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하던 기운이 말끔히 가시고 살갗에 와 닿는 바람결은 이제 보송보송했다. 그 바람이 들판에 가득 실린 벼잎과 벼이삭을 노랗게 물들이고, 옥수수대를 불썽 사납게 만들어 놓았다. 들판을 지나는 바람은 논배미에 황금물결을 출렁출렁 일으켜 놓았지만, 옥수수밭에서는 말라 비틀어진 옥수수대들이 버스럭버스럭 거칠고 메마른 소리를 내지르게 했다.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투명해 가까운 산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산도 등성이에서 흘러내린 주름들이 망원경으로 바짝 끌어당겨 놓은 듯 분명했다.
곧 벼베기가 시작될 것이다. 강원도 산골은 지대가 높고 기온이 낮아 여름이 짧고, 평지에 비해 벼를 일찍 심고 일찍 거두어 들였다. 올벼를 심은 논은 벌써 추수를 해 빈 논배미가 맨바닥을 꺼칠하게 드러내 놓기도 했다.
나는 면소재지를 비롯해 오리에서 십리쯤 멀어진 인근 농촌으로 일거리 구하는 나들이를 하곤 했다. 아직 본격적인 벼베기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타동 사람들과 얼굴을 미리 익혀 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우선 동네 이장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해 놓고 추수가 시작되면 다시 찾아 다닐 작정이었다. 품값을 시세의 반만 받겠다는 말도 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면소재지에서 서울행 버스에 훌쩍 올라탔다. 그분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정선댁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였다. 앞뒤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벌써부터 마음 속에 담아 오다가 정선댁과 합한 뒤 결행하기로 작정했다.
버스는 세 시간이나 달린 끝에 서울에 닿았다. 오래간만에 그 속에 몸을 담아본 서울의 번화가는 반가움보다는 서먹함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서울의 거리에서는 가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서울은 계절의 변화 바깥에 자리잡은 도시 같았다.
나는 먼저 물력가게로 정씨를 찾아갈까 하다 가 그분의 집부터 가기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우선 전화를 넣고 나서 그분의 집 대문에 설치된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대문 옆의 쪽문을 열어 준 사람은 일하는 젊은 여자였다. 정선 댁과 비교가 되어서일까, 나와는 훨씬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피부가 다르고, 표정이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몸가짐이 달랐다. 그리고 말소리도 달랐다.
“어떻게 오셨지요?”
젊은 여자가 낯선 눈길로 내 위아래를 훑어보고 나서 물었다.
'이 댁 어르신을 뫼시구 시골에 가 있는 유서방이에요. 사모님을 뵈러 왔어요.”
경계심을 철망처럼 쳐 놓고 있던 여자의 표정이 빠르게 풀어졌다.
“너무 오래간만이라…. 살이 볕에 많이 그을리셨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여자는 마치 자기의 속으로 나를 받아들이기라도 하듯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쪽문을 들어서서 여자의 옆을 지나는데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초희가 풍겨내던 향내였다. 무슨 꽃향기였더라, 지난 봄 내내, 여름 내내, 강원도 산골의 여기저기에서 피어난 크고 작은, 소담스럽고 초라한 갖가지 꽃들이 요란스럽게 또는 은은하게 퍼뜨리던 향기들. 향수를 뿌리거나 발라 향내를 풍겨내기 좋아해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지난 봄이 집에 며칠 묶을 때 이 여자에게서 풍기는 초희의 향내를 맡고, 초희와 이 여자가 합해진 몸을 안은 꿈을 꾸었던 일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방금 내게 문을 열어 준 이 집 젊은 여자의 향내 속에서 초희의 냄새를 찾아내려는 것은 이제 염치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초희는 지금 강원도 산골로 옮겨가 있었다. 향기로라면 강원도 산골의 수많은 꽃들의 향기일 것이다.
“웬일이우? 유씨. 반갑고도 궁금하구만.”
사모님도 내 행색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 동안 지내온 일을 사모님께 말씀 드리구, 앞으로 남은 기간 지낼 일을 의논 드리려구 이렇게 불쑥 올라왔습니다,”
“유씨가 여기 온다는 걸 그 어른도 알고 계시우?”
