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정선댁은 옴붙게 재수없는 여자이고, 살이 낀 여자이고, 귀신 들린 여자, 아니 그냥 귀신이었다. 정선댁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을 사람들이 정선댁을 그렇게 치부해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이 쌓이면 악귀가 된다고 했다. 정선 깊은 산골에 갇혀 지내던 한, 서방 잘못 만난 한, 억울한 누명 쓴 한, 따돌림 당한 한, 한이 쌓여 악귀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정선댁도 악귀가 될 만했다.
나는 정선댁 옆얼굴을 흘긋 훔쳐보았다. 볕에 그으른 살갖으로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제두 나 무섭나유?'
내 눈길을 알아차린 걸까. 정선댁이 물었다.
'뭐가 무서워요? 하나두 무서운 데가 없구만...'
'나랑 가까이 지낸 사람두 따돌림을 당한대유. 그래두 안 무섭나유?'
'난 이 동네 사람이 아니니까 상관없을 테지오 뭐.'
'그래유. 나두 곰곰이 생각해보구나서 아제를 찾아간 거래유. 아제는 이 동네에서 평생 살 사람이 아니잖아유? 아무 때구 떠나갈 사람이잖아유? 떠나갈 때꺼정은 날 좀 도와 줘유, 아제, 살아서 신세를 갚지 못하믄 죽구 난 뒤래두 꼭 신세를 갚을 테니까유.'
정선댁은 호미질을 해 나가는 채 남의 일 부탁하듯 말했다. 나는 대답을 않고 잠시 생각했다. 나도 한때 가족에게서 친척과 이웃에게서 아니,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서 따돌림을 당했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힘 닿는 대루 틈 나는 대루 거들어 드릴께요. 나두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니까요.'
나중 말은 거짓은 아니지만 정선댁을 위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말이었다.
'그런 말 아무 데서나 막 하믄 안된대유,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 젤 무서운 사람이래유.'
정선댁이 귀띔하듯 말했다.
정선댁은 점심 때를 앞두고 집에 들어가더니 때 늦지 않게 점심밥을 해 이고 밭으로 돌아왔다. 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꽤 큰 주전자를 들고 따라왔다.
'아제, 즘심 잡수세유.'
정선댁이 이고 온 광우리를 밭두둑에 내려놓고 소리쳤다. 나는 호미를 든 채 몸을 일으켜 밭두둑으로 갔다.
'넌 집에 가서 동생이랑 밥 차려 먹어. 먹구 나서 설거지하구 놀아라.'
정선댁의 말에 아이는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아이의 눈에는 의심과 겁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아이는 내가 밭두둑으로 다가가는 동안 줄창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정선댁이 먹고 살아가는 일에 허덕거리는 처지여서 가꾸지 못한 태가 완연해 아이의 모양이 들풀처럼 꺼칠했고 버려진 짐승처럼 추레해 보였다. 그러나 밭둑길을 깡충거리며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깡충거릴 때마다 나풀대는 단발머리와 팔랑거리는 치맛자락은 시름을 모르는 아이들의 천진함이었다.
'몇살인가요?'
'열살이나 먹은 게 저렇게 쪼끄맣대유.'
'빨리 크는 아이가 있구, 늦게 크는 아이가 있으니까요.'
'잘 거둬 멕이질 못해서 그런가봐유.'
그렇게 대꾸하며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으로 뻗어 보내는 정선댁의 눈길에서 막막함이 번지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갇혀본 적이 있는 막막함이었다. 갇혔다고는 하지만 네 벽이 조이듯 바짝 다가선 답답함과는 달랐다. 오히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직한 언덕 하나 없이 휑하니 빈 벌판 한가운데 혼자 팽개쳐진 느낌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정작 느끼지 못했다. 형기를 마치고 감옥의 담장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돌연 그 막막함이 마음을 휘감았다. 휘감았다기보다는 그 너른 벌판으로 마음을 뿔뿔이 흩어버렸다는 쪽이 더 그럴 듯 했다. 그 황량한 벌판에 조각조각 흩어졌던 마음을 추스려 다시 모을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초희였다. 초희를 만나기 전의 내 눈길이 지금의 정선댁 눈길 같지 않았을까.
