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올랐다. 초희 얼굴과 몸에 병색이 떠올라 짙어져 가면서 더 그랬다.
“열두시 전에 들어와.”
나는 초희가 피곤이 쌓여서 그러려니 여겨서 말했다.
“열두시에 끝나는 걸요. 그것두 일찍 끝날 때가 열두시라구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초희의 눈에 물기가 돌았다. 내가 초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한달만 쉬어. 아니 일주일만 쉬어.”
“일주일씩이나 어떻게 쉬어요? 쫓겨날라구요? ”
“밤 열두시 지나도록 일하는 직장이라면 일주일 쉬고 나서두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걱정 말구 쉬어.”
“나가던 델 나가야 맘이 편안해요. 어차피 피곤하긴 마찬가지예요. 일 나가면 몸이 피곤하구 쉬면 맘이 피곤해요. 아무튼 고마와요. 나더러 쉬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초희 눈에 눈물이 고여 오르는가 하자 곧 넘쳐 볼 위로 흘러 내렸다. 나는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느끼며 거꾸로 짓궂은 말을 뱉아 내고 있었다.
“술집에서도 툭하면 우나?'
“무슨 소리예요? ”
초희는 손등으로 눈과 볼을 닦으며 물었다.
“술주정뱅이들이 수작을 걸어와도 질금질금 우느냐구?'
초희는 감정을 억제하듯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알듯 모를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술집에 나가는 걸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데....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술집, 당장 이래두 때려 치우구 싶은 생각 간절해요. 그렇지만.... 당신과 나, 우리 앞날을 위해 좀더 참아 달래는 말 되풀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다시 초희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올랐다.
초희가 만들어 온 반찬을 내가 잘 먹지 않아도 그 눈에 눈물이 고여 올랐다. 내가 일이 없어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도 초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왜? 내가 일 않구 빈들거리니까 불안해? 막 일이라는 게 그래. 빈 날이 가끔씩 있다구.'
'알아요. 내가 그런 것두 모르는 줄 아세요?'
언젠가는 비가 쏟아져서 일하러 나가지 못했는데도 초희 눈에 눈물이 고여 올랐다.
“왜 그래? ”
'자꾸만 당신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희가 대답했다.
“내가 못나 보여서? ”
'당치두 않은 말이에요. 나 같이 변변치 않은 여자 때문에 당신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정말 당치도 않은 소리로군.'
'당신이 나 때문에 훨훨 날지 못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당신이 내 곁을 떠나는 일은 견딜 수가 없어요.”
“우리, 아이를 낳자. 그런데 어떻게 돼서 아이가 안생기지? 그러구 보면 당신 요즘 몸이 신통치 않아 보이는 게 혹시 아이가 생긴 탓 아니야? ”
'아니예요. 당신보다 내가 더 아이를 갖구 싶어요. 그렇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때가 안됐어요. 어느만큼 밑천을 마련하구 술집을 고만둔 뒤래야 가능한 일이에요.'
“몸이 약했던 여자가 임신하고 나서 건강해 진 경우가 많대. 임신하면 몸의 신진대사가 잘 되는데다가 마음이 안정된대잖아? 당신 그동안 일부러 임신을 피했구만? 그러지 말구 아이를 만들자구, 여자가 피임을 하는 원인의 하나는 남편을 믿지 못하거나 미워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래더군. 마음속으로 남편과 헤어질 것을 생각하는 여자가 임신을 피한대는 말두 있구.......”
'아니예요. 절대 아니예요. 사실은...”
“사실은 뭐야? 나한테 말 못할 비밀이라두 있다는 얘기야?'
“비밀 같은 거 없어요. 아무래도 얼마 동안 직장은 가져야겠구, 그 직장이래는 데가 당신 두 아시다시피 어쩔 수 없이 술을 한두잔이래두 마셔야 되니.... 술은 임신과는 상극이잖아요? 술이 아니래두 그런 직장에 다니면서 애기를 갖구 싶진 않아요.”
'괜찮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있잖아? 피임 걷어 치우구 아이 갖자구. 우선 아이를 가지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더 나은 길을 찾게 될 거야.”
“조금만 더 참아요.”
“정말루 아이를 위해서라면 빨리 낳는 게 좋아. 한 살이라도 나이 더 젊어서 낳아야 아이가 건강하다는 사실 몰라?'
