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는 그분의 얼굴부터 살폈다. 표정은 온화하면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엄격함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첫눈에 막노동판의 대장과 는 완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노동판 대장은 완력과 밥그릇 수로 일꾼들을 위압하지만, 그분은 인격과 기품과 위엄 등 정신적인 힘으로 아랫사람을 거느릴 것 같았다. 그분은 두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들어올리며 체조를 시작했지만, 그 몸 움직임이 막일꾼의 일동작은 물론이고 막 노동판 대장의 몸동작과도 사뭇 달랐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그분의 체조는 몸으로 하는 체조가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체조 같았다. 다시 말하자면 몸을 단련하기 위한 체조가 아니라 마음, 정신을 단련하기 위한 체조…….
나는 잠시 갈피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심정이 되었다. 막노동판 대장이라면 첫인상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었지만, 정신으로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대장의 경우는 처음 이어서 짙은 안개 속이나 어둠 속을 헤치듯 막연 했다. 키는 175센티미터 가량, 몸무게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고 듬직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75킬로그램 가량, 나이는 50세 가량, 꼿꼿한 자세와 반백이기는 하지만 숱 많은 머리칼, 희지만 윤기 흐르는 얼굴빛, 부드럽고 탄력 있는 몸놀림은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내일 아침 여섯시에 창문 커튼 틈새로 정원을 살펴보세요. 이 댁 주인어른이 체조를 하실 거예요. 그분의 외모를 잘 익혀 두세요. 사모님이 전하시는 말씀이에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어제 저녁, 밥상을 차려다 준 젊은 여자의 말 소리가 되살아나 내 귓바퀴를 맴돌았다. 나는 그 분의 머리끝에서 손끝 발끝까지를 샅샅이 훑고 살피며 한 구석이라도 놓치지 않고 머리 속에 새겨 넣으려고 애썼다. 옆에서 시중을 드느라면 저절로 그분의 외모에 익숙해질 텐데 몰래 훔쳐보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따위 의문은 품지 않았다. 그분을 시중 드는 일이 내 몸에 큰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아침 여섯시에 그분이 정원에서 체조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머리 속에 새겨 넣으라는 요구라면 이유를 따질 것 없이 성실하게 응함이 마땅한 노릇이고 도리였다.
심사숙고해야 될 일이 있다면 그분에게 시중 들어야 할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분의 성질이 까다롭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성질이 까다롭더라도 참아내야 한다는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자자분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 돌다리 두드려보듯 조심하다 보면 신역이 좀더 고되질 것은 불을 대하듯 뻔한 노릇이었다.
그분은 체조를 마치고 서성거리다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에 머물러 있던 시간은 삼십분이 었다.
나는 그 집에서 사흘을 묵었다. 그 동안 하수도가 막혀 대문 앞의 땅을 파고 하수관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공사를 혼자 치렀고, 자청 해서 페인트를 사달래 벽을 칠했고, 시장에 가서 물건 사들이는 심부름에 집안 소제에 쉴 틈 없이 지내기는 했지만, 기름진 음식에, 내 집처럼 쓴 딴채의 넓고 깨끗하고 폭신한 잠자리는 남부러울 것 없는 호강이었다. 게다가 젊은 여자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긋나긋 대해 주어서, 첫날 주인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우리집 바깥어른 따라가서 일년 동안 고행 시중 잘 들어드리면 내가 참한 색시감 물색해 장가 들두룩 해 줄께요. ’ 하던 주인아주머니의 말과 젊은 여자를 연관짓는 은근한 바람마저 가슴에 품어지곤 했다.
