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집에 불지르고 돌멩이 던지는 자를 붙잡겠다고 집 담장 밖으로 나갔다가 동네 사람들이 놓은 덫에 걸렸구나, 내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들면서 밤 어둠 속에 정선댁 모습이 떠올라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밤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무엇을 찾아야 할 경우와 맞닥뜨린 듯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분한테 가서 의논을 해야 하나. 아니, 동네 어른들한테 가서 사정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좀 전에 지나 들어온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대문간을 벗어나기 전에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니 안채 댓돌 위에 정선댁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웅숭그리고 서 있었다. 잊고 있었던 겨울 밤의 찬 기운이 섬뜩하니 느껴졌다. 나는 돌아서서 아이들한테로 다가 갔다.
'밥 먹었니?'
'예.'
딸아이가 대답했다.
“추운데 방에 들어가 있어라. 방바닥은 뜨뜻한가?'
나는 방에 들어가 방바닥을 짚어 보았다. 따뜻했다. 나는 이부자리를 내려 깔았다. 아이들이 따라 들어와 방문 앞에서 있었다. 웅숭그린 채였다.
'요 밑으루 들어가라. 엄마도 밥 먹었니?'
'아니유. 아버이 오믄 같이 먹는대믄서 우리 먼저 먹으랬대유.”
딸아이가 대답했다.
“나 엄마한테 갔다 올 테니 느이들은 밖에 나가지 말구 자라.”
나는 아이들이 이불 속에 들어가 눕는 것을 보고 방에서 나왔다. 나는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이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설겆이통에 들어 가고, 새로 차린 밥상이 부뚜막 한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솥에서 밥만 퍼 담아 올려 놓으면 되었다. 시장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나는 밥상에서 등을 돌렸다.
나는 대문 밖에서 잠시 멈춰섰다가 걸음을 옮겼다. 면소재지까지의 오리길이 어둠과 찬 바람 속에 버림받고 팽개쳐진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움츠려 굳어진 길 위를 터벅터벅 걸으면서 나는 잠시 마취된 듯 정신이 가물가물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인 동작처럼 발을 옮겨 놓고 있었다. 흩어졌던 정신이 모이면서 의문이 떠올랐다. 여기가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둠과 추위와 찬 바람 속에 배어들어 있는 텅 빈 들의 황량한 냄새가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문득 발걸음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가기 싫었다. 무엇에 손발이 묶여 질질 끌려가는느낌이었다. 그분을 따라 길을 떠날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에요.'
여자 목소리였다. 내 귀에 익숙했다. 초희 얼굴이 어둠 속에 떠올라 보였다.
'잘못이라니? 그럼 내가 그분을 따라 길을 떠날 때 잡혀 간 정선댁을 찾아서 이렇듯 어둡고 추운 밤길을 혼자 걸어가게 되리라는 걸 예상했었단 말이야? ”
나는 항변했다.
'면소재지 지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여자는 정선댁이 아니라 저예요.”
“초희가 유치장에 갇혀야 할 이유가 없잖아? 초희처럼 착한 여자가 말야?'
“겉으로는 감추고 있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남의 집에 불 지르고 돌멩이 던지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치밀어 오르곤 했었어요.'
“믿지 못하겠는 걸? 초희 말이 사실이라면 나같은 인간한테 그토록 헌신적일 수가 없었을 텐데?'
“당신과 저는 같은 종자였으니까요. 전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 마음 속에 남의 집에 불 지르고, 싶은 충동, 돌멩이 던지고 싶은 충동이 꽉 들어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로 하여금 이 차구 어두운 밤길을 걷도록 만든 힘이 초희 바로 당신이란 말이야?'
“그래요. 당신도 알구 있었잖아요?'
회의로 흔들리던 내 가슴 속이 의무감으로 채워지면서 팔 다리에 힘이 붙는 것을 느꼈다. 찬 바람이 떠도는 어둡고 황량한 들길은 내가 걸어 가도록 예비된 길이었다.
“자수하러 왔우? 그렇지. 제 발루 걸어 찾아와야지.”
내가 정선댁의 남편임을 알렸을 때 지서 순경이 한 말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구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 이번 사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정중하고 공손하게 대꾸했다.