'알지만 낳아 놓구 나서 잘 기르는 일두 생각해야지요. 남 못지않게 먹이구 입히구 공부시켜야 하잖아요?'
“다 제복 타구 나는 거야. 아이가 생기면 나도 책임감 때문에 좀더 정신을 차릴 테고 말야. 이것 저것 따지다간 아무 일도 못해, 좋은 일은 우선 저질러 놓구 보랬어.”
나는 초희에게 피임약이나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초희는 주저하는 빛이 역력했지만 내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당신한테 한가지만 부탁하겠어요. 목욕하구 오세요. 기도하는 맘으루 목욕을 해야 해요. 우리 아기를 위해서예요.”
초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채근해 동네 대중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초희는 여탕으로 나는 남탕으로 갈라져 들어가 목욕을 시작 하면서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하라던 초희 말을 귓가에 되살려보았다. 목욕재계하라는 것과 같은 뜻일 터였다. 초희가 전하려는 말뜻을 알 수 있었지만 그 뜻이 내 가슴에 살뜰하게 다가와 안기지는 않았다. 나는 목욕장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벌거숭이가 되어 제 나름으로 열심히 몸을 씻고 있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 중에는 목욕한 몸으로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할 사람이 여럿 일 터였다.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아내 뱃속에 아이가 생기기를 바랄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목욕하는 동작이 특별히 경건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목욕은 어떤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목욕하는 아내의 모습을 눈앞에 그렸다. 꿇어앉아서 물을 끼얹고 때를 밀고 비누질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내 입꼬리가 비틀리며 벌어진 틈새로 픽 소리와 함께 웃음이 새어나왔다.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성행위를 하면 아이가 생기게 된다. 오다. 가다 스치듯 만나 몸만 탐내어 치르는 성행위가 아니라 떳떳한 관계맺음 속에서 아끼고 위하는 마음을 품고 치르는 성행위라면 그 결과로 생긴 아이에 대해 정성이 부족했다는 말을 들어야 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행위를 위해서 목욕을 하라면서 그것도 모자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하라니 마음이 엄숙해 지기보다는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간지르는듯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웠다.
“오늘은 직장을 쉬겠다구 전화했어요.'
초희가 말했다.
“용하군. 뭐라고 핑계를 댔지? 배탈이 났다구? 독감에 걸렸다구? ”
'아프다는 핑계는 대지 않았어요. 아무리 거짓말이래두 아기를 가질려는 마당에 아프다는 말을 해서야 되겠어요?'
저런 것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가짐이겠고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초희의 그런 태도에 감동하지는 않았다. 너무 유난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초희의 유난스러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틈에 마련해 두었는지 새 이불 껍데기 새 요 껍데기를 씌워 이부자리를 깔았고, 자기의 몸도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을 씌우고 감쌌다. 전등불 대신 촛불 두 자루가 스스로의 몸을 태워 방안을 밝혔다.
“당신이 가진 옷 가운데서 제일 좋은 걸루 차려 입으시라구 한다면 들으실래요?'
초희가 깔아 놓은 이부자리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물었다.
“금세 벗을 텐데 귀찮고 번거롭게 옷은 차려 입어서 뭘?'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건 좋으실 대루 하세요. 그럼 나한테루 다가와서 내 잠옷 허리끈을 풀어 주세요.”
초희가 정색을 한 채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모습이 문득 연극 같고 장난 같아 보였다. 수시로 치르어 오던 성행위가 아니었던가.
나는 다가가 초희의 잠옷 허리끈을 풀어 주면 서 곧바로 초희 몸을 들어 안았다.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몸피도 푹 꺼져 들어간 것처럼 줄어 있었다. 나는 초희의 몸을 거칠게 요 위에 눕혔다. 초희는 제단 위에 놓인 제물처럼 꼼짝을 안했다.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의 처분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결심의 표시 같았다. 아니면 자기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가엾어졌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막을 뚫고 거치른 욕망이 내 속 깊숙이로부터 뿜어져 올라왔다. 나는 초희의 형편없이 수척해진 몸을 무엇엔가 반발하고 반항하듯 거칠게 다루기 시작했다.
내가 초희의 임신을 알게 된 것은 그 두달 뒤였다.
'여보, 나 임신했대요.'
그렇게 말하는 초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마치 예감인 듯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초희가, 그 부실한 몸으로 과연 아기를 키워 낼 수 있을까? 나야말로 만용을 부려 큰 잘못을 저질러 놓은 건 아닐까.
