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네루 가게를 옮기는 게 어때요?'
어느날 초희가 말했다. 몇 차례 말을 할듯 말듯 망설인 끝에 꺼낸 말이었다.
“가게문 연 게 한 달밖에 안됐는데 다른 동네루 옮기자는 거야? ”
나는 초희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되물었다. 그러나 나는 초희의 말뜻을 알아듣고도 나았다. 아니, 나는 초희의 말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초희는 내가 권해서 차려 놓은 철물 점을 어느새 실패로 단정해 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내 마음과 몸을 휘감고 조였다. 초희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설혹 내 마음 깊숙이에서 초희가 품은 불안과 비슷한 느낌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더라도 드러내놓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당신, 오해하지 말아요. 고만두자는 얘기가 아니니까. 장사가 잘될 자리를 찾아 앉아야 돈을 벌 수가 있잖우? 그런데 여긴 아무래두 장사 잘될 자리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초희의 말투는 조심조심이었다. 어떻게 내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배려가 초희의 말 속에 배어들어
있었다.
“어딜 가던 한 달 안에 장사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덴 없어. 그리구 한번 자리를 옮기는 데 시간과 돈이 얼마나 낭비되는지나 알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간이나 돈보다 멀리 있는 앞날을 생각해야 해요.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실수에서 되두룩 빨리 빠져 나온대잖수? 얻어 들은 풍월이지만 옳은 말 같아서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들은 풍월은 일을 벌여 놨으믄 여섯달은 버텨봐야 승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랬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재주나 능력을 알아내는 데두 여섯달은 걸려야 할 거야. 한 달만에 문을 닫으믄 자신감 잃어버리구 돈 손해나구 겹으루 손해보는 거야.”
'그냥 내 생각을 말해봤을 뿐이에요. 당신 생각이 정 그렇대믄 당신 생각 따라가께요.'
초희는 나의 강한 거부반응에 부딪히자 빠르게 자기 의견을 거두어 갔다. 내 주장이 그럴 싸해서 물러선 것 같지는 않았다. 사업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나와의 충돌을 더 염려한 데서 내린 결정인 듯했다. 내 주장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선선히 굽히고 물러나면서도 사업에 대한 불안감을 개운하게 씻어내지 못한 채 가슴 갈피 속으로 감추어 넣는 초희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초희의 마음 씀씀이 앞에 나도 떳떳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나는 인쇄소에서 광고지를 찍어다가 사람을 사서 전봇대와 집들의 벽에 붙이게 했고, 신문사 지국에 돈을 주어 광고지를 신문지 갈피에 끼 워 신문 구독 가정에 배달하도록 했다. 광고 내용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성껏 양심적으로 공사를 해 드리겠으며, 공사에 결함이 생겼을 경우에는 즉시 수선해 드리겠다, 이런 약속을 틀림없이 이행하겠으니 일차 이용해 보시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광고 효력이 나타났다. 공사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막힌 하수도를 뚫는 일이었다. 거래를 튼 복덕방에서 인부를 곧 보내 주었다. 나는 인부와 함께 흙범벅을 온몸에 묻히며 땅을 팠고, 좋은 품질의 하수관으로 갈아 끼웠고, 뒷청소도 말끔히 했고, 시중 가격보다 싸게 공사비를 받았다. 그렇다고 인부의 품삯을 깎지는 않았다. 제 품삯을 주었고 음식 대접, 술 대접을 해서 보냈다. 두번째는 담을 쌓는 일을 맡았고, 세번째는 방 온돌을 뜯어 고치는 일을 맡았다. 나는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 들여 싼 값으로 공사를 해 주었고, 인부들에게는 최대한의 대접을 해 주었다.
그런 소문은 꽤 빨리 퍼지는 것 같았다. 공사 주문이 갈수록 많아졌다.
“아저씨가 양심적으로 싸고 튼튼하게 일을 해 주신다는 소문 듣고 찾아왔어요.”
꽤 먼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그렇게 말 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박리다매 양심공 사의 작전이 맞아들어가 금세 기반을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가슴 속 비어 있던 공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어느날 남자 셋이 찾아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가 공손하게 물었다. 일 부탁하러 온 사람 들이려니 짐작하면서도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왔느냐구 물었우? 걸어왔우다. 이 철 물점에 오면 어떻게 왔는지 먼저 보고를 해야 되는 거유? ”
몸이 강파르고 눈꼬리가 찢어져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사내가 각죽거리듯 대꾸했다.
