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큰 딸, 성은이에게
어디서나 뛰어놀기 좋아했던 꼬마였는데 어느새 훌쩍 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멋진 마라토너가 되었구나. 평소 말은 안 했어도 얼마나 네가 자랑스러운지 모른단다.
지난 3월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국내 여자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도 그랬단다. 한국 신기록 달성을 못해 아쉬워하는 너의 마음이 아빠 눈에도 보였지만 끝까지 페이스를 조절하며 열심히
뛰는 네가 누구보다 멋지고 대견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하는 너를 보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으로 잠실올림픽주경기장으로 네 엄마와 이동을 하며 모처럼 응원을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초등학교 3학년,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그래, 한번 해봐라’라 하고 흔쾌히 격려하고 응원하지는 못했었다. 어린아이가 운동을 하면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걱정되기도 했고, 부모로서 뒷바라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았단다.
그럼에도 너는 재미삼아 해본다더니 처음 참가한 괴산마라톤대회에서 남녀 초·중학생을 통틀어 2등을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었지. 4학년 때인가 학교 합숙 중 공놀이를 하다 손톱이 심하게 뒤집어졌는데
울지도 않고 그날 훈련까지 했다는 코치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독한 면이 있구나, 운동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학년 때는 대전한밭운동장에서 열린 육상꿈나무 전국대회에 나가 800m,
1,500m 우승을 하며 아빠 엄마에게 큰 기쁨을 주고 선수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이후로도 성은이 너는 전국 체전을 비롯해 많은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보여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금 삼성전자 육상선수단에 입단해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지켜보는 부모로서는 마음이 놓인다.
누구보다도 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해냈던 너, 맏딸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지.
일하는 아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도 잘 보살피고. 지금도 한번씩 집에 오면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을 돕는 네가 참으로 고맙다.
힘들어서 마냥 쉬고 싶을 텐데도 너는 언제나 아빠 엄마, 동생들 생각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러나 가장 고마운 것은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로서 가장 가슴이 미어질 때는 자식이 아플 때란다. 몇 해 전 골반 부상 때 놀란 가슴을 얼마나 쓸어내렸던지. 그 후로 큰 부상 없이
잘 해주어 다행이고 또 고마울 뿐이다. 열심히 한다면 한국 신기록 2시간26분12초 달성은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욕심내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훈련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면 가깝게는 오는 9월에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실을 맛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니 다치지 않도록 하고 늘 조심하렴.
사랑한다. 성은아!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지난 3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래도 아빠 엄마가 직접 응원을 와주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처음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으셨던 것 알아요. 그래도 바쁘신 중에도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찾아오셔서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며 누구보다 가장 세심하게 저를 챙겨주시고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감사를 드려요. 솔직히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함께 합숙생활을 하는 게 재미가 있어서 운동을 하겠다고 한 것도 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에 가면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만두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나갔던 대회에서 생각지 못한 좋은 성적을 얻었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운동을 쭉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도 학창시절에 중장거리 선수셨고, 엄마도 운동하는 걸 좋아하셨다 하고, 초·중·고 때 동생들도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냈던 걸 보면, 우리 가족은 운동 체질인가 봐요. 때때로 운동이 힘들기도 하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한가지를 주신 것에 감사하답니다. 어려서부터 합숙 생활을 해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 보니 다른 딸들처럼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딸인 거 알아요. 그럼에도 누구보다 부모님 사랑하는 마음은 깊답니다. 어려서 가족 모두 외갓집에 갔다가 폭포가 있는 곳에서 놀다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랑 달리기 경주를 자주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참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아빠 엄마와 여행을 가 그때처럼 달리기 경주 한번 해보고 싶네요.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
손에 잡힐 것 같은 한국 신기록은 좀처럼 쉽게 잡히지는 않네요. 이왕 시작한 운동, 꼭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고 세계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선수가 되려고 해요. 부단히 훈련하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언제나 믿음으로 지켜봐 주셔서 감사해요. 늘 훈련이 전부인 일상이지만 음악도 즐겨듣고 책도 보며 생활의 활력을 찾고 있답니다. 너무 제 걱정은 마세요.
제가 태어날 무렵 시작하신 집배원 일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웃들에게 좋은 소식 전해주시고 힘든 일도 마다치 않으시며 묵묵히 책임을 다하시는 아빠 모습이 참 좋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여유를 좀 갖으시고 건강도 챙기셨으면 해요.
아빠, 사랑해요! 더 열심히 노력해서 오래도록 기억될 선수가 될게요.
김성은(삼성전자) 선수는 괴산장연중, 충북체고를 졸업했다. 2010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국내 2위, 2012년과 2013년 서울 국제마라톤대회에서 각각 2시간29분53초, 2시간27분20초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달성하며 한국 육상의 간판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3월 16일 열린 2014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29분31초를 기록해 국내 여자부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여자부 전체로는 4위를 차지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마라톤 대표선수로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