정선댁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이 초희의 눈과 겹쳐 보였다. 그 눈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여자의 온몸과 온 마음을 바쳐 복종할 남자였다. 정선댁 눈이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있었다. 그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굉장한 흡인력 이었다. 내 몸이, 마음이 휘청거렸다.
“고만 가봐야겠어요. 방고래는 어느 날 잡아서 고쳐 드릴께요.”
나는 술상을 물리듯하며 몸을 일으켰다. 정선 댁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아제, 우리 집에 다시 오지 않는 건 아니지우? ”
정선댁은 방문 앞을 막아서듯 하며 물었다.
'다시 와야지만 방고래를 고치잖아요? ”
'아제가 시방 이 방을 나가구, 우리집 담 밖으루 나가구 나무, 거기서 아제는 거품처럼 비누방울처럼 꺼져버릴 거 같애. 난 여지껏 이방에서 아제랑 마주앉아 있었던 게 아니라 아제를 생각하는 내 맘과 마주앉아 있었을지두 몰른대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 나는 시방 꿈속에서 아제랑 마주 섰구, 아제가 이방을 나가자 마자 꿈을 깰지두 몰르지. 꿈을 깨믄 아제는 온 데 간 데 유구, 난 요 위에 누웠구, 내 눈앞엔 캄캄한 방천정만 깊이를 알 수는 허공처럼 자리잡구 있을지두 몰르지 뭐.”
정선댁은 혼잣말하듯 하며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 보려는 듯 내 손을 끌어 잡고 더듬었다. 나도 정선댁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거칠기는 했지만 여자의 손이었다.
'보세요. 꿈이 아니구 틀림없는 생시지오?'
“시방 당장은 그런 거 같구만서두.. 그런데 아제가 방을 나가 컴컴한 밤 어둠 속으로 몸을 들여 놓자마자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루 녹아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니까.”
정선댁은 내 손을 놓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방문으로 가 닿는 길을 열어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나는 절대로 녹아버리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거품도 아니구, 그림자도 아니구, 꿈속의 인물도 아니예요. 난 이렇게 어엿한 사람이라구요. 그러니까 아주머니 그런 걱정 마세요. 자, 그럼 이만 가보겠어요.”
나는 정선댁 손에서 내 손을 빼내며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선댁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나를 따라 방 밖에까지 나왔다.
'들어가세요.”
내가 말했다.
“아제가 우리집 담 밖에 나가 밤 어둠 속을 한참 걸어두 녹아 들어가 옳어져 버리지 않는지 내 눈으루 보구서야 믿을 수가 있다구요.”
“고만 들어가세요. 누가 보면 이상한 소문 퍼뜨려요.”
나는 대문간 앞에서 멈춰 서며 귓속말하듯 말했다.
“아제두 소문 퍼지는 게 겁난대유? 결국 아제는 거품이구, 그림자구, 꿈속 사람인가봐. 우리집 담을 나서믄 옳어져 버리구는 다신 찾아오지 않을 헛것 말이우.”
정선댁은 다시 다가서며 자기 팔로 내 팔을 감아쥐었다. 내 팔 뒷등에 정선댁 가슴이 뭉클 와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내 몸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힘에 휩쓸려 들어가듯 정선댁 허리를 팔로 휘감고 헛간 속으로 끌어 들였다. 하기야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방이 아닌 으슥한 건물 안 공간을 급하게 찾아 들어간다고 한 것이 헛간이었다. 풋나무 냄새 같은 것이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은 맨땅이었다. 그나마 고르게 평평하지 못하다는 것이 신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나는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급히 서두르기 때문인지 헛간 벽에 매달리거나 기대 세워진 것들이 잘 구별되지가 않았다. 정선댁이 몸을 내 팔에서 빼어내는가 하는데 벽에 세워졌던 무엇이 헛간 바닥에 쓰러졌다. 정선댁이 허리를 굽혀 그 물건을 다루었다.
'아제, 앉어유.”
