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구함
구인인광고만큼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다. 나는 신문이나 잡지를 손에 쥘 때면 광고란부터 들추고, 그 중에서도 구인란을 찾아 낱낱이 살펴보기에 열중했다.
전과자. 내 몸과 마음에 찍힌 낙인이었다. 나 자신을 생각할 때 유관중이라는 이름보다도, 또 너 거울과 사진으로 익힌 내 모습보다도 앞서서 그 낙인이 떠오르곤 했다.
“이력서와 신원증명서를 제출하세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갈 때마다 듣게 되곤 하는 말이었다. 내 발길을 막아서는 철대문이나 담벼락 같았다. 나는 전에 이력서 쓰는 일을 즐기며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을 보았었다. 먼 친척 아저씨뻘 되는 분이었다. 그 아저씨는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졸업하고는 남들이 바늘구멍만큼 좁다고 여기는 취직문을 자기 집 대문이나 되듯 쉽사리 통과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그 직장에 오래 몸담고 있지 않았다. 들어갈 때만큼이나 쉽사리 그 직장을 나와서 또 어렵지 않게 다른 직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재주가 비상한 사람이야. 아무 때구 큰 인물 될 거야. 촌수가 멀긴 하다만 우리 유씨 가문을 빛내 줄 사람이야. 느이들두 본받두룩 해라.”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해서 일가 어른들이 툭하면 입에 담는 말이었다.
그 아저씨는 직장을 수 없이 옮겨 다녔다. 한 직장에서 일년을 머무르기가 힘들었다. 그 까닭은 무식한 돌대가리들이 높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 우쭐대며 아랫사람 기 꺾는 꼴 보기 싫어서, 알량한 직장 놓칠까봐 윗사람 눈치보고 굽신거리는 꼴 보기 싫어서, 다른 회사에서 더 나은 대우해 주겠다고 해서 둥둥이었다.
“이보게. 회사마다 탐내서 맞아들이구 싶어할 만큼 자네가 재주꾼이래는 건 잘 아네만, 그래두 사람은 어디 한 군데 근거를 마련해 두는 게 좋아. 고만 자리잡구 눌러앉게. 너무 옮겨 댕긴다구 맞아들이길 꺼려하게 될는지 누가 아나?’
그림. 김마정
언젠가 우리 집에 다니러 온 그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형님.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그 일은 자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구 다른 회사루 옮겨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증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얘, 관중아, 문방구 점에 가서 이력서 한 장 사 오너라.”
그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게 주었다. 나는 어른들, 그 중에도 친척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동네 문방구점으로 달려가 이력서 용지를 사가지고 돌아 왔다. 그 아저씨는 책받침을 가져 오래서 이력서 밑에 받치고는 양복 저고리 속주머니에서 뽑아 낸 만년필로 이력서 용지의 빈 칸을 메워 나갔다.
“이보게. 난 자네가 지금 댕기는 회사를 떠나지 말구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구 말했는데, 왜 이력서는 쓰구 야단인가?’
“형님,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누려야 할 권리를 지녔습니다. 지위가 좀 높다구 해서 아랫사람 들을 마치 자기 집 일꾼처럼 다스리려 드는 졸장부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기 위해서두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본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 아저씨는 이력서 용지의 빈 칸을 만년필 글 씨로 메우고 나서 아버지 무릎 앞에 옮겨 놓았다.
“형님, 한번 읽어 보십시오 저를 필요한 사람으루 여길 회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뭣 때문에 졸장부들 눈치나 보구 굽신거려야 합니 까?’
아버지는 이력서 용지를 집어들고 그 위로 눈 길을 모아 보냈다.
“자네 글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러울 만큼 맵시가 있어. 그런데 다시 보니 날개를 펼친 형국이구만. 날개를 접구 땅에 내려 앉은 형국이면 더 좋겠네. 날개두 좀 쉬게 해야지. 쉬어야 정말 날아야 할 적에 힘차게 날을 수 있잖겠나?' “사람들은 날개가 높이 올라가는데 쓰이는 거라구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유로와지는 데 쓰이는 겁니다. 형님, 한번 지켜보십시오.”
