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345년 전인 1662년(현종 3년) 삼척에 부사로 온 허목(許穆)은 이지방에 제방과 저수지를 만들면서 가래질에 필요한 새끼줄을 힘들이지 않고 많이 만들며 마을 전체가 참여하여 일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줄다리기, 곧게 줄 싸움을 만들었다. 기 줄이란 게줄을 뜻하는 말로 기둥이 되는 큰 줄에 작은 줄이 매달려 마치 게의 발처럼 보인 데서 비롯했다. 삼척의 기줄다리기는 다른 지방의 줄다리기보다 격렬한 것이 특징이며 소년들의‘속닥기줄’, 청년들의‘중기 줄’, 어른들의‘큰 기 줄’등으로 구분했는데 기 줄 모양을 게의 다리 모양으로 만들고 도깨비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게 껍질을 문전에 걸어 다리처럼 줄을 틀어서 정월 보름날 밤새도록 당겼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놀이였던 기줄다리기는 부사의 뜻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해안마을 인부 내면과 산골마을인 말 곡면이 편을 나누어 정월 대보름날에 승부를 겨루었는데, 해안 마을이 이기면 어업이 풍어가 되고 산골 마을이 이기면 농사가 풍작이 된다는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삼백 년 넘는 세월 동안 크게 하나 되는 대동의 축제, 대동의 용광로로 자리매김해온 삼척 기줄다리기는 지난 1976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50여 명의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삼척 기줄다리기 보존회에서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기줄다리기 보존회의 안대균(83세) 회장과기능보유자박춘달(83세) 옹은 뿌리 깊은 지역의 축제를 든든히 지켜오고 있는 두 명의 어르신이다.
“이 놀이 한번 하면 없던 힘도 생기고 신명이 용솟음쳐요. 허니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놀이를 금지했지. 그때 주춤하긴 했지만 전통의 맥이 어디 그리 쉽게 끊기나? 줄다리기는 조선 팔도에서 다 하는 놀이지만 우리 삼척 기줄다리기는 자랑할 만하지. 1975년에 처음으로 줄다리기 전국대회가 열렸을 때 우리가 1등을 했어요. 우리 보존회원들은 다달이 모여서 연습을 해요. 눈비가 와도 합니다. 그렇게 실력을 닦아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이면기 줄다리기를 하는데 5천여 명이기 줄다리기를 보러 와요. 직경 35㎝에길이 100m의 기줄을 만드는 술비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며기줄을어깨에 짊어지고 입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참 볼만해요.”
기줄다리기를 소개하는 박춘달 옹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번진다. 생각만 해도 신명이 나는 이 놀이는 그 시작부터 즐겁다. 장정들이 볏짚을 엮어 기줄을 만드는 술비놀이가 그렇다. 널빤지에 구멍을 세 개뚫어기 줄을 트는 술비 통은 구멍을 통해 짚이 술술 잘빠져 나오면서 줄이 된다고 하여 ‘술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줄다리기는 온동리의 축제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했어요. 집집마다 볏짚을 내고 술과 떡을 빚어 서로 나누며 흥을 돋웠죠. 술비놀이할 때도 그 흥은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짚이나 칡으로 기줄을 만들고 다시세 가닥을 한데 모아 틀어서 커다란 한 줄을 만들어요. 이 줄을 틀 때 동리 사람들이 한데 모여 농악을 울리며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술비 놀이할 때 부르는 술비 노래도 참으로 들을만합니다.”
술비 노래하면 첫 손에 꼽는 박춘달옹이 술비놀이의 흥취를 풀어놓자 안대균 옹은 육필로 적은 술비노래 가사를 보여준다. “여보시오, 줄꾼님들/술비 노래를 맞춰주소/술비 노래를 잘하고 보면/먼 곳 사람들은 듣기도 좋고 가까운 사람들은 보기도 좋네/에헤야 술비야 에헤야 술비야/소리 높여 불러 보세/통 아통아 술 비통아/빙글빙글 잘 돌아가네/세 가닥이 꼬는 줄이여/합쳐 트니 큰 줄 되네…”술비노래에는 태평성대와 풍년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이 오롯이 녹아있다.
간교한 술책도 요행도 없고 너와 내가 경계를 허물고 크게 하나 되어 신명을 살리는 뿌리 깊은 축제는 소년의 가슴에 호연지기를 심어주었고, 이제 구순을 향해 가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푸르른 기상을 뿜어내는 인간 소나무로 성장하게 했다. “올 정월대보름에도 기줄다리기 싸움이 한판 크게 벌어질 테니 다시 찾아오라.”며 웃음 짓는 두 어르신의 얼굴에 벌써부터 신명이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