기 벅찬 것들이었을 테니까…. 내가 말하고자 함은 우리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약속들이다. 작다고 하지만 분명 소중한 것들이다. '티끌 모아 태산' 이라 했다. 작은 약속들이 지켜지는 사회가 곧 모두와의 약속도 지켜지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헛된 것일까? 모두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가…?'
'내가 아니라도'가 아니라 '나만이라도' 서로간의 신뢰를 지키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