“어르신께서는 말씀 드리지 않구 올라왔습니다. 어르신께 미리 말씀드리면 올라오지 못하게 하실 게 분명하니까요.”
“그 어른 건강은 어떠시우?”
“어르신 건강은 좋은 편이십니다.”
“그럼 유씨가 내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우.”
나는 지난 봄. 고행길을 떠나는 그분의 뒤를 따라 이 집을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대강,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부분은 되도록 자세하게 말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날이었다. 그분이 나의 시중 받는 일을 싫어하고 꺼려하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바꿔서 말하면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를 대하는 그분의 태도에는 신축성의 폭이 꽤 넓어져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선댁과 결혼한 뒤로 그분의 태도는 나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 동안의 나와의 승강이질을 통해 나에 대한 신뢰감을 은연중 꽤 두텁게 쌓아 왔으리라고 나는 짐작했었다. 어떤 때는 그분이 나를 사탄, 잡귀, 사탄의 졸개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체면의 문제일 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분의 말대로 나를 그분을 모함하려는 반대파에서 보낸 첩자로 의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자가 고행 시중을 들 겠다며 부득부득 따라 붙었으니 말이었다. 그분 이 나를 그렇게 취급하는 동안 나는 때때로, 그 분은 내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분이 적당하다고, 아니 필요하다고 생각한 고행의 강도를 훨씬 더 높여야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나는 나의 자리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곤 했다. 그런 굽이와 고비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쌓아온 신뢰감이었다.
이번에, 내가 정선댁과 결혼한 뒤에 강경해진 그분의 태도도 그런 되풀이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분의 나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입장에서 그냥 묵인하고 지나가 버릴 수는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강경한 태도는 누그러지기는 커녕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것 같았다. 그분은 이번 일을 나와 갈라서는, 나를 떼어 버리는 마침 한 기회로 보고 실행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사모님께 의논 드리려고 올라왔습니다.”
“내가 유씨한테 약속하다시피 했잖수? 일년 동안 그 어른 시중 잘 들어 드리면 얌전한 처녀 물색해서 장가 보내 주겠다고 말이우. 고새를 못참아 아이 둘씩이나 달린 과부와 짝을 지었우? 쯧 쯧.”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 어른이 고집을 굽히지 않으시면 유씨도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얘기하러 온 건 아닐 테지.'
“제가 그렇게 의리 없진 않습니다. 사모님께서 저를 믿어 주시기만 한다면 어르신께서 저를 어떻게 퇴해 내시든지 상관 않구 어르신 시중을 들겠습니다. 다만 … ”
“다만. 내가 유씨와 계약한 수고비를 딴소리 안하고 지불해야 한다는 말일 테지? 내가 유관중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을 보여 주겠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동안 어르신께서는 제가 품 팔아서 받은 돈으로 산 쌀이나 정선댁이 만들어 온 반찬을 마다 않고 잡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선댁과 결혼한 뒤부터는 제가 품값으로 사는 쌀이나 정선댁이 만든 반찬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르신의 그 말씀은 전과 달리 아주 완강하십니다. 쌀이나 반찬 재료도 몸소 일을 해서 받은 품값으루 사겠다고 우기시고, 음식도 몸소 만들어 잡수시겠다구 우기십니다. 사모님께서도 아시구 계신 것같이 어르신께서는 고행길 떠나신 초엽에 무리하게 일을 하시다가 몸살을 앓아 쓰러진 적이 계십니다. 그 몸살이 전화위복이 되어 제 시중을 받아 들이시는 일이 생기기도 했읍니다만…. 그런데 일기 좋은 가을 동안에는 어르신께서 그럭저럭 버텨 내실 수도 있겠지만 고행의 마무리나 다름없는 겨울을 혼자 견디시기는 만만치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을 거 같수? 유씨 생각 좀 들어봅시다.”
사모님이 다가앉듯 말했다. 처음에 좀 뜨악하게 동안을 띄우고 살피는 자세를 왈칵 허물고 있었다
“사모님께 그간의 일을 말씀 드리고 나서 지시를 받아 가려구 올라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뫼시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알 것 아니우? 무슨 말이라도 괜찮으니 유씨 생각을 얘 기해 봐요.”
