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주머니가 또 바구니를 들고 왔다. 바구니 안에는 잘 익은 살구가 들어 있었다. 주홍빛 살구에서는 단내가 풍겼다.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어 받기가 민망했다.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아주머니는 바구니를 품에 안겨줬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다른 손에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 안에는 상추가 가득 들어있었다.
“상추가 어찌나 잘 자라는지 뜯어내기 바쁘네요. 뒤돌아서면 성큼 자라 있다니까요. 무공해니까 많이 먹어도 상관없어요. 하하하!”
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문을 닫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상추 풍년이었다. 지난번에 준 상추도 다 먹지 못한 상태였다. 안되겠다 싶어 상추를 한 움큼 꺼냈다. 상추 겉절이를 해볼 요량이었다.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주머니의 상추는 일반 마트에서 파는 상추와는 달랐다. 맛도 맛이려니와 무엇보다도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웠다. 상추뿐만 아니라 살구도 제대로 익어 있었다. 원래 나는 살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잘 익은 살구는 신맛보다 단맛이 강했다. 앉은 자리에서 네 개를 해치웠다. 사실 살구뿐만이 아니다. 지난번에는 앵두를 주는 바람에 귀한 앵두 맛을 볼 수 있었다. 앵두는 요즘 보기 쉽지 않은 과일이다. 예전에야 시골에서 앵두를 많이 먹었지만 도시생활을 하면서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 귀한 앵두를 아주머니 덕분에 맛보게 되었다.
요즘은 삶이 각박해져서 사람 사이의 정도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특히, 이웃 간에는 반려견이나 소음 등으로 인해 분쟁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 이제는 이웃이라는 개념조차 흔들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아주머니는 이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아주머니를 알게 된 건 몇 달 전이다. 우리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딱히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없어 나도 이웃에 무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찰나, “잠깐만요!”하며 누군가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얼떨결에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러자 오십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별일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때 옆에 있던 딸아이가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날따라 아이도 무척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마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는 모습에 딸아이도 살짝 감동한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급한 일이있는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니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상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지난번 고마웠다면서 상추와 앵두를 내밀었다. 자신이 주말농장을 하는데 그곳에서 수확한 거라 했다. 괜찮다고 사양했는데 인사 잘하는 딸아이가 예뻐서 주는 것이라며 품에 안겨주고 갔다.
다음날, 나도 양파를 가져다드렸다. 시골에서 친정엄마가 보내온 양파라 내게는 귀한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정도 많다면서 반갑게 받아주었다. 그 뒤로 딸아이는 아주머니를 보면 인사를 꾸벅꾸벅 잘도 했다.
아주머니는 남편과 두 분만 사시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 이웃과의 불화로 뉴스 보기가 겁나는 세상에 생각지도 않은 이웃을 만나서 나도 좋았다. 작은 친절이, 큰 힘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알게 되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는 것도 이웃으로 인해 깨달은 점이었다. 며칠 동안 우리 집 밥상은 상추풍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