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특별 기획

안도현 시인 인터뷰가 실린 《정보와 통신》 2000년 5월호
저마다 존재하는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널리 알려진,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이다.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장 낮고 아픈 자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 세계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닷가 우체국》을 통해 우체국은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그리움과 안부가 모였다 흩어지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바닷가 우체국은 실제로 있는 곳이 아니에요.”
젊은 시절, 전주에서 자주 가던 변산반도 서해안, 격포와 채석강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풍경이 시의 출발점이었다. 한쪽에는 바다가, 다른 쪽에는 비탈진 밭과 허름한 농막이 이어지는 길.
“우리는 큰맘 먹고 바다를 보러 가지만, 그 농막은 지어진 순간부터 매일 바다를 마주하잖아요. 그 창고에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상상으로 걸어 준 거죠.”
그는 이 상상 속의 우체국이 어느 한 곳으로 못 박히기보다 각자의 마음속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제주에서, 태안에서, 혹은 포항 구룡포에서 저마다의 ‘바닷가 우체국’을 발견했다는 독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체국은 더 넓은 기억과 풍경으로 확장되었다.

26년 만에 《우체국과 사람들》에서 다시 만난 안도현 시인
편지에서 전보, 소포까지…
우체국이 품은 시간들우체국에 대한 그의 기억은 유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타지 생활을 했던 그에게 부모님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편지와 전보였다. 급한 소식이 있을 때면 어머니가 우체국에 들러 전보를 치고, 작은 부스 같은 공간에서 교환원이 연결해 준 전화를 받곤 했다.
등단을 꿈꾸며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하던 시절에도 원고를 맡기는 곳은 늘 우체국이었다. 원고지에 정성껏 써 내려간 시를 봉투에 담고, 풀칠이 잘 되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며 우표를 정성스레 붙이던 시간. 그에게 우체국은 ‘간절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 시인은 시골 면 소재지 우체국에서 또 다른 풍경을 본다. 은행 하나 없는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예금과 보험 업무를 보고, 작은 상자에 농산물과 손 편지를 담아 자식들에게 보내기 위해 창구를 찾는 모습이다.

시인이 꿈꾸는 ‘느린 우체국’의 미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우체국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강조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체국이 예전처럼 중심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속도를 낼수록 우정이 가진 ‘느림’과 ‘클래식한 매력’은 더 빛날 거예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르는 관계의 시간, 창구 앞에서 천천히 설명하며 기다려 주는 태도.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체국만이 가진 ‘클래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인에게 우체국은 여전히 ‘연결’의 상징이다. 어린 시절의 편지부터 등단을 향한 원고, 그리고 26년 만에 다시 이어진 사보와의 인연까지.
“우체국이라는 공간이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끈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바닷가 우체국’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바닷가 우체국》.
감성적인 서정시로 사랑받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