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우체국 정영수 주무관
시간은 곧 우리의 얼굴
함양읍 휴천면의 법화산 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니 정차된 빨간 오토바이가 보인다. 정영수 주무관은 마지막 배달 우편을 정리 중이었다. 그는 마천면, 휴천면을 담당한다. 하루에 배달하는 우편은 450~780개. 물량이 많으면 400세대를 오가야 한다. 지역 특성상 산허리에 있는 주택도 많아 그의 두 발과 오토바이가 꽤나 고생 중이다.
“경사가 가파른 곳은 오토바이를 탈 때 하늘만 보고 갈 때도 많습니다. 비나 눈이 올 땐 등산화에 노끈을 한두 바퀴 동여매면 덜 미끄럽죠. 나는 이 고장 출신이니 지름길이나 샛길을 잘 알아서 빨리 배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곧 우리의 얼굴이에요. 약속을 잘 지켜야 우체국의 이미지도 좋아지죠.”
함양읍 토박이라는 그는 1987년 마천우체국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원래 전자공학을 공부했던 그가 집배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권유였다.
“처음에는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두려고 했어요. 근데 한 달이 지나니 근무복이 나오고 대우가 점점 좋아지는 겁니다. 주민들이 일을 참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남을 속일 수 없는 직업인 집배원의 정직한 매력에 반해버렸어요. 일한 만큼 성과가 보이는 일이기에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2021년 근무 34년차의 정영수 주무관
365일 변함없는 첫 일과 ‘청소’
정 주무관의 첫 일과는 우체국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동료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최고참이지만 솔선수범해 직원들이 업무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배려한다.
“이곳은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산골이에요. 그래서인지 아침 일찍 택배를 부치시러 오시는 분들이 많죠. 이들에게 깨끗한 우체국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청소를 합니다. 우체국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오랜 경력 덕에 업무 효율도 쑥쑥 오른다. 후배들의 업무를 파악해 배송지 정리를 돕고 주민들의 동선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어 배달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시골 주민들은 일찍 논밭에 나가요. 제가 그 장소를 알기에 이곳에 가면 수취인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죠. 덕분에 후배들의 수고로움도 아낄 수 있어요. 행여 민원이 있더라도 제가 나서면 해결되는 부분이 많아요. 고객들이 가족처럼 가깝습니다.”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은 건강 사정도 훤히 꿰뚫고 있다. 홀몸 어르신의 혈압약이 떨어질 때가 되면 어르신의 자녀에게 먼저 연락해 약을 부쳤냐고 물어볼 정도다.
“간혹 어르신들이 자녀 주소를 모르면 제가 전화를 해서 알아본 후 편지를 보내줘요. 그렇게 수집한 주소 목록만 70~80장이 됩니다. 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수만 있다면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죠.”
1987년 근무 당시 정영수 주무관의 모습
“도움이 필요한 곳 어디든 찾아갈 터”
정영수 주무관의 또 다른 직함은 야간 순찰대장이다. 그가 속한 봉사단체에서 20년간 아동·청소년 안심 하교를 돕고 있다. 퇴근할 때에는 종이 상자를 주워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주기도 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마스크 품귀현상을 빚던 때에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스크를 사비로 구입해 전달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집배 업무와 홀몸 어르신 집수리 봉사도 틈틈이 하고 있다.
“매일 편지를 전해주려 문턱을 넘나드니 집 사정을 잘 알고 있지요. 집에 수리가 필요하거나 우편함이 비뚤어졌을 때를 대비해 늘 오토바이에 망치와 펜치, 드라이버를 들고 다닙니다. 다만 주중에 일이 바쁘니 오래 걸릴 것 같은 수리는 주말에 가서 해결하곤 하죠.”
그래서일까? 정 주무관은 집배원을 ‘등불’과 같다고 했다. 앞날에 희망을 주는 존재이자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밝혀주는 빛. 아마도 세상을 환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일 것이다. 오는 12월 정년퇴직을 앞둔 정 주무관은 평일에도 봉사를 열심히 할 계획이란다. 그의 얼굴에는 착잡함과 아쉬움, 싱그러운 기대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지난 34년의 활동을 돌이키며 제일 뿌듯한 점은 자녀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돼 있었다는 겁니다. 집배원 업무를 하면서 늘 성실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는 큰 교훈이 되지 않았을까요?”
열심히 했으니 미련은 없다는 이 사람. 퇴직 후 봉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
정영수 주무관 추천 맛집
동강횟집
함양군 휴천면 동강길 18
향어회, 청국장
“오래된 단골인데 요리를 참 잘해요.”
원기상회(원터골식당)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397
추어탕, 닭볶음탕
“추어탕이 시골의 맛이에요.”
동호상회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440
손두부
“국내산 콩의 담백한 맛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