“그런 게 아니구, 물건 사러 오신 손님인 줄 루 짐작하구 그렇게 말씀 드린 것뿐입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변함없이, 아니 한층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 아주 흉물스럽구만 속으룬 독침을 꼬나잡구는 겉으룬 굽신굽신…. 가게 이름이 「양심철물점」이라구? 흉물철물점이래야 맞겠구만.”
나이는 사십대 중반쯤 지긋해 보였지만 근육질의 우락부락하고 괄괄한 표정의 사내가 시비 걸듯 말했다.
“왜들 이러십니까? ”
나는 어깨를 펴며 강한 억양으로 대거리했다. 싸움을 걸려고 일부러 찾아온 작자들이 분명했다. 그런 자들 앞에서 무작정 공손하게 구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왜들이라니? 난 아무 말두 안했는데 왜 한데 싸잡아 태질을 해? 이왕 한데 싸잡혔으니 나두 한 마디 안할 수가 없구만 당신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입이 맥히지 않은 게 분명하니 뚫린 입으루 어디 대답 좀 해보라구? 왜 이러는 거야, 엉? ”
고양이얼굴을 한 땅딸막한 세번째 사내가 끼 어들어 말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울타리 밖만 빙빙 돌지 말구, 입 떫은 일이 있거든 뱉아 내 놔요.'
기죽지 않고, 한가락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시로 나도 막말을 써서 대거리했다.
“그래, 뱉어내마. 너 어디서 굴러댕기다가 온 개뼉다군지는 알 수 없지만, 남의 동네에 와서 함부루 흙물 똥물을 튀겨 놔두 되는 거니?”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내가 말했다.
'아직두 울타리 밖을 빙빙 돌구 있잖아? 무슨 소린지 알아 듣게 하라구.”
“우린 너보다 앞서서 이 동네에 들어와 철물 점을 차린 니 대선배다. 이쯤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테지? ’’
나이 지긋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말했다.
“난 머리가 둔해서 잘 못알아 들었우다. 좀더 쉽게 말해 주슈.'
'너 왜 공사비 덤핑해? 나두 달린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진 사람이야 남들은 죽든 말든 니 배만 채우면 다니? 따지구 보면 니 배 두 채우지 못해. 남 못살게 만들구. 지 배두 채우지 못하고, 뭐 하는 짓이야? 우리를 다 죽이구나서 너 혼자만 남으면 슬그머니 공사비를 올려 돈 벌 수 있다구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때 가면 너 같은 작자가 또 나타나서 니 똥구 멍을 쑤셔대게 돼. 니가 풋내기가 아니었다면 단단히 혼을 내 쫓아낼 작정을 하구 왔다만 풋내기 같으니까 타이르기만 하겠다. 그 대신 공사비 공정가격을 매겨 가지구 왔으니까 앞으룬 공정가격대루 받두룩 해. 또 어길 때는 가만 있지 않을 테야.”
땅딸막한 사내는 말을 마치고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일단 종이를 받아들었다.
“거기 적히지 않았거나 적혔더래두 아리숭한 데가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 물어. 가로 쳐 줄 테니까. 우리 세 사람의 철물점 전화번 호가 그 아랫쪽에 따루따루 적혀 있어.'
나이 지긋한 사내가 그렇게 말을 보충했고, 말이 끝나자 그들은 휭하니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나는 종이를 펴보았다. 여러가지 공사의 기본 비용과 길이, 넓이, 깊이, 시간이 추가되는 데 따라 증가하는 비용이 적혀 있었다. 그 종이가 나를 얽매는 것 같아 불끈하는 마음에 종이를 확 구겨 쥘 생각을 하는데 초희의 말소리가 들렸다.
'없애지 말아요. 우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할 텐데 트집 잡힐 일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리구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루 해요. 인제 우리 두 동네 사람들한테 알려졌잖아요? 값을 같이 받아두 정성들여 일해 주면 우리한테 일을 맡길 거예요. 그 사람들하구 싸울 생각 말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먼저 이 동네에 왔잖아요? 처음 이사 온 사람이 동네 사람과 싸워봤자 따돌림받을 뿐이라구요. 참는게 제일이구 이기는 거예요.”
나는 초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을 맡으면 정성을 다해 일하면서 공사비는 그 사람들이 정해 준 공정가격대로 받았다.