그 아저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기다리지도 않고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그 일은 놀러왔다가 말이 나온 김에 갑작스럽게 자기 실력을 증명해 보인 것이라기보다는 얼마 전부터 직장을 옮기기로 작정하고 옮겨갈 회사를 물색 해 온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기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설혹 그렇더라도 보통사람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재간이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내 마음 속에서 그 아저씨는 차츰 우상 으로 자리잡아 갔다.
“누가 그 사람더러 재주 없다구 했남? 샘솟아 넘쳐나는 재주래두 아껴 쓰는 게 좋다는 얘기였지.”
아버지 앞에서 쓴 이력서를 가지고 금세 직장을 옮긴 그 아저씨를 두고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나는 공상 속에서, 빈 바구니 들어올리듯 힘 안들이고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학에 입학 • 졸업 하고, 이렇다하게 손꼽는 회사를 친척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 아저씨가 되어 있는 자신을 그려보곤 했다.
그 뒤로도 그 아저씨는 수없이 직장을 옮겼다. 그 직장이 차츰 이름 있는 회사에 이름 없는 회사로 바뀌어 가기는 했지만, 그 아저씨는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되었다. 학교를 갓졸업한 친척집 젊은이들은 그 아저씨를 찾아가 취직하는데 필요한 이력서를 써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빼어난 글씨도 글씨거니와 취직복, 직장복을 타고난 그 아저씨에게서 그 복을 나누어 받겠다는 속셈에서 였다. 그 아저씨는 젊은 친척들의 부탁을 퇴해 내지 않고 시원시원 대필해 주었지만 그 일이 오래도록 계속되지는 못했다. 직장에서 자필 이력서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직을 하고 싶어하는 친척들은 여전히 그 아저씨를 찾아가 이력서 쓰는 법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도움 말을 청해 듣고 했다. 그 아저씨가 취직자리 하나 구해 줄지도 모른다는 바람과 더불어 영험을 얻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미신 같은 기대를 마음 속에 품었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그렇게 찾아오는 친척들을 위해 자신의 이력서를 견본으로 마련해 놓기까지 했다.
‘유지한. 1937년생. OO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그 아저씨가 졸업한 O O 대학교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졸업생 되는 영광을 누리고 싶어했고, 자기가 부득이해서 졸업생 대열에 들지 못한 경우에는 자식 가운데 하나라도 졸업생을 만들고 싶어했고, 그것도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평생 가슴 속 한 모퉁이를 사막처럼 비워 놓고 살아야 할 그런 대학교였다.
나는 아버지나 어머니, 또 취직을 앞둔 친척형들을 따라서 그 아저씨네 집에 몇차례 가보았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일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지내왔다. 친구들에게는 기회 있을 적마다 그 아저씨를 자랑하곤 했다. 그 아저씨와 나 사이의 촌수가 가까운 것처럼 은연중 내비치면서, 실상 마음 속으로는 촌수가 멀다는 사실을 얼마나 속상해 하고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그 아저씨의 이력서는 아저씨의 나이 사십대 중반의 어느 해부터, 아버지가 염려했던 대로 효력이 떨어져 버렸다. OO 대학교의 위세는 여전 한데도, 또 OO 대학교 졸업생들이 이렇다 할 회사들의 높은 자리, 실속 있는 자리를 영락없이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 아저씨의 이력서는 퇴짜를 맞게 되었다. 날짜가 지난 지 오래여서 낡고 빛 바랜 신문지의 신세가 되었다고 쑤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무리 뛰구 날으는 재주를 지녔더라두 세상을 가볍게 보믄 낭패당하게 돼. 그게 세상 이치야”
아버지도 이렇게 말하고 입맛이 쓴 듯 마른침 을삼켰다.
