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물이 만나 쉼을 얻으리
서로 다른 곳에서 발원한 두 물이 있다.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북녘 금강산에서 출발한 북한강이다. 두 물은 경기도 양평에 이르러 뒤섞인다. 시작은 다르지만, 결말은 언제나 똑같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두 물이 만나 ‘두물머리’가 되었다. 한자로는 양수리(兩水里)라 부른다. 하나가 된 물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유리처럼 깨끗하다. 두물머리는 시시각각 다른 물감으로 채색된다. 해가 뜨고 질 때는 고전 영화 <십계>에 나왔던 나일 강처럼 핏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정갈한 진경산수화가 되기도 한다.
그뿐이랴. 일교차가 큰 날에는 강물에 불을 지핀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안개 자욱한 몽환의 강이 된다.
한때 두물머리는 꽤 번창했었다.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출발한 갖가지 산물들과 목재들이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에 가기 전 꼭 한번 들러야 하는 중간 정착지였기 때문이다. 양평은 물자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상권이 형성되었고 돈이 돌았으며,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성장했다.
쉽게 말하자면 물류기지인 셈이다. 하지만 강물의 흐름보다 기술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1973년 팔당댐이 만들어지고, 물보다 빠른 도로가 놓였다. 이후 두물머리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면서 어로행위, 선박건조 등이 금지되어 나루터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두물머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대신 마음에 평안을 주는 쉼터로 거듭났다. 그린벨트로 묶였던 것이 오히려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온 게다. 서울과 가까워서 일상을 잠시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준다. 특히 사진동호인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고요한 아침에 두물머리에는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잠든 호수를 깨운다.
산책길도 잘 조성되어 있다. 허리보다 낮게 세워진 담은 자연과 사람의 벽을 낮춘 것 같다. 6월부터 8월까지 두물머리 주변은 초록물감을 풀어 놓은 듯 싱그럽다. 그곳은 연잎의 나라요, 연꽃으로 충만한 천국이다.
잔잔한 수면 한가운데 작은 섬 하나가 덩그렇게 떠 있다. ‘뱀섬’ 이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큰 물난리 때마다 육지에 살던 뱀들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섬까지 흘러들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사진가들은 뱀섬을 사진에 담기 위해 사계절 몰려든다. 예술적 소재는 또 있다.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잔바람에 흔들리는 돛배, 수변에 찰랑이는 작은 파도가 그것들이다. 나무그늘에 앉으면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것도 두물머리의 매력이다.
물과 꽃들이 함께 있는 세미원
두물머리 입구에 세미원으로 통하는 배다리가 있다. 실제 배 위에 떠 있는 다리라서 ‘배다리’라 부른다. 방식은 이렇다. 먼저 배를 촘촘히 붙여 띄우고 그 위에 나무판을 놓아 다리를 낸 것이다. 배다리는 실학자 정약용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는데 실제 사용한 것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융릉 참배를 위해서였다. 세미원으로 향하는 배다리는 그것을 재현한 것이다. 굳이 의미를 찾아보자면 산자가 망자를 만나러 가는 다리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 의미가 세미원과 통한다. 세미원은 팔당댐이 생기면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변에 철조망이 둘러쳐지는 바람에 상류에서 온갖 부유물들이 떠내려와 쓰레기장이 되다시피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가 쓰레기를 먼저 수거하고 수질 정화기능이 뛰어난 연을 심었다. 이러한 노력이 알려지면서 각종 규제를 정비하고 경기도와 양평군이 지원해서 지금의 세미원이 탄생하였다. 이처럼 망자와 같은 쓰레기장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으니 정조대왕의 배다리가 전혀 생뚱맞은 것만은 아니겠다.
