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을까
‘번아웃 증후군’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대사회에서, 말 그대로 내 안의 에너지가 다 타버려서 더 이상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한 느낌. 바로 그 지치고 힘겨운 마음의 상태가 인간관계에도 투영되는 상태가 바로 권태기다. 즉 관계의 권태가 있기 전에 우선 내 마음의 권태, 내 일상의 권태가 먼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에게 나쁘게 대해서가 아니라, ‘아무 변화 없는 관계’가 전에는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느껴지다가 이제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탓’이라기보다는 ‘관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변화’ 때문일 수 있다. 그 사람은 변한 게 없는데,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관계뿐 아니라 직장동료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모두 이런 권태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뭔가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는 관계, 서로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린 관계는 권태기를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다. 내 지친 마음,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힘겨운 마음 상태가 ‘똑같은 관계’를 ‘변함없는 신뢰의 관계’가 아닌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관계’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사랑과 우정, 신뢰와 기대마저도 권태와 우울, 무기력과 무관심함으로 바꾸어버린 것일까. 이것을 스스로 질문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성찰할 수 있는 마음의 빈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권태가 나쁜 감정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태를 통해 우리는 ‘나를 진짜로 즐겁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고, 때로는 권태로운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도 아는 마음의 여백을 마련해둘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 마주하기
고전학자 피터 투이는 《권태》(미다스북스, 2011)라는 책에서 ‘권태’가 매우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임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아무런 부끄럼 없이 권태, 그러니까 지루함이나 따분함에 대해 불평한다. 반면 성인들은 권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권태를 부정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마디로, 너무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성인들은 권태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때문에 권태를 내색하는 일이 덜한지도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권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아이들은 ‘심심하다, 지루하다, 따분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꾸밈없이 ‘재미있는 상태,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는 아이들은 권태로움을 표현하는 감정에 있어서도 매우 솔직한 것이다. 아이들은 권태를 느끼면 재빨리 재미있는 것을 찾고, 금세 흡족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권태를 마치 ‘적’이라도 되는 듯이 취급한다. 권태로워 보일까봐, 정말로 오래오래 권태로울까봐, 도무지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권태는 인간의 본능이다. 24시간 행복하고 신날 수는 없다.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당연하듯, 걸핏하면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끼는 것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권태로움을 삶의 일부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권태에 찌들지 않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의 시작이다.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사랑과 질투와 분노를 느끼며 괴로워하는 이유 중 하나로 ‘투사(projection)’를 꼽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이미 있는 어떤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태를 넘어서는 방법
인간관계의 권태를 극복하는 길 중의 하나는 ‘함께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일상의 권태와 관계의 권태는 항상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상의 권태를 배움의 기쁨으로 극복하면 관계의 권태도 치유될 수 있다. 삶의 권태를 극복하는 소소한 기쁨을 찾는 배움의 길들이 알고 보면 도처에 널려 있다. 커플 중 한 사람이 요리를 배워 맛있는 음식으로 서로를 기쁘게 해줄 수도 있고, 함께 집안의 인테리어를 적극적으로 바꿈으로써 익숙한 공간의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도 있다. 취미로 악기를 배워 함께 이중주를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악기를 배워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으며, 커플 중 한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에 이끌려 ‘늘 똑같던 사람이 전혀 달라 보이는’ 행복한 착시를 경험할 수도 있다. 삶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어떤 배움이라도 좋다. 그 사람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상대방을 조금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관계의 권태는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바뀌고, ‘내가 다 안다고 믿었던 당신에게, 뜻밖의 슬픔이, 뜻밖의 기쁨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애정이 샘솟기도 한다.
투사를 내려놓는다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사랑과 질투와 분노를 느끼며 괴로워하는 이유 중 하나로 ‘투사(projection)’를 꼽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이미 있는 어떤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마다 마음속에 어떤 이상형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 이상형이라는 내면의 필름이 ‘그와 살짝 비슷한 어떤 대상’을 발견하는 순간 ‘아, 저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그 사람이다’라는 판단으로 덧씌워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평생 ‘내 마음속의 이상형’과 비슷한 어떤 대상을 찾아 헤매며 그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대상을 만나면 ‘아, 저 사람이 바로 내 운명이야’라고 믿어버리며 그 사람에게 ‘내 이상형과 비슷한 사람이 되어줘’라고 요구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그 사람의 실체를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어떤 환상의 이미지’를 현실의 인물에게 덧씌움으로써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셈이다. 미움이나 질투, 분노나 실망 또한 그런 원리다. 누군가를 향해 기대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아예 없다면, 실망도 분노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만큼 잘해주었으니까, 저 사람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그 사람에게 투사함으로써 우리는 더 쉽게 실망과 분노에 빠지는 것이다. ‘투사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 감정과 욕망에 비추어 그 사람을 판단하는 행위를 끝내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평생 ‘내 감정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사를 내려놓는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비로소 권태의 원인과 실망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그에게 더 많이 기대할수록, 내가 그를 향해 더 많은 희망을 걸수록, 권태와 절망도 깊어지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지나친 투사를 걷어내는 것, 오직 내 마음에 비춰 세상을 바라보는 오류를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권태를 극복하는 마음챙김의 기술이다. 내 마음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투사’라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의 실체를 깨닫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작가소개 정여울 작가
소통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공부할 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