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보김치
서울의 김치는 역시 궁중에서 먹던 김치가 대표 중의 대표다. 궁중에서 담근 김치로는 섞박지, 동치미, 송송이, 보김치, 젓국지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를 꼽으라면 단연 보김치다. 보김치는 고급스럽기도 하거니와 품격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절세가인이다. 궁중에서 먹는 김치는 지금의 연지동에서 재배했는데, 궁궐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민간인이 나무를 벨 수 없는 곳의 표식을 ‘황금장표’라고 하듯이 궁궐의 배추밭이라는 의미로 팻말을 꽂아 민가의 배추 재배를 금하였다고 한다.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리는 보김치는 배추의 속대만으로 만든다. 배춧잎 중에 노란 부분만으로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김장김치보다 더 작게 김치를 한 덩어리로 만드는데, 수육을 먹을 때 먹는 보쌈김치가 보김치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에 낙지, 굴, 새우 등 여러 가지 해물과 밤, 배, 대추, 석이버섯, 표고버섯 등을 넣어 심심하게 담그는 게 특징이다. 절세가인이 품격과 격조까지 갖춘 김치다.
부산(경남)지역
조기배추김치와 볼락무김치
일러스트. 서영원
경상남도는 음식이 짜다. 짤 수밖에 없는 것이, 기후가 더워서 김치를 담그면 금방 시기 때문에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을 해서 음식의 부패를 막기 때문이다. 짠 기운을 잡기 위해서 그에 상응하는 양념을 고루 넣기 때문에 경상도 김치에는 고춧가루도 많이 들어가고 마늘 역시 많이 들어간다. 짜고 맵고 얼얼한 맛이 도는 건 경상도가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보다 국물도 적은데 지역에 따라 독특한 김치도 많다. 예를 들어 통영에는 조기를 넣은 김치가 유명하다. 그 이름 하여 조기배추김치. 김치를 버무리고는 여기에 조기를 넣어 다시 한 번 버무려 만드는데, 김치와 조기가 삭으면서 젓갈보다 더 진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통영에는 볼락무김치라는 것도 있는데 이 역시 김치를 담글 때 볼락을 넣어 버무리는 게 특징이다. 조기나 볼락이나 바닷가에서 나는 생선을 그대로 김치와 함께 먹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복국 먹을 때 이 김치들을 곁들여 먹으면 아주 맛있다.
경인지역
순무섞박지
순무를 아는 사람은 지금도 많지 않다. 순무는 일식집에 곁가지 반찬으로 나오는데, 어떤 이는 순무를 배추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순무는 순무일 뿐 배추꼬리가 아니다. 순무는 경기도 강화나 김포에서만 자라는 특산물이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순무를 잘 모른다. 무가 길고 무청도 많은 데 비해 순무는 끝이 뾰족하고 무청도 많지 않다. 대신에 무청이 아주 길다. 크기는 아주 큰 고구마 정도? 맛 역시 무와 확연하게 다르다. 오히려 고구마 맛에 가깝다. 씹는 질감도 고구마와 비슷하다. 고구마처럼 달고 고소해서 강화나 김포 사람들은 겨우내 순무를 방 윗목에 두고 출출할 때 껍질을 벗겨 날로 먹기도 한다. 순무는 겨자 향기가 진해서 이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순무를 가까이할 수 없다. 섞박지는 원래 오래 두고 먹는 김치가 아니다. 하지만 순무섞박지는 새콤하게 익었을 때 그 맛이 더 좋다. 김치가 익으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고, 김칫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순무 특유의 겨자 향기도 없어져서 순무의 천연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충청지역
굴섞박지
충남지역의 해산물과 충북지역의 야채가 함께 어우러진 충청도 김치는 소박하다. 충청도에서는 김치를 짠지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라도나 경상도 김치가 강한 맛이라면 충청도 김치는 순한 맛이라고들 한다. 짜지 않고 맵지 않다는 말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김치에 양념을 많이 넣지 않는다. 젓갈로는 새우젓이나, 황석어젓, 조기젓 등을 많이 쓰는데, 이 역시 강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장을 위한 수단처럼 보일 정도로 은근하게 맛이 밸 정도로만 쓴다. 충청도 서산은 어리굴젓으로 유명한데, 이 지역 굴이 씨알은 작지만 탱탱해서 젓을 담가도 물기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이 굴을 이용한 굴섞박지도 충청도에서 유명하다. 굴섞박지는 배추와 무를 큼직하게 썰어 만드는 일반 섞박지에 굴을 넣어 만든 김치다. 굴은 바다의 우유라 불릴 정도로 영양이 가득한 음식이다. 9월부터 12월까지가 제철이니 겨울 김장에 굴을 넣는 집안도 많다. 굴을 김치에 넣으면 시원한 맛이 나서 바로 먹기에 좋다.
경북지역
콩잎김치
경상남도에서 조기나 볼락 등 해산물을 넣어 김치를 담그는 게 특징이라면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배추 이외에 다른 재료로 훌륭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가지로도 김치를 만들고, 고구마순으로도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콩잎으로 밑반찬 김치를 많이 한다. 보통 서울에서는 깻잎을 절여서 먹는 게 익숙하고, 콩잎으로 김치를 한다면 이상하게 여기는데, 먹어보면 콩잎김치의 맛에 홀딱 반하게 된다. 콩잎은 깻잎보다 훨씬 억세다. 콩잎이 억세지기 전에 연한 콩잎을 따서 소금물과 식초에 삭히는데 아무리 연한 콩잎이어도 식재료로 쓰려면 더 연해져야 한다. 노란물이 나올 때까지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면 이제 양념을 하는 단계. 양념은 거의 일반 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햇볕에 바싹 말린 멸치를 가루로 만들어 넣고, 이외에도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 여기에 무와 부추를 채 썰어 넣고, 멸치 액젓과 고춧가루로 버무려 양념을 만든다. 이 양념을 콩잎 사이사이에 넣으면 된다.
