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 대학 강의에 우표 이용하는 신명순 교수
“정치와 관련된 주요한 사건들을 우표를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딱딱하기만 했던 정치학 수업이 재미있어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신명순(55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는 K군은 고대 아테네의 정치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치를 소재로 한 각국의 다양한 우표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자금까지는 우표를 단순히 통신용으로만 여겼던 K군은 한 편의 논문처럼 정리된 정치 관련 우표집을 보고는 우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수업의 흥미 돋우기 위해 우표 수집 시작
신명순 교수가 자신의 전공인 ‘정치에 관련된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이다. 그 당시 신교수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곳의 한 미국 정치학 교수가 수업 시간에 각종 선거 포스터와 기표지, 선거인들의 인물이 담겨 있는 배지 등을강의에 이용하는것을 보게 되었다.
‘정치학 수업도 이처럼 재미있게 할 수가 있겠구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된 신교수는 어릴 적 우표를 수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관련 우표를 모아 학생들에게 학습 보조 자료로 보여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교수는 월급을 털어 우표상을 찾거나, 미국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 수시로 접속하여 귀한 우표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제외 학술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꼭 그 도시의 우표상을 찾아 다녔죠. 언젠가는 캐나다의 한 우표상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주인의 말이 정치 관련 우표를 찾는 사람으로 제가 두 번째였대요.”
다른 분야의 우표 수집도 그러하겠지만 정치 관련 우표는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요구하게 되므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신교수는 자신이 원하는 우표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모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우표 작품은 한 편의 논문
지금까지 신명순 교수가 모은 우표는 50여 개국이 발행한 3,000여장. 이것을 신교수는 ‘민주주의와 민주정치', '군과 정치', ‘정치적 암살' 등 주제별로 분류하여 매학기 강의에 활용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민주정치' 란 주제의 수집품에는 1826년 영국의 의원이 사용한 편지봉투, 미국의 남북전쟁 기간에 사용된 군 부재자 투표 봉투를 비롯한 각 국의 부재자 투표 봉투,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대한 국민투표 봉투 등의 모습을 담은 것도 있다.
또한 ‘군과 정치’란 주제의 수집품에는 각 국의 군인 출신 대통령 • 정치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군 출신 대통령의 경우, 집권 과정에 따라 선거를 통한 집권, 쿠데타를 통한 집권, 쿠데타를 통해 정치에 참여한 뒤 선거에 의한 집권 등 소주제로 나눠 분류한 뒤, 정치학자답게 자세한 설명을 붙여 전공과 취미를 절묘히 결합해 놓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암살’이라는 주제의 수집품에는 시저, 링컨, 케네디, 간디 수상 등 암살 당한 정치인의 모습 이나 암살 당하는 장면들을 담은 우표들이 모아져 있어 눈길을 끈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정치학 수업에 이렇듯 우표가 자료로 등장하게 되자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정치학 수업을 재미있어 했다.
“정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상가들에 관해 수업을 해 나갈 때, 그것에 대한 사진이나 그림이 없는 교과서로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쉽게 흥미를 잃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작년 11월 교내에서 열렸던 ‘서대문우체국 개국 100주년 기념 우표전시회’에는 지금까지 모은 작품을 일반인들에게도 선보여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후진국일수록 독재자를 선전하는 우표가 많고, 선진국일수록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관념을 표현한 우표가 많습니다. 5공 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후진국형이었던 게 우리나라의 정치 우표였지만, 요즘은 아예 정치 우표로 분류할 만한 