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밭
글. 유재범(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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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동호회 총무 일을 하면서 일정을 짤 때 가을이 되면 좀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하산하는 길에 그 지역 별미를 맛볼 수 있도록 맛집을 들러 오는 코스로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 관련 서적과 잡지를 정독하고 인터넷 블로그도 보면서 팔도 곳곳 산해진미를 통해 회원들의 미각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맛집 탐방도 중요하지만 한해 동안 땀 흘린 결실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와 성취감과 포만
감을 안겨주는 것이 열심히 등산 다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넓은 평야의 길가에서는 코스모스들이 의장대열처럼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뒷산에는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과 익어서 벌어진 밤송이 그리고 저 멀리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유년시절 시골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었던 그때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하굣길에 근처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밤을 따다가 개울가로 가지고 가서는 장작불로 맛있게 구워 먹던 것이 나와
친구들의 일상이었다. 입에는 검은 그을음을 묻히고 허연 이를 드러내면서 호호 불어가며 고구마를 까먹던 그때의 달콤한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날에도 기대감을 안고 주변을 배회하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밭 주인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날카롭게 쳐다보셨다.
우리 일행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는 주변에 잠복했다가 다시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가시면 거사(?)를 치르고는 했다.
우리 일행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어르신들이 그것을 몰랐을리 없었다. 다음날 부모님께서 어르신께 말만 하면 그냥 주는 것을 왜 서리하냐며 혼을 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집 마당에 한 자루씩 담긴 고구마나 밤을 가리키며 이제 서리하지 말고 집에 있는 화롯불로 구워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가을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은 아마도 먼 옛날 친구들과의 추억들 그리고 서리를 한 아이들을 혼내기보다는 베풂으로써 인정을 보여주셨던 마을 어르신들의 넉넉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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