그 뒤 그 아저씨는 회사원 노릇을 그만두고 동사무소 옆에 대서소를 차리고는 하루 종일 서너평 좁은 방안에 틀어박혀 서류 만들려고 오는 손님들을 기다리는 처지로 내려 앉았지만,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는 우상의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
그 아저씨를 우상으로 섬긴 것이 내가 전과자라는 낙인을 받은 일과 만의 하나 줄이 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저씨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 아저씨가 나에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 아저씨를 존경하는 내 마음이 빛바래고 금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뒤였다. 좁은 대서소 안에 틀어박혀 있는 그 아저씨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었지만 아무래도 멋져 보이지가 않았다. 옷차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듯 좀 흩뜨리고 다니던 이전의 모습보다도 못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해서 갇혀버린 영웅이거나 때를 만나지 못해 울분을 짓씹고 있는 지사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유행 지나고 철 지나 상점 한 구석에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는 옷 같다는 것이 그럴 듯했다. 내 마음을 소중스러움으로 가득 채웠던 그 아저씨의 모습 그 부피는 몇갑절로 늘어난 그림자였었기라도 한듯 쪼그라들어 작아졌다. 그러나 그림자가 채우고 있다가 물러난 빈 자리는 얼른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가 않았다. 그 빈 자리는 봄을 기다리는 들판처럼 느긋하고 조용하게 참아내지 않고 황량하게 모래바람을 일으켜 놓곤 했다. 아파하고 허전해 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 속 벽에 걸어 놓았던 아저씨의 사진을 떼어낸 빈 자리는 그냥 빈 자리가 아니라 상처 입은 빈 자리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 빈 자리 그 상처를 내 사진이나 내 그림으로 메우고 치료할 생각을 미처 해내지 못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다가 그 아저씨의 사진이 걸렸던 빈 자리에 걸곤 했다. 우리 반 반장 사진이기도 했고, 전교 대대장 사진이기도 했고,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일인자 사진이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권투선수 사진이기도 했고, 운동권 대학생들을 이끌어가는 총학생회장 사진이기도 했고,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대중 가수 사진이기도 했고, 민완 형사 반장 사진이거나 군 장성 사진이거나 핵물리학자 사진이거나 재벌 사진이기도 했다.
내가 두번째로 대학 입학시험에 낙방하고, 삼수를 준비하느라 학원에 드나들면서 그 사건에 휩쓸리게 된 것도 내 마음 빈 자리에 걸어 놓을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원 주변에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삼십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진충남이라는 이름의 명함을 학원생들에게 돌리며 접근하는 남자의 직업은 출판사 영업부 차장으로 명함에 인쇄되었는데,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참고서 외판사원이었다. 진충남씨는 학원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찻집이나 음식점이나 생맥주집 같은 데서 학원생들과 곧잘 어울리곤 했다. 학원생들은 저 아저씨가 참고서를 팔아먹을 속셈이로구나, 생각하면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 별 저항감 없이 진충남씨를 자리에 끼어 주곤 했다. 진충남씨는 분위기에 맞추려는 듯 능청을 떨기 일쑤였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한테 참고서 팔아서 먹구 사는게 내 처지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재수 • 삼수해 가면서까지 꼭 대학에 진학해야 할 까닭이 뭐이?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루의 자질과 능력을 지니구 있는데, 그 자질과 능력을 개발하구 발휘하기 위해서 대학 과정이 꼭 필요한 건 아니야.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대학 과정이 창의력을 억눌러 질식시킬 수두 있어. 고등학교 교육만으루두 충분한 분야에선 대학 과정은 시간 낭비구 에너지 소모라는 얘기야. 빨리 자기 적성을 알아 내 가지구 필요없이 시간 낭비와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두룩 해.”
‘'아저씨 단수가 높은신데요?’
학원생들은 진충남씨를 야유하면서도 그의 말을 즐겼다. 재수 • 삼수생들이 자신의 현재를 회의할 적마다 문득문득 토해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가슴 한 귀퉁이에 감춰 두었던 말을 진충남씨가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야. 나두 꼭 대학에 진학해야 사람 구실을 하게 되는 줄 알구 삼수해서 힘들게 대학 진학했는데, 여러분 보다시피 겨우 참고서 외판원이 돼 있잖아? 대학 진학 포기하구서 일찌감치 내 적성 찾아 그 쪽으루 길을 잡았더라면 인생 기반 착실하게 딲아 놨을 거야. 후회 막급해서 여러분한테 털어놨어.”
나는 진충남씨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가가는 나를 받아 주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영화 구경을 시켜 주기도 했다.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내 푸념을 참을성 있게 듣고 자문을 해 주기도 했다. 형이 없는 나는 그가 내 형이헜으면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이윽고 진충남씨의 사진을 마음 속 빈 자리에 걸어 놓기에 이르렀다.