밭두둑 땡볕 속에 정선댁과 마주앉아 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다. 볕을 가려 주는 것이라고는 밀짚모자뿐이었다. 정선댁은 밀짚모자도 없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밭두둑에 좁은 그늘을 드리워줄 만한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정선댁은 나무 그늘 따위는 자기 팔자에 있지도 않다는 듯 된장국에 감자 섞인 밥을 말아 아귀아귀 먹고 있었다. 머리칼은 땡볕에 그으른 듯 버석버석 푸시시했고, 그 아래로 검게 탄 얼굴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잔물살처럼 주름을 일구어 놓았다. 그 주름들이 내 가슴 속까지 뻗어 왔다. 문득 내 가슴 깊은 곳에 안쓰러움이 서렸다. 한창 젊은 여자였다. 머리칼과 얼굴은 그래도 허리를 굽힐 적마다, 몸을 움직이다가 흩트러지는 치맛자락을 추슬러 올릴 적마다 얼짓얼짓 드러나곤 하는 젖가슴과 허벅지는 볕에 그을리지 않아 허여멀겋고 한창 무르익은 탄력을 느끼도록 했다.
나는 불쑥 생각이 이는 대로 밀짚모자를 벗어 정선댁 머리에 씌웠다. 막걸리 기운이 몸에 퍼져가기 때문일까. 정선댁한테서 구절양장 같은 속사정을 들었기 때문일까,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듯싶은 기분이 불쑥 들었다.
'팔자에 없는 호강을 해보는구만유.'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정선댁 얼굴에 미소가 일어 번졌다. 볕에 탄 얼굴 검은색 밑에서 붉은색이 떠올랐다.
'아이 셋 데리구 혼자 사는 사촌누님이 있어요. 곁에 있을 때는 틈이 날 적마다 일을 거들어 드렸어요. 어른을 뫼시구 있는 처지라서 한가한 몸이 되지는 못하지만 틈이 날적마다 정선댁 아주머니 일을 거들어 드릴께요. 그렇지만 급한 일이 있으면 어느 때라두 찾아오세요.'
나는 있지도 않은 사촌누님 이야기까지 꾸며 내어 말했다.
'고마와유, 아제. 그렇지만 으른 기신데 자꾸 찾아가두 될래나유?'
정선댁이 내 말을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아이들한테 심부름 시키세요. 나두 아주머니네 집앞을 지날 때는 일할 게 없느냐구 물을 테니까요.'
'고마와유. 증 심이 부칠 적에만 아제를 찾아 갈게유. 아제두 따돌려지지 않두룩 눈치 봐가믄서 하세유.'
설마 따돌림을 받기까지 하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선댁의 농사라야 논 세마지기(육백평)에 밭 오백평뿐이었다. 그 정도의 농사라면 허구한날 일꾼을 얻어 대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그때 제철 넘기지만 않으면 될 터였다. 논밭 갈기, 못자리 만들기, 모 심기, 씨 뿌리기, 김매기, 퇴비 만들기, 거름 주기, 비료 주기, 농약 뿌리기, 거두기 등 농사 절차 가운데서 지금은 김매기가 한창때를 지나 끝나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부지런하거나 일손이 넉넉한 농가에서는 비료 주고 농약 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선댁도 앞으로 할 일은 비료 주고, 농약 뿌리고, 퇴비 만들고, 거두는 것뿐이었다. 그 가운데서 여자 혼자 몸이어서 힘에 부칠 일은 풀 베어 퇴비더미 쌓는 것과 거두어들이기 정도였다. 내가 정선댁 도와 줄 일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 눈 귀 거스르고 비위 상할 게 별로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요행수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정선댁네 밭김을 매주고 나서 저녁밥을 먹고 가라는 정선댁 말을 뿌리치듯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분의 저녁밥상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저녁을 지으려고 딴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할 테니 어르신께서는 산책이나 하십시오.'
