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댁네 일을 해준 뒤 사흘 동안 나는 애써 정선댁과 멀리하려고 했다. 그랬대야 특별한 어떤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정선댁과 내가 이렇다 하게 가까운 사이
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마을로 돌아오면서 정선댁네 집앞을 피했고, 밤에 정선댁이 미역감던 개울목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을 참아낸 정도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얕게 잔잔하게 흐르던 물줄기를 막아 둑을 쌓은 꼴이었다. 내 버려 두었으면 그냥 잔잔한 흐름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정선댁과 상종을 말아라, 정선댁은 악귀 들린 여자거나 악귀일지 모른다는 말이 갑자기 둑이 되어 흐름을 막았다. 흐름은 정지되어 고여오르며 깊어지고 거칠어졌다.
정선댁 모습이 떠오르곤 하면서 또 그때마다 초희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떤 형태로든 나의 관심을 유발하는 여자를 대할 때면 초희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 지곤 했다. 겹쳐질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그 여자가 초희로 바뀌어버리곤 했다.
정선댁도 그런 큰 범위 안에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느 경우와 좀 다른 데가 있다면 정선댁과 초희가 둘 다 여자라는 사실 이외에 어딘가 처지가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불운하고 따돌림당한 처지가 그랬다. 초희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어느만큼 정선댁한테 옮겨졌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흘 동안 나는 되도록 정선댁과 멀리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정선댁이 도와달라는 청을 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네 사람들 말에 따라 그 청을 거절하는 것이 첫번째 방안이었다.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정선댁에게 미안하기는 해도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을 한 귀퉁이 빈 집에 임시로 머무르는 처지로 대다수 마을 사람들의 의사를 거역 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두번째 방안은 마을 사람들 눈을 피해 슬금 슬금 정선댁을 도와 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꼭두새벽이나 일을 끝낸 야밤중을 골라잡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꼬리가 길어지면 들키기 십상일 터였다.
세번째 방안은 마을 사람들 생각을 거역해서 드러내놓고 정선댁을 도와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정선댁네 일만 할 수 있고 마을 일은 하지 못하게 된다. 정선댁네 일이 별로 없는데 다가 정선댁한테는 품값을 치를 능력도 없으니 나는 당장 벌이를 잃는 처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마음을 다잡아 먹는다면 마을 사람 전체와 맞서서 싸우고 버티는 일도 할 수가 있다. 발을 잘못 내디뎌 전과자의 낙인이 찍힌 다음 부터였을 것이다. 내 마음 속 몸 속 깊은 곳에 세상을 향해, 세상 사람들을 향해 반항하려는 성향이 자리를 잡고 기회 있을 적마다 분출하려고 꿈틀거렸다. 초희가, 초희의 죽음이 그 반항심을 꺾어 놓고 희석시켜 놓기는 했다. 그러나 잔뿌리마저 말끔히 뽑힌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럴싸한 경우와 맞닥뜨리면 묵은 병 덧나듯 울뚝불뚝 버릇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가. 아니,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가. 나의 실질적 고용주인 그분의 부인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행동 범위를 정하면 아무런 문제거리도 생기지 않으리라. 하기야 내가 농사일을 하는 것 자체가 주인에게서 위임받은 행동 범위를 벗어났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피고용인일 수도 있다. 그분을 시중 드는 일에 그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분이 우리가 가진 돈을 모두 경찰지서에 내어 놓았기 때문에 당장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가 없어진 것도 내가 농사품을 팔게 된 원인의 하나이기는 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그분의 부인에게 그간에 일어난 일과 형편을 알리고 돈을 보내 달라고 청하면 최단시일 안에 송금이 될 터였다.
거꾸로 말한다면 나는 고용조건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시작은 그분이 고행의 내용을 충실하게 다지기 위해 품삯 없이 농사일을 거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하기 싫은 일을 마지 못해 억지로 하지는 않았다. 나는 계약상의 의무에서뿐만 아니라, 그분을 돕고 그분의 뒤를 따르고 싶은 자발성을 마음 깊숙이에 지니고 있었다. 내가 품값을 공정가격의 반으로 낮추어 받은 것은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불순할지 몰라도 현명한 처사라고 자부할 수 있다. 농민과 우리(그분과 나)에게 함께 이로울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었다. 그분의 순수한 뜻을 따라 나도 품값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만큼 그분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분이 비록 나를 사탄의 졸개나 사탄으로 몰아붙일지언정.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아침, 밥상을 가운데 놓고 그분과 마 주앉았을 때 내가 넌지시 물었다.