“난 말야. 사실은 학생들 내지 청소년을 상대루 하는 사업을 계획하구 있었어. 참고서 외판원을 가장하구 학원생들에게 접근한 것두 사업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지. 사업계획의 타당성이 입증됐구 동업자들두 확보했구, 큰돈 벌어 들일 자신두 생겼어. 돈을 벌려면 여자들이나 학생들을 상대루 해야 돼. 유관중, 넌 운수가 좋은 애 야. 넌 내가 일으켜 세울 기업의 창업 멤버가 된 거야.”
나는 긴가민가했다. 행운이 너무 갑작스럽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창업 멤버라면 자금을 끌어오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충남씨는 내게 돈을 마련해 오라는 따위의 요구는 일체 하지 않았다. 가끔씩 평범한 심부름을 시켰을 뿐이었다.
“이거 참고선데, 영등포 승리학원 앞 아폴로호프집에 가서 박충남씨를 찾아서 전하구 와.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나랑 같은 사람이야. 창업될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사람이니까 잘 보여야 해.”
나는 진충남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심부름을 시킨 날이면 진충남씨는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면서 좀더 좋은 음식, 좀더 좋은 구경거리를 내게 제공했다. 나는 중국요리나 서양요리를 고급으로 먹어 보았고, 그를 따라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 같은 은밀하고 비싼 술집에도 가보았다.
“남자가 큰 일을 하려면 세상의 깊은 맛두 봐 둬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를 중하게 쓰기 위해 교육하구 훈련하는 과정이라구 생각해두 돼.”
진충남씨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진충남씨의 심부름으로 참고서를 전하려고 천호동에 있는 학원 앞 호프집에서 참고서 받아 갈 사람을 기다리다가 들이 닥친 형사대에 체포되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항변하며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까닭을 알고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마약밀매조직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죄를 주장했지만 나는 꼼짝달싹 못하고 마약밀매조직의 하수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했다. 내가 심부름으로 전해 준 몇권의 참고서는 순수한 참고서가 아니라 마약을 담은 용기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다. 전과자의 낙인이 찍히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모형 제만이라도 나의 무죄를 마음 깊이 믿어 주었더라면 나는 그 이상 범죄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력서와 신원증명서를 제출하세요.”
이력서에 기록할 경력이라고는 ‘고등학교 졸업’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이력서 쓰기에는 어느만큼 재량권이 주어져서 벌 받은 일 따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항은 제쳐 놓아도 되었다. 하지만 신원증명서는 달랐다. 관청에서 발부하는 신원증명서에는 죄 짓고 벌 받은 경력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마음을 바로잡았으니까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겠지. 좀 걸리적거리더라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으로 지나간 날의 얼룩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 될 수 있겠지. 처음 몇번은 그렇게 생각하고 신원증명서를 떼어다 들이밀어 놓고는 출근하라는 통지를 기다려보곤 했지만 나의 그런 어리숙한 생각이 먹혀 들어갈 틈새가 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깨달아야 했다.
나는 신원증명서를 떼어다 바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을 찾아야 했다. 이력서만 제출해도 되는 직장도 생각보다는 많았다. 하기야 그런 직장이라고 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직장을 얻었다고 해서 문제의 답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성실과 정직을 증명해 보이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내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흐려져 있곤 했다. 직장 동료들은 흘끔거리고 쑤근대면서 내게서 한걸음씩 물러서는 기색이었고 이윽고 나는 따돌림당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등 뒤의 쑤군거림이 내 귀에까지 전해왔다. 동료들은 내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그 사실을 전해 주었을까.
“관청에 신원조회를 해보면 당장에 알게 돼 있어. 회사에선 본인 모르게 신입사원들에 대한 신원조회를 한다구.”
그런 말을 해주는 동료는 그 중 내게 호감을 품은 사람이거나 그 중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교도소에 여러 차례 들어갔다가 나온 경력을 지녔더라도 내 마음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성심성의껏 살아가겠다고 작정한 터였다. 그런 마음을 담은 내 작업 태도를 분명히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를 자기들과는 다른 별종으로 보는 동료들의 의심 가득찬 눈 빛은 점점 짙어만 갔다. 그 눈빛 속에는 의심뿐이 아니라 두려움과 증오심마저 고여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만 이 직장을 떠나라는 신호가 내 마음에 전해왔다.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 내부로부터도 전해오는 신호였다.
