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묵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거나 돌을 던지자는 생각은 즉흥적이기는 하지만 내 딴에는 그분에 대한 각별한 배려였다. 그분의 말 대로 동네 집들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일이 나와 정선댁에 의해 저질러지는 짓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믿고 있다면 그분도 동네 사람들의 의심의 과녁이 되어 있을 터였다. 그분은 나와 함께 이 동네에 왔고, 그 동안 줄곧 내 시중을 받아 왔으니 말이었다.
그분이 묵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르거나 돌을 던짐으로써 그런 일을 저지르는 장본인이 나와 정선댁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시킬 수 있다고 미리 계산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 분과 내가 한통속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생각을 흐트러 놓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자기 편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일을 그럴 듯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문제가 없지 않았다. 그 분이 묵고 있는 집에 불을 지를 때 동네 사람들이 속히 달려와 불을 꺼 주려고 할지 의심스러웠다. 그보다도 그분이 놀라지는 않으려는가.
그날 밤에는 동네에 불이 난 집도 돌이 날아든 집도 없었다.
“귀신두 쉬는 날이 있나부네.”
이튿날 아침 정선댁네 담을 넘어온 말소리였다. 평소에는 정선댁네 집 가까이 오려는 동네 사람이 없었으니 지난 밤 정선댁네 집안 동정을 숨어서 엿보던 사람이든가, 아니면 일부러 정선댁네 집 담 밖을 지나며 집안 사람 들으라고 동네 사람 누군가 한 말이기 쉬웠다.
맡아 놓은 일은 없었지만 나는 해가 퍼지기 전에 집을 나섰다. 인근 동네 몇 군데를 들른 뒤 읍내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물력가게도 찾아가 미장이 일거리가 있나 알아보고, 전기밥솥과 겨울 용품을 사올 요량이었다. 그분의 말이 아니더라도 동네 사람들과의 사이가 이렇듯 험악해진 터에 그분 처소를 너무 자주 드나드는 일은 스스로 삼감이 마땅할 것 같았다.
들판에서는 추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김장밭은 실하게 부풀어 오르며 파란 색깔을 엷어진 햇살 속으로 싱싱하게 되쏘아내고 있었지만, 콩밭 · 팝밭 · 수수밭 이랑은 대가 뽑히고 잘려 휑뎅그렁 빈 것이 버려진 땅 모양이었다. 벼 베어낸 논배미도 피부병 걸려 털 빠진 소잔등 꼴이었다. 거기 곡식 포기 걷어낸 빈 자리에서 스산한 바람과 느낌을 뿜어 올리는 것 같았다.
첫번째 들른 동네의 이장은 집에 있었다.
'이장님, 전 미장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 아궁이, 하수도, 담장···. 미장일이 필요할 때두 저를 불러 주십시오. 되도록 싼 값으루 일해 드리겠습니다.”
“그럴 일이 있으믄 불르겠우. 내가 유서방을 살펴보니 바탕이 착하구 착실해서 얘기하는 거니 귀담아 들우. 요근래 샘골에서 불이 자꾸 나거나 이상한 일이 일어난대던데 그게 증말이우?'
“예”
“유서방이 데리구 사는 정선댁이 그 짓을 한다구 소문이 퍼졌던데 그두 증말이우?'
'...'