정선댁이 내 손을 잡아당기며 소근댔다. 멍석 이었다. 나는 지체 않고 정선댁을 멍석 위에 쓰러뜨리고 거칠게 몸을 헤쳤다. 초희의 몸이었다. 처음 만나 서로의 경계를 흐트려버릴 무렵의 초희의 몸이었다. 온통 맡기며 한없이 고분고분한 태도도 그랬다. 여자를 안은 것이, 초희를 안은 것이 얼마만인가. 내 몸속에서 급하게 거칠게 분출되는 욕망 속에서 애정과 연민이 부드럽게 번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초희에게서 느끼던 감정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 안고 있는 정선댁 몸은 피부의 감촉도 근육의 탄력도 몸피의 양감도 초희와 같았다. 똑같았다. 초희의 것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때문일까.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 놓고 싶은 염원이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정선댁 몸과 태도는 초희의 몸이 내 몸을 받아들이는 태도, 느낌과 똑같았다. 초희가 정선댁을 통해 내 앞에 다시 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몸소 겪어본 사람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확신할 수가 있다. 초희는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다닌다기보다는 동행한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임신은 허물어져가는 초희의 건강에 결정타 그를 가했다. 임신이 초희의 기울어진 건강의 균형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초희는 갈수록 나빠졌다. 견뎌내려고 애를 쓰지만 견뎌내기가 무척 힘드는 것 같았다.
“임신부의 간장이 아주 나쁘고 신장도 나쁩니다. 이런 상태에서 태아는 어머니의 건강에 해로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태아 자체의 미래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는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임신 삼개월이 지나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해준 말이었다.
“아이를 낳을래다간 당신이 죽게 생겼어. 당신이냐 아이냐 양자택일해야 할 입장에 놓였어. 그야 물론 당신도 살구 아이도 산다면 더 바랄 게 없지. 그렇지만 하나를 택해야 되도록 돼 있다구. 그럴 경우 난 주저할 거 없이 아이를 버리구 당신을 택하겠어.”
초희는 내 말에 대꾸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충격을 받았는지 아닌지, 초희의 표정은 넋이 빠져 나 간 것 같기도 했고, 무아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봐, 아이를 떼어 버리자구”
내가 초희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초희의 눈이 두어번 깜박거렸다.
'난 그렇게 못해요.”
초희가 말했다.
“뭘 그렇게 못한다는 거야?'
나는 초희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생각 속의 어떤 질문에 대꾸하는 것이라고 짐작하며 물었다. 초희가 눈길을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지금 되풀이해 말하구 있잖아요? 뱃속의 아이를 떼내라구요. 그렇게 못해요. 결단쿠 못해요.”
초희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이봐, 내 말을 제대로 듣구 하는 소리야? 아니 좀 전에는 내가 말을 잘못했군. 지금 처지는 당신과 아이 가운데 누구를 살리느냐 하는 게 아니라 당신과 아이 둘 다 죽느냐 아이만 죽느냐 하는 거야. 알아들었어? 아이는 어차피 살아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게 돼 있어. 내 말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의 말이야. 이젠 당신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해가 되겠지? ”
“의사는 하느님이 아니예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구 잘못 진찰을 할 수두 있어요. 나는 아이를 낳겠어요. 의사한테 매달리지 않구 하느님한테 매달려서 아이를 낳겠어요. 의사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할 수 있어요.”
초희는 누가 당장 뱃속의 아이를 빼내 가기라도 하는 듯 두 팔로 자기 배를 감아 안았다. 삼개월된 임신부 치고는 배가 너무 불렀다. 꺼져 들어간 눈자위와 볼 그리고 여윈 팔다리 가슴에 비해 배는 딴 세상인 듯 부풀어 있었다. 뱃속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몸의 다른 모든 부위를 동원하고 희생시키는 것일까. 의사가 나중에 슬그머니 덧붙인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복수가 고일 수두 있어요. 아니, 이미...'
“의사가 하느님과 반대쪽에서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의사두 하느님이 내신 사람이구 직업이야. 쓸데없이 고집 부리지 말아.'
“고집이 아니예요. 당신은 내버려두면 나와 아이가 같이 죽구, 아이를 버리면 나는 살 수 있다구 말했지오? 사람의 이치루 따지면 옳은 생각일지 몰라요. 그렇지만 사람의 이치 가운데 두 그와 반대되는 이치두 있어요. 나야말루 어차피 죽게 돼 있잖아요? 아이두 살려내기 힘들다지만 아이가 살아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몇십분의 일, 몇백분의 일인 가능성에 매달려 힘껏 싸우다 보면 그 미미한 가능성이 하느님 은혜루 이루어질 수가 있구, 그러면 나두 덩달아 살아나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내 생명은 아이의 생명에 달렸는데 어떻게 아이를 죽일 수가 있어요. 아이를 죽이면 나는 저절루 따라 죽게 돼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죽일 수가 있느냐 말예요.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거나 아주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희망의 줄을 하느님이 가지구 계세요. 당신 내 말 이해하지오? 하느님께 내 소원을 간절히 빌면서 하느님 뜻에 맡기겠어요.”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아주 싫어하는 일까지 순종하듯 따라 주던 초희였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 문제만은 꺾을 수 없을 것 같은 고집으로 내게 저항하고 있었다.