'내가 저녁을 지을 테니까 자네나 쉬게. 아니, 물 퍼서 땀이랑 흙을 씻게.'
나는 어깨에 얹히고 팔 다리 허리에 매달린 피로가 싸악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분의 말소리에는 퉁명스러운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전에 없이 살가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가 사탄도 악귀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 것일까.
'아, 아닙니다. 목욕은 어두운 담에 하구, 당장은 손이나 씻으면 됩니다.'
내가 황송한 마음으로 그렇게 대답하는데 정선댁이 왔다. 밥과 찬을 들고 뒤따라 온 것이다.
'어느 틈에 밥을 하셨나요?'
받아 든 밥그릇이 따뜻해서 물었다.
'우리 정님이가 밥을 지어 놨대유.'
'어린애가요?'
단발머리와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논둑길을 깡충깡충 뛰어가던 계집아이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려보며 다시 물었다.
'곧잘 한대유. 찬이 벤벤치 못하지만 많이 드 세유. 오늘 일해 주시느라 애 많이 쓰셨어유. 그럼,'
밥 두 그릇과 김치, 자반고등어찜이었다. 우선 상을 차려 안방에 옮겨 놓았다. 상 위에는 밥 한 그릇에 김치와 생선찜을 덜어서 올려놓았다. 나는 부엌에서 먹으면 되었다. 늘 해온 대로였다.
'자네두 밥그릇 가지구 방으루 들어오게.'
그분이 말했다.
'아닙니다. 제 몸에서 땀냄새두 날 테구요.'
'괜찮네. 할 말이 있으니 밥그릇 가지구 방으루 들어오게.'
나는 밥그릇과 찬그릇을 정선댁네 쟁반에 받쳐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분의 밥상과는 거리를 두고 방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밥그릇 찬그릇을 밥상 위에 올려놓구 나와 마주앉세.'
그분이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어르신네와 겸상을 해서,'
'자네한테 한가지 묻겠네. 자네가 정말 나를 도와주려구 나를 따라 왔나?'
'도와 드린다기보다 시중 들어 드리려구 어르신을 따라왔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 어쨌든 좋네. 나를 시중 들어 주러 왔으면 내가 집을 떠나온 까닭두 잘 알구 있겠구만?'
'고행길을 떠나 오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한껏 낮추는 행위가 고행이구, 하느님의 도를 깨우치기 위해 욕망의 옷을 벗어버리는 행위가 고행일세. 고행을 한다는 자는 밥상 위에 음식을 차려 놓구 밥을 먹구, 고행 시중을 들어 주러 따라온 자네는 방바닥에 음식 그릇을 내려 놓구 밥을 먹는다면 하느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나? 내가 고행을 성공적으루 마치기를 정말 원한다면 어서 밥그릇 찬그릇을 이 밥상 위에 올려 놓구 마주앉게.' '어르신,.'
'자네가 나와 겸상을 하지 않겠다구 우긴다면 자네가 내 고행을 돕겠다구 한 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네. 누가 보면 마치 나는 상전이구 자네는 종 같지 않겠는가?'
'누가 보겠습니까? 괜한 데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전 이렇게 먹는 게 맘 편합니다.'
'누가 보느냐구? 자네한테 일을 청하려구 동네 사람들이 뻔질나게 찾아오잖나? 이 음식을 가지구 온 여자두 곧 빈 그릇을 찾으러 올 테구. 아니, 다른 사람 누가 아니라두 내가 보구 자네가 보구 하느님이 보구 계시네. 어서 밥그릇 찬그릇을 이 상 위에 올려 놓게.