“그게 증말이래믄 앞으룬 그런 짓 못하게 유서방이 말리시우, 꼬리가 길믄 밟히는 거지. 여직까진 장난 같아 큰일이 벌어지진 않아 다행스럽지만, 장난두 이어지믄 큰일루 번지는 법이우, 그건 그렇구, 내가 유서방한테 할래는 말은 따루 있어. 여직까진 동네 사람들끼리 밤에 망을 봤지만 인제부턴 순경들이 샘골에 가서 망을 보기루 됐대는 거유, 여직은 꼬리가 잡히지 않아 짐작일 뿐이지만 꼬리가 잡히는 날이믄 동네에서 쫓겨나는데 그치지 않구 감옥살이를 해야 할 판이래. 나한테 들었단 말 누구한테 옮기지 말구 정신 바짝 차려 조심하우, 또 불지르구 돌 던지는 장난 같은 거 오래 끌 일이 못돼.”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이장 앞을 물러 나오며 그렇게 인사했다. 나는 두어 동네 더 들르려다가 그만두고 곧바로 읍내로 향했다. 그분과 나의 계약관계가 길게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내 머리속에 떠올랐다. 곧 겨울이 될 것이고, 그 겨울이 끝나면 계약기간도 끝나게 된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분은 누더기 벗어 던지듯 미련 없이 이 마을을 떠나리라. 나는···? 덫에 걸려 있는 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생각지도 않게 정선댁과 부부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과연 샘골마을 사람들에게 정선댁이 귀신 들린 여자가 아닌 예사로운 여자임을 증명하고 화해시킬 수 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자신을 느꼈다. 나는 억울한 처지에 있는 정선댁 편에 서서 동네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억울하게 동네 사람들에게서 악귀로 몰리던 정선댁은 정말로 악귀가 되려고 작정한 듯 처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부부관계를 맺은 뒤로 뚜렷해졌다. 정선댁 가슴 속에 서리고 맺혔던 원한이 악귀로 화하는 데 내가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일까.
나는 예상 못했던 상황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고, 그것은 덫이 되어 내 한 쪽 발목을 옭아맨 꼴이었다.
나는 동네 안에 살면서도 동네 밖에 있었다. 나는 동네 안에 살면서도 동네 밖으로 밀려 나가 있던 정선댁을 동네 안으로 끌어 들여 놓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선댁에게 다가갔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정선댁의 보호자 되기를 자청했었다. 동네 사람들이 완력으로 정선댁을 쫓아내거나 질식시키지 못하게 방패 노릇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신성한 임무라는 각오까지 했었다. 물론 초희의 영상이 정선댁에 겹치기 때문이기도 했다. 죽은 초희를 재생시키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빚어내 놓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이나 동네 사람들의 눈에 나와 정선댁의 결합은 정욕과 악귀의 야합으로 비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문제는 동네 사람 앞에 정선댁의 모습을 악귀에서 사람으로 바꿔 놓을 능력이 내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그분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의 눈에 어느만큼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던 나는 정선댁과의 결합으로 다시 사탄의 모습으로 곤두박질치고 만 것이다.
읍내에 닿자 나는 우선 물어물어 물력가게부터 찾아갔다.
“미장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거리가 많습니까? 많으면 저두 불러 주십시오.'
나는 우선 탐색해 본다는 속셈으로 말을 건넸다.
“일거리두 많구, 기술이 좋으믄 일 맡기 어렵지 않지. 어디 살우? 전화번호를 적어 노시우.'
물력가게 주인은 내 위아래를 훑어보며 쉽사리 대꾸했다.
“지금은 삼십리 떨어진 내면 샘골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전화도 없구요.'
“일을 맡을래믄 읍내루 이사를 오거나 전화를 놓거나 그럴 형편이 못되믄 오토바이래두 사가지구 날마다 아침 저녁 들러볼 수밖에 읎지 뭐.”
'잘 알겠습니다. 다시 찾아 뵙구 의논 드리겠습니다.”
나는 물력가게를 물러나와 전기밥솥 파는 가게를 찾아갔다.
한 시간 반쯤 뒤 읍내를 떠나는 내 손에는 전기밥솥과 담요 두 장과 젓갈 · 장아찌 · 통조림 따위 밑반찬을 담은 꾸러미 셋이 들려 있었다.
두 시간에 한번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 샘골에 돌아오는 대로 나는 그분의 거처로 갔다.
“자네는 나를 동네 사람들한테 자네 괴수로 알리려는 속셈인가?'
그분은 정말로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실은 지난번 뵈었을 때 들려주신 어르신 말씀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되도록 어르신 찾아 뵙는 횟수를 줄여보려구 이런 물건을 장만해 왔습니다.'