'뭘 말인가?”
그분은 순순히 물었다.
'정선댁 일 말입니다.”
'정선댁 일이라니?”
'정선댁은 제가 자기네 일을 해줄 거라구 믿고 있을 겁니다. 그리구 마을 사람들은 제가 앞으로는 정선댁 일을 해주지 않을 거라구 믿고 있을 겁니다. 묘수가 없을는지요? ” '내가 그 묘수를 가르쳐 주길 바라는 건가?'
“답답해서 어르신 앞에 털어 놨을 뿐입니다. 부담은 갖지 마십시오.”
“자네는 마을 사람들이나 정선댁 양쪽에 다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처지 아닌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뭐가 그렇지만은 않단 말인가?'
“전 이 마을에서 좀더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마을 사람들과 정선댁 중간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구 말입니다.”
“자네 마음은 결국 그 여자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군 그래?'
'어르신께서 잘 보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여자를 귀신 들린 여자로 믿고 있다는 사실 잊어버리지 않았겠지? 그 여자를 마을에서 쫓아내기로 정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지 않았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자를 모른 척 내버려 두거나 떼어버릴 수가 없다는 말이렷다?'
“옳게 보셨습니다.”
'불을 보듯 뻔한 게 아닌가? 유유상종이라고, 자네가 그 여자 편에 서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아니, 이상하다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아. 질서위반이라고 해야 맞아. 사탄을 지으신 하느님 섭리의 오묘하심을 사람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고말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맡은 역할의 정체가 한결 뚜렷해져 가는군 그래?”
'나는 멈칫했다가 마음을 가다듬어 가지고 대꾸했다.'
“사탄의 졸개 역할 말씀이십니까?'
“마치 내가 자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도록 유도한 것처럼 들리네.”
나는 다시 잠깐 입을 다물고 가슴 속에 서리는 서글픔을 음미했다.
'어르신께서는 사탄을 지으신 하느님 섭리의 오묘하심이라구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탄을 지으시고 사탄에게도 어떤 역할을 맡기 셨습니까?”
“나더러 천기 누설을 하라는 건가? 자네가 잘 알고 있을 텐데?'
“제가 마을 사람들 편에 서서 정선댁이 마을을 빨리 떠나가도록 돕는다면 어르신과 제가 이 마을에서 지내기가 한결 편해질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기서 더 편해지기를 바라지 않네. 그건 둘째 치고, 자네는 그 여자한테 등을 돌리고 마을 사람들 편에 설 수가 없을 걸세.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게. 자네는 마치 그 여자의 편을 들어 주려고 이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걸세.”
나는 손을 가슴에 얹지는 않았지만 그런 기분이 되려고 노력해 보았다. 문득 상당히 강한 암시가 전해져 왔다. 그 여자 편에 서라. 마을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 여자와 한편이 되어라. 그분이 그렇게 지시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는 정말로 정선댁을 확실하게 택한 듯한 기분에 감싸여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정선 댁을 동정했을망정 그편에 서겠다고 분명하게 결정하지는 않았었다.
“제가 정선댁 편을 드는 일로 해서 어르신께 해로움이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뒷일을 다짐하듯 물었다.
“허, 허, 자네가 내 걱정해 주려고 여기 온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자네한테 충고를 하게 돼서 우스꽝스럽네만 자네 역할이 뭔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도록 하게. 자네가 몹시 교활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네만, 자기 자신을 알라는 말은 사탄한테도 적용이 된다네. 물론 자네는 이런 말하는 나를 마음 속으로 가소 롭게 여기겠지.”
나는 내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 역할은 그분을 따라다니며 그분의 고행을 시중 드는 것이었다. 나의 고용주인 그 분의 부인과 맺은 계약 내용이 그랬다. 그런데 그분은 또 다른 역할이 있음을 계속해서 알려 주었다. 억지 같고 강요 같은 그분의 암시는 그러나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면서 나의 내부 깊숙이로부터 어떤 화답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정말로 사탄이나 악마로 태어났는 지도 모른다. 사탄과 악마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사탄과 악마의 조종을 받는 앞잡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배반하고 일찍이 암흑의 길로 들어섰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내가 훼방 놓고 꺾고 무너뜨리고 부순 인생이 몇몇이던가. 그 무렵의 나는 정말로 악귀와 다르지 않았다. 악귀와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절망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악귀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일까. 악귀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악귀임을 증언하는 표시일까. 그렇지만 나는 그 무렵 정말로 절망에 빠졌었다. 그 점이 내가 악귀 그 자체가 아니고 악귀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표일지도 모른다. 초희가 그 절망에서 나를 건져내 주었다. 사탄이나 악마나 악귀는 절망에 빠져 들어가지 않으니까 절망 속에서 구원되지도 않고 구원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절망 속에서 구원해 준 초희를 절망 속으로 몰아 넣어 죽였다. 나는 사탄의 앞잡이가 아니라 사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탄 그 자체라면 예외에 속하는 경우일 것이다. 나는 틀림없이 절망에 빠졌다가 구원을 받았고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을 절망에 빠뜨려 죽였으니까. 성자가 되려면 오랜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 사탄이 되는 것도 어떤 과정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나의 절망은 사탄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을까.