'당신과 공모해 저지른 일이랬다구, 당신 여편 네가 불었어, 딴소리해야 안먹혀.'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자발적으로 찾아왔습니다.'
나는 취조 경관의 실랑이질을 당하며 내가 샘골에 오게 된 경위에서부터 정선댁을 만나 결혼하게 된 과정을 거쳐 지서에 찾아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취조 경관은 내 말을 귓등으로 넘겨버리며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마침 내가 야근하는 날이니 어디 누구 가면이 벗겨지나 밤샘하며 겨뤄보자구. 한 가지만 예언을 해 두지. 낼 아침이 되믄 당신 내외는 수갑을 차구 읍내 경찰서루 넘겨질 거야. 그것만은 바뀔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야. 그러니 거짓말 꾸며 대느라구 밤샘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범행을 고백하구서 잠을 자두는 쪽이 실속 있잖아?'
“형사님, 수많은 사람을 대해 보셔서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알아내는 눈과 귀를 가지구 계시잖습니까? 제가 감옥살이한 일까지 속속들이 뒤집어 보여 드렸습니다.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이 악물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죄진 눔들이 한결같이 지껄이는 소리야. 낼 읍내 경찰서에 가서 다시 한번 재주껏 지껄여 봐” 취조 경관은 새벽까지 나를 붙들어 앉혀 놓고 이리 쑤셔보고 저리 찔러보고 하다가 수갑을 채워 숙직실에 밀어 넣었다.
“대접하느라 숙직실에 뫼신 게 아니야. 당신 예펜네와 격리시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야.”
나는 수갑을 찬 채 숙직실 따끈한 방바닥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이튿날 아침 경관이 깨워 잠에서 깨어났다. 경관이 수갑을 풀어 주었다.
'혐의가 없어서 풀어 주는 게 아니야. 아직 증거를 못잡아 풀어 주는 거뿐이야. 언제 다시 불러들일지 모르니 집에 가서 대기하구 있어. 멀리 가믄 안돼.”
“제 집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나는 주뼛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본인도 범행을 자백했구, 당신두 그 범행을 증언했잖아? 경찰서루 넘어가서 재판을 받게 될 거야.”
“요즘 일어난 불장난 돌팔매질은 제 집사람과는 상관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검사 판사가 잘 알아서 처리하겠지.”
나는 뜨끈한 국밥을 정선댁한테 사식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고 지서 정문을 바라볼 수 있는 음식점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도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었다. 정선댁은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음식점에서 나와 서성거렸다. 해가 훨씬 퍼진 뒤에야 정선댁이 수갑을 찬 모습으로 지서를 나왔다. 그러나 땅으로 눈길을 떨군데다가 금세 호송차에 올라 눈길을 마주칠 틈이 없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사이 호송차는 떠나버렸다. 내 가슴 속에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던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 있었다. 나는 샘골을 향해 텅 빈 들판 한옆으로 구불구불 뻗은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목구멍까지 차 오른 말들을 중얼중얼 토해냈다.
'여보, 정선댁. 큰 죄를 진 건 아니니 큰 벌을 받게 되진 않을 거요. 집에 있는 두 아이는 내가 잘 건사할 테니 걱정 말아요. 당신은 당신 몸과 당신 뱃속에 든 아이 걱정만 하면 돼요. 그리고 내 가끔 당신 만나보러 가리다.'
샘골 집에 돌아오자 나는 아이들이 밥을 찾아 먹은 것을 확인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는 그 분의 거처로 갔다.
'춥지 않게 주무셨습니까? 조석은 거르지 않으셨는지요? 정선댁이 어젯밤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늦게 소식 듣구 면소재지 지서에 쫓아갔다가 밤새워 취조를 받고 아침에야 풀려 나왔습니다. 정선댁은 읍내 경찰서로 넘겨졌습니다. 재판을 받아야 한답니다.”
나는 보고하듯 말했다.
“역시 귀신이 정선댁과 자네를 동네 밖으로 놓아 보내려고 하지를 않는구만.'
'예?”
'일회전은 정선댁이 졌구만.'
'예?'
'정선댁은 형을 살면서 가슴에 품은 원한을 더 키우겠지. 정선댁이 형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회전이 벌어지겠지. 자네는 어떻게 할려나?'
'정선댁이 풀려 나올 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자네가 정선댁 싸움을 떠맡을 텐가?'