나는 그분 앞에 사온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이게 뭔가?'
그분은 의심을 담은 눈빛으로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제가 진지상 차려 드리는 일을 마다하시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 손수 지어 잡수겠다는 말씀에 따르기 위해 전기밥솥을 사왔습니다.”
“받을 수 없네. 어서 다 싸가지고 돌아가게, 정선댁 주게.”
“이 물건들은 저나 저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누구의 돈으루 산 게 아닙니다. 어르신의 돈으루 샀습니다. 지난 봄 어르신께서 일하신 몫으로 받은 품삯은 너무 귀한 돈으로 여겨져 제가 따로 간직해 왔습니다. 어르신께서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으셔두 됩니다.”
“무슨 소리야? 언젠가 경찰관 파출소에선가 지서에선가 나와 자네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털어 내놓았지 않았나? 자네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는 고질병 환잔가 보네. 아니, 내가 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고질병 환자라니. 자네의 목표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데 나는 그 점을 가끔 잊어버리곤 하거던, 거짓말이 자네의 변할 수 없는 속성들 가운데 하난데 말일세. 내가 감복해서 자네 앞에서 눈물이라도 흘리게되기를 바라나? 아니면 전기밥솥과 담요 따위로 내 손발에다가 마음까지 묶을 심산인가? 썩 가져가게.”
“전구와 전기줄을 함께 꽂을 수 있는 소켓과 코드 달린 전기줄을 마련해 왔습니다. 전기밥통에 달린 전기줄을 코드에 연결시킨 뒤에 '취사' 단추를 누르고 기다리시면 저절로 밥이 됩니다. 물론 쌀을 씻어 밥통에 안치고 나서 말입니다.'
나는 방 천정에 매달린 소켓에서 전구를 빼어 새 소켓에 꽂아 다시 원소켓에 끼우고는 거기에 코드 달린 전기줄을 연결시켰고, 거기에 다시 밥통의 전기줄을 연결시켰다. 밥통 전원에 불이 켜졌다. 나는 '취사' 단추를 눌렀다. 전원의 빨간불이 취사' 쪽으로 옮겨갔다.
“어르신. 제대로 작동을 합니다. 전기밥통을 사용하시면 묵상하시는 시간, 경전 읽으시는 시간, 산책하시는 시간 따위를 좀더 여유있게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또 제가 어르신을 찾아 뵙는 횟수를 줄일 수도 있구요.'
'필요없네.”
“사용하십시오.”
'자네 괴수가 그렇게 강요하라고 시키던가?'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울 계신 어르신 사모님의 간곡한 권유이십니다. 배후에서 제게 지시를 내리시는 분이 계시다면 오직 한 분 어르신 사모님뿐이십니다.'
'간교한 것,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구나. 네 말대로 내 집사람마저 포섭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내가 의지할 데를 잃고 너무 외로워서 휘청 거리고 쓰러질 줄 아니? 어림도 없다.'
“전 어르신께서 묵으시는 이 집 한귀퉁이에 불을 지르자는 생각을 품었었습니다. 동네 다른 집들에는 불이 나든가 돌이 날아 들든가 하는데 어르신께서 묵으시는 집과 정선댁네 집만 무사하다면 동네 사람들이 어르신과 정선댁을 한통속으로 몰아부치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있다더니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소리가 바로 그 소리로구나. 그토록 나를 생각해 주는 자가 이런 물건들을 사 들고 나를 찾아 와? 앞뒤가 맞게 일을 처리해야 속아 넘어가기라도 하잖아? ”
“제가 이 물건들을 들구 이리로 오는 걸 본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알고 묻는 사람이 있거든, 그토록 나쁜 놈인지 모르고 고용했다구 대답하십시오.”
'내가 할 대답까지 미리 정해 주는 거냐?'