그렇게 해서 떠나온 직장도 꼽자면 다섯손가락이 모자랐다. 발길을 돌려 범죄의 수렁 속으로 다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그 길목마다 솟구쳐 올랐다. 초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충동이 뿜어내는 눈먼 불길에 내 전부를 불살라 버렸을 것이다. 초희는 부모형제에게서마저 버림받은 천덕꾸러기 나를 몸 전체를 활짝 열어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내 대신 불길에 휘말려 타 죽었다. 바보 같은 여자였다. 나는 내 충동의 불길에서 몸을 건져내 바보 같은 여자의 영혼을 위로 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것은 범죄의 수렁에 빠져들어가지 않고 참고 참고 끝까지 참으며 하 늘이 정해 준 수명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귓등으루 흘려버릴 거래는거 나두 잘 알아요 그렇지만 죽어가는 마당이니 한 마디 하겠어요 당신은 늙어 죽을 때까지 참구 살아 남아서 이 초희란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너무나 허무해서 죽은 뒤에두 구천을 떠돌아 댕길 거 같아요.” 초희의 목소리는 틈 날 때마다 구천을 헤매듯 내 귓바퀴를 맴돌곤 했다.
나는 신원증명서도 이력서도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 일자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의가 날품팔이 자리였다. 나는 처음 얼마 동안 새벽 인력시장이 선다는 남대문시장에 나가서 내 몸을 상품으로 내놓곤 했었다. 거기서는 얼굴이나 이름 따위는 쓸 데가 없었다. 건강하고 힘 잘쓰게 보이는 몸뚱이면 그만이었다. 인력을 구하러 온 쪽에서 몸소 고르기도 하고, ‘‘힘든 일이야. 몸 약한 사람은 일하다 말구 쓰러져. 중도에 쓰러진 사람한텐 품값두 줄 수 없어. 그러니까 자신 있는 사람만 열명 나와.” 이렇게 외쳐가지고 인력을 구해 가기도 했다. 나는 정해진 숫자 안에 들려고 우루루 몰려가는 날품팔이꾼들 틈에 낀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하는 물음이 머리 속에 떠올라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길 하나를 찾아낼 수가 있 었다. 동네 物力가게와 연줄을 맺는 길이었다. 물력가게에서는 건축, 토목공사에 쓰이는 자재를 팔면서 인력을 소개해 주었다. 물력가게 주인에게 잘 보이면 날품팔이 일쯤이야 남대문시장까지 새벽바람 쏘이며 나가지 않아도 동네 인근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
박도성씨 고행길에 따라가게 된 것은 색다른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런 경로를 통해서였다.
그 날은 일이 없어서 자취방 이불 속에서 뒹굴다가 점심 때가 되어 일어나 라면 하나 끓여 먹고는 어슬렁어슬렁 동네 길을 돌아 물력가게에 들렀던 터였다.
“자네 오늘은 일 안 나갔나?’'
가게 주인 정씨가 내 위아래를 훑어보며 물었다.
“오늘은 일이 없어서요.”
“그래서 일거리 있나 하구 나왔구만. 그렇잖두 자네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던 참이었네. 안으루 좀 들어오게.”
가게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등을 보이며 가게 안침으로 들어갔다.
“무슨 남들 들어서 안될 일이라두 있나요?’
나는 딴청부리듯 그렇게 묻고는 주인 정씨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정씨와 나는 어느새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거두절미하구, 자네 색다른 일 한번 맡아 해 볼래나?'
정씨는 낡은 쇠책상 앞 의자에 몸을 실으며 물었다.
“어떤 일인진 몰라두 해보지오 뭐. 지가 언젠 찬밥 더운밥 가렸나요? 그리구 아저씨가 지 힘으루 못할 일을 하라구 시키시진 않겠지오 뭐.”
나는 가게 안을 새삼스럽게 둘러보며 대답했다. 가게 안에는 각종 철물뿐만 아니라 연장들과 건축자재들이 들어차 있어서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굴을 파 들어와 앉은 느낌이었다.
“물론 자네 힘으루 해낼 수 있는 일이구 말구.
