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은 많고 공간은 좁은 우체국 작업장
밤새 내린 겨울비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퍼붓던 아침, 집배원들이 우체국 뒷마당에서 쉴 새 없이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었다. 땅은 흠뻑 젖어 있었지만 대형 천막 아래에서 분류되던 우편물은 큰 훼손 없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노원구는 우편물량만 따져 보면 송파구에 이어 서울시내 2위에 해당합니다. 작년 12월부턴 의정부우편집중국에서 무겁고 부피가 큰 소포들을 받아오는 물류 거점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더 바빠졌죠. 오늘은 비가 와서 손이 더 가긴 하는데 30년 넘게 돌아가는 우체국이니 이젠 이런 날도 문제없이 지나갑니다.”
최동종 우편물류과장의 설명에서 노원우체국의 오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1985년 서울태릉우체국으로 개국한 이곳은 5년 후 청사를 증축하고 1992년부터 서울노원우체국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지역 규모가 커지면서 1997년에는 서기관국(4급관서)으로 승격됐지만 작업 환경은 그대로다. 어느덧 30년 세월을 입은 건물은 노후화가 진행되어 하나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편물량에 비해 공간이 매우 좁고 시설도 부족했습니다. 명절을 앞둔 특별소통기간에는 더 많은 우편물이 쏟아지니까 정신이 없죠. 전 직원이 업무 지원을 하러 이 마당으로 나오는데, 우리 국 사람들이 참 맑고 순수해서 다 같이 일하는 걸 좋아하고 불평불만이 적습니다. 그게 참 고마워요.”
양문순 물류실장이 자연스럽게 팔을 걷어붙이고 롤카페트 이동을 도와가며 우체국 이곳저곳을 소개해준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편물을 분류하던 어느 집배원이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춥고 축축한 겨울 아침이지만 매일 하는 이 일이 즐거워 보이는 그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나서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전기차가 서 있다.
전기차와 기기 도입으로 업무환경 개선
“2018년에 소형 전기차 5대가 도입됐어요. 이륜차(오토바이)보다 날씨의 영향을 덜 받고 더 많은 우편물을 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실제로 노원우체국에 배달용 전기차가 도입된 이후 우편물 적재량이 대폭 늘어나 집배원들은 다량의 택배를 한 번에 배달할 수 있게 됐다. 업무 효율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전기차를 이용한 배달처럼 날씨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기 위해 작년 여름에는 그늘막도 설치했다. 실내작업장이 부족한 노원우체국에서 집배원들에겐 겨울 한파보다 무서운 게 한여름 뙤약볕이었다. 그러나 열기를 막아주는 그늘막을 설치하여 집배원들의 옥외작업이 한결 수월해졌고 온열질환도 예방할 수 있었다.
“작업장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렵습니다. 우리 국사보다도 더 오래되고 열악한 환경의 노후 우체국사들이 많기 때문이죠. 주어진 물리적 환경을 인정하고 직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기존 공간을 재배치하거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동서울우편집중국이나 서울청 물류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물류통’으로 통하고 있는 최동종 과장이 노원우체국에 가져온 또 하나의 혁신은 ‘집진기 설치’ 였다. 일평균 8만 통의 우편물을 고속으로 분류하는 순로구분기엔 분진(먼지)이 쌓일 수밖에 없다. 순로구분기 자체에 집진기가 내장돼 있지만 성능이 약하단 것을 인식한 최 과장은 외장형 집진기의 별도 설치를 추진했다. 작년 6월에 설치된 집진기덕분에 분진이 감소하여 집배원들은 목 건강이 좋아졌고 작업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을 점차 느낄 수 있었다.
“집진기 설치 외에도 여러 기기를 추가 도입했습니다. 다른 국과 달리 우리 국엔 발착대가 없고 리프트만 있어서 우편물이 적재된 파렛트를 직접 상하차해야 했어요. 이제는 롤카페트와 경사대, 지게차의 일종인 전동스태커까지 이용하니까 속도가 빨라진 만큼 집배원들의 노동강도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 양문순 실장의 말에 이어 최동종 과장이 앞장서서 어딘가로 이끌었다.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난 두 대의 이동대차. 기존 우레탄 바퀴 이동대차가 시끄럽다는 민원에 따라실리콘 바퀴의 대차로 교체한 것이다. 집배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않고 고객들의 목소리까지 반영한 혁신인 셈이다.
실버택배 운영으로 일자리 창출과 예산 절감을 동시에
노원우체국의 물류혁신은 우체국 밖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상계주공 15단지의 ‘노원실버협동조합’ 사무실에 가보니 25명의 어르신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총 9천세대인 상계주공 11~13, 16단지의 전담소포배달을 CJ대한통운과 우체국이 협의하여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 오전 9시부터 분류작업 후 일평균 4~500통의 배송까지 마치면 오후 3시 정도가 된다. 일반 소포위탁배달 수수료가 1,100원대인데 아파트전담위탁 수수료는 770원에 불과하다. 시니어 일자리 창출과 우체국 예산 절감을 동시에 이루는 순간이다.
“은퇴 후 친구 소개로 하게 됐습니다. 평소에도 운동을 해왔기에 배달 속도도 제법 빠르고, 일하면서 충분히 걸으니까 더욱 좋습니다. 단가가 저렴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누군가가 기뻐할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아파트 곳곳을 다닐 때면 시작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동안’ 소리가 절로 나오는 71세 권기호 기사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하고픈 실버택배”라고 말했다. 우체국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노원우체국의 물류혁신. 앞으로도 이들이 꾸준히 체계적인 혁신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