“정선댁 없는 동안에 동네 사람들과 화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네의 그런 마음을 받아들일까?”
“동네 어른들을 찾아가 정선댁과 제가 동네에서 떠나는 것을 조건으로 선처해 줄 것을 빌어보겠습니다.”
“정선댁은 일종의 미수범이니까 동네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선처해 달라고, 처벌을 원하지않는다고, 의사를 밝힌다면 참작이 되겠지. 그렇지만 동네에서는 자네와 정선댁이 동네에서 떠나간다는 조건을 먼저 실천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나설지도 모르네. 그럴 경우 자네가 그런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가 있겠나? 다시 말하자면 정선댁이 무조건 항복을 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정선댁이 과연 무조건 항복을 하겠느냐 말일세”
'힘 닿는 데까지 설득을 하겠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잠깐만 더 앉아 있게.”
그분이 제지했다. 나는 일으키려던 몸을 주저 앉혔다.
“따져보면 내가 자네한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네. 자네와 나의 관계라는 건 억지 관계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일세.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자네와 내가 일년 가까이 엎치락 뒤치락 뒹굴며 지내다시피한 사이이니 말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네.”
그분의 표정이 좀 전보다 엄숙해졌고, 말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어르신, 저는 제가 툭하면 어르신을 찾아뵙구 자자분한 일을 가지고 의논이랍시고 드려 귀찮게해드리는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때 그때 제게 마다 않으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어르신께 깊이 감사 드리는 마음 지니구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저는 마음속으로 어르신을 정신적 지주로 뫼시구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앉은 채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린가? 내가 자네한테 하려는 말을 잠자코 듣게.”
'예. 죄송합니다.”
“내 출타 기간 일년이 다 돼 가네. 그 동안 어쨌든 자네 신세 많이 졌네.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네. 그래서 자네한테 미리 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네. 오늘 당장은 아니지만 수일내에 이 동네를 떠나겠다고 마음을 정했네.'
'예?'
'이 동네가 지나치게 시끄럽고 어수선해져서 더 머물러야 할 처지가 못된다는 생각을 해 오던 차에, 동네에서 나를 찾아와 고만 동네를 떠나 달라는 통지를 했다네. 사정이 이러니 떠나야 하지 않겠나?'
내 머리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텅빈 머리속에 생각을 채워 넣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어르신께서 이런 수모를 당하시게 된 건 오직 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며칠만 더 참구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동네 어른들께 사정을 해보겠습니다. 정선댁과 제가 동네에서 떠나가겠다구 약속을 하면 어르신께서 추운 겨울에 거처를 옮기셔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르신, 좀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다시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러지. 일주일 동안 이 동네에 더 머무르겠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숙였던 머리를 쳐들어 그분의 얼굴을 바라본 내 눈에 그분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보였다. 미소는 곧 사라지지 않고 잠시 머물러 있었지만, 그분이 그 동안 꾹 다문 입가에 머금었던 어느 미소보다도 온기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분 앞을 물러나오는 대로 이장네 집으로 걸음 방향을 잡았다. 이장을 만나러 가는 목적은 정선댁보다는 그분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를 외면했고, 외면하는 얼굴에는 적의와 경계심이 알몸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이들은 걸음을 멈추었고,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며, 남자들은 가래 침을 긁어내 뱉었다.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니까 동네 모습도 낯설어 보였다.
“이장님 좀 뵈려고 왔습니다.' 이장댁 사랑방 앞에 수굿이 서서 주인을 찾았다.
'뉘시우?'
사랑방 미닫이문이 살짝 열리고 이장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머리와 허리부터 숙이고 꺾었다.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나는 당신한테 들을 말이 읎는데···”
이장은 물리치듯 했지만 문을 닫지는 않았다.
'동네 어른들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정선댁과 정선댁 아이들과 저, 이렇게 온식구가 이 동네를 떠나가겠습니다.”
“떠나가겠으믄 그냥 떠나믄 되지 허락이 무슨 허락이우?
“땅 두어뙈기 있는 거 동네에서 사주셔야 다른 고장에 가서 방 한 간이라도 얻어 살아갈 수 있잖겠습니까?'
'···'
“게다가, 동네 어른들께서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정선댁을 용서해 주신다면 더 쉽게 더 빨리 이 동네를 떠날 수가 있겠습니다.'