“그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한 가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언제 한번 사모님께서 슬그머니 내려오셔서 어르신께 비상금을 드리구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그 어른이 돈을 받아 잘 간수하고 요긴한 데 쓰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그렇지만 유씨도 옆에서 잘 지켜봤겠지만 그 어른이 이만저만 곧은 분이우? 유씨가 이미 보고 겪은 것처럼 당신은 돈 소용 없다며 어려운 사람들한테 주라고 털어내 놔버린다면 비상금을 드려봤댔자 헛것 되지 않겠우? 안 그러우?”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분한테 드릴 비상금을 유씨한테 맡길 테니 유씨가 잘 알아서 해 줘요.”
“어르신께서는 저를 사탄의 졸개라구 부르십니다. 정선댁과 결혼한 뒤로는 사탄과 잡귀신이 합쳐서 무슨 흉물스럽구 악독한 일을 저지르려 한다고 호령이십니다. 전에는 사탄의 졸개한테 시중 받는 것두 고해의 항목에 들어 있는가 보다고 말씀하시면서 제 시중을 받아 들이셨지만, 이제 그런 고행은 충분해서 더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쇠같이 단단하구 무거워서 뚫기도 뒤집기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하기야 사모님께서 어르신께 비상금을 드린다면 저를 남겨 두고 어디루 떠나버리실지 모른다는 염려도 들기는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우?”
사모님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과 고민 속으로 빠져 들어간 듯하더니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결연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유씨, 그 어른이 사탄이라고 부르시거든 맞습니다. 저는 사탄입니다. 대답하고는 여보란 듯이 사탄 노릇을 해버려요.”
“네?”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사모님을 바라보았다.
“그 어른이 유씨 시중을 물리치시거든. 교단 장로들한테 가서 제대루 고행을 하지 않았다고 일러 바치겠습니다 하고 은근히 위협을 해도 괜찮아요. 그래야 그 어른이 유씨 몰래 어디루 떠나가는 경우도 막을 수 있지 않겠우? 그 어른이 너무 고지식하셔서 그렇지. 그만큼 고생을 하면서 꼬박 일년을 채운 교주도 흔치 않아요. 집과 가족을 떠나서 생판 낯선 객지에 가 일년을 보내는 것만도 대단한 고통인데 일부러 벽촌에 찾아 들어가 음식 시중 받는 일까지 마음에 걸려 피하 려구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몸을 학대하는 까닭은 몸속에 뿌리 내린 정욕을 눌러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그 어른 몸속에는 뿌리 내린 정욕도 없어요. 그렇다면 고행은 깊은 생각을 통해 진리를 찾아내는 데 목표를 두어야지, 몸을 학대하는 데 목표를 두는 건 잘못이에요. 그러니 그 어른은 크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어른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모르구 고집을 부리신다면 계략을 꾸며서라도 잘못을 고쳐 드려야 마땅해요. 그 어른한테는 인제 몸을 학대하는 일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일이 필요해요. 유씨가 드러내 놓고 사탄 노릇을 해야 하는 것도 그 어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내가 유씨 뒤를 뒷받침해 줄 테니까 주저하지도 겁내지도 말고 사탄 노릇을 해요. 그 어른을 위한 사탄 노릇인데 뭐 주뼜거릴게 있겠우? 곧 날이 추워질 텐데, 아니 벌써 아침 저녁으루는 써늘해졌어요. 방이 춥거든 뜯어 고치구. 내가 가을옷 겨울옷을 소포로 부칠 테니까 그 어른이 입으시도록 하구, 음식도 영양분 있는 걸루 해 드려요. 그 어른이 싫다고 우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 두 잡수시도록 해요.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유씨와 내가 맺은 계약 때문이에요 알겠우?”
사모님은 꽤 긴 말을 끝내고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려는 듯 강한 눈빛으로 내 눈을 쏘아보았다.
“네. 사모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힘껏 분부를 거행 하겠습니다.”
사모님은 잘 차린 점심상을 내 앞에 놓아 주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시골로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키자 돈뭉치를 내앞에 내밀었다.
“이 돈은 그 어른한테 드리지 말고 유씨가 보관하고 써요. 유씨네 식구들을 위해서도 써요. 품 팔러 다니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그 어른 옆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게 돼서 시중 드는 일에 소홀하게 되지 않도록 해요. 낭비를 하면 안되지만 필요한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요. 그렇게 해서 돈이 모자라면 보내 달라고 청해요.”