나는 의사를 찾아가 의논해 보았다.
“물론 기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기적도 경우에 따라 분야에 따라 일어나는 확률이 달라지는데 부인의 경우 기적이 일어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을 최고 수치로 잡고 천만분의 일, 억만분의 일이나 기대해야 할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돼서 미안합니다. 그런 확률보다는 부인을 살리는 확률에 매달리시는 게 현명한 처사일 겁니다. 중절수술을 빨리 받으실수록 부인이 살아날 확률이 커집니다. 빨리 설득하시길 바랍니다.'
의사의 말이었다.
'초희,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잘 알아서 처리 해가고 있는 당신을 밀어붙여 아기를 갖도록 만들었으니 말야. 내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었으면 해. 난 이대로는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어.”
나는 고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해 보았다.
'당신은 실수한 게 없어요. 당신이 내 고집을 꺾어 주지 않았더라면 당신과 나의 사랑의 열매인 임신을 누려보지 못하구 말았을 테니까요. 내 임신 때문에 고민하구 뉘우치는 일이 있다면 그거야말루 당신의 실수가 될 거예요.'
초희는 피곤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기색과는 달리 또렷또렷 대꾸했다.
“당신, 요즘 와서 나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엷어진 거야? 전에는 이번 일보다 더한 일도 다소곳 따라 주었잖아? 그렇더라도 더두 말구 한번만 당신한테 부탁하고 요구하는 거니까 내 판단에 따라 줘. 중절수술을 하자구. 당신이 건강해지면 아이는 금방 다시 만들수가 있어.”
'당신과 함께 살게 된 뒤루 이번 일보다 더 크구 중요한 일은 없었어요. 그리구 당신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엷어지지두 않았어요. 임신한 뒤루 오히려 당신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더 두터워졌어요. 나야말루 당신한테 꼭 한번만 내 판단에 따라 달라구 부탁하겠어요. 내 뱃속에 지금 들어있는 우리 아기가 튼튼하게 살아서 이 세상에 태아나게 해주십사구 하느님께 정성껏 빌어 주세요. 애기가 태아날 때까지 매일매일 그리구 하루에두 몇 차례씩 말예요. 약속해줘요. 약속해 줄 수 있지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초희를 바라보았다. 초희의 몰골은 갈수록 말이 아니게 되어 갔다. 배만 불러 올랐을 뿐 다른 부위는 뼈와 가죽뿐 이었다. 초희는 입맛 없는 밥을 억지로 씹어 넘기곤 했다. 수시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느라 애를 쓰곤 했다. 초희의 몸은 이미 음식을 받아 소화시킬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초희는 음식을 번번이 토해내려는 자신의 몸과 피나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음식을 씹는 과정부터 투쟁이었다. 몸은 음식이 식도를 넘어 들어올 때를 기다려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 들어올 때부터 거부하는 것 같았다. 초희는 음식을 씹으면서도 구역질을 해댔고, 구역질을 짓누르며 씹느라 진땀을 흘리곤 했다. 백번은 씹을 것이다. 백번을 훨씬 넘겨 씹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장에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음식을 입에서 소화까지 시켜버리겠다는 의지로도 보였다. 음식을 먹고 소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뱃속의 아이가 살고 자라고 태아날 수 있다. 오직 그 일념뿐인지도 모른다. 구역질을 참으며 입에서 부수고 으깨어 가루가 되고 액체가 된 음식을 이윽고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 심한 구역질이 장벽처럼 철문처럼 목구멍을 가로막고 있다. 초희는 그 벽과 철문을 통과시켜 음식물을 목구멍 너머로 투입하기에 젖 먹은 힘까지 쏟아낸다. 움푹 꺼진 눈과 광대뼈가 있는 대로 드러난 볼에 피가 몰리고 눈물과 진땀이 배어나온다. 비유로 말하는 진땀이 아니다. 정말로 기름처럼 걸고 끈적거리는 땀이 무수한 땀구멍을 헤치고 비어져 나와 서로 합치고 번지며 줄기를 이룬다. 온 얼굴이, 나아가 목과 가슴과 등이 진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식물은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 않고 토해져 나와 초희의 입 언저리와 손바닥과 방바닥에 매대기를 치곤했다. 음식물에 이어 초희의 메마른 목구멍에서는 울음인지 분노 인지 모를 목쉰 소리가 토해져 나오곤 했다.