'이 물건을 사러 읍내로 가다가 안골마을에 들렀었습니다. 그 마을 이장이 귀띔해 주는 말이 경찰이 여기 샘골마을에 파견되기루 했으니 정선댁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라는 거였습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 하면서 지껄이는 말이 뭔지 알아 듣지 못하겠구나.'
“어르신. 일어난 대로 저질러진 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밤중에 동네 집에 불을 지르구 돌을 던지구 한 건 정선댁 짓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벌써 다 짐작하고 있는 사실인 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짐작일 뿐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증거를 잡으려구 밤샘을 하다시피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정선댁은 그림자처럼 집을 빠져나가 진을 친 동네 사람들 틈새를 바람처럼 헤집고 다니며 동네 집에 불을 지르구 돌을 던지구는 그림자처럼 집안으로 스며들어옵니다. 일을 저지르구 집에 돌아온 정선댁은 신령의 제단을 만들어 논 구석방에 들어가 자기가 하고 온 일을 신령들한테 알리는 듯 머물러 있다가 나와 다시 잠자리에 들곤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정선댁 짓일 거라고 짐작은 하면서두 증거는 잡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를 잡으려구 밤이면 경찰관이 이 동네로 스며 들어오도록 돼 있으니 정선댁 단속을 잘하라는 게 안골마을 이장의 귀띔이었습니다.'
“자네와 정선댁은 한통속이 아니라는 말이로군.”
정선댁을 그렇게 만든 건 동네 사람들입니다. 제가 정선댁과 부부가 돼 가지구 동네 사람들한테 성심성의로 대하면 동네 사람들도 결국은 정선댁을 예삿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려니 생각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동네 사람들과 정선댁이 물과 기름 같아도 내용은 다같이 물이거나 기름이어서 겉껍질만 벗겨내면 다시 하나로 합해질 수 있으려니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과 정선댁은 겉만 아니라 속까지도 아주 다른 물과 기름으로 굳어 있었습니다. 제 능력 밖에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정선댁과 깊숙이 얽혀 있는 처지라는 생각도 떼어내지 못합니다. 결국 저는 정선댁과 뜻을 같이하지 못하면서도 정선댁의 편에 서야 하는 예사롭지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된 꼴입니다.”
“자네는 정선댁과 같은 종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구만. 나더러 자네의 그런 주장을 동네 사람들한테 이해시켜 달라는 주문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속마음을 자네가 지니고 있다면 자네 스스로 하게나. 나는 내가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믿고 이해하라고 권하지는 못하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전기밥통과 담요와 밑반찬은 어르신께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사탄이 전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사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도 결국 신이 창조한 물건입니다. 사탄은 이적을 행할 수는 있으되 창조하지는 못한다는 글을 어디서 읽었거나 들은 일이 있습니다. 신만이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저의 괴수인 사탄은 창조하지 못 합니다. 어르신께서 섬기시는 신만이 창조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사탄은 신과 대항할 상대가 못됩니다. 이 밥통과 담요와 밑반찬을 만에 하나 사탄이 보냈다고 한대도 그 근원은 신에게 닿아 있습니다.'
“끝없이 해괴한 소리만 지껄이는구나. 내가 또 유혹에 져서 너와 이 따위 쓰레기 같은 말을 주고 받고 있구나, 고만 물러가라.”
나는 몸을 일으켜 그분 앞을 물러나왔다. 전기 밥솥과 담요와 밑반찬을 가져가라는 호통이 뒤따랐지만 그것들이 날아와 내 뒤통수나 등을 때리지는 않았다.
그날 밤 정선댁과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나는 정선댁에게 말했다.
“순경들이 밤이면 와서 지킬거래. 순경은 동네 사람들과는 달라. 한동안 밤에 밖에 나가는 일을 고만둬, 불을 지르구 돌을 던지다가 잡히는 날이면 징역살이하게 될지두 몰라. 아니, 징역살이하러 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한테 매맞아 죽게 될지도 모르지. 동네 사람들은 당신을 때려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 왔어. 알아 들었지?'