그러나 그 사흘 동안 내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린 그분과의 대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분이 집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딴채 안에 숨어 앉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아침 때가 지난 뒤, 한참 벅적거리는 출근 등교의 혼잡이 가라앉기 시작할 즈음 집을 떠나곤 하는 빛이었는데, 나는 그분이 집에서 나가기 전에 젊은 여자의 부름을 받고 정원으로 나가기 여러번이었다. 나는 정원을 소제하거나 물건 나르는 일을 했는데, 그럴 때면 나도 무심할 수만은 없어서 그분의 눈길을 얼굴과 뒤통수를 비롯해서 온몸에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딴채 창문의 커튼자락을 살짝 젖치고 그분의 모습을 살폈듯, 그 분도 안채 창문 안침에서 숨듯 서서 내 모습을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 라오곤했다. 시험을 치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얼핏얼핏 머리 속을 스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밤이 이슥해서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려고 딴채로 나왔다. 바깥주인 어른이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고서 한참 뒤였다. 나는 깔아 놓았던 이부자리를 급히 개켜 방 한옆에 밀어 놓고는 주인아주머니를 맞아 들였다. 젊은 여자도 함께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이슥한 밤에도 변함없는 귀부인이었고, 젊은 여자는 주인 아주머니 앞이어선지 좀 더 조심스러워하고 다소 곳했지만, 속에서 뿜어 나오는 젊은 기운까지 옷자락에 싸잡아 감추지는 못했다. 두 여인이 흩어 내는 향기가 금세 방안을 가득 채웠다. 주인아주 머니는 자리잡고 앉으며 바로 입을 열었다.
“어른이 내일 새벽 고행길을 떠나시게 됐어요. 처음 유씨를 대할 때 진실해 보이구 착해 보이구 듬직해 보였지만, 속사람두 겉사람과 같을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사흘 동안 가깝게 두고 보니 과연 겉사람과 속사람이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 턱 믿구 어른 고행 시중을 맡길 수 있어서 마음이 놓여요. 유씨 듣기에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수?’
주인아주머니는 스스로도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하려는 듯 내 얼굴을 새삼스럽게 뜯어보는 눈길로 물었다.
“처음 보신 저를 믿으시구 그 귀한 일 시중을 맡겨 주셨는데, 보답하기 위해서두 힘껏 시중 들어 드리겠습니다. 단지 어른께서 제 시중을 탐탁하게 여겨 주실는지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올려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힘껏 시중 들어 주겠다니 고맙긴 하지만, 단지 믿어 주는 데 보답하기 위해서만 힘껏 일하겠다구 생각하면 안돼요. 그런 이유만으루는 오래 견디기가 힘들거던. 물론 그런 정 깊은 마음이 첫째이긴 하지만 거기에다가 이 일이 유씨의 직업이라는 생각을 합해야 해요. 직업이란건 사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는 보람을 얻기 위해서 성인이면 누구나 지니구 몰두해야 하는 일이라우. 천직으루 알구 일해 줘요.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옮겨 가질 수 있지만 그때마다 천직으루 생각해서 보람을 가지구 정성껏 일하면 유능한 사람, 신용 있는 사람으루 인정받아 득을 보구, 그러지 않구 직업을 잠시 들르는 쉼터나 날품팔이 일터쯤으루 여겨 소홀히 하면 보람을 못 느껴 정성이 생기지 않는 건 물론이구 무능한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돼버리구, 결국 자기가 손해를 보게 되는 거라우.”
“말씀, 마음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유씨를 못 믿어서가 아니우. 고행이란 건 말 그대루 고생을 자초해 하는 일이다우. 시중 드는 사람이라구 해서 고생과 동떨어져 편하게 지내게 될 까닭이 없거던. 고행 시중을 드느라면 생각지두 못했던 고생을 만날 수두 있을 테니 하는 애기라우. 그럴 때 일 년 세월은 짧지 않은게 아니라 길구 긴 세월이에요.”