그분의 말 속에는 거역하지 못할 위엄이 들어 있었다. 나는 마음 내키지 않는 대로 밥그릇 찬그릇을 밥상 위로 옮겨 놓고 그분과 마주 앉았다. 감격이 내 가슴 속을 찌르르 훑어 내렸다. 그분은 이윽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구나. 그분과 겸상을 하고 마주앉게 되기까지의 험난하고 고달픈 과정이 뒤돌아보였다. 작지 않은 성취이고 보람이었다. 나는 어제 나를 채용한 그분의 부인 앞에 떳떳할 수가 있었다. 나의 주인인 부인에게서 떳떳하게 보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내 마음 속에서 비어 있던 우상의 자리에 그분을 모실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그분의 말을 기다렸다. 그분은 부엌에 있는 나를 불러들이면서 할 말이 있다고 했었다. 나는 조심조심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하고 음식을 씹으며 기대와 긴장으로 그분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분도 말없이 숟가락질 젓가락질과 음식 씹는 동작만 이어갔다. 기대와 긴장은 차츰 어색함과 불편함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참아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 밥과 반찬을 가지구 온 여자,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지니구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끊고 그분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분은 숟가락질 젓가락질과 음식 씹는 일만 차근차근 이어갔다.
'정선 산골을 벗어나려구 다리병신 총각과 결혼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시집을 오구 나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돌아가구, 남편두 노름과 술과 계집질루 재산을 거의 탕진하구는 물에 빠져 죽었답니다.'
'...'
'요즘은 아이 둘 데리구 논 세 마지기 밭 오백평 농사를 지으면서 어렵사리 살아가구 있답니다.'
'...'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재수없는 여자라면서 외면을 하구는 돌봐주지 않는답니다. 일을 해 달래두 안해 주구, 자리를 같이 하려구두 않는 답니다. 그 여자두 그 여자의 두 아이두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한 처지루 살아간답니다.'
'그런데 더 심한 노릇은 동네 사람들이 그 여자를 그냥 재수없는 여자루만 여기지 않구 귀신 들린 여자, 아니 귀신으루까지 몰아붙이구 있답니다.'
'귀신 들린 여자?'
내 말을 듣고 있는지, 한 귀로 흘려버리는지 묵묵 무반응이었던 그분이 입을 열어 말을 했다. 그것도 진한 호기심을 담은 말이었다.
'네.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답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떻던가? 이상한 점이 없던가?'
'악에 바쳐 살아가구 있긴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거 같진 않습니다. 제가 그 여자네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는 합니다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면 마음 속 어딘가가 뒤틀려 있을 걸세. 그 뒤틀린 마음이 자기 두 모르게 악한 기운으루 바뀌어 가깝게 있는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없지 않아. 동네 사람들은 그 여자의 그런 기운을 알아차리구 피하는 건지두 모르지. 혹시 그 여자가 남 몰래 집안 어디에 귀신 섬기는 제단을 쌓아 놨을지두 모르지. 그런 여자는 막힌 길을 뚫으려는 궁여지책으루 귀신을 섬기게 되기 십상이네.. 집안에다 귀신 섬기는 제단을 쌓아 놓지 않았더라두 그 여자 가슴 속 어디에 귀신 섬기는 제단이 있을 걸세. 그 여자네 집안이나 그 여자 마음 속을 눈여겨 살펴보두룩 하게.'
'네'
나는 대답했다. 그분을 따라오고 나서 처음 받아보는 진솔한 지시였다.
'세상 인심의 동향을 가볍게만 생각할 수는 없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두 있지 않나? 엄정한 입장에서 살펴보게. 귀신 들린 사람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네. 하나는 귀신 들렸다가 놓여나는 경우에 쓰이기 위한 거구, 또 하나는 귀신의 존재와 행악을 보여 주는 데 쓰이기 위한 거네. 양쪽 다 하느님의 뜻일세. 그러니까 그 여자를 잘 살펴보구서 그 여자가 첫번째 경우라면 구해 줘야 할 것이구, 두번째 경우라면 동네 사람들이 그 행악에 다치지 않두룩 막아 줘야 할 것이네. 여기가 하느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장소였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는 그릇을 씻어 쟁반에 얹어 들고 정선댁네 집으로 갔다. 정선댁은 집에 없었다.