세미원이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장자의 가르침에서 따온 말이다. 물과 꽃의 의미를 되새기며 세미원에 들어서면 바닥을 빨래판으로 조성해 놓은 세심로가 나온다. 몸과 마음의 찌든 때를 씻어 내야 할 것 같다. 빨랫방망이가 있으면 더 좋으련만. 한쪽은 수풀이 우거졌고 반대쪽은 연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먼발치 두물머리에는 산 그림자가 옅게 드리우고 구름도 물과 함께 흘러간다. 예로부터 물은 정화와 거듭남의 상징이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라 했고, 기독교에서는 물에 빠졌다 나오는 세례를 통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난다고 믿는다. ‘국사원과 우리내’ 정원은 한반도 형상을 본떠 꾸몄을 뿐만 아니라 실제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돌과 흙으로 가꿔놓았다. 우리내 징검다리를 밟아가며 깡충깡충 걷다 보면 광개토대왕비 앞에 다다른다. 이어 365일을 상징하는 항아리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연못에는 우산만한 연잎이 웃자라 연못을 뒤덮었고 사이사이 수줍은 듯 연꽃이 봉긋봉긋 피었다. 연꽃은 6월 초에서 8월 초에 절정이다. 세족대는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발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발을 씻고 나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바람도 구름도 쉬어갈 것 같다. 물에 마음 씻고 보니 이전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게 새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하 늘에서 내리는 ‘물’의 다른 이름은 ‘비’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을 찾아가는 길. 그 길은 북한강변과 이웃한다. 도심을 떠나 강물과 친구가 되고 가로수와 친구가 되는 진정 여행이 주는 참맛을 느끼게 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만 있어도 지겹지 않은 길이다.
황순원 문학촌 건물은 소설 속 주인공이 소나기를 피해 몸을 숨겼던 수숫단 모양을 닮았다. 1, 2층 전시실에는 작가의 친필 원고와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3층은 야외카페가 있다. 영상실에는 나무 책걸상, 칠판 등이 놓여 있다. 칠판 옆에 붙어있는 5학년 교과 시간표는 부모세대에게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는 국민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소설의 서정이 오롯이 남아 있다. 문학촌을 돌아보면서 소년과 소녀의 풋사랑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소나기는 오랜 시간 머물지 않는다. 잠시 잠깐 세찬 샤워기 물살처럼 대지를 적시고는 금방 잠잠해진다. 이윽고 청명한 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성장기에 겪게 되는 사랑의 성장통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화창한 하늘을 보여준다. 영상실에서는 4D 애니메이션 영화 <그날>을 상영한다. 소설 <소나기>의 결말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이하다. 야외전시장에는 황순원 묘역,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사랑의 무대가 이어진다. 잔디가 깔린 소나기 광장에는 움막처럼 세워놓은 수숫단이 여러 개 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움막 속에는 가족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 없고, 연인들은 소설 속 주인공보다 조금 농도 짙은 사랑을 속삭인다. 때마침 하늘에서 ‘우두두’하고 소나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우산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소나기는 문학관에서 오전 11시와 오후 1시, 3시, 5시에 인공적으로 내리는 소나기다. 초여름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소나기에 뜨거웠던 대지는 열기를 식히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시원해진다. 개구쟁이들은 소낙비를 맞으며 신이 났다.
쉴만한 물가가 많은 양평은 참 고맙고 아름다운 땅이다.
Information
● 찾아가는 길
두물머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704-7
세미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문의 031-775-1834
소나기마을 황순원 문학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소나기마을길 24 문의 031-773-2299
● 별미
양평은 용문산 산나물축제가 열릴 정도로 산나물이 유명하다. 산채비빔밥은 기본, 각종 산나물을 이용한 웰빙 푸드를 내놓는 집들이 여럿 있다. 정갈한 상차림과 맛, 경치까지 좋기로 유명한 옹화산방(031-771-8383)과 축제가 열리는 용문산 관광지, 용문역 인근에는 산나물을 내는 집들이 즐비하다. 두물머리 근처에는 양평전통시장이 있다. 지역 별미는 별로 없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식당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