'어험, 어험, 정선댁을 용서하래니 무슨 소리우? 잘 알아듣지 못하겠우.'
“동네 어른들께서 용서를 해 주시면 나라 법두 용서를 한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동네 어른 들께서 뜻을 합해 정선댁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청을 넣으면 경찰서에서두 동네 어른들 뜻을 따라 너그럽게 처리를 해준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틀림없이 이 동네를 떠나가겠습니다.”
“죄를 지어 잡혀 간 몸인데 어떻게 동네 사람 들이 풀어 줘라 말아라 할 수가 있단 말이우? 말두 안되는 소리.”
이장은 방문을 닫아버리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방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이 끼고 있는지 햇볕이 내리지 않아 음산하고 추웠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장님. 이번 기회에 동네 어른들께서 먼저 맺힌 데를 푸십시오. 불이 집을 홀랑 태운 것도 아니구, 돌멩이가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아니어서 큰 벌을 받지 않게 됩니다. 집행유예루 풀려 나오게 되거나 기껏 몇달에서 일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될 뿐입니다. 정선댁이 풀려 나와 이 동네를 떠나지 않겠다구 버티면 동네로 봐서는 여전히 눈엣가시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동네 어른들께서 눈 딱 감구 은혜를 베푸신다면 십년 체증 같고 눈엣가시 같은 정선댁을 이 동네에서 떠나가게 할 수 있게 됩니다. 동네에서도 정선댁 식구들이 동네에서 떠나가는 것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내세우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험, 어험, 동네회의를 열어 의논을 해보겠우. 그리 아우”
이장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닫힌 방문은 다시 낯선 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벽에 작은 통풍구 하나를 뚫어 놓았다는 기분을 가슴에 안았다.
나는 그 길로 읍내로 향하려다가 집에 들러 은밀한 장소에서 돈을 꺼내 속주머니에 넣고, 쌀을 씻어 솥에 안쳐 주고는 집을 나왔다. 정선댁 딸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혼자 부엌일을 해낼 만큼 조숙했다. 아니, 조숙이라기보다는 단련됐돼야 옳을 것이다. 혼자 사는 어미 밑에서 나이 상관 없이 부엌일을 맡아 해야 했으니까.
읍내에 가려면 면소재지로 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 이럭저럭 삼십리길 읍내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때가 지나서였다. 버스터미널 근처 수수한 음식점에 들러 빨리 내올 수 있다는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 먹고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내면 샘골에서 방화 혐의로 잡혀온 정선댁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면회를 했으면 하는데요'
나는 수사과를 찾아 들어가서 문 가까이 자리 잡은 사복 경관에게 말했다.
“정선댁이 누구요? 이름을 대요.'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퉁바리를 주었다.
'김한순입니다.”
경찰관은 몸을 일으켜 다른 자리에 앉은 사복 경관 옆으로 다가가더니 무엇인가 말을 주고 받고 나서 되돌아왔다.
“김한순이 구속돼 경찰서에 있는 건 확인됐는데 조사중이라서 면회는 안돼요.”
그는 나를 힐긋 바라보고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그리고는 책상 앞 의자에 몸을 내려놓고 신문을 집어 드는 품이 내 존재는 관심 밖으로 밀어버렸다는 투였다.
'언제쯤 면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
“사식을 넣어 주고 싶은데요.'
'여기 음식두 먹을 만해요.'
'선생님,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김한순한테 쪽지라도 전해 알려야 할 형편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김한순 취조담당 형사한테 가봐요.'
그는 신문에 눈길을 매 놓은 채 대꾸했다.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는 귀찮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면서 얼굴을 창문 쪽으로 돌리며 턱짓을 했다. 스포츠 머리를 하고 서류를 뒤적이고 있는 사복 형사를 향해 나는 걸음을 옳겼다.
'의논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내가 정중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얘기해 보슈”
그는 눈길을 서류 갈피 속에 꽂아 넣은 채 대꾸했다.
“방화 혐의자 김한순 남편입니다.”
그는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여기 빈 의자에 앉아서 말해보슈.”
나는 빈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말을 시작 하려는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속이 별안간 텅 비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쨌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 하고 보니 내가 샘골에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나 하는 대목이었다.