'개울에 멱감으러 갔대유.'
정선댁 딸아이가 쟁반을 받으며 말했다. 몸에 말라붙은 땀이 갑자기 녹아 흐르듯 근질거리고 찐득거리는 느낌이 일었다. 마음이 개울로 향했다. 정선댁은 외진 곳에서 혼자 목욕을 할 것이다. 귀신 들린 여자가 밤 어둠 속에서 목욕하는 모습은 어떨까.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었다. 정자나무 밑이나 이장네 사랑방으로 마을을 가자면서 나는 걸음을 옮겼다. 마을을 가면 동네 소식과 일거리 소식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일 주문도 대부분 그 자리에서 받곤 했다.
내 발걸음은 정자나무 쪽이나 이장네 사랑방 쪽에서 벗어나 동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왁자하게 밀려왔다. 어둠에 덮인 산과 들 위로 반달이 희뿌연 빛을 뿌리고 있었다. 논과 밭 사이로 개울이 흐르고, 밭 쪽의 둑에 쭉쭉 뻗어 오른 미루나무들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었다. 여자들의 떠드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낮이면 아이들이 멱을 감는 곳이었다. 물 깊이는 어른 허리께에 이르고 개울의 폭은 오륙미터쯤 되었으며 물가에는 잔디와 잔자갈이 깔려 있었다. 제일 좋은 목이었다. 동네 여자들이 그 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을 피해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여 자들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지고 찰찰찰 물살 소리가 달빛을 헤살지었다. 귀 기울여 살펴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나는 걸음을 돌려 하류로 향했다. 여자들의 말소리 웃음소리가 가까와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꿈속처럼 아련해졌을 즈음이었다. 내가 개울둑으로 올라서는 순간 화들짝 놀라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뉘기유?'
정선댁의 소리였다.
'어이구, 깜짝이야.'
나는 그렇게 내 존재를 알렸다.
'아제 아니래유? 아제가 여긴 웬일루유?'
정선댁은 대뜸 나를 알아보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땀 좀 씻을까 하구 나왔는데 저 윗목을 동네 여자들이 차지하구 있기에 마땅한 자리를 찾아 내려오는 길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선댁 쪽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정선댁의 벗은 몸을 본 것 같기도 했고 보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동네 여자들이 멱감는 데서 위쪽으루 올라가 자리를 찾지 않구서 왜 아래쪽으루 내려오셨대유? 여자들 몸 씻은 때국물루 몸을 씻게 되잖아유?'
정선댁 말소리에는 뾰족하게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는 왜 위쪽으루 올라가시지 않구 아래쪽으루 내려오셨어요?'
'내가 즈이들보다 위루 올라가서 목욕하는 걸 여자들이 아는 날엔 나를 찢어 죽일 거래유.'
'거 참. 그럼 난 집으루 들어가서 우물물이나 퍼 끼얹어야겠군요. 흐르는 물에 목욕하는 게 더 시원하지 않을까 해서 나왔지만요.'
나는 걸음을 옮기는 시늉을 했다. 정선댁이 잠자코 있으면 정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우물물보다 더 시원하대유. 이왕 나오셨으니 위쪽으루 올라가 멱감구 들어가세유.'
정선댁이 말했다.
'인제 개울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두 뭣하네요. 여자들 목욕하는 데 왔다갔다 서성대는 거처럼 보일 텐데요 뭐.'
'그럼 요 위쪽 굽이 하나만 돌아서 자리잡구 멱감으세유.'
'이왕 나왔으니 씻구 들어가겠어요. 그렇지만 아주머니보다 아래쪽에 자리를 잡을래요.'