그럼 내 얘길 잠자쿠 듣게. 어느 잘 사는 집 영감님이 혼자 여행을 떠나 일년 동안 지내다가 돌아오기루 돼 있는데 그 시중 들 사람을 구한다는 걸세. 다른 일은 다 필요가 없구, 건강하구, 착하구, 잘 참구, 눈치 빠르기만 하면 된대. 월급두 후하게 주겠다구 했구....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날품팔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 좋다, 싫다 양단간에 빨리 정하두룩 하게. 그 댁에서두 서두르는 모양이니까 말야.”
‘‘양단간에 정하구 말구가 어디 있어요? 부자집 영감님 따라 여행 떠나는 일은 호강하는 거잖아요? 그런 호박이 어떻데 나 같은 사람한테까지 굴러 왔지오?’
“날품팔이보다야 낫겠지만 호강까지는 아니길래 자네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왔을 테지 뭐. 어쨌든 그 쪽 사람을 한번 만나보두룩 하게. 일년 동안이란 세월이 좀 길긴 하지만 도 닦는 맘으루 정성스럽게 참아 넘기면 한 밑천 거머쥐게 될 거야”
'하지오 뭐. 날품팔이보다 나은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일년 못 참겠어요? 그렇지만 그 쪽에서두 절 보구 맘에 들어야 할 테니까 우선 만나봐야 되겠구만요.”
“말인즉 옳으네. 내가 저 쪽과 의논해보구 나서 자네한테 통지해 줄 테니까 먼 데 가지 말구 기다리게.”
이튿날 아침 나절 나는 물력가게 주인 정씨를 따라 사람을 구한다는 집으로 갔다. 담 너머로 바라보이는 그 집은 크고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야! 저 같은 사람은 평생 이런 집에서 살아보지 못하구 말겠지오? 아저씨는 이 집 쥔하구 친하신가부지오?'
나는 감탄하며 물었다.
“이 댁 쥔어른은 길에서 만나면 인사나 하는 사이구. 친하다면 안주인과 친한 셈이지.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 의논을 하니까 말야.”
정씨의 말투에는 우쭐대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
알구 지낸 지 오랜가부지오?’
“십년 됐지. 내가 이 댁 안주인한테 이 집을 소개해서 사 오게 된 거야. 이 집을 사서 이사 온 뒤루 일이 더 잘 풀린대잖아.”
'아저씬 사람만 소개하는 게 아니구 집두 소개하세요?'
“그 무렵엔 복덕방두 겸하구 있었다네.”
정씨가 대문 기둥에 부착된 초인종 단추를 누르자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났고, 잠시 뒤 쪽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나는 정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백평쯤 되어 보이는 정원이 잘 가꾸어진 정원수들과 잔디, 그리고 바위들로 딴 세상인 듯 아름다웠다. 하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정씨와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나는 무릎이 빠져나 온 바지에다 잠바를 걸친 허름한 옷차림보다도 양말에서 나는 냄새가 점잖은 응접실 분위기를 어지럽혀 놓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어깨와 무릎을 움츠리고 엉거주춤 소파에 걸터앉아 어색한 기분을 다스려보려고 공연히 응접실 안을 두리번 거리고 있으려니까 문이 열리고 귀태가 절절 흐르는 중년 부인이 들어섰다. 한듯 안한듯 화장을 한 얼굴이며 연보라색 한복을 넉넉하게 차려입은 몸매가 품위 있게 정돈되었으면서도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응접실에 화사 한 빛과 활력을 불어 넣었다.
나는 물력가게 정씨보다 먼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말을 아끼 듯하는 부인의 음성은 굵지 않으면서도 차분했다.
“전번에 말씀하시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정씨는 선 채로 탁자 건너 소파에 자리를 잡는 부인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그 공손함이 지극해서 정씨한테 저런 면모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요? 애쓰셨군요. 어서들 앉으세요.”
부인은 대꾸하면서 어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정씨를 따라 앉으며 나를 살펴보는 부인의 눈길을 오른쪽 옆얼굴로 느꼈다. 나는 응접실 바닥에 깔아 놓은 갈색 양탄자의 꽃무늬로 눈길을 보내다가 검정 양말 신은 두발 끝을 오므리며 소파 밑둥 쪽으로 끌어 당겼다.