전남지역
반지
전라도는 조기젓·밴댕이젓·병어젓 등 갖은 젓갈과 식재료로 음식이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짜고 매운 맛이 나는데, 그래도 음식 맛이 기막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전라도의 맛에 반해 식도락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 아닌가. 전라도 지역의 김치 역시 젓갈과 양념을 많이 넣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동치미는 국물이 많은데, 동치미보다는 국물이 적고, 일반 김치보다는 국물이 많다고 해서 ‘반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백지라고도 하는데, 동치미도 아니고 일반적인 김치처럼 젓국과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도 않은 상태의 김치라는 뜻이다. 배추를 반으로 갈라 절인 후 배춧잎 사이에 채를 썬 무, 배, 대추, 밤과 미나리, 쪽파, 갓, 실고추, 고춧가루, 그리고 다진 마늘, 생강을 버무린 김치소를 넣는다. 이때 명태나, 조기젓을 채워 겉잎으로 싼다. 큼지막하게 썬 무를 함께 넣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지역의 김치와 그리 다르다고는 볼 수 없다. 특이한 것은 그 다음 단계. 김치가 담긴 항아리에 조기젓국을 붉은 고추가 담긴 물에 넣고 소금 간을 한 후 이 국물을 항아리에 붓는다.
전북지역
고들빼기김치
옛날 전라도 지역에 고씨 형제와 백씨, 이씨가 산에 놀러 갔는데 길을 잃었다. 네 사람은 허기가 져서 풀을 뜯어 먹고 연명하다가 간신히 구조됐는데, 이들이 먹은 풀이 고들빼기다. 고씨 둘에 박씨, 이씨라는 뜻으로 고둘박이라고 했다가 고들빼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들빼기가 쓰긴 써도 사람을 살리는 풀이긴 한 모양이다. 고들빼기를 ‘고채(苦菜)’라고도 하는데 흔히 씀바귀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들빼기는 뿌리째 김치를 담그는데, 워낙 써서 우선 열흘 정도 묽은 소금물에 담가두어야 한다. 그래도 씁쓸한 맛이 남는데, 이 맛이 있어야 진정한 고들빼기다. 고들빼기의 쓴맛을 내는 성분에는 신체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체내의 면역세포를 늘려주는 한편 항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치유력이 대단히 높은 풀이다. 큰 줄기는 두어 갈래로 가른다. 멸치젓국이나 멸치액젓에 고춧가루를 풀어서 불리고, 다진 마늘, 파. 생강, 통깨를 넣어 버무린다. 씹는 맛을 더 내고 싶으면 무말랭이를 함께 넣거나 마른 북어를 불려서 가시를 빼고 넣어도 맛있다.
강원지역
명태배추김치와 통오징어김치
김칫독에 명태 한 마리가 덩그러니 있으면 헉하고 놀라겠지만 강원도 강릉에서는 군침부터 삼키는 사람이 많다. 예전에 명태가 많이 잡혀서 동해안에서는 명태를 이용한 요리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명태배추김치다. 강릉, 속초는 김치를 소금물에 절이지 않는다. 아예 바닷물에 절여서 배추가 더 오랫동안 아삭아삭한 맛이 남는다. 바닷물에 절인 배추로 김치를 만들 때 바람에 잘 마른 명태를 넣는데, 배추와 명태가 어울리는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동해 바닷가 일부에서는 김치를 김장독에 묻지 않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모래사장에 묻어둔다. 이 김치는 몇 년이 지나도 싱싱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동해안에서는 명태도 많이 잡히지만 오징어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잡힌다. 그래서 통오징어김치라는 것도 만들어 먹는다. 통오징어김치는 오징어순대처럼 통 오징어에 김치를 넣어 만든 것으로 신선하고 시원하다.
제주지역
배추꽃대김치와 전복김치
제주도는 섬답게 김치에도 해물이 많이 들어간다. 국물 또한 넉넉하게 부어서 담근다.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해서 한겨울에도 채소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김장도 많이 하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눈 속에서 자라는 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제주도는 따뜻한 날씨 때문에 집 주변에 겨울을 넘기는 배추를 심는다. 배추가 겨울을 넘으면서 봄에 부드러운 꽃대가 올라오는데, 이것을 동지나물이라고 한다.
배추꽃대김치(동지김치)는 2~3월에 동지나물이 꽃 피기 전 어린줄기와 잎을 이용하는 김치다. 겨우내 시어지고 군내가 나는 배추김치를 먹다가 동지김치를 먹으면 봄날 식욕을 돋우는 데 더 이상 좋은 게 없다. 얇게 저민 전복에 채 썬 유자 껍질, 무, 배, 대파채, 생강채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익힌 김치다. 만드는 법은 간단한데, 맛은 끝내준다. 전복의 달큰하고 쫀쫀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여기에 유자향이 향긋하게 풍미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