그러나 일을 맡긴 주민들에게서 차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유씨가 일을 싸구두 튼튼하게 해줘서 단골루 정하자구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같은 값이라면 유씨한테 일을 맡기겠는데 다른 데보다 비싼데야 맡길 수가 없잖아요? 아주머니 떡 두 싸야 사 먹는다는 속담두 있잖우? 그렇다구 해서 다른 데서 일을 엉망으루 못하는 것두 아니구 말유. 유씨 혼자만 있는 것두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값을 비싸게 받을 수가 있우? ”
어느날 단골이 된 아주머니네 집에서 방구들 뜯는 공사를 해달라면서 비용을 묻다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 아는 집에서 같은 크기의 방을 뜯어 고쳤는데 내가 부른 비용보다 싸게 공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데보다 싸지는 않더라두 또 더 비싸지두 않을 텐데요. 다른 철물점 사람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똑같이 받으라며 공정가격을 적어 주구 간대루 받구 있는 걸요? 그대루 받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구 으르렁대구 갔는데, 자기 들은 그 값보다 싸게 받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 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나의 그런 몸짓이 그 아주머니의 오해를 사게 만들었다.
“그럼 내가 공사비를 깎을라구 없는 말을 꾸며서 했다는 얘기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더니만…”
아주머니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행실에 기가 막혀서 터져 나온 말입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주머니.”
'유씨 말을 듣구 보니 그 사람들이 짜구서 유씨를 골탕먹일라구 일을 꾸몄을지두 모르겠 다는 생각이 들기두 하네요. 어쨌든 내가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니니까 잘 알아보세요.’,
내가 공사비를 깎아 주겠다는 말을 선뜻 하지 않자 그 아주머니는 방 고쳐 달라는 주문을 나에게서 거두어갔다. 그 사실이 그 아주머니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긴가민가하며 철물점 주인들이 정해 준 공정가격을 그대로 요구했다. 주민들에게서 전해지는 반응은 그 아주머니와 다름이 없었다. 다른 물력가게보다 가격이 싸더니 왜 갑 자기 더 비싸졌느냐며 적어도 같아지기 전에는 일을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은근히 뒷조사를 해보았다. 주민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나는 지난번 나를 찾아와 공정 가격표를 전하고 간 철물점 주인들을 찾아가 한바탕 항의 소동을 벌일까 하다가 그만두고, 나도 다시 값을 깎아 공사를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당신 무슨 일이 있어두 주먹질 발길질 같은 거 하면 안돼요. 이 악물구 꾸욱 참아야 해요.”
초희는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고는 방안으로 몸을 숨겼다.
“야. 너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 알지? ”
땅딸막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는데? ”
내가 대꾸했다.
“다리하구 갈비뼈가 부러져가지구 이 동네서 쫓겨나든지, 사지 몸통이 성한 채루 이 동네에서 쫓겨나든지. 둘 중에 한 가지를 골라야 하겠지.”
“그래? 그럼 당신들은 어느 쪽을 고르겠어? ”
“우리한테 골라 달래는 거야? 우리 동네에 와서 살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서 사지 멀쩡한 채루 떠나가두룩 해 주는 쪽이 좋겠지.”
“그래? 그럼 언제까지 떠나가면 되는 건가?”
'한 달 안에 떠나가야지.”
“그럼 당신들 오늘부터라두 옮겨갈 데 찾아 봐야겠구만? ”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구 있는 거니? ”
강파르게 생긴 사내가 나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건 당신들한테 내가 해야 할 소린데, 왜 당신이 나한테 하지? 이상한 노릇이군 그래.”
'미친놈한테는 모든 게 이상하게 보이게 마련이야. 너 잘 들어. 우린 동네에 미친놈이 사는 걸 원하지 않아. 니가 정한 대루 한 달 안에 우리 동네에서 떠나두룩 해.”
'당신들과 내가 했다는 약속이 뭐였지? ”
“공사비를 공정가격으루 받는 거였지. 약속한 일이 뭔지 잊어버렸다구 핑계를 대두 소용없어.
잊어버린 것두 약속을 어긴 거니까.'
“그렇다면 약속을 어긴 건 당신들 쪽인데 그래? 나더러는 공정가격을 받으라구 해 놓구는 당신들은 뒤에서 그보다 싼 값으루 공사를 해 줬잖아? 그리구는 나보구 어쨌다구 할 자격이 있는 거야? ”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를 대라.”