나는 내가 향하고 있는 쪽이 아래쪽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선댁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서도 정선댁 아래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둑밑 개울 속에 발가벗은 정선댁이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달빛이 물 묻은 정선댁 알몸 위에 부딪고 부서졌다. 부서져 흩어졌던 달빛이 다시 모여 정선댁 알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나는 눈길을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물굽이 하나를 돌아서 걸음을 멈췄다. 둑 아래로 내려가 옷을 벗고 개울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 떴던 반달이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부서졌다. 물 위에 주저앉았다. 찬기운이 살갗 속으로 파고들어 가슴으로 등으로 다시 목줄기를 따라 뇌수 속으로 치달아 올랐다. 물을 끼얹고 또 끼얹었다. 땀구멍을 막았던 땀때가 씻겨져 나가면서 함께 더위가 빠져 나갔다. 몸을 일으켜 발을 옮겨딛다가 물때 낀 돌멩이를 밟고는 미끄러져 넘어졌다.
'철버덩, 어이쿠!'
'아제, 다치진 않았어유?'
물굽이 저쪽에서 정선댁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물 위에 넘어진 걸요 뭐. 괜찮아요. 돌이 미끄러우니 아주머니나 조심하세요.'
나는 대답하면서 정선댁의 알몸을 눈앞에 떠올려보았다. 초희의 알몸이었다. 초희의 알몸이 보고 싶어졌다. 물굽이진 둔덕에 찔레나무로 짐작되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그쪽으로 다가갔다. 초희가 선녀가 되어 달밤에 목욕하려고 개울에 내려와 있었다. 나는 가시덤불에 몸을 숨기고 덤불 틈새로 물굽이 저쪽을 살펴보았다. 벌거벗은 여자의 몸이 흐르는 물에 발목을 담그고 일어서서 달빛을 쏘이고 있었다. 흰바탕색에 군데군데 그늘이 덧칠해진 여자의 알몸은 조각 같았다. 밤이기 때문일까. 달빛의 조화 때문일까, 정선댁과 초희가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나는 애무하는 달빛을 퉁겨내고 섰는 여인의 알몸을 살금살금 더듬기 시작했다. 여자의 알몸을 더듬기 얼마만인가. 내 마음은 달빛이 되어 있었다. 내 열 손가락도 달빛이 되어 있었다.
여자가 물 밖으로 걸어나갔다. 물에 흠뻑 젖어 이마 위로 목덜미로 헝클어져 드리운 긴 머리카락은 물귀신의 것이었다. 물귀신이 허리를 굽히고 펴 옷을 줏어 입으며 이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제, 나 먼저 갈 테니까 더위, 땀, 말끔하게 씻어내구 털어내구 오세유.'
정선댁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시 멈춰서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가시덤불 곁을 떠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예, 아주머니 먼저 들어가세요. 조심해 들어가세요.'
'예, 그럼 나 먼저 들어가유.'
나는 목욕을 끝내고 시원하게 식어 개운해진 몸으로 마을을 향했다. 아까 있던 여자들인지, 새로 온 여자들인지 그 물목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장네 사랑방부터 들렀다. 정자나무는 이장네집을 지나서 있었다. 동네 노인들과 장년들이 마당에 깔린 여러장 멍석 위에 눕거나 앉아 있었다. 모기불이 피워내는 연기가 콧구멍과 눈속으로 스며들자 매캐하고 아릿했다.
'유서방인가? 어서 나오게.'
이장이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네. 쑥 타는 냄샌가요? 모기가 얼씬두 못하겠는데요?'
나는 그렇게 인사말을 대신했다. 동네 사람들이 열명도 더 모였는데 내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워 있는 사람은 누워 있는 대로 앉아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대로 덤덤하게 나를 맞아들일 뿐이었다. 한마디씩 말을 던지고, 보태 얹는 게 인사인데, 일에 지치고 더위에 늘어진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늘은 누구네 집 일을 했느냐?내일은 누구네 집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일꾼을 구한다더라. 일꾼을 필요로 하는 집에서 직접 사람이 와서 일꾼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부채질이나 담배질이 고작이었다.
