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거짓말과 말 안 하는 거짓말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말 외에도 ‘말 안 하는 거짓말’도 있다. 말 안 하는 거짓말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보를 상대에게 말하는 순간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사 제품의 단점을 알고 있지만, 장점만 강조해서 광고할 뿐 단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적어도 단점이 없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며 당당해한다. 중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용하던 중에 발생했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이런것들이 말 안 하는 거짓말이다.
자신이나 자신이 팔려는 물건의 결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사람들을 뭐라 나무라기 어렵다. 나라고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말 안 하는 거짓말 때문에 심각한 경제 문제가 발생 한다. 중고 컴퓨터를 파는 경우를 가지고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보자. 상태가 아주 좋은 컴퓨터는 비싼 값에, 보통인 컴퓨터는 보통 값에, 상태가 나쁜 컴퓨터는 싼값에 거래하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만족해한다. 어느 한쪽이 억울하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것이 공정한 거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능이 별로 좋지 않거나 문제가 많이 발생했던 중고 컴퓨터를 갖고 있던 사람은 시장에 내다 팔기 전에 단점을 최대한 감추려고 포맷을 하고 컴퓨터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거래 상대방에게 고백하지 않는다. 이실직고하는 순간 받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려는 상대방이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한눈에 중고 컴퓨터의 문제점을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시범 작동을 해보더라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과일 레몬을 살 수 없는 레몬 시장
중고 컴퓨터를 사는 사람은 컴퓨터의 성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으므로, 그리고 파는 사람들이 솔직하게 불리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 컴퓨터라 하더라도 선뜻 높은 값을 제시하지 못한다. 손해 볼 우려가 있다. 물론 진짜로 성능이 좋은 컴퓨터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률은 반반이다. 그래서 판매자에게 높은 값도, 낮은 값도 아닌, 보통의 값을 제시한다. 보통 값을 제시받은 판매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로 성능이 좋은 컴퓨터 보유자는 보통 값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팔지 않는다. 이와 달리 성능이 나쁜 컴퓨터 보유자는 보통 값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횡재한 셈이다. 그래서 컴퓨터를 판다. 이런 이유로 중고 컴퓨터 시장에는 평균보다 성능이 나쁜 물건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성능이 좋지 않은 물건이 주로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 시장이라고 부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애컬로프 교수가 붙인 이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고품 시장은 레몬 시장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다. 중고 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중고 컴퓨터나 중고 자동차 시장처럼 평균보다 성능이 좋은 물건은 사라지고 불량품이 판을 치게 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 역선택이라고 부른다. 나쁜 것들이 선택되어 남게 된다는 뜻이다. 역선택 현상은 일찍이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 시대의 재정관이었던 그레샴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은으로 동전을 만들어 사용했다. 은 함량이 높은 주화가 양화이며, 은 함량이 낮은 주화가 악화다. 두 가지 동전이 같은 가치로 유통된다면, 사람들이 악화만 사용하고 양화는 집에 보관할 게 뻔하다. 당시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오늘날에는 종이돈을 사용하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성능이 좋은 중고차와 성능이 나쁜 중고차의 구분이 어려워 동일한 값에 거래될 경우 성능이 나쁜 중고차가 지배하는 레몬 시장이 나타나고 있다. 역선택을 이야기하면서 보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때 이탈리아의 보험회사가 순결보험이란 것을 팔았다. 유학을 떠나는 딸이 순결을 잃을 때 보상해주는 별난 보험이다. 이 보험은 판매 실적이 좋았지만, 보험회사는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왜일까? ‘개방적인’ 딸을 둔 부모들이 주로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조신하고 믿음직스러운 딸을 둔 부모가 구태여 순결보험을 구입했을 리 없다. 그 결과 ‘사고율’이 예상치보다 높아져 보험금을 많이 지급한 보험회사는 이 보험을 없앴다. 건강하고 암에 걸릴 확률이 낮은 20대는 암 보험에 가입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을 탈 가능성이 낮아 손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중년이 되면, 특히 젊어서 술과 담배를 즐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에도 운동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암 보험에 가입하려 한다. 이런 사람들만 암보험에 가입하면 보험회사의 손실은 불 보듯 뻔하다. 보험회사가 모두 망하게 되고 보험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보험회사는 연령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책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