'옛날 얘기 들을 시간 없어요.'
형사가 내 말을 잘랐다.
“동네 사람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을 하면 석방됩니까?'
'방화범은 간통죄하구는 달라요.”
“김한순이 샘골로 시집온 뒤로 시부모와 남편이 죽었대서 동네 사람들은 김한순을 귀신 들린 여자로 몰아 따돌리고 쫓아내려구 해왔습니다.'
'김한순의 남편이 죽었대믄서 당신은 뭐요?'
몇달 전에 재혼한 남편입니다.'
'알았어요. 연락할 테니 집에 가 기다리슈.”
“잠깐만 면회하게 해 주십시오.'
'안돼요.”
“아이들 걱정 말고 잘 있으라는 쪽지 하나 전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내가 만나믄 말루 전하리다. 고만 돌아가슈. 나 바빠요.”
나는 별 수 없이 경찰서를 나왔다.
나는 샘골로 돌아와 동네에서 또 읍내 경찰서에서 소식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흘만에 이장에게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나는 이장 집으로 갔다.
'들어오우.”
이장이 사랑방으로 나를 맞아 들였다. 나는 문 가깝게 자리잡고 앉아 잠자코 이장의 말을 기다렸다.
“동네회의를 열어 유씨 말을 전하구 의논을 했는데, 한번 믿어보자는 데루 합의를 봤우.'
'고맙습니다. 이장님.”
나는 꿇어 엎드리듯하며 대꾸했다.
'고맙다는 말은 아직 일러. 동네회의에서 유씨 한테 전하래는 말은, 유씨 말을 한번 믿어보되 우선 약속을 지키겠다는 정선댁 각서를 받아야 한대는 거야. 그리구 정선댁 땅은 동네에서 사되 땅값을 받으믄서 곧바루 동네를 떠나야 되구, 그 약속을 지킨대는 증명으루 정선댁 집을 미리 헐어버려야 한대는 조건이 붙었어. 어떻게 하겠우?' 나는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히는 느낌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저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정선댁한테 먼저 알리기라두 하고 나서 대답을 드려야겠습니다. 정선댁도 이 동네를 떠나가는 일에는 고개를 끄덕거렸으니까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읍내에 가서 정선댁을 면회하구 승낙을 받아 오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좀 어려운 건 경찰 서에서 정선댁 면회를 쉽게 허락해 주려구 하지 않는 겁니다. 어쨌든 그만큼만이라도 합의를 해 주신 동네 어른들과 이장님께 깊이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자주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장 집을 떠나면서 막막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찰에서 정선댁 면회를 허락해 줄까. 면회가 허락되더라도 정선댁이 동네 사람들이 내세운 조건에 순순히 합의해 주려고 할까. 동네와 정선댁 양쪽에 이롭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정선댁과의 의논을 거치지도 않고 거의 독단적으로 동네 사람들과 협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선댁과 함께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구석방문을 내 손으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선댁과 혼인을 맺을 때 함께 들어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정선댁한테 끌려서 별 생각 없이 오히려 저항감을 느끼며 따라 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제단 촛불에 불을 켜고 향에 불을 붙이고 나서 꿇어앉았다.
“정선댁 신령님들, 정선댁을 대신해서 빕니다. 이미 아시고들 계시겠지만 정선댁이 읍내 경찰서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신령님들께서 바다같이 넓고 깊은 마음으로 도와 주시사 정선댁과 동네 사람들 사이에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해 주십시오.”
전에 정선댁이 했듯 나는 신령님들한테 두번반 절을 하고는 촛불을 끄고 구석방을 나왔다. 그분이 섬기는 신을 배반한 것 같은 생각이 내 머리속과 가슴속 한옆에 매달려 있었다.
“대천교의 신이시여. 저는 방금 정선댁이 섬기는 신령들한테 절을 하고 나왔지만 대천교의 신을 배반할 뜻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는 그 어르신을 존경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으며, 따라서 그 어르신이 섬기는 대천교의 신께도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구 있습니다. 정선댁이 섬기는 신령들과 화해하셔서 샘골마을 사람들과 정선댁이 또한 화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는 그분의 거처가 있는 쪽 하늘을 바라보며 정성껏 기도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저녁밥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먹고는 그분의 거처로 갔다. 그분은 성경을 읽고 있었다.
