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세월, 세 개의 섬을 잇다
북한의 장산곶 남쪽 휴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배로 4시간 거리다. 서해상 짙은 안개의 영향으로 여객선 정시운항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험한 뱃길로 유명한 섬이다. 아니나 다를까 취재 당일 안개대기로 인해 출발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여객선은 백령도를 향해 닻을 올렸다. “아이고,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버선발로 달려 나오듯 반색하며 취재진을 맞이한 이창현 영업과장. 그제서야 무사히 백령도에 닿았다는 안도감이 서로의 숨구멍을 튼다. 백령우체국은 1960년 1월 개국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75년 9월 5급국으로 승격했고, 2004년 1월 청사 개축을 단행하며 규모를 키워 현재에 이른다. 관할우체국은 대청우체국과 소청우체국, 603군사우체국 세 곳이다. 2008년에 이어 지난해 백령우체국과 다시 연을 맺은 이 과장은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백령우체국이지만 특유의 분위기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우체국 전체가 한 가족 같이 서로간에 돈독한 정이 오가고 그랬어요. 크고 작은 일을 도모할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단합이 정말 잘 됐죠.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여기선 통했어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인데, 백령우체국만큼은 세월을비껴간 것 같아 반갑고 기뻤죠.”
딱 한가지 달라진 건 십 년 전만 해도 백령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직원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육지에서 들어온 직원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백령도 출신 직원들과궁합이 잘 맞았던 이창현 과장은 그들이 가끔 그립기도 하단다. 이제 백령우체국의몇 안 되는 토박이 직원인 박근식 집배팀장이 지역전문가를 자처하며 입을 뗐다.
“예로부터 백령도는 농작물이 많이 나는 섬이라고 해서 먹을 게 많기로 유명했어요.대청도는 백령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삼각산을 기준으로 땔감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소청도는 홍어잡이 풍년으로 현금부자가 많은 섬이라 불렸다고 해요.” 제각기 다른 특색과 매력을 가진 세 개의 섬을 아우르는 일은 백령우체국만이 누릴수 있는 특별함이다.
까나리액젓으로 하나되다
각각 우편과 금융을 총괄하고 있는 김홍중 우편팀장과 박재훈 금융팀장은 백령우체국 발령과 함께 생애 처음 백령도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봄부터 근무를 시작한 김 팀장은 육지와는 확연히 다른 이곳 주민과 우체국 간 끈끈한 정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주민 분들이 일단 우체국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이해를 많이 해주세요. 먼저 나서서 도와주시거나 다소 늦어져도 기다려주시곤 합니다. 그저 제 업무를 했을 뿐인데 어르신들께서 오히려 고맙다고 하시니 황송할 따름이죠. 일 년 넘게 근무를 하면서 이곳 주민 분들에게 우체국은 관공서 그 이상의 존재 같은, 가족 같은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섬이 갖는 특유의 친근함과 에너지가 있어요.”
과거 육지에서의 근무 경험을 현재와 비교해볼 수 있는 김 팀장과 달리 박 팀장은 백령우체국이 그의 첫 발령지였다. 2017년 1월 1일 자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한 그는 올해로 5년째 백령우체국에 몸담고 있다.
“사실 백령도를 첫 발령지로 지원한 건 승진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어요. 섬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연수만 채우면 바로 떠나야지’하는 계획이 있었어요. 한데 막상 근무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어요. 주민 분들과 관계를 쌓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의 정이 무섭더라고요. 하하.”
사람의 정이 무서운 건 박 팀장뿐 아니라 우체국 직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일 년 중 직원들과 주민들 간 가장 돈독한 정이 오가는 시기는 백령도에서 최고로 치는 지역특산품인 까나리액젓을 육지로 내보내는 9월 중순부터 연말까지다. 이때가되면 매일같이 우체국 앞 마당이 까나리액젓으로 도배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르신들께서 까나리액젓을 트럭으로 몇 차례씩 싣고 오니까 수량이 엄청나요. 게다가 무게가 상당해서 창구 앞에서 접수를 받기란 불가능하죠. 직원들이 마당에 장사진을 치고 우편접수를 받는 겁니다. 그때가 백령우체국의 최고 성수기라고 할 수있어요. 백령도에서 까나리액젓이 가을부터 3개월간 나오는데 연간 우편업무로 따지면 45%나 차지할 만큼 물량이 어마어마합니다. 5톤 차로 10대가 나갈 정도죠.” 최고 성수기 기간에 직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작업복을 갖춰 입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편발송에 힘을 싣는다는 것이 이 과장의 설명이다.
“육지나 여타 섬과 달리 백령도는 선박 출항 전에 그러니까 오후 1~2시까지는 발송업무를 마쳐야 해요. 선박시간에 칼같이 맞추려면 담당부서와 업무에 상관없이 전 직원이 한몸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죠.”
섬이 주는 위로와 행복
어느덧 섬 주민들과 한 가족이 되어 두터운 관계를 자랑하는 직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섬 생활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가족이 있는 서울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갑니다. 인천항까지 배로 왕복 8시간인 데다 안개가 잦아서 선박이 지연 또는 취소되기 일쑤죠. 자주 가고 싶어도 여건상 어려워요.” 육지보다 우편 업무량이 많은 탓에 김 팀장의 서울행이 어렵기도 하다.
“달리 보면 섬 생활이 주는 위로가 참 커요. 육지 근무였으면 절대 몰랐을 것들이 제 일상이 됐죠. 조금만 가도 바다가 보이고 숲과 나무가 있잖아요. 출퇴근 전후로 매일같이 산책하니 자연 속에서 일하는 기분이에요. 제 인생에 이런 기회가 또 올까요?” 김 팀장의 말을 옆에서 듣던 이 과장과 박 팀장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령도에 오기 전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 과장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며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가는 중이다.
곧 있으면 사람뿐만 아니라 섬 전체가 활기를 띠게 된다. 양파를 수확하는 7월 한 달은 백령도를 비롯하여 백령우체국이 맞이하는 연중 첫 번째 성수기다.
“우리 직원들끼리 이때가 9월 최고 성수기의 전초전이라고 말을 해요. 주민들이 봄에 농사지은 양파나 마늘, 고추 등의 작물을 수확해 육지로 내보내는 시기인데, 이때도 우체국 앞 마당에 장사진을 치고 업무를 봅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만큼은 주민들 가까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라는 이 과장. 그의 말처럼 그 어느 때보다 주민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며 섬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바로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