“당신들 양심이 들어 있는 가슴에 손을 얹구 생각해봐. 거기 증거가 있을 테니까.”
“니가 아무리 수를 써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면해볼라구 해두 이번엔 안돼. 사지가 멀쩡한 채루 떠나가든지, 부러지구 터지구 찢어져서 떠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골라잡아.”
“내가 약속을 어겼다는 증거는 어디 있니? 증거를 대라.”
“우체국 옆집 스레트지붕 보수공사에다가 김 포쌀집 이증 화장실 수선공사에다가… 증거야 수두룩하지. 어때? 그래두 할 말 있니? ”
'그런 식으루 하면 나두 당신들 약속 어긴 증거 얼마든지 댈 수 있어. 벼룩두 낯짝이 있다구. 먼저 약속을 어기구서 이렇게 찾아와서 나한테 뒤집어 씌울 수가 있는 거야? 당신들 모략에 넘어갈 내가 아니야 그러니까 서루 재 주껏 벌어먹구 살자구.”
“잔소리 말구 골라잡아. 사지가 멀쩡한 채 이 동네에서 떠나갈래, 부러지구 터지구 찢어져서 떠나갈래? ”
“사지가 멀쩡한 채루 이 동네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살랜다. 어쩔래? ”
“이 새끼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구 날뛰는구나'
땅딸막한 사내가 달려들어 내 멱살을 틀어 잡고 나를 가게 밖으로 끌어냈다. 가게 밖에는 구경꾼들이 몰려 서 있었다.
“동네분들 보셨지오? 이 사람이 먼저 행패를 부렸습니다. 나는 이제 정당방위루 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자 땅딸막한 사내의 멱살을 마주 잡음과 동시에 장딴지를 걸어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어쭈. 이 새끼가 폭력 쓰네.”
깡마른 사내가 달려들더니 주먹으루 내 턱을 가격했다.
“동네분들 보셨지오? 이 사람이 먼저 주먹으루 내 턱을 때렸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자 주먹으로 깡마른 사내의 턱을 힘껏 후려쳤다. 사내는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나이 지긋하고 우락부락 한 사내가 가게 앞에 세워 놓은 삽을 집어들었다. 순간 나는 몸을 솟구치며 발로 사내의 가슴을 걷어찼다. 사내가 땅바닥에 딩굴었다. 그러나 싸움은 정작 그때부터였다.
“싸우지 말아요. 참아요.”
초희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흥분을 갈아앉히려는데 세 사내가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나는 싸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 들어가 세 사내를 상대로 정신없이 치고 받고 차고 했다. 내 몸에도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얼마나 싸움을 계속했는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였다 동작을 멈추고 보니 나이 지긋한 사내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싸움을 벌인 네 사람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그러나 나이 지긋한 사내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해 병원으로 곧 옮겨졌고, 땅딸막한 사내와 강파른 사내도 얼굴을 코피로 매대기친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나만 코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말짱했다. 그것은 운이었다. 나도 그들에게 수없이 맞고 채이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가슴이 결린다고 호소했다.
네 사람 모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나이 지긋한 사내는 갈비뼈 세 대가 부러졌고, 땅딸 막한 사내는 코뼈가 주저앉았고• 강파른 사내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뼈가 부러졌다는 검사 결과였다. 그런데 불행히(? )도 나는 가벼운 타박상 몇 군데뿐이었다.
나의 전과 기록이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을 했다. 세 사내는 그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 왔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고 나에게 유리하게 증언을 해 주는 동네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교도소로 가느냐, 세 사내와 합의하고 치료 비를 부담하느냐, 하는 선택의 권한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겠어. 길진 않을 거야.”
내가 초희에게 말했다. 치료비와 위자료를 물 어내려면 철물점을 팔아야 할 판이었다.
'철물점을 처분해서 치료비를 물어주두룩 해요. 당신이 없으면 어차피 철물점을 할 수가 없잖아요.? ”
초희의 대꾸였다.
'아니야, 철물점을 처분하면 돈이라두 남잖아? 철물점을 그 작자들 치료비나 위자료에 써 버릴 순 없어.”
'우린 아직 젊으니까 열씸히 일하면 다시 모을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또다시 교도소에 들어가면 안돼요. 자포자기하게 되면 자칫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질 수가 있어요.”