정선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 정선댁은 방을 빠져 나가지 않고 내내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밤이 되고 밤이 깊어가고 이윽고 새벽닭 울음 소리가 들리도록 동네에서는 불이 나는 일도 돌멩이가 집안으로 날아드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순번을 정해 여전히 밤을 지키며 기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순경들도 스며 들어와 올빼미눈처럼 밤 어둠 속을 살피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짐작뿐이 아니었다. 이웃 마을 이장이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순경이 와서 지키니까 밤이 조용해졌다구 그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리데.'
그런데 조용한 밤이 열흘쯤 이어지던 어느 날 이었다. 잠든 내 귀를 무슨 소리가 흔들어 깨웠다.
'불이야! 귀신불이다!'
내 귀가 불이야! 소리를 확인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다. 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옆자리가 그득하니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옆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이 정선댁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정선댁이 누구를 대신 뒤어 놓고 빠져나가 밤을 소란하게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서는 가볍게 코고는 소리마저 들렸다. 나는 옆 사람의 잠을 흔들어 깨웠다.
“왜 그래유?'
정선댁의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밖에서는 다시 불이야!를 외치는 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었다.
“당신 저 소리 들리지? 당신 혹시 바깥에 나갔다 온 거야? ”
“순경이 숨어 지킨댔잖아유? 날 저문 뒤루 바깥에 나간 적 읎대유.”
'불이야! 귀신불이다!”
외침 소리가 들렸다.
'불이 났다구? 귀신불이라구? 뉘 집에서 불이 났지?”
정선댁이 바깥 소리를 따라 하듯 하며 윗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마치 불난 데로 달려가 볼 기세였다. 나는 정선댁의 팔을 잡았다.
“왜 이래? 잠자쿠 누워 있어.'
'불이 났대잖수? 내가 논 불두 아니구 말유.'
“잠자쿠 있어. 밖에 나갔다간 불지른 죄를 당신이 뒤집어 쓰게 될지도 몰라.'
나는 정선댁의 팔을 좀더 힘주어 잡았다. 정선댁은 말귀를 알아 들었는지 일으켰던 윗몸을 다시 요 위에 뉘었다.
“귀신불이래는 걸 보믄 잘못해서 낸 불이 아니라 모르는 새에 까닭이 불이 났다는 얘긴데···. 누가 일부러 지른 걸까, 저절루 일어난 걸까?”
정선댁은 퍽이나 궁금한 듯했다.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대로 된 동네 사람이라면 이렇게 누워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동네에 불이 났다는데 외면하고 있으면 욕먹을 노릇이 아닌가. 혹시 나를 떠보기 위해서 일부러 꾸민 연극일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쫓아 나갈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방화범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그 동안 동네 사람들에게서 줄곧 의심을 받아온 터였다.
얼마 후 불이야 소리는 잦아들었다. 밤도 다시 괴괴한 어둠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하루 건너 또는 이틀 건너 불이 났다. 그 사이 사이에 돌멩이가 집안으로 날아드는 일도 끼어들었다. 마치 정선댁이 일을 저지르던 때와 흡사했다. 하지만 정선댁과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정선댁을 단단히 단속했다. 날이 저문 뒤에는 대문 근처도 가지 못하게 했다. 요강을 방에 들여 놓고 오줌은 요강에서 누도록까지 했다. 그런데 하루 건너 이틀 건너로 불이 나곤 했다. 돌멩이가 집안으로 날아드는 일까지 치면 매일이다시피 해괴한 일이 일어나는 셈이었다. 큰 불은 아니었다. 뉘 집 울타리에 불이 붙거나, 헛간이나 뒷간의 처마 끝에 불이 붙곤 했다. 인심이 흉흉해지는데 비해 불은 그을린 자국을 남기는데 지나지 않을 만큼 미미했다.