나는 초희의 그런 모습을 남김없이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감거나 얼굴을 돌리게 되곤 했다.
“선생님, 지금이라도 수술을 하면 임신부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의사가 가능하다고만 한다면 이제야말로 강제로라도 초희를 떠메다가 수술을 시킬 작정을 했다. 왜 진작 강제로 떠메오지를 못했을까.
“그 정도라면 진통제나 사용하면서 임종을 기다리십시오. 태아도 이미 사망했기 쉽습니다. 간호하시기 고통스러우시겠습니다.”
의사는 이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듯 담 담하게 말했다.
“간호하는 사람의 고통이 제 아무리 큰들 환자의 고통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역정이 불끈 치밀어 오르려는 것을 구역질을 삼키듯 삼키고 의사 앞을 물러나왔다.
역정을 삼키는 것쯤 초희가 구역질을 삼키는 것에 비하면 가히 무엇이란 말인가.
초희는 임종 이틀 전에야 음식물 섭취하는 행위를 포기했다. 초희는 휑한 눈으로 내 얼굴을 응시하곤 했다. 휑한 눈이란 말로는 초희의 눈을 백분의 일도 그려 낼 수가 없었다.
'여보, 나 당신 앞서 가게 되나 봐요.”
초희는 남은 힘을 모두 긁어모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로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을 돌렸다. 참 사치스럽게도 내 눈에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관중씨. 난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구 생각했어요. 이 순간에두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당신과 함께 좀더 오래, 좀더 재미있게 살아보구 싶었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 살아온 것만으루두 좋아요. 당신은 내가 떠난 뒤에두 오랫동안 세상에 남아서 나를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해요. 당신이 나를 기억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 나는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건 아니니까요. 욱하는 성질 버려요. 참구 또 참아요. 욱하구 성질이 일어날 때마다 나를 생각해요. 내가 못 다한 삶을 당신이 대신 살아줘야 하는 거예요. 나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바래요.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애기를 날라구 했는지두 몰라요. 애기가 태어나지 못했으니 당신이라두 오래 살아야 해요. 오래 살 뿐만 아니라 사람대접 받으면서 살아야 돼요. 그러면 나두 사람대접을 받는 게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욱하는 성질을 잘 다스리구 부지런해야 돼요. 알았지오? 알았으면 나랑 약속해요.”
초희는 팔과 손을 들어 올리려다가 못하고 새끼손가락만 까딱거렸다. 나는 내 새끼손가락을 초희의 새끼손가락에 걸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신,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세요. 당신이 결혼한 착한 여자 속에 나두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냉랭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도 나는 일 주문을 받았다. 내게 일 주문을 해오는 집은 주로, 아니 전부가 가난한 집이었다. 내 품값은 보통의 절반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가난한 집에서도 내게 일주문하는 태도가 전보다 달라 보였다. 조심스러워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정선댁한테 갔던 일이 들통이 났나보다 하는 짐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정선댁의 집에 가서 정선댁과 몸을 섞기까지 하고 나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자고 생각했다. 이 동네에서 일을 주지 않는다면 다른 동 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겠다는 계산까지 해두었었다. 그러나 거처를 옮기는 일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었다. 그 문제는 그분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신경이 쓰였다. 그분한테 정선댁과의 사이에 벌어진 일을 고해바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분의 고행을 시중들고 있는 처지에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 그분이 그 사실을 안다면 다시한번 떠나가라는 호령이 나에게 떨어질 것이다.
나는 동네 사람들이 문제를 터뜨려 주기를 바랐다. 나의 그 바람 속에는 요행도 섞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그 밤 정선댁네 집에 갔던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선댁과 잠자리를 같이 한 사실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모르기 쉽다. 컴컴한 헛간 속에서 짧게 이루어진 그 일을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헛간에서 나오기까지 가까이에서 사람의 기척은 나지 않았었다. 내가 정선댁네 집에 갔던 일마저 동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도 품어 보았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이후 동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쌀쌀해졌으니 말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