'오늘은 정선댁네 산밑밭을 맸어요.'
내가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미끼가 되어 동네 사람들이 입에서 이런저런 소식과 말을 낚아 올리기를 기대했다.
'어험, 어험.'
누워 있던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 앉았다.
'그 여자네 일을 해주구 품값은 받았나?'
일어나 앉은 노인이 물었다.
'돈이 없는가부던데요? 나중에 준다구 그래서 외상일을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어쨌든 마을꾼들의 다문 입에서 말을 끄집어낸데 대해 만족감을 느꼈다.
'유서방한테 한마디 하겠는데, 정선댁이란 여자가 우리 동네에 사는 걸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네. 알겠는가?'
그 노인이 다시 말했다.
'그렇습니까? 무슨 까닭이 있습니까?'
나는 물으며 정선댁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가슴 속에 서리는 것을 느꼈다.
'유서방은 타관 사람일세. 타관 사람이 동네 속사정을 시시콜콜 알아야 할 까닭은 없구, 어쨌든 정선댁은 우리 동네 화근이란 것만 알아 두믄 돼. 정선댁은 지발루 동네를 떠나가야 자기두 편하구 동네 사람들두 편하게 돼 있어. 그런데 진드기 늘어붙듯이 늘어붙어 있잖냐 말야? 유서방이 품값두 안받구 정선댁네 일을 해주믄 정선댁은 이 동네를 떠나가겠대는 생각을 더 안하게 돼. 유서방이 이런 사정을 몰르구 한 노릇이니까 우리가 나무래진 않겠네만 앞으룬 정선댁네 일을 해주지 말두룩 하게. 앞으루두 또 정선댁네 일을 해 주믄 동네 사람들의 뜻을 어기는 게 되구, 그렇게 되믄 동네 사람들은 유서방과두 등을 돌리구 살 수밖에 없네. 인제 알아들었는가?'
노인이 다짐하듯 물었다.
'품값을 바루바루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대답을 피하며 되물었다.
'그 여자한테는 품값 줄 돈이 없어. 설혹 품값 줄 돈이 있더래두 일을 해 줘선 안돼. 그 여자는 우리 동네를 떠나야 할 사람이야. 아니, 사람이라구 하기가 어려운 여자지.'
'동네를 떠나가라구 말해 주시긴 했습니까?'
'이심전심으루 동네 뜻을 전하구 또 전했다네. 말루 하는 거보다 더 분명하게 전했다구. 유서방, 인제 알아들었겠지?혹시 유서방은 이게 나 혼자의 생각일지 모른다구 짐작할 수두 있겠지만 그렇지 않네. 동네 사람 모두의 생각이야. 정선댁과 그 식구들만 빼놓구, 동네 사람 아이 으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온동네의 생각이야. 유서방과 유서방이 뫼시구 있는 으른은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니까 말할 것두 없구...
그렇지만 우리 동네 경내에 와서 사는 처지니까 동네 뜻에 따라야 하네. 여기 모인 동네 사람들, 내가 유서방한테 해준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
노인은 마을 온 동네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으른 말씀 그대루래유.'
'틀림없어유.'
'그래도 미심쩍으믄 이장님이 말씀해 보세유.'
'유씨, 이 으르신 말씀이 맞네. 정선댁은 땅 팔아 가지구 정선으루 들어가서 살믄 될 일이야. 정선댁 사는 집은 아무두 살 사람이 없어, 거저 줘두 안 살아. 흉가일세. 그렇지만 땅은 팔래믄 살 사람이 나설 거야. 으르신 말씀 틀림없네. 유서방이 우리 동네에 얼마나 머물어 살런진 몰르겠지만서두 사는 동안에는 협조해 주기 바라네.'
이장은 말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변경할 수 없는 최종적인 선언을 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