나는 때때로 외로워지고 서글퍼지고 우울해 지는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성자처럼 훌륭한 분을 성심껏 받들어 뫼시는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
나는 덜되고 어리석은 바보 사탄일지도 모른다. 용이 되고 싶어하는 구렁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짐승, 신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는 꽤 많이 들어왔다. 나도 그런 꿈과 희망을 품고 자랐다. 한데 나는 자신도 모르게 사탄이 되려는 꿈을 마음 속에 키워온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천사나 성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슴 속에 품은 사탄일지도 모른다.
그 일이 가능할까. 사탄이 지극한 꿈을 배태 하고 애써 도를 닦는대서 천사나 성자로 새롭게 태어날 수가 있을까. 그분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분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렇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분은 내가 사탄의 종자이며, 사탄의 종자는 결코 다른 종자로 바뀔 수도 없고 바뀌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그런 생각은 신념으로까지 굳어져 있고, 그 신념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중명하기 위해 내가 그분의 신념에 맞게 행동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느낌을 나는 가슴에 안게 되곤 한다.
나를 사탄이나 사탄의 졸개로 본 그분의 눈은 정확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분의 눈이 놓치고 비켜간 부분에 대해 안타까움을 억누르지 못한다. 나는 외로워 하고, 서글픔과 우울감에 잠기고, 천사와 성자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가슴 속에 간직한 사탄이라는 사실이다. 그분이 그 사실을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해 주고 인정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외로움과 서글픔을 느끼며, 한편 그분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냉정하게 점검해 본다.
정선댁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정선댁네 일을 한 날로부터 닷새 뒤였다. 마을 어느 집의 일을 끝내고는 먹고 가라는 저녁밥 대 신 밥 두 그릇과 찬 두어가지를 얻어 가지고 와서 밥상을 차릴 때였다.
'아제, 나 줌 봐유.”
부엌문 밖으로 눈길을 돌리니까 어둠이 내린 마당, 부엌 뒷방으로 오르는 돌층계 바로 앞에 사람이 어둠을 휘감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세요?”
나는 정선댁임을 알았으면서도 짐짓 물었다. 정선댁이 어둠을 휘말아 감고 있는 탓일까. 우선 내 속에서 정선댁을 밀어내는 것 같은 손놀림이 일었다. 그분이 정선댁 기척을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김치 쪼끔 가지구 왔대유. 인제 저녁상 채리는 거믄 알맞게 잘 가지구 왔나보네유.'
정선댁이 층계를 올라왔다. 계단이 서너개뿐 이어서 정선댁은 금세 뒷방에 올라섰고 부엌문 문지방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웬걸 이렇게... 잘 먹겠어요.”
나는 몸을 일으켜 정선댁 손에서 김치그릇을 받아 들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말했다. 정선 댁도 나를 따라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아제. 요 근래 왜 그렇게 보기가 힘들대유? 동네가 쪼끄맣구 길두 한 줄기래서 일부러 피 하더래두 마주치기 쉽상인데 말이래유?'
정선댁 목소리는 낮추어지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으니 거치적거리는 것도 없다는 투였다.
“아침 일찍 일 나갔다가 날 저물어서야 동네 안 길을 밟아보니 마주치기 쉽지 않지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부러 찾아와서 들여다 보믄서 어떻게 지내느냐구 물으믄 어디가 덧나유? 그치만 이건 우스개소리구요. 언제 쉬는 날 우리집 방고래 줌 봐 줘유, 방고래가 꺼져 내려앉았는데 내 혼자 심 가지구는 고칠 수가 읍을 거 같애유. 아제밖에 말 건네볼 사람이 읍어서...”