귀신의 장난이기 쉽다는 소문이 동네를 돌았다. 그것은 동네에 부정한 기운이 차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부정한 기운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동네 사람들은 정선댁과 정선댁네 집, 그리고 정선댁의 식구들을 지목하며 쑤군거렸다.
그럭저럭 추수가 끝나고 계절은 겨울로 접어 들고 있었다. 살얼음이 얼고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기도 했다. 한데 그때까지 귀신의 불장난과 돌멩이 던지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신령의 힘을 받은 사람은 생각만으루두 불을 지를 수가 있구 돌멩이를 던질 수가 있대더군.'
이웃 마을 이장이 내게 전해준 말이었다. 나는 어느날 밤 그 말을 별 생각 없이 정선댁한테 전했다.
'증말이래유? 그런 신통한 심을 가지구 있대믄 얼마나 멋있을까? 어디 한번 해볼까?'
정선댁은 자기가 혹시 그런 신통력을 지녔나 해서 집안 여기저기에 짚이나 가랑잎 따위를 모아 놓고 실험을 해보는 것 같았다. 정신을 모아 불이 붙으라고 마음속으로 거듭거듭 외워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못된 마음으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나와 정선댁 머리에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그것은 정선댁과 나를 모함해 곤란한 처지에 빠뜨리기 위한 목적을 지닌 듯했다. 동네 사람들은 불장난과 돌멩이질의 장본인이 정선댁과 나라고 지목하고 있으니 말이었다.
'어떤 년놈의 짓인지, 내가 그것들을 붙잡구 말 테니까.”
이윽고 정선댁이 말했다.
“잠자쿠 있어. 뱃속의 애가 놀래.”
'내가 밤마다 꼼짝 않구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데두 저것들은 나한테 뒤집어 씌우잖우? 잠자쿠 있어두 저것들은 나한테 허물을 뒤집어 씌워 나를 동네에서 쫓아 내러 들 텐데두? 그러니까 못된 장난질하는 년놈을 찾아내야 한대유.'
정선댁의 음성은 그 올이 좀더 팽팽하게 잡아 당겨져 있었다. 정선댁은 나에 앞서 위기의식을 체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동네 사람들한테 불장난, 돌멩이질을 가르쳐 준 꼴이 된 것 같아.'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나는 지나치게 정선댁 신경을 자극하지 않을까 해서 움츠리며 정선댁 반응을 살폈다.
“저것들이 내 목을 조여 오는데 잠자쿠 있으란 말이래유? 핑계를 줬을진 모르지만 저것들은 어차피 나를 죽일 흉계를 꾸며낼 거래유. 당신한텐 미안해유, 애무한 당신을 싸움에 끌어들인 거 같대유.당신과 내외간이 되믄 저것들이 나를 미워하는 대루 이냥저냥 살아 가두룩 내버려 둘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잖아유?'
정선댁 대답은 예상보다 침착했다. 나는 가슴 속에 기대가 품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선댁은 이치에 맞는 생각을 가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나 자신도 은연중 정선댁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치부해 왔었다는 것일까.
“여보, 이럴 것 없이 여기를 떠납시다. 당신 고향으로 가도 좋고, 여기가 정이 들었다면 삼십리 밖 읍내쯤으로 옮겨 앉아도 좋아. 아니, 당신 처녀 때 서울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었다구 했지? 난 오랫동안 서울서 살아서 자신이 있어. 열씸이 벌어서 아이들 모두 대학교까지 공부시켜 줄 테야. 애들이 여기서 괄시 받아 움츠리구 살아가야 할 까닭이 없잖아?'
여느 때 같으면 펄쩍 뛰었을 정선댁이 입을 다문 채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당신도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기를 펴구 자랄 수 있도록 해줘야 옳잖아? 당신 뱃속에 든 아이를 이런 데서 태어나 자라게 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어. 끔찍한 일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어보며 정선댁 대답을 기다렸다.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 정선댁이 입을 열었다.