사모님 앞을 물러나오면서 나는 적어도 그분에 관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주인은 그분이 아니라 사모님이었다.
벼베기가 시작되자 이웃 마을에서 일 주문이 몰려왔다. 사모님은 지나치게 품팔이노동을 하지 말고 그분의 옆을 지키라고 주문했지만 품팔이노동을 기피할 수는 없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채 살아간다면 오히려 동네 사람들한테 의심을 받게 되기 쉬우리라. 그분한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훼방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는 눈초리가 이상해져 갔다.
“건강한 몸에다가 어느 장정 못지않은 일솜씨를 가지구 있으믄서두 품값은 왜 반만 받수?”
“샘골에 이렇다 할 연고두 읎으믄서 와서 사는 까닭이 뭐유?”
'웬 도회지 사람 하나를 빈 집에 묵게 하믄서 품 팔아 멕여 살린다는데 어떤 사이우?’’
“총각이래믄서 별 재산두 읎구, 언내까지 둘이나 딸리구, 동네에서 따돌림 받는 과부랑 내외지간이 돼 사는 까닭이 뭐유?”
'고향은 어디유? 부모형제는 살아 있우?”
사람들의 물음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 자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대답 뒤에 감추어져 있을 무엇을 겨냥한 물음이었다. 그리고는 소문들이 날개를 달고 떠돌다가 내 귀에까지 내려앉곤 했다.
“유씨는 몹쓸 병을 숨겨 가지구 있대.”
“유씨는 흉악한 죄를 저질르구선 도망쳐 와서 숨어 사는 사람이래.”
“유씨는 어떤 사람 한 명을 데리구 와서 빈 집에 가둬 놓았대.”
“유씨 얼굴은 뜯어 고친 얼굴이래.”
“유씨는 자기를 예사사람처럼 보이게 할라구 언내 둘 달린 과부랑 내외지간이 됐대.”
“유씨는 지금 같이 사는 과부댁 말구두 숱하게 많은 과부댁과 부부 인연을 맺었대는구만 혼인을 맺었네 해서 사는가 하믄 일년두 못돼서 헤어지구, 다른 동네루 흘러 들어가 다시 다른 과부 댁과 혼인을 맺군 하기를 열손가락 꼽을 만큼 되풀이했대.”
그런 소문들은 굴러굴러 직접 내 귀에까지 들어오기도 했고, 어처구니 없게도 정선댁이 먼저 듣고 와서 내 귀에 옮겨 주기도 했다.
“이 동네 것들 짓이 분명해.”
정선댁이 이를 갈듯하며 말했다. 그런 소문을 퍼뜨려 나한테서 일을 빼앗아 냄으로써 살아갈 수 없게 만들고, 이윽고는 나와 정선댁과 두 아이를 마을에서 쫓아낼 계략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동네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어느 날 밤에는 마을집 처마끝에서 불이 붙어 타는 것을 이웃 사람이 알아내 불을 끌 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동네 어느 집에 돌멩이들이 날아들어 그 집 식구들을 공포에 떨도록 했다. 일은 밤에만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 집은 식구들이 일하려고 집을 비운 사이에 집안의 방문들이 떨어져 비스듬히 벽에 기대섰거나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장독대가 깨져 장이 쏟아져 나온 집도 있었고. 부엌 솥안에 돌, 모래, 죽은 뱀이나 개구리 따위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덜 익은 과일들이 떨어져 짓밟혀 있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우연히, 저절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일부러 저지른 심술임이 분명했다.
대뜸 그 혐의가 정선댁에게로 쏠렸다. 동네회의가 열리고 대책이 논의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치대와 야경대가 만들어졌다고도 했다. 야경대도는 소리가 잠결에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부쩍 열을 낼 동안에는 이상한 일이 뜸해졌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용케도 틈을 비집고 일을 저지르곤 했다.
동네 사람들의 의심이 당연스럽게도 정선댁과 나에게로 쏠렸다. 밤이면 동네 장정들이 정선댁네 집을 에워싸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간간히 동네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불이야!”
