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참 멀다. 36번 국도를 따라 안동과 봉화와 의양을 거쳐야 닿는다.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한 번 가려면 단단히 마음 먹어야 한다. 지금은 도로가 넓어지고 정비돼 그나마 다가가기가 수월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울진은 먼 곳이다. 길은 깊은 계속 사이를 나사못이 돌듯 빙글빙글 파고 든다. 그러니까 먼 먼 울진에 머무는 며칠 동안은 잡다한 일들일랑 부디 찾지마시길.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온천
울진 덕구온천은 한국최고의 온천으로 꼽히는 곳이다. 난개발을 이룬 다른 온천들과 달리 이 곳의 건물이라고는 덕구온천 스파월드와 벽산콘도 두 개 뿐이다. 주위는 온통 울창한 숲이다.
“한국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온천이에요.” 덕구온천 김명은 주임의 첫마디다. “덕구온천은 국내 유일의 자연용출 온천입니다. 인위적으로 지반을 뚫고 들어가 수맥을 찾아내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가 스스로 땅을 뚫고 솟아나죠. 땅속에서 마그마가 충분히 익힌 물인데다, 광물질이 녹을 대로 녹아있습니다.” 덕구온천의 물은 땅 속에서 데워지고 채워졌다가 스스로 넘쳐나는 물이라는 뜻. 그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덕구온천에는 일반적인 온천탕인 대욕탕과 테마온천과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는 스파월드가 마련되어 있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하고 현대식 기포욕과 바디 마사지 등을 갖췄다. 레몬탕과 자스민탕, 편백나무 욕조를 이용한 히노끼탕 등이 있는 아담한 노천탕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첩첩 산자락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기는 기분이란. 눈이라도 내리면 그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겨울숲, 그 울창함을 만끽하다
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 덕구온천에서 시작하는 가벼운 트레킹을 즐겼다. 온천수가 솟구치는 ‘원탕’에 이르는 4km 코스. 덕구계곡의 절경 속을 걸을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완만하게 굽이치는 숲길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데 오른편으로 덕구계곡의 깨끗한 물줄기를 끼고 간다. 아침 7시 덕구온천호텔로비로 가면 해설가와 함께 하는 덕구계곡 원탕 아침산행에 참여할 수 있다. 원탕에 이르는 구간은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은 평탄한 길. 큰 오르막이 없어 보통 걸음으로 걸어도 2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다.산행길 초입. 다리 하나가 눈에 띤다. 어딘가 낯이 익다. 앞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본뜬 다리라고 설명해놓았다. 알고 보니 태풍 때문에 계곡에 설치됐던 다리들이 떠내려갔는데, 다시 놓으면서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교량을 본뜬 다리 13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다소 어색한 모습들이지만, 참가자들은 안내판의 다리 설명도 읽고 셀카도 찍으며 즐겁게 걷는다. 왕복 2시간의 트레킹이 부담스럽다면 구수곡자연휴양림을 산책하는 것도 좋을듯. 구수속 계곡을 따라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10km 정도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굳이 이 등산로를 오를 필요는 없다. 숲속의 집 뒷편 약1km의 산책로가 나 있는데 이 길만 걸어도 충분하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를 걷는 기분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음식, 스스로에게 보내는 맛있는 위로
잘 쉬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 하나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다. 겨울 울진 여행에서 대게를 빼놓을 수 없는 일. 울진, 영덕, 포항에는 이맘때 쯤 대게가 넘쳐난다. 후포항은 울진 대게의 집산지로 수많은 대게집도 늘어서 있다. 대게 가운데 으뜸은 박달게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단단하게 들어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게의 이웃사촌으로 홍게가 있다. 대게에 비해 값이 저렴해 ‘서민 대게’로도 불린다. 동해와 일본 전역의 해역에서 서식하는데 겉모양은 대게와 비슷하다. 홍게는 맛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과거 난전에서 시장 상인들이 좌판에 수북이 쌓아놓고 판매하거나 영세 상인들의 이동판매차량에 실려 아파트단지 등에서 싸게 팔린 탓이다. 하지만 요맘때 홍게는 맛이 대게 못지 않다. 달면서도 약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울진의 또 다른 겨울 별미는 곰치국이다. ‘물곰탕’이라고도 불리는데 밤샘작업을 한 뱃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아침 속풀이 해장국을 좋다. 한 입 떠 넣으면 추위에 얼어붙었던 뱃속이 뜨끈해진다.
쉬는 일, ‘리얼’을 만나는 일
후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며 바다 드라이브를 즐긴다. 차창 오른편으로 드넓은 바다가 내내 펼쳐진다. 해안을 할퀴는 파도가 거세다. 갯바위마다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서 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내려가 빈 백사장을 걸어본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푸른색의 하늘과 망망대해다.
길은 계속 흘러 월송정과 망양정을 차례로 지난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송강 정철이 ‘정자 위에서 바라보는 노송림과 명사십리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의 누’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해안선과 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드라이브의 끝은 죽변항이다. 죽변항은 예로부터 화살을 만드는 재료였던 소죽(小竹)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죽변 등대가 자리한 야트막한 산에는 소죽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죽변항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죽변등대 아래쪽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바닷가 작은 마을은 1910년에 세워진 하얀 등대까지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세트장이 거기서 거기지’하고 가보지 않는다면 아까운 그림 하나 놓치는 셈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행정보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후 7번 국도 타고 삼척을 거쳐 울진으로 내려가면 된다.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안동 쪽으로 우회전, 중앙고속도로 타고 가다 풍기나들목에서 나와 좌회전해 5번 국도로 영주까지 간 뒤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봉화 거쳐 불영계곡을 따라 울진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 동심식당은 후포항에 자리한 30년째 전복죽을 해 온 식당이다. 054.788.2588
▶ 울진군청 앞 네거리 시장통에 자리한 칼국수식당은 가자미회국수가 맛있다. 054.782.2323
▶ 왕돌수산은 울진에서 잡은 대게와 홍게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054.788.4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