“이대루 여기를 떠나가믄 영영 귀신 들렸다는 누명을 벗어나지 못한대유.'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건 우물 안 개구리 꼴이야. 샘골 사람들이 당신을 귀신 들렸다고 하건 귀신이라고 하건 서울에 가면 아무 뜻도 없어져. 그런 소리를 서울에서 하면 오히려 놀림감이 돼. 내년 봄에 떠나겠다고 동네 사람들한테 말을 하자구. 그러면 쓸데없는 싸움은 끝날 거야. 나를 믿어. 당신과 당신 아이들, 그리고 당신과 내 아이가 남한테 업신여김 받지 않구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구 밑받침을 해 주겠어. 그래, 그렇게 하자구.'
나는 말을 마치고 정선댁 손을 더듬어 잡았다. 정선댁은 손을 빼내 가지 않았다.
“그래유, 그렇게 해보지유 뭐. 그치만 한 가지 만은 해 놔야겠어유. 불지르구 돌멩이 던지는 짓 하는 년인지 눔인지를 잡아내는 일만은 해야겠어유. 그러지 않으믄 난 억울해서 동네를 떠나지두 못하구 가슴이 곪아 터져 죽을 거래유.'
“내 생각으룬 그 일마저 당신이 참았으면 좋겠어. 잘못하다간 당신이 뒤집어 쓰게 될지도 몰라. 차라리 허구한 날 밤새도록 집안에 불을 밝혀 놓구 당신과 내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네 사람들한테 증명해 보여 주는 게 낫잖아?'
“그 한 가지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두 참을 수가 없대유. 메칠만 기달려유. 내 어떤 년인지 눔인지를 내 손으루 꼭 잡아 놓구 나서 동네 떠날 차비를 할 치예유.”
내 손 안에 잡힌 정선댁 손이 굳어지며 부르르 떨렸다. 꺾을 수 없는 고집 같았다. 모험이었다.
'정 그렇다면 나도 당신 따라 장난질하는 작자 잡으러 나서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일과는 별도로 정선 댁이 여기를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을 동네에 흘려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이 동네 이장이나 노인어른을 찾아가서 뜻을 내비칠 수도 있고, 이웃 마을 이장을 찾아가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내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그날 아침, 나는 정선댁이 차려 준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 그러나 내 발길은 우선 그분에게로 향했다.
'어르신. 정선댁을 설득했습니다.'
'...'
그분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눈길로 나를 힐끔 본 뒤 눈길을 천정으로 옮겼다. 방안 온도가 따뜻한 만큼 높지는 않아도 손 시리지 않을 만큼은 되었다.
“내년 봄 이 동네를 떠나가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내년 봄까지는 이 동네를 망쳐 놀 수 있겠다는 계산이 됐나?'
그분은 윗목벽 쪽에 눈길을 보낸 채 비꼬듯 말했다.
“싸움에서 지고 물러서기루 했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지. 정선댁 가슴에 못박힌 원한이 그렇게 쉽게 녹아 없어지겠나?'
“요즘 동네에 불이 나고 돌멩이가 날아드는 건 정선댁 짓이 아닙니다. 그 작자를 잡아내는 일을 끝으로 동네 사람들과의 싸움을 고만두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자가 그렇게 쉽게 잡히겠나? 시간을 끌게 되고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
헛간에 나무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서둘러 산에 올라 나무 한 짐을 해 그분의 거처 헛간에 부리고 나니 점심 때가 지나 있었다. 오래간만에 그분과 겸상해 점심을 먹고 나서 이웃 마을로 갔다. 면사무소에 갔다는 이웃 마을 이장을 기다려 만나 정선댁과의 합의사항을 말하고 돌아오는 길에 섰을 때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집에도 착했을 때는 온전한 밤이었다. 정선댁이 집에 없었다.
“엄마 어디 갔니?'
'순경이 엄마 잡아갔대유.'
정선댁 딸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순경이 잡아갔다구?'
나는 아이의 말을 되받으며 방금 지나온 대문 쪽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어둠의 벽이 대문을 막고 서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