하는 외침이 좀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가 싶자 초저녁 내내 정적이 감돌던 정선댁 주위에서 갑자기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어났다. 불이 난 곳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들이었다.
나는 옆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정선댁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어디로 갔을까. 정선댁이 어둠 속에서 동네 어느 집 처마끝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초저녁 일찌감치 내 옆에 몸을 뉘였던 정선댁이 언제 집을 빠져 나간 것일까. 기억이 잠을 깨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초저녁 일찍 이부자리를 내려 깔고 내 옆에 누었던 정선댁은 얼마 안있어 오줌이 마렵다고 중얼거 리며 부시시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었다. 조용한 잠꼬대 같은 정선댁의 중얼거림, 그림자인 듯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던 정선댁의 모습, 모두가 꿈결처럼 아련했다. 그때 오줌 누러 간다고 방을 나갔던 정선댁이 그 길로 집을 빠져 나가 동네집 에 불을 지른 것일까.
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가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앉았던 몸을 요 위에 다시 뉘였다. 방문이 살며시 열리고 어둠의 덩어리가 방문지방을 넘어 들어왔다. 열렸던 방문이 살며시 닫혔다. 바람이 잠시 방문을 밀어보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바람처럼 방안으로 들어온 어둠의 덩어리가 내 옆 빈 자리를 채우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어둠의 덩어리는 방 안침으로 움직여 가더니 구석방으로 사라졌다. 불빛이 흔들리며 안방 벽에 어리는가 했 더니 곧 사라졌다 구석방문이 닫히며 빛을 잘라 버린 모양이었다. 집 밖 어디에선가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났는지, 잠깐 동안이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구석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불빛은 흘러 나오지 않았다. 어둠의 덩어리가 다가오더니 더듬더듬 내 옆 빈 자리에 몸을 뉘였다. 나는 정선댁 손을 찾아서 잡았다. 정선댁이 내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디서 또 불이 났나부지?’‘
나는 정선댁 귀불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물었다.
“당신 안주무셨우?”
정선댁도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뒷간에 간다고 방을 나가서는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아서 궁금했지. 그러자 또 불이 났다구 누가 외쳐 대는 바람에 잠이 달아났어. 당신 불구경한다며 집 밖에 나가지 말아. 잘못하다간 의심 받구 봉변 당해.”
“동네것들이 우리한테 하는 짓 봐선 동네가 다 타버려두 싸대유. 이 동네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걸루 성에 차지 않아서 다른 동네꺼정 쫓아가서 발가리를 놓잖아유?”
'누가 불을 지르구, 누가 돌멩이를 던지구, 누가 장독을 깨는 걸까?”
“신령님이 노하신 거래유. 내가 신령님한테 동네것들 못되게 구는 걸 허구한 날 고해 바치거던유. 동네것들이 맘을 바르게 고쳐먹지 않으믄 더 큰 재앙을 받을 거래유.”
“그래두 조심해야 해. 동네 사람들은 당신과 나를 의심하고 있을 거야 밤중이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을 둘러싸는 것 같더라구. 밤중에 잘못 집 밖에 나갔다가 불 낸 사람으로 몰려 큰 봉변 당하기 쉬워.”
“걱정 말아유. 신령님들이 날 지켜 주신대유. 지깟것들이 날 붙잡아유? 어림두 읎대유.”
나는 어느 날 밤. 정선댁이 뒷간에 가는 것처럼 방을 나가자 그 뒤를 지켜보았다. 뒷간은 대문간에 있는 문간방 뒷쪽에 있었다. 뒷간에 다녀 나온 정선댁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대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정선댁 뒤를 따라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준비가 안된 상태였고, 둘이 나가 다니다가 들키는 날에는 더 짙은 의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라 나가지 못하는 내 마음 속에서 불안이 우러나 퍼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집 밖을 향해 신경을 갈아 세웠다. 밤의 정적 속에서는 시간이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돌멩이다!”
하는 외침이 들린 것은 정선댁이 집 밖으로 나가고 얼마나 지난 뒤인지 짐작할 수 없는 때였다. 그 외침과 함께 밤의 정적이 깨어지고 있었다. 뛰어가는 발소리. “잡아 죽여라!” 외침소리. 그 소리들은 밤의 정적뿐만 아니라 내 마음 속을 마구 짓밟아 헝클어 놓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머리채를 휘감겨 잡히고 욕설과 주먹과 발길로 매질 당하고 있는 정선댁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왔다.