“염려 마십시오. 저두 고생을 할 만큼 해본 사람입니다. 단지 어른께서……”
'내가 달달이 유씨 이름으루 은행에 적금을 붓겠우. 일년 뒤에는 깨끗한 방 둘 전세 얻을 만한 돈이 장만될 거유. 유씨가 좋다면 그 돈은 은행에 높은 이자 붙는 저금해 놓구 우리집 딴채에서 살아두 되구 말유. 내가 책임지구 참한 색시 구해 장가두 들게 해주겠우. 유씨 도장 있우? 없으면 내가 유씨 도장 새겨서 은행 통장 만들어두 되구.....”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른께서 저를 탐탁하게 여기실지 떠나기 전에 어른께 인사 드리구 어른 말씀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내가 유씨한테 긴하게 말해야겠다구 생각한 일들 가운데 바루 그 일두 끼여 있었다우. 그러니까....…”
주인아주머니는 숨을 돌리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했다.
“···그 어른은 시중 들 사람을 데리구 갈 생각을 안하구 기신다우.”
그분은 물론이고 대천교에서도 고행을 하려고 집을 떠나는데 시중꾼을 데리고 가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시중꾼은 주인 아주머니의 발상이었다. 나이 오십이 지난 남편이 홀로 고행길을 떠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께서 제가 따라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물었다.
“대천교의 법을 어기자구 꾸미는 일이 아니라우. 유씨가 따라가서 그 어른을 호강시켜 드리라는 애기는 절대루 아니예요. 대천교의 법이 정해논 대루 고행을 하시되, 병이나 천재지변 같은 혼자 겪어 내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는 도와 드릴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거라우. 그러니까 고행 임무를 잘 수행하두룩 도와드리는 시중인 셈이지. 그래서 말인데, 그 어른을 따라갈 때 그 어른 시중 드는 사람이 아니구 그 어른과 마찬가지루 유씨두 고행길 떠난 사람 시늉을 하면 그 어른이 달리 생각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렇게 같이 고행길 떠난 사람으루 행세하면서 그때 그때 알듯 모를듯 시중을 들어 드리면 별일 없을 거유. 내 생각이 어떻수?’
“저 같은 사람은 열번 죽었다가 깨어나두 궁리 해낼 수 없을 만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어른께서 저더러 젊은 사람이 왜 고행을 하려느냐구 이것저것 캐물으시면 어떻게 대답을 해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다. 나는 꽤 오랫동안 막노동판으로만 굴러다녀서 머리 속은 녹이 슬어 있을지도 몰랐다.
“불가에서는 유씨보다 더 젊은 스님두 수행을 하잖수? 불가에서 말하는 수행이 다름 아닌 고행이라우. 까짓거 그럴듯하게 꾸며 대요. 부친이 사업에 실패했는데 평소에 부친한테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부친을 배신해 부친을 더 궁지루 몰아 넣었구, 그 결과 부친은 병을 얻어 돌아갔구, 어머니는 실성을 해 가출을 했구, 자녀들은 팔려가듯 각기 제 살길을 찾아 흩어져버려 집 안이 갈갈이 찢기구 부서졌노라구. 그래서 유씨는 세상 일과 세상 사람들한테 염증을 느꼈구, 그 고통을 잊으려구 떠돌아 댕긴다구 말이우.”
“혹시 어른께서 제가 이 댁 딴채에 머물렀던 사람이란 걸 알구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꾸며 댄 얘기가 거짓말이라는게 탄로나지 않겠습니까? 어른께서 제가 이 댁에 며칠 머무른 사실을 아실까요, 모르실까요?’
“어느 쪽이라두 괜찮아요. 그 어른이 아시구 계실 경우를 유씨는 걱정하는 모양인데, 그럴 경우에 대답할 말두 생각해 둬요. 세상을 등지구 떠돌다가 너무 외롭구 배가 고프면 사람 사는 세상에 들어가 잠시 머물면서 외로움두 풀구 배고 픔두 덜구, 일해 주구 비상금을 벌어 가지구 다시 떠돌이 길에 오른다구 말이우. 어른 댁 딴채에서 며칠 머물렀던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구...'
“잘 알겠습니다. 일러 주신 대루 따라 해 정성껏 시중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구 아까 말씀하신 제 도장은 제가 가지구 있는 걸 드릴까요, 아니면 새루 새겨서 쓰시겠습니까?’
