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가 한창이네요.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하죠. 먹을수도 있는데 예전에는 화전으로 많이 부쳐 먹었고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옵니다. 자, 진달래꽃을 한번 찬찬히 보세요. 암술과수술은 어느 것일까요? 다섯 장의 꽃잎 중에서 이 하나의 꽃잎만이 유난히 빛이 여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숲 해설가가 안내하는 숲은 경이의 세상으로 다가온다.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 담긴 자연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하는 숲 해설가 김의식 씨(60세). 사람들이 숲에서 새롭게 자연을 만나 알게 되고 아는 만큼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더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바야흐로 봄, 길가나 공원의 화단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진달래꽃도 그러하다. 벌이 꽃잎에 안착하도록 하기 위해 밝은 빛깔의유도등 꽃잎을 한 장 갖고 있으며 암술이 유난히 길게 뻗은 채아래에 떨어져 있는 것은 이종가루받이를 통해 더 건강한 후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단법인 숲해설가협회(http://foresto.org)의 사무총장이자 인터넷 카페 「겨울나무사랑」(http://cafe.daum.net/wwlover)을 운영하고 있는 김의식 씨는 신록이 싱그러운 이즈음 이곳저곳에서 숲 해설가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숲속여행프로그램(http://san.seoul.go.kr)에서는 강남구의 대모산 숲 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국문학을 공부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른들의 반대로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기업에 들어가서 쉰 살이 되도록 직장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나이 오십 줄에 드니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생기더군요. 의무감으로 사는 인생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숲해설가협회에 들어가서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저에게 새로운 공부는 가슴 뛰는 즐거움이었어요. 2년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 방송통신대학 농학과 2학년에 편입했습니다. 그 과정을 마치니 새로운 갈증이 일었고 요즘에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숲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요. 공부할 것도끝이 없죠.”
김의식 씨는 숲 해설가의 일은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한그루의 나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식물학, 곤충학, 생태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을 아울러야 하고 철학 역시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가 뒤늦게 농학을 공부한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교육학은 숲 해설가인 그가 사람들에게 숲을 좀더잘안내하기 위해 선택한 공부였다.
“자, 이곳은 대모산 잣나무 군락입니다. 눈을 감고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이 커다란 나무가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것은 든든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세요. 나무와 나무는 너무 붙어있으면 잘 살지 못합니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죠. 한번은 벗들과 함께 하는 산행길에서 누군가‘나무와 나무 사이의 가장 적절한 거리는 얼마일까? ’하고 물었는데 벗 하나가‘그리움의 거리’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게 했죠. 참 멋진 말이죠! 나무뿐만 아니라 사람과사람 사이에도 자존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이 잣나무 군락도 세월이 흐르면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권력이동이죠. 사람도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지 않나요? ”
10여 미터 높이의 잣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몇걸음 옮겼을 때 눈 밝은 해설가의 작은 탄성이 들렸다. 풀숲 사이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야생화를 발견한 것이다. 키 큰 나무가 아직 잎을 키우기 전, 봄 햇볕이 땅바닥까지 고루 퍼질 때야생화는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야생화 한 송이 속에서도 공존의 지혜와 생명의 힘을 느껴본다.
“이 일을 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시야가 폭넓어진것을 느껴요. 예전에는 산행을 할 때 정상에 오르기 급급했다면요즘은 좀처럼 정상에 오르기 힘들어요. 숲 해설가는 정상에 오르기 힘들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보물들이 있으니 속도를 내기 어렵답니다. 인생도 그런 것아닐까요? 남보다 먼저, 빨리 정상에 오르는 인생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 길의 풍경과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숲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산책한 사람의 숲도 그에게 감동을 선사했다고 한다. 감성경영을 위해 기업체에서 의뢰한 숲 해설프로그램에서 만난 직장인들은“나무 밑에 잠시 누워 보라”는이 특별한 숲 해설가의 주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일감을느꼈다며 상기된 얼굴로 고백했다. 시각장애인 가장과 그 가족을 인솔했을 때 온가족이 눈을 가리고 다른 감각으로만 술래잡기를 하는 이른바 박쥐놀이를 했다. 가장의 어려움을 체험하는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시력이 좋지 않고 초음파로 사물을 감지하는 박쥐가 되어보는 놀이였는데 온가족이 하나가 된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시각장애인 가장의 환한 웃음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조화롭고 평화롭게 품고 있는 숲을 바라보는 숲 해설가의 은발이 은사시나무의 등걸과 어우러진다. 그가 짓는 환한 웃음에 만개한 꽃들이 화사한 빛으로 인사를 한다. 숲의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