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맘의 기회비용 선택
사람들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해서 편익보다 비용이 큰일을 스스로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편익이 비용보다 많이 들어서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것이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실행한다. 전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만들어 가는 셈이다. 남편보다 부인이 밖에서 더 많은 소득을 벌 수 있다면 남편이 가사 활동을 하는 편익이 기회비용(남편이 밖에서 버는 소득)보다 크다. 그러므로 남편이 내조를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기회비용(즉, 포기한 것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에서 의사결정에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은 예상외로 적다. 기회비용은 대개 미래와 관련되어 있어서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내가 두 가지 직업 가운데 한 개를 고른다고 할 때, 포기한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때의 삶이 기회비용인데, 신이 아닌 이상 이를 어찌 측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삶, 즉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가진다. 마치 고민 끝에 짜장면을 주문해서 먹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 먹는 짬뽕이 더 맛있어 보이는 심정이랄까.
1998년에 상영된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가 있다. 기네스 펠트로가 아침 출근길에 순간의 차이로 지하철을 탔을 경우와 지하철을 놓쳤을 경우의 두 인생을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한 가지 인생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의 기회비용에 대한 호기심을 잘 이용한 영화다. 개그맨 이휘재를 오늘날의 스타로 만든 것도 기회비용과 관련된 <인생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이다. 그는 인생 A와 인생 B를 놓고 갈등하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역할을 통해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숨어 있는 기회비용의 차이
소비자는 이성을 잃고 감성에 치우친 선택을 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다. 지름신이란 말까지 있지 않던가? 우리가 상품을 구매할 때 기회비용을 드러내놓고 따지는 연습을 하면 합리적 선택에 도움이 된다. 지난 연말 우리 집에서 쓰던 세탁기가 고장 났다. 세탁기 가격조사를 한 아내는 선택의 폭을 두 모델로 좁혔지만, 최종 낙점에는 애를 먹었다. 두 모델은 가격에서 20만 원 정도 차이가 났지만 내가 보기에는 성능에 큰 차이가 없었다. 요새 가전제품은 기본적으로 좋고 튼튼하고 성능도 고만고만하다. 온갖 기능이 장착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정작 사용하는 기능은 몇 안 된다. 나는 속으로 저렴한 모델을 샀으면 하고 바랐지만 아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아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뒤끝이 없다. 이럴 때 비싼 모델을 사기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20만 원의 기회비용을 따져보자. 예를 들어 값이 저렴한 세탁기를 사고 아낀 20만 원으로 접시 세트를 장만할 수 있다. 새 접시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20만 원의 기회비용이 엄청난 셈이다. 상품의 가격을 단순히 비교하지 말고 가격의 차 뒤에 숨어있는 기회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따지는 습관을 기르면,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고가의 상품을 선택하고 후회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이것이 기회비용의 힘이다.
그런데 기회비용을 떠올릴 때 조심할 게 있다. 소중히 여기고 중요한 것, 즉 진짜 기회비용을 떠올려야 한다. 예를 들어 20만 원으로 피자 10판을 먹을 수 있는 것을 기회비용이라고 한다면 “까짓 거 살만 찌는데 피자를 안 먹고 말지.”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고가의 상품을 사게 된다.
페이-고(pay-go) 원칙
기회비용은 정치에서도 중요하다. 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하여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 마디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공약으로부터 혜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 혜택이 감소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공약에 필요한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낸다고 하더라도 세금만큼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어 민간소비가 위축되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풍선효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복지 지출을 늘려온 선진국들이 지금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지만 누적된 재정적자 때문에 정부가 부양책을 쓸 여력이 없어 국민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 과거 IMF 경제위기나 글로벌금융위기 때, 우리 정부가 지출을 대폭 늘려 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전까지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치인들의 공약 남발을 막는 방법으로 일부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페이-고(pay-go) 원칙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새 사업을 시작하려면 다른 사업에서 그만큼 예산을 줄여 재원을 내놓고(pay) 하라(go)는 것이 페이-고 원칙이다. 기회비용을 명시적으로 고려하게 함으로써 대형 국책사업이나 선심성 사업의 남발을 막는 효과적인 견제 장치라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