내가 맡은 일을 정성껏 하겠다는 약속도 분명 히 해야 하지만, 일의 대가로 받을 돈의 문제도 분명히 해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나중 말을 입 밖으로 밀어냈다.
“내가 유씨 주려구 각서를 써 왔다우. 읽어보구 몸에 잘 간직하구 댕겨요. 유씨가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겨두 좋구. 그렇지만 이 각서를 잃어버린대두 각서에 써 있는 대루 한푼두 틀림 없이 실행을 할 테니 조금치두 걱정 말우.”
주인아주머니가 주는 각서를 받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봐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다가 읽지 않고 그냥 접어 무릎 앞에 내려 놓았다.
“읽어 보우. 내가 읽어 줄까?'
“아닙니다. 이래두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단지 어른께서 써 주신 글을 건방지게 검사나 하는 거처럼 어른 눈 앞에서 쳐들구 읽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내려 논 것뿐입니다. 읽어보나 마나 어련히 잘 써 주셨겠습니까?'
“하기야 서루 믿는 것보다 더 확실한 각서는 없지. 그렇더라두 이따가 읽어봐요. 그리구 한 가지 더 얘기할 게 있는데 잊어버릴 뻔했네. 유 씨가 무슨 애기를 해두 그 어른이 믿어 주지 않구 퇴해 낼 경우두 있을 거유. 그런다구 하던 일 집어치우구 돌아서면 안돼요. 조금 더 거리가 떨어지더라두 그 어른이 지내시는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리에 머물러야 해요. 그리구 가끔씩 우체국 같은 전화 걸 수 있는 데를 찾아가 나한테 소식을 전해 줘요”
주인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젊은 여자가 들고 와 옆에 내려놓은 륙색을 나의 앞으로 옮겨 놓게 했다. 륙색 아래 쪽에는 담요도 개켜져 매달려 있었다.
“그 속에 쌀 조금, 미싯가루, 밑반찬, 약, 수저, 냄비, 밥그릇, 석유풍로, 그리구 돈두 들어 있우. 유씨가 배 고플라구 하거든 그 어른께두 잡술 것을 드리두룩 해요 그 어른 짐 속에두 이런저런 물건이 들어 있다우. 다니다가 자리잡거든 가까운 마을을 알아두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구, 무엇보다두 그 어른을 놓치지 않두룩 늘 마음을 써야 하우. 돈이 떨어지거든 전화를 하구 근처 우체국 주소를 알려줘요. 돈을 보내 줄 테니까. 그럼 금세라두 떠날 수 있을 만큼 채비하구 쉬어요. 그 어른 떠나시기 바루 전에 알려 줄 테니까.”
“잘 알았습니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었나 보았다. 방문 두드 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벽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손목시계 를 들여다 보았다. 세시 반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일어나서 세수하세요.”
젊은 여자가 말했다. 나는 그분이 출발할 시간이 촉박했나 보다 생각하며 세면실로 들어갔다. 얼굴을 씻고 방으로 돌아오니 음식이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이 집에 와서 받아본 밥상 중에서도 그 중 잘 차린 밥상이었다.
“길 떠나면 배고플 때가 많을 거예요. 어서 드세요 그렇지만 너무 급하게 드시지 않아두 돼요 주인어른께서두 진지를 잡수신 뒤에야 떠나실 테니까요”
젊은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젊은 여자와 겸상해서 밥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잠깐 내 눈 앞에 비쳐 보이다가 사라졌다. 초희와 겸상해 밥을 먹었던 일이 전설 속의 한 대목인 듯 아득하고 아련하게 느껴졌다. 잠 덜 깬 입에 밥이 잘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밥 한 그릇을 눈결에 비워 버렸다. 찬그릇도 여기저기 바닥이 드러나 보였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양변기 위에 앉았다. 이 집에 와서 처음 사용해본 양변기였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어색하더니 사흘 동안 퍽 익숙해져 있었다. 앞으로 다시 양변기를 사용해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변기 중에서도 내가 지금 앉아서 볼일을 보는 이 집 딴채의 바로 이 양변기를 다시 사용해볼 수가 있을까. 볼일을 다 보았을 즈음 문 여닫는 소리와 이어서 젊은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밥 다 드셨으면 짐 챙겨 가지구 나오시래요”
“예一 곧 나가겠습니다.”