말끝을 흐려버리는 정선댁이 딱하게 여겨졌지만 나는 잠시 멈칫거렸다. 마을 사람들이 정선댁과 나 사이에 담을 치듯 막아서는 모습이 언뜻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이따가 저녁밥 먹은 담에라두 가 볼 테니까 내려가세요.”
나는 선선히 대답해 정선댁을 돌려보냈다. 미장일이야말로 농사일보다 훨씬 손에 익숙한 나의 전문 분야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선댁을 돌려 보내는 일이 급했다. 정선댁 편에 서기로마음을 정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경줄에 걸리적거렸고, 그것에 앞서 그분의 귀가 몹시 마음 쓰였다.
나는 정선댁이 가지고 온 김치를 밥상 위에 올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도 마음을 써야 했다. 김치 냄새가 향긋했고, 한 줄기 집어 먹 어 보니 냄새 못지않게 맛이 산뜻해 나는 밥상 위에 김치를 얹어 방으로 들고 갔다.
“시장하셨겠습니다. 어르신.”
나는 밥상을 그분 앞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누가 다녀갔나?'
그분의 대꾸였다.
'정선댁이 왔다 갔습니다.”
나는 체념하듯 대답했다.'
'그 여자 조심성이 너무 없구만. 얼마나 큰맘 먹어야 자기를 도와 줄 수 있는지 그 사정을 훤히 알 텐데도 남의 처지 어려운 거 아랑곳않고 함부로 처신하잖아? 그래 무슨 일루 왔던가?'
그분은 정선댁이 귀신 들리지 않은 보통여자인 것처럼 말했다.
'방고래가 꺼졌다구 고쳐 달랍니다.'
“그 여자네 일을 해주는 사람은 동네에서 따 돌림받는다는 걸 그 여자도 알고 있겠지?' “알구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보는 눈이 많은 초저녁에 찾아와 동네가 울릴 만큼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그 여자의 속셈이 뭔가? 자네를 희생물로 삼겠대는 건가? 하기야 귀신 들려 동네 사람들이 쫓아낼 때는 여자의 행실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탈 잡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그리고 자네도 그 여자와 한 족속이렷다. 그러고 보니 내 꼴이 우스워지는군. 내 건망증은 중증이네.”
나는 그분이, 정선댁이 떠드는 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들어 기억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에 잠시 휘말렸다. 그분이 김치에 대해서 묻기 전에 정선댁이 가져온 김치라는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잠시 주저하는데,
그분이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다가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었다.
“김치 맛있는데...”
그분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김치를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밥도 반찬도 오늘 일한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천천히 많이 드십시오.'
나는 체념하듯 말하며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나는 자네한테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일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네. 그럴 때는 문득문득 내 스스로 일을 해 끼니를 벌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하고 마음먹어보곤 한다네.
하면 하는 거지 절대로 못한다는 법은 없네. 그렇지만 다음 순간 깨달음처럼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자네한테서, 사탄한테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것도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내 고행의 한 과정이라고 말일세. 사탄의 밥을 얻어먹는 모욕과 수치를 겪어내는 과정일 걸세.. 물론 내 고행의 길에는 내가 벌어 사탄을 먹이고 내가 손수 만들어 사탄을 먹이는 과정도 배치되어 있을 것일세.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겸손을 실현해보는 과정이겠지. 수모와 겸손은 고행자가 반드시 겪고 터득해야 할 것의 겉과 안이네.”
그분의 말은 내 귀에 결코 변명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로서는 가 닿을 수 없는 깊고 넓고 높은 경지로 느껴졌다. 나는 말 대신 공손하게 머리 숙이는 것으로 경의를 표했다.
나는 정선댁이 가지고 온 김치그릇을 깨끗이 씻어 들고 집을 나섰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정선댁네 집으로 갈까 하다가 초저녁을 택했다. 한여름이어서 깊은 밤이라도 깨어 있는 눈은 어디에도 있을 것이었다. 한밤중에 도둑이나 샛서방처럼 정선댁을 찾아가다 들키기보다는 초저녁에 볼 일이 있어 들르듯 찾아가다가 들키는 쪽이 훨씬 떳떳하리라는 판단이었다.
하기야 그것은 나의 조심성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밤중이든 초저녁이든 정선댁을 만나려고 그 집에 가는 일은 마을의 금기를 범하는 일일 터였다. 나는 마을의 금기를 깨뜨리기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좀도둑처럼 범하기보다는 반항아처럼 깨뜨리는 쪽이 떳떳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좀 전에 정선댁이 김치를 가지고 나의 거처를 찾아왔던 일도 알고 있기 쉬웠다.