소음이 멀어지고 잠시 뒤 마루 밟는 소리가 정적인 듯 들렸다. 방문이 살며시 열리고 검은 그림자처럼 정선댁이 들어왔다. 정선댁은 구석방에 들어가 잠시 머문 뒤에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정선댁 손을 더듬어 잡았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 알고 있겠지? 앞으루 얼마 동안은 밤에 집 밖에 나가는 일을 고만두라구. 당신 뱃속에 들어 있는 우리 아기도 생각해야지. 아기가 불안해서 잘 자라지 못할지도 몰라.”
그 분도 동네에서 일어나는 해괴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분은 그냥 알고 있는 정도를 지나 그 일을 만들어내는 장본인까지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묵고 있는 집에는 불도 나지 않구, 돌멩이도 날아들지 않는구만. 자네가 특별히 나를 봐 주기 때문인가?”
그분이 내게 물었다.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섬기시는 신이 어르신을 보호하시기 때문일 겁니다.”
“자네는 정말 일을 벌이기 시작했구만 어떻게 할 작정인가? 자네는 이 마을 전체를 사탄의 지배하에 두든지, 아니면 파괴해 버리든지. 양단간에 할 작정인가?”
“어르신께서 섬기시는 신이 계신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이 마을에서 떠나기를 바라나? 실상 나도 이제 이 마을을 떠났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해보네.'
“안됩니다. 일년 간의 고행기간이 끝날 때까지 어르신께선 이 마을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까닭이 뭔가?’
“어르신께서 주장하시는 대로 이 마을이 사탄과 악귀한테서 위협을 받고 있다면 어르신께서는 섬기시는 신의 힘을 빌어 이 마을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한다는 의미로 이 마을을 떠날 수도 있네.'
“이 마을에서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저한테서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마찬가지 이야기 아닌가?’‘
“안됩니다. 고행기간이 끝날 때까지 이 마을에 머무르셔야 합니다.”
“자네가 내게 명령하는 건가? 거듭 말해 왔지만 난 이제 자네한테서 시중을 받을 수가 없어. 고행기간이 끝날 때까지 내가 이 마을에 머물 수 있으려면 앞으로는 자네가 이 집에 드나들지 않는 걸세.”
“안됩니다. 고행기간이 끝날 때까지 저는 어르신께 시중을 들어드려야 합니다. 저도 거듭거듭 그 사실을 어르신께 말씀드려 왔습니다. 저는 고행기간 동안 어르신을 지성껏 시중 들도록 계약을 맺은 처지입니다.’’
“계약 상대는 물론 사탄일테지. 나는 나도 모르게 맺은 그 계약에 얽매여야 할 책임도 의무도 없네. 내가 이 마을을 떠나건. 자네를 떠나건 자네한테 알려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어르신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만일 어르신께서 고행의 남은 기간 동안 저의 시중을 거절하시거나 저를 남겨 두신 채 이 마을에서 떠나 가신다면 저는 어르신이 속한 교단에 찾아가서 어르신께서는 고행을 하시지 않고 휴양을 하셨을 뿐이라고 보고하겠습니다. 냉정 하게 판단하셔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구나.”
“제가 밥을 지어 드리는 것이 정 거북하시면 전기밥솥을 사 드리겠습니다. 반찬도 경우에 따라 손수 해 잡수십시오. 그렇지만 쌀과 반찬 재료는 제가 구해 드리는 것으로 하셔야 합니다. 제가 드나드는 것이 싫으시면 되도록 삼가겠습니다. 그러나 어르신과 저는 항상 연락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합니다.”
“자네는 나를 자네의 포로라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저는 어르신을 시중 들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현실적으로 말해보세. 자네 내외와 이 마을 사람들의 적대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자네 시중을 받는 일이 바람직하겠나? 이 마을 집들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고, 장독대를 깨고 하는 장본인이 자네와 정선댁이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 모두 알고 있을 걸세.”
그분의 말이 내 생각의 그물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성자인 그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어르신.”
나는 그분 앞을 물러나오면서 밤에 그분이 묵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거나 돌멩이를 던지자고 마음 먹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