나는 보드러운 휴지를 두루말이에서 뜯어내며 대꾸했다.
본채 현관의 외등불이 아직도 한밤중이나 다름 없는 어둠을 이고 있는 정원에 뽀얀빛을 뿌리고 있었다. 새벽의 냉기가 목덜미에 써늘하게 와 닿았다. 인기척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얼핏 등산복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작업복 같아 보이기도 하는 복장을 한 그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분 뒤로 주인아주머니를 비롯해 가족으로 보이는 서너명의 남녀가 그분을 옹위하듯 따라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제법 묵직한 륙색이 내 어깨를 뒤로 끌어 당겼다. 나는 현관 앞 충계 쪽으로 몇 걸음 다가섰고, 단장을 오른 손에 쥔 그분이 충계를 내려오자 허리를 깊숙이 꺾어 첫인사를 올렸다.
“누구시오?’
그분은 낯설고 어리둥절한 눈길로 나를 보며 물었다.
“저···'
“저번에 잠깐 귀뜸을 해 드렸지요? 이번 길을 어른과 함께 떠날 사람이 있을 것 같다구요”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하려던 대답을 잘라내고 대꾸했다. ‘저一 유관중이라구 합니다. 여러가지루 미거하지만 너그럽게 감싸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것이 내가 하려던 대답이었다.
“나와 함께 길을 떠날 사람이라니, 무슨 말씀이오?’
그분의 표정은 한층 더 어리둥절해져 있었다.
“어른 시중두 들어 드리구···”
“시중을 들다니오? 내가 무슨 노라리라두 하러 떠나는 걸루 아셨소? 내겐 그런 사람 소용 없어요!”
그분은 장작개비라도 집어 팽개치듯 말하고는, 무안하고 당황해서 엉거주춤 서 있는 나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채 대문 쪽을 향해 휭하니 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게 아니구, 이 사람두 어른 따라 다니며 고행을 하겠대요.”
주인아주머니가 허둥지둥 뒤따르며 호소하듯 말했지만, 그분은 못 들은 듯 또는 뿌리치고 털어내듯 내달았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돌연 뒤따르기를 멈추고 그때까지 엉거주춤 서 있던 내게로 걸음을 돌렸다.
“유씨, 어서 그분 뒤를 쫓아가요. 처음 얼마 동안은 놓치지 않을 만큼 떨어져 쫓아가다가 차츰차츰 따라잡아요. 그 어른이 화를 내시더라두 꾹 참구 쫓아가요. 어쨌든 무슨 수단을 써서라두 그 어른 가까이 있어야 해요. 유씨를 채용한 사람은 그 어른이 아니구 여기 있는 나라는 사실을 똑바루 알아야 해요 알았우? 빨리 그 어른을 쫓아가요. ”
주인아주머니는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얼결에 걸음을 옮겨 대문을 벗어났다. 그렇지만 개운치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젯밤에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앉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데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도 막상 닥치고 보니 머리 속이 텅 빈 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유씨, 잘 부탁하우. 어른 모시구 잘 다녀와요 난 유씨만 믿구 있겠우.”
주인아주머니의 간곡한 말소리가 다시 내 등을 떠밀었다.