어둠 속에 무더위가 습기처럼 고여 있었다. 목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습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온종일 배어나온 땀이 때로 바뀌어 땀구멍을 처막고도 넘쳐 살갗 위에 겹겹으로 달라붙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었다. 바람 한 점 없어 낮 내내 볕에 단 땅의 열기를 흩어 놓지 못하고 막힌 하수구의 물처럼 텁텁하니 고여 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지렁이 울음소리가 뜨르륵 뜨르륵 들렸다. 공중에 뜬 반달이 물을 잔뜩 머금어 안개 속에 잠긴 듯 뿌옇다. 장마가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기야 장마가 시작되고도 남을 철인데 아직 소식이 없었다. 장마 때는 일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그 동안 내가 품삯받아 모아 놓은 돈과 한두달 생활비를 어림으로 재빨리 비교해 보았다.
'어험, 어험, 계세요?'
나는 정선댁네 집 문을 들어서며 불렀다. 문이라야 사람 키 높이의 돌담 사이에 뚫린 공간 이었다. 전에는 거기 어떤 모양으로든 문짝이 달려 있었을 텐데 지금은 없었다. 그 담장 안 어디에서도 지렁이 울음소리가 밤 어둠을 타 토해내는 한숨타령인 듯 고적하게 뿜어 나오고 있었다. 캄캄하던 방에 불이 켜졌다.
“아제, 어서 와유.”
정선댁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오기라도 하듯 서둘러 마중 나오며 말했다.
'어느 방 고래가 꺼졌지오?'
나는 누구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키워 물었다.
'문간에 장승처럼 버티구 섰지 말구 우선 집 안으루 들어와유. 방안에 들어가야 방고래 꺼진 데를 볼 것 아니래유?'
'정선댁이 다가와 내 팔을 자기 팔에 잡아 끌었다. 그 서슬에 정선댁 앞가슴이 내 팔꿈치에 뭉클 닿으며 땀냄새 섞이지 않은 여자의 살냄새가 물씬 콧속을 파고 들었다. 개울에 나가 미역을 감고 왔을 것이다. 내 팔을 감은 정선 댁 팔의 맨살도 서늘하니 뽀송뽀송 매끄러웠다. 걸음을 옮기면서 스치듯 부딪듯 몇번 와 닿은 정선댁의 몸뚱이도 제법 탄력있고 튼실한 살피듬을 느끼게 해주었다. 전류 같은 것이 정선댁 몸에서 전해졌는지 내 몸속에서 스스로 일었는지 온몸으로 상쾌하게 퍼져 나갔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할라구요?'
나는 정선댁 팔에 감긴 내 팔을 뽑아내며 목 소리 낮춰 말했다.
“엄마야, 나 보래유. 누가 보는 건 겁나지 않지만 반가운 나머지 나두 모르게 아제 팔을 끄 잡았네유. 아제가 온다구는 했지만 증말루 오진 않을 거라구 생각했대유.'
정선댁은 조금 떨어져 나가며 대꾸했다.
“왜요?”
“동네 사람덜이 아제한테 단단히 일렀을 텐데유. 귀신 들린 정선댁을 가차이 하지 말라구 유. 동네 사람들 그 말을 거슬르는 사람은 좀 처럼 읍걸랑유? 아제두 동네 사람들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가 내 집 울안에 한발 들어서자마자 문득 생각이 나서 걸음을 돌릴 거 같았대유. 그래서 아제 목소리 듣자마자 허겁지겁 뛰어 나가 아제 팔을 끄잡은 거래유, 아니, 아제가 부르는 소리를 헛들었구, 문간에서 있는 아제가 헛것일 거라구 생각하믄서두 꿈길 더듬 듯 쫓아 나가 붙잡아본 거래유. 하기야 시방 이렇게 아제 옆에 서서 아제랑 애기를 하는 거두 생시 같기두 하구 꿈 같기두 하구 그렇대유.”
어둠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정 선댁은 확인해 보려는 듯 다시 자기 뺨을 꼬집었고, 내 손을 잡아 손가락 하나하나를 구부렸다 폈다 했다.
'아주머니, 꺼진 방고래나 보여 주세요.”
꺼진 방고래가 가장 확실한 현실일 터였다.'
