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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5종 전웅태의 도전
낯선 종목의 낯선 선수가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고 방송 인터뷰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견디면서 훈련했던 시간들이 메달의 영광으로 되돌아왔다는 감격이었다. 한국 근대 5종 국가대표 전웅태(26)는 그렇게 자신의 종목과 이름을 세상에 알리며 올림픽 스타로 다시 태어났다.
글. 최희진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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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세계 경쟁력 확인
전웅태가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이후 근대 5종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늘어났지만, 이번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근대 5종은 긴 설명이 필요한 종목이었다. 근대 5종은 근대 올림픽 초창기이던 1912년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스포츠를 통해 구현할 목적으로 고안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성과 덕망, 건강한 신체를 조화롭게 갖춘 인간을 완벽한 인간으로 여겼고 이 중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고대 5종 경기를 만들어 겨뤘다. 고대 5종 경기가 근대 올림픽에 적합하게 변형된 것이 근대 5종이라는 복합 스포츠다. 근대 5종은 펜싱과 수영·승마·레이저 런(사격+육상) 등 종목별 기록을 점수로 환산해 총득점이 가장 높은 선수가 금메달을 가져간다.
어린 시절 활동량이 남달랐던 전웅태는 에너지를 발산할 곳을 찾다가 수영을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선생님에게 근대 5종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다양한 운동을 해볼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 근대 5종에 입문했다. 역사의 시작이었다. 전웅태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레이저 런 부문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비록 다른 경기 점수가 따라주지 않아 최종 순위는 19위에 그쳤지만, 전웅태는 리우의 경험을 통해 도쿄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韓 첫 근대 5종 올림픽 메달 획득
그로부터 지난 5년간 한국 근대 5종에는 ‘전웅태 천하’가 열렸다. 2018 국제근대5종경기연맹 월드컵 3차 대회 우승, 월드컵 파이널 2위를 차지하며 세계 경쟁력을 확인했고, 같은 해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그해 시즌을 세계랭킹 1위로 마감했다. 2019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동메달을 따며 한국 선수 중 가장 먼저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코로나19 대유행과 이에 따른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는 전웅태에게도 타격이었다. 올림픽의 전초전 격인 국제 대회들이 잇달아 취소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그는 올림픽 개회를 3개월 앞둔 시점인 지난 4월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우승했고 좋은 예감을 안고 도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국제대회 성적은 화려했지만 전웅태에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20년 5월 전웅태는 진행자가 고민을 듣고 해결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람들이 근대 5종을 잘 모른다. 국가대표로서 사람들에게 근대 5종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표했다. 이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게 근대 5종을 알리는 방법인 것 같다”고 자문자답했던 전웅태는 도쿄 올림픽에서 그 구상을 스스로 현실로 만들었다. 한국의 첫 올림픽 근대 5종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또 다른 도전의 시작
역대 한국 근대 5종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11위였다. 한국이 올림픽 근대 5종에 처음 출전했던 게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는데, 전웅태가 도쿄에서 사상 첫 메달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우연도 화제가 됐다. 전웅태는 인터뷰로도 감동을 선사했다. 경기를 마친 그는 믹스트존(공동 취재 구역)에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다가, 한 기자가 “진짜 수고 많았어요”라고 축하 인사를 하자 이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나 두꺼운 벽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계속 두드렸다”면서 그간 운동하며 느꼈던 막막함을 털어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곳에서 세계의 벽을 두드리던 전웅태는 그 벽을 뛰어넘어 스포트라이트가 환히 비추는 올림픽 시상대에 섰다. 전웅태는 동메달을 목에 걸고 “대한민국 근대 5종은 이제 시작”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대중들의 인정과 박수가 그리웠던 전웅태가 또 한 번의 박수갈채를 위해 파리 올림픽을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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