그분의 뒷모습은 새벽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갈 듯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놓칠세라 뒤쫒으며 별 수 없지, 별 수 없는 노릇이야. 커다란 체념이라도 해낸 듯 투덜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이미 일년치의 일거리를 떠 맡았고, 맡은 일을 틀림없이 수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밖에도 그것들과 합세해서 수많은 보이지 않는 끈들이 나를 묶어 이 일로 끌어내어 걸음을 옮기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별 수 없지, 별 수 없는 노릇이야.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개운하지가 않았다. 창문에 증기가 서리듯 근심 걱정이 마음벽에 서리고 있었다. ‘시중을 들다니? 내게는 그런 사람 소용 없어!’ 그분의 격한 음성이 내 귓바퀴를 맴돌 았다. 그 소리에 발소리가 섞여 들렸다. 발소리 는 자꾸만 이어지고 커지며 다가왔다. 발소리는 나를 추월할 듯하다가 멎었다.
“이거 점심도시락이에요. 주인어른과 함께 잡수세요. 그리구 잘 다녀오세요”
젊은 여자였다. 젊은 여자는 도시락 꾸러미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다른 발소리들이 헐떡거리는 숨소리들과 함께 나를 추월해 달려갔다.
“아버님,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아버님,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아버님, 뜻을 성취하시기 빕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쳐 허둥대는 인사말들이 어두운 새벽 골목에 왱그렁쩡그렁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은 멈춰서서 그분의 장도를 눈으로 배웅 했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런 인사 말이 들려올 것 같아 나는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췄지만 인사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걸음에 속도를 가했다. 무게가 내 마음에 얹히며 짓눌러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장을 뒤따라 가고 있었다. 뒤따라 가서 대장과 졸개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끈덕지게 노력하면 그분의 마음이 풀려 내게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나의 대장은 그분이 아니라 주인아주머니라고 했다. 나는 그분의 말에 앞서서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분을 따라가는 이유가 충분히 성립되는것 같으면서도 내 머리 속은 회오리바람이 휘저어 놓은 듯 헝클어지고 있었다. 그분의 마음이 돌아설 수만 있다면 잘못한 일 없이 머리를 땅에 박고 빌어보는 짓이라도 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분이 끝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이런저런 대장을 섬며 보았고 이런저런 일을 겪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지시를 받는 진짜 대장과 실제로 섬 겨야 할 대장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나를 부하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분을 대장으로 섬기겠다고 억지 부리듯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득 멋쩍어지고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슬이 내 몸을 친친 감고 있었다. 벗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피부 밑 근육 깊숙한 갈피 속에서 꿈 틀거렸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목소리가 귓바퀴를 맴돌았다.
“참아요. 무슨 일을 만나더라두 주먹 움켜 쥐구 이 악물구 참아 내요. 참구 견뎌 내야만 이룰 수가 있어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아니라 초회의 목소리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물력가게주인 정씨의 얼굴이 그 어간에 잠시 드러나 보였다. 하고 많은 일에 이런 일을 소개해 주다니. 그러나 정씨인들 이런 경우를 내가 만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정씨 얼굴을 지워냈다. 별 수 없지. 별 수 없는 노릇이야. 나는 체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5미터 가량의 거리로 그분과의 간격을 좁혔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일출을 예감한 빛의 게릴라의 준동으로 어둠은 알듯 모를듯 바래지고 있었다. 주택의 창문들에도 드문드문 불이 밝혀졌다. 골목 밖 큰길 쪽에서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곤 했다. 도시의 잠이 엷어지고 있었다.
그분은 뒤 한번 돌아보는 일 없이 어둠의 덩어 리인듯 움직여 갔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둥 불빛의 경계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불빛은 그분의 몸에 칠해진 어둠을 벗겨내여 땅바닥에 패대 기쳐 눕혔고, 그분의 몸과 옷은 천연색을 되찾곤 했다. 그러나 어둠 속과 빛 속을 숨바꼭질하듯 들락거리며 전진하는 그분의 걸음은 세파를 헤쳐 나가는 고독한 인간의 고달픈 행진 같아 보였다.
그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둡고 고요하고 서늘한 새벽, 훌륭한 집의 따뜻하고 푹신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찾아가는 곳이 어디 일까. 그분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해 보았다. 하기야 나로서는 그분이 가는 곳에 대해 크게 상관할 것은 아니었다. 그 곳이 어디든지 충실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분은 지금 고행을 하려고 길을 떠나고 있다.