“저녁 드셨습니까?'
“자네는 고행하는 사람한테 늘 밥먹었느냐는 말로 인사를 하나? 고행하는 사람 얼굴에 이렇게 살이 피둥피둥 찌고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거 봤나? 자네 입장으로는 성공한 것이겠지만 말야.'
“어르신 같은 분이 집을 떠나 일년 동안이나 이렇게 불편한 생활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고행입니다. 정선댁 일루 어르신 머리 속 마음속을 어지럽혀 드려 죄송스럽습니다.”
“정선댁 일은 잘 풀려 가나?'
나는 그분에게 동네 사람들의 화해 조건과 정선댁 면회가 안되는 사정과 그로 인해 궁지에 빠진 나의 처지를 털어 놓았다.
“자네는 그런 일 맡는 걸 좋아하지 않나? 한동안 빠져 헤어나지 못할 만큼 크고 복잡한 일을 맡았으니 나로서는 오히려 축하해 줘야 할 것 같네. 따라서 자네를 두고 떠나는 내맘도 홀가 분해지는군.'
'어르신, 정말 떠나시기루 결심을 하셨습니까? 그런대로 견딜 만하시다면 여기서 겨울을 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견딜 만한 게 아니라 너무 편하다네 몸을 괴롭혀 정신을 닦고 신과 가까와지자고 떠나온 길인데, 자네의 그 알뜰한 보살핌 덕분에 살찐 돼 지가 돼버렸네. 앞으로 남은 두어달 동안이라도 길 떠나온 값을 제대로 해야 될 게 아닌가?'
“앞으루는 일주일에 한번씩만 찾아뵐 테니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일년 동안 어르신을 곁에서 시중 들겠다고 어르신 사모님께 약속 드린 일을 제가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내 집사람과 자네 사이에 무슨 약속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 그리구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네. 그렇지만 내 집사람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네.”
'어르신이 떠나시면 저는 고아의 처지가 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도 거짓말이 아니네.”
며칠 뒤 그분은 떠나갔다. 전날 저녁에 그분을 찾아가 정선댁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다. 그분은 대꾸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래도 그 분에게서 급히 떠나갈 기미는 찾아내지 못했었다. 그분의 마음속에 떠나고 싶은 생각은 꽉 차 있으면서도 겨울 추위에 낯선 객지를 향해 다시 떠나는 행동이 주저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짐작에 나는 한 가닥 희망을 지녔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나절 그분의 거처로 갔을 때 그분은 훌훌 껍질 벗어 놓듯 집과 살림도구 들을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간 뒤였다. 그분이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세달 뒤면 그 분을 멀리서라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대천교의 교주가 되어 있을 테니까.
곁에서 보살피던 학이 날아가버린듯 허전했다. 학이 아니었다. 내가 곁에서 시중 들고 뫼시던 어른은 성자요 신이었다. 나같이 비천한 존재로 서는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위대한 분, 그분을 일년 가깝게 곁에서 뫼실 수 있었던 것이 내게 내린 축복과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축복과 은혜를 나는 차버렸다. 일년을 참지 못해 여자를 탐한 결과로 나는 그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진흙구덩이에 빠져버렸다. 나의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이렇게 살아 가도록, 역할을 맡고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담당형사에게 사정을 하고 또 해 정선댁을 그 잠깐 면회할 수가 있었다.
'먼저 집을 헐으라구유? 공짜루 우리를 쫓아 낼래는 꿍꿍이속이래유. 각서 같은 거 써 줄 수가 읎어유.”
정선댁 태도는 강경했다.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선댁은 재판에 붙여졌고, 일년 징역에 이년 집행유예 판결이 났다.
정선댁이 풀려나온 날 밤이었다. 잠이 들었는 데 잠결에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불이야! 귀신불이다!'
외치는 소리는 가까운 데서 들리다가 급히 멀어지고 있었다. 문 밖에 빛으로 어룽거리며 타닥타닥 불 붙이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처마 밑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수백수천마리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고 있었다. 정선댁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 물바가지쯤 끼얹어 꺼질 불이 아니었다. 나는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정선댁과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울부짖는 정선댁과 아이들을 잡아 끌고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이제는 악귀의 혓 바닥이 된 불길이 집 전체로 번지며 널름거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