'철물점이 날아가 버리는 걸 보면 역시 자포 자기에 빠지게 될 거야. 그 돈이 어떻게 벌어 모은 돈인데? 안돼. 감옥에 갈 테야.”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 벌써 합의를 했어요. 당신은 새출발 할 각오나 튼튼히 다져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에는 초희와 그 작 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초희가 내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초희는 교도소에 가겠다고 우기는 나를 주저앉혀 놓고 나서 그자들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치료비만 부담하고 위자료는 이 동네를 떠나가는 것으로 상쇄하자고 사정을 했지만, 그자들은 막무가내로 위자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철물점은 한 푼도 건져내지 못한 채 잠시 꾸었던 꿈이었던 듯 사라져 버렸다. 당장 들어가 살 방이 없었다. 내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초희 앞에 몸둘 바를 모르겠던 그때의 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끈 일어나는 생각대로라면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거나 먼 타국으로 떠나가 몸을 완전히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비겁한 일이 또 있겠는가. 나는 초희에게 평생 신세를 진 터였다. 빚을 갚아 나가야지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초희가 다니던 술집에 찾아가 다시 출근하는 조건으로 돈을 꾸어다가 지하의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었다. 나는 막노동판에 나가 품삯을 받아다가 초희에게 바치곤 했다.
“한평생이 걸리더라두 열씸히 일해서 갚을께.”
내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런 마음가짐만으루두 벌써 다 갚았어요. 하기야 부부간에 빚을 갚구 말구 할 것두 없지 뭐. 당신한테 부탁하구 싶은 건 주먹을 믿지 말구 열번 스무번 참구 또 참구, 저쪽에서 당 신을 때리더라두 맞대거리하지 말구 피하기만 하라는 거예요. 그건 당신과 나. 우리를 위해서예요.”
초희는 오직 하나, 내 울끈불끈하는 성질과 주먹 힘 믿고 경거망동 잘하는 내 만용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 나 지금부턴 정말 당신 말 명심거행 하겠어.’’
'됐어요. 우리 새 출발이에요.”
초희는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초희 몸에 병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 일을 겪었을 때부터일 것이다.
강원도의 경계를 넘어선 뒤에도 그분과 나는 농사일을 거들어 주고 밥을 얻어 먹고 빈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는 길을 떠나 한나절 걷다가는 일손이 모자라는 일터를 찾아내 다시 일을 하곤 했다. 말하기가 쉽지 여간 고달픈 하루하루가 아니었다.
대단한 체력이로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놀라곤 했다. 아무리 평소에 운동을 해 체력을 단련했다 치더라도 도시에서 생활하던 오십줄의 나이로 허구한 날 걷고 일하는 것이 결코 힘에 부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분은 멈추지 않고 강행군을 계속했다. 물론 고행 이었다. 고행은 자기 몸을 학대해 몸 속에 숨어 들어있는 정욕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분은 그렇게 자기 몸을 학대하고 있는 것일 까. 그렇더라도 대단한 체력이고 지구력이었다. 고행이라고 해서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저녁을 얻어먹은 뒤 마을 막바지에 있는 빈 집에서 잠을 잤다. 그래왔듯이 그분은 안방에서 자고 나는 건넌방에서 잤다. 날이 훤히 밝았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 났고. 나는 누워서 꾸물대지 않고 일어나 길 떠날 준비를 했다 그분을 일찌감치 길을 떠나 곤 했던 것이다. 물론 그분은 길을 떠나면서도 나에게 떠나자는 말 한 마디 하는 법 없었고、 내가 알아서 따라 나서야 했다. 그러니까 길 떠날 준비를 특별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아무 때고 그분이 떠날 때 곧바로 따라 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벗어 놓았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났을때였다. 안방 쪽 기척을 살피려고 귀를 기울이는데 갑자기 무엇이 넘어지는 듯 쿵 소리와 함께 어이쿠! 하는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건넌방문을 열고 마루를 건너 안 방 미닫이문 앞에 섰다.
“어르신, 뭐라구 말씀하셨습니까? ”
내가 물었다.
“아닐세. 아무 것도 아니야. 일어나다가 바짓 가랑이에 발이 걸려 잠깐. 아이쿠!'
안방 미닫이문 안에서는 다시 그분이 넘어지면서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묻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그분은 담요 위에 엎드린 모습으로 쓰러졌는데, 몸을 추스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다가가 그분의 몸을 부축해 앉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그분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뜨거웠다. 숨결도 가빴고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이 뜨거운 김을 끼얹듯 내 살갗에 후끈후끈 닿았다.