고행이라면 나에게도 아주 생소한 낱말은 아니었다.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고행(苦行)’이란 낱말을 사전을 찾으며 풀이해본 일도 있었고, 선생님에게서 고행하는 사람들의 행적과 그에 따른 이런저런 일화를 듣기도 했었다. 몇년 동안 태양만 바라보며 꿇어앉아 있어 눈이 멀고 오금이 굳어 앉은뱅이가 된 사람, 날마다 알몸으로 돌밭 • 가시밭 따위 험한 바닥을 몇십리씩 굴러다녀 피부가 소나무 껍질처럼 굳어버린 사람, 스스로 고환을 제거해 고자가 된 사람, 나환자의 소굴로 들어가 나환자와 생활하며 나환자의 종기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주다가 자기 도 나환자가 된 사람, 부유한 가정을 박차고 나와 걸인이 되어 구걸하며 생애를 보내는 사람······.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神을 만나기 위해서, 지고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또는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죄를 씻기 위해서, 육신의 욕망을 극도로 억제하여 고통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선생님의 그러한 설명을 수학의 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들었다. 그리고 학기말시험의 출제 예상문제로서 그것을 암기했었다. 고행이라는 것이 달리 내 마음 속에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상 나는 정신적 욕망 같은 것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내 마음 속에서 정신적 욕망과 육체적 욕망이 서로 골 깊은 갈등을 빚는 것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내가 지녀 온 욕망이란 육체적인 것 한 가지밖에 없었기 때 문일까. 그래서 어쩌다가 고행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면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종자인 듯 느껴졌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판이한 시대에 살았었던 전설적 인물들쯤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위대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거리에 위치한 사람, 이해할 수도 없는 사람, 그리고 별 흥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고행하는 사람과 나와의 거리가 불과 5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니. 더욱이 그 고행하는 사람을 곁에서 살피고 시중 드는 일을 맡게 되다니. 유행가 가사처럼 말한다면 운명의 장난은 참으로 짓궂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변함없는 속도로 새벽 속을 앞으로 헤쳐 나가고 있었다. 나도 그분의 속도에 맞추어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분을 뒤쫓아 갔다. 그분의 허리와 내 허리가 끈으로 이어져 있어 그분에게 내가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분을 미행하고 있는 형국이기도 했다. 그분과 나 사이에 놓인 5미터 가량의 간격은 가깝고도 먼 거리였다.
“처음에는 뒤떨어져서 따라가다가 차츰차츰 다가가요 ”
주인아주머니의 지시였다. 다가가라는 말은 물리적 거리를 좁히라는 의미만이 아니고 그분의 마음에도 다가가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동안이나 뒤쳐져서 따라가야 되고, 언제부터 다가서라는 것일까. 내가 알아서 결정하고 처신할 일이기는 하겠지만, 점심도시락을 그 분과 함께 먹으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오늘 점심 때에는 그분에게 다가서라는 지시라고 해석해도 될 듯싶었다. 그분이 내가 내미는 도시락을 순순히 받아 줄지는 의심스러운 노릇이었다. 나는 감히 그분과 한자리에 앉아 점심 먹는 영예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분이 내 존재를 인정해 주고, 그분을 곁에서 시중 들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과연 그렇게 되는 것 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내가 그분에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은 물리적 거리뿐이었다.
“어쨌든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그분을 곁에서 뫼셔야 해요”
계약과 믿음으로 이 일을 내게 맡긴 주인아주머니, 아니 진짜 대장의 간곡한 부탁이오, 엄숙한 지시였다. 어쨌든 나는 곧 나의 존재를 그분에게 알려야 한다. 그분이 나를 필요로 하든지 필요로 하지 않든지 그분의 곁을 끝까지 따라다닐 존재임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겁먹은 내 마음을 채찍질해 단련시키려는 듯 걸음에 속도를 더해 그분과의 간격을 1미터쯤 좁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