'그래유, 참'
정선댁이 꿈에서 깨어나듯 말하며 앞장섰다. 뒷방으로 오르는 층계가 내가 묵고 있는 집의 그것보다 두 갑절이나 높았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대청마루를 거쳐 안방이 분명한 방으로 들어갔다. 천정에 촉수 낮은 전등이 매달려 희미하게 방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속에 윗목 벽에 붙여 놓은 장농이 드러나 보였다.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쇠장식은 녹이 슬었지만 윗목 벽을 폭으로도 높이로도 그득하게 채운 장농의 크기는 이 집안 형편이 넉넉하던 지난 날 어느 시절을 증언해 주는 듯했다.
그 장농 한중간에서 아랫목 쪽으로 두 걸음 쯤 떨어져 방바닥이 움푹 꺼져 있었다. 그러나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갓 꺼진 것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꺼져 내린 지가 한참 됐는데요?'
“불을 때믄 연기가 꾸역꾸역 새나와서 흙을 쑤셔 넣구서는 그 위에 가마때기를 덮어 놨었는데, 낭구를 때믄 그런대루 지낼 수 있지만 석탄을 때게 되믄 큰일 저질르게 된대유.”
“여름 가기 전에 고쳐 드릴 테니까 고칠 때 까지는 석탄 때지 말구 나무를 때세요.”
“고마워유. 신세를 꼭 갚구야 말 거래유, 그건 그렇구 좀 앉어유. 방고래 꺼지지 않아유.”
“방고래가 저렇게 꺼져 있는데 안꺼진다구 큰소리예요? ”
“아이구, 늘 쓰던 말버릇대루 입 밖으루 나와 뻐린 말이지유 뭐, 집 무너지지 않으니까 앉으라구 고쳐서 말할 께유. 내 집에 온 귀한 손님 찬물 한 그릇이래두 대접해 보내지 않으믄 잠이 오지 않을 거래유. 시원한 찬물 한 그릇 떠 올 테니 잠깐만이래두 앉아유, 아제.”
정선댁은 억지 부리다시피 나를 방바닥에 끌어 앉히고는 횡하니 방을 나갔다. 떠다 주는 찬물 한 그릇 비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정선댁이 방으로 돌아왔다. 상을 받쳐 들고서였다. 내 앞에 내려 놓은 상 위에는 농주와 빈 사발과 안주그릇이 얹혀 있었다. '찬물 한 그릇이라더니 이게 뭡니까?' '달랑 막걸리 한 되뿐이래유.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이 소홀해서 안됐지만 집안 형편이 그밖에 안되니 별 수가 읍대유. 안주랠 거두는 읎는 호박나물 안주 삼아 들어봐유. 우물 속에 담궈 놨더니만 찬물만큼이나 시원하구 차대유.”
정선댁은 술병마개를 비틀어 따고 빈 사발에 술을 부었다. 젖빛 액체가 빈 사발에 넘칠 듯 차 올랐다.
'대접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체면 없이 주저앉아서 넙죽넙죽 받아 마셔도 괜찮을까요?'
나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져서 물었다.
“그냥 목추김밖에 안되는 걸 가지구 뭘 그런대유? 여기 내온 거밖에 읍대유. 그렇지만 천천히 들어유. 아제두 내 집에 들어오자마자 금세 알아채렸겠지만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잖아유? 나랑 우리집 아이들 말구는 집 문안으루 들어오는 사람이 읎대유. 그렇지, 멋모르는 외지 행상꾼이나 거지는 어쩌다가 문안으루 발걸음을 들여놨지유.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벌써 멧해 동안 내 집 문안으루 한 걸음이나마 들여논 적이 읎대유. 문안은커녕 내 집 앞으루두 지나가지 않겠다구 멀리 돌아가군 한다구유.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집은 인적이 끊어지구 짐승이나 귀신만 사는 집처럼 돼뻐렸대유.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느라믄 내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군 한대유. 그렇게 될 쯤에는 동네 사람덜 떠드는 대루 내가 귀신이 아닐래나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유. 아제가 얼마만에 내 집에 찾아온 사람 인지 알아유? 내 집 방안에 들어와 음식상 받은 사람이 얼마만인지 아느냐구유. 내 집에 외간 사람이 찾아왔던 일을 생각하느라믄 너무 아득해서 꼭 전생에 겪은 일처럼 여겨진대니까유. 아제, 내 집에 와서 막걸리상 받구 앉은 게 체면 읎는 일이라구유? 아제가 시방 나를 얼매나 사람답게 맨들어 주구 있는지나 알아유? 오래간만에, 참으루 오래간만에 내 집안에 사람 냄새가 풍기구, 사람의 말소리가 울리는 거라구유, 아제, 내 말 잘 알아 듣겠어유?'
말을 멈춘 정선댁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