“성실하구 건강해 보이는 젊은이네요. 올해 나이가 몇이지오?’
부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들어올려 부인에게로 향했다.
“서른두살 됐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해놓은 건 • • •'
나는 군소리가 이어지려는 것을 끊어 버렸다.
“너무 어리지두 않구, 또 너무 많지두 않구 아주 좋은 나이네요.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요?’
“네? 아, 네一 유관중이라구 합니다. 버들 유자, 볼 관자, 가운데 중자를 씁니다.”
'자네, 생각했던 것보다 유식하네.”
물력가게 정씨가 끼어들어 진반 농반으로 말했다.
“부모님은 생존해 계신가요?'
“네, 인천에 계십니다. 이 나이에 부모님두 제대루 모시지 못하구, 불효자식입니다.”
그것은 내 가슴 속 한 구석에 숨겨져 있는 솔직한 심정이었다.
“불효자식이란 말 참 오래간만에 들어보네요. 오래간만에 들으니까 그 말이 효자라는 말보다 더 효자처럼 들려요. 정씨아저씨가 소개한 사람이니 어련하겠어요? 그럼 얘기하지오. 우리 집 바깥어른께서 이번에 大天敎 敎主님으로 추대받 으셨다우. 대천교에서는 교주루 추대받으면 일년 동안 出家苦行을 수행한 후에 정식으루 교주에 취임하두룩 규칙이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집 바깥어른두 일년 동안 집을 떠나 고행을 하셔야 해요.”
“도를 닦으러 산으루 들어가시게 됩니까?' 정씨가 물었다.
“일테면 그런 셈이지요. 그래서 바깥어른을 따라가 시중 들어 드릴 사람을 구한 거예요. 참, 젊은이는 결혼했우? 식구가 딸려 있으면 일년 동안 집을 비우기가 어려울 텐데…”
부인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아직 결혼 전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잘됐네요. 우리 집 바깥어른 따라가서 일년 동안 고행 시중 잘 들어 드리면 내가 참한 색시감 물색해 장가 들두룩 해 줄께요.”
“자네 복이 터졌구만. 정성 들여 뫼시두룩 하게. 사모님두 염려 놓으십시요. 그런 일이라면 이 사람이 아주 제 격입니다.”
정씨가 끼어들어 이쪽저쪽 다독거렸다.
“젊은이 생각은 어떻수?'
이윽고 부인이 내게 물었다.
<계속>
연재를 시작하며
요즘 소설은 문학성을 지녔다 하면 읽기가 싫어질 만큼 난해하고, 읽기가 쉽구나 하면 문학의 격을 갖추지 못해 통속이나 외설로 떨어져 내려 있기 일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독자들은 문학적인 품위도 갖추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원한다.
그러나 소설의 재미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다. 산기슭 유원지에서 노는 것 같은 재미에서부터, 훈련을 쌓은 등산가들이 등산장비를 갖추고 히말라야산정을 정복하는 재미까지 다양한 것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재미도 다양한것이다.
소설 또는 예술을 감상하는데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훈련을 쌇지 않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란 산기슭 유원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재미이기 일쑤다. 그렇다고해서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야의 종사자들이 히말라야산 등정에서 맛볼 수 있을 만한 재미를 소설에서 얻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훈련을 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일요일마다 건강한 성인들이 오르며 맛볼 수 있는, 해발 천미터쯤의 등산에서 얻어낼 만한 정도의 재미면 어떨까?
그만한 수준의 재미라도 작가와 독자는 어느만큼 서로 참고 노력해야 얻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팔리지 않는 소설, 자꾸 한 옆으로 밀려나고 있는 소설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도 작가와 독자는 서로 참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다른 분야의 일처럼 소설 쓰기도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풀려 나갈 때도 종종 있다.
「정보와 통신」지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내 소설도 문학의 품위를 갖추면서도 재미를 갖추어 보겠다는 의도가 자칫 빗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의 의도가 빗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애정의 시선으로 읽어 주시기 바란다.
유 재 용
•1936년 강원도 김화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공보부 제정 신인예술상 문학부문 특상 수상.
•현대문확 소설 추천 완료.
•현대문학상 · 이상문학상 · 대한민국문학상 · 조연현문학상 · 동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