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눈을 뜨니 벌써 창밖이 훤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앞치마를 두른 남편은 찌개 간을 보는지 숟가락을 들고 서 있었다.“ 시계가 왜 안 울었지?
오늘도 늦잠을 자버렸네. 미안해서 어떡해요. ”내말에 남편은 돌아다보더니 “아이고, 됐네.”하며 식탁에 숟가락이나 놓으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마음이 울컥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뒤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데 창밖에 서 있는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을빛 감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감나무는 열매를 모두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이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저렇게 헐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싶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꼭 남편을
보는 것 같았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이 고마워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배낭을 챙겼다. 건강해지려면 부지런히 산에도 다니고 운동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기 때문이다. 힘이 들어 바위에 잠시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노부부가 서로 손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들의 모습이 정다워 나
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늙어서도 저리 살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한 공기에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열심히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내가 식당에서 일을 한 지는 이년 정도 되어간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아니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몸을 너무 혹사했던지 올여름 많이 아팠다. 남편은 그런 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내가 당장 일을 그치면 가계에 지출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느 정도 생활 여유가 생길 때까지 조금만 더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저녁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나다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무척 힘들었다. 자연히 아침밥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어느 날은 남편이 아침을 굶고 출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다음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몇 개씩 맞춰두고 자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남편이 밥을 해놓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로 남편이 밥을 하는 날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되었다.
사실 남편이 밥을 해주면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남편도 하루 종일 직장일로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 양해를 구해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였다. 그 후로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아침에 눈을 뜨고는 다시 잠을 청하는 일이 많아 늦잠을 자버리곤 했다. 남편이 나를 깨우지 않고 일어나 아침밥을 해서 그나
마 다행이었지만 그동안 남편에게 미안했던 일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번은 내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욕심일 테고 서서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불평하지 않고 참아주는 남편이 고맙
다. 내일 아침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알탕을 끓여 맛있는 아침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