“어르신, 몸에 열이 높은데 편히 누우십시오.” 나는 부축하고 있던 그분의 상체를 담요에 눕히려고 했다.
“아니야. 내버려 두게. 감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걸어 가느라면 나을 거야.'
“아닙니다. 오늘 하루 푹 쉬셔야 합니다. 감기라는 말씀은 옳으신 것 같지만 그래두 오늘 하루 쉬셔야 합니다. 자, 누우십시오.”
나는 그분을 다시 눕히려고 했다.
“아니야 내버려 두게. 길을 떠나야지.”
그분은 나를 뿌리치듯하며 무릎을 세워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비틀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조금 현기증이 이는구만. 그럼 삼십분만 누웠다가 떠나가겠네.'
그분은 고집을 잠시 꺾고 담요 위에 누웠다. 베개는 륙색이었다. 나는 건넌방으로 가 내 담요를 가져다 그분을 덮어 주었다.
'필요없네. 삼십분이면 된다니까.'
그분은 내가 덮어 준 담요를 걷어 내 옆으로 팽개치듯하며 말했다.
“삼십분이라두 덮으시는 게 좋습니다. 감기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빨리 낫는 답니다.”
나는 다시 담요를 집어 올려 그분을 덮으려고 했다.
'필요없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구나? 담요 챙겨 가지구 자네 혼자 길 떠나게. 참견 말구 나를 내버려 두게.”
그분의 말소리에는 신경질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편찮으신 어르신을 남겨 두구 저 혼자 길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끔찍하게 위해 주는 것 같구만.”
“제가 있을 곳은 어르신께서 계신 곳 바루 옆입니다.”
“자네는 내가 병들어 누워서 기분이 좋겠구 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르신께서 감기 몸살루 누우신 일루 해서 제가 얼마나 당황해 하는지 어르신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자네가 왜 그렇게 당황해 한다는 건가? ”
“제가 해야 할 일의 첫째가 어르신을 시중해 드리는 건데, 어르신께서 감기 몸살루 누우셨으니 제가 할 일을 제대루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까? ”
“그럴싸하게 들리지두 않네. 자네는 내가 병 석에 누워 있는 쪽이 여러가지루 편하지 않나? 첫째는 감시하기가 쉽구, 또 내 고행 성과를 깎아내리기 좋을 테니 말야.’’
'어르신, 제가 어르신을 감시하려구 따라온 게 절대루 아닙니다. 그리구 편찮으신데 말씀 고만하시구 쉬십시오. 제가 약국을 찾아서 감기 몸살약을 지어 오겠습니다.'
“자네가 뭘 근거루 내가 감기 몸살에 걸렸다구 단정하나? 자네, 주제넘은 짓거리 좀 작작하게. 나는 잠시 쉬면 돼. 나를 내버려 두구 자네 할일이나 하라구.”
그분은 말을 마치자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나는 그분의 핀잔을 무릅쓰고 다가가 그분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대단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잠을 청해 주무십시오.”
나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그분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마을로 내려왔다. 길에서 만난 마을 사람에게 약국이나 병원을 물었다.
“면사무소 있는 동네에나 가야 있지유 뭐.”
“면사무소는 어디 있습니까? ’’
“저 행길 따라서 오리씀 걸어가믄 있대유.'
나는 부지런히 걸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약국에서 약을 짓기보다 의사를 데리고 오리라 생각했다. 돈은 넉넉하게 쓸 수가 있었다. 사모님이 넣어 준 여비에다가 일 품값으로 받아 넣은 돈도 한 푼 쓰지 않고 그대로 모아 두었으니까.
면사무소 근처에 ‘건강약국’이라는 양약국과 ‘재생의원’이라는 병원이 있었다. 병원문부터 열고 들어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병원 안은 한산했다. 간호원이 청소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 좀 뵈러 왔는데요.'
“아침 잡수시는데요. 어떻게 오셨지요? ”
간호원은 고개를 들고 물으면서 내 행색을 살폈다.
“저 건너 마을에 심한 감기 몸살 환자가 있어서 왔는데요. 왕진 좀 해 주셨으면 하구요. 왕진비는 충분히 드리겠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만원권 묶은 다발을 꺼내 보였다. 간호원은 돈을 힐긋 바라보더니 외면했다.
“잠깐 기달려 보세요. 선생님이 결정하실 일이니까요.”
간호원은 돈 따위 관심 없다는 듯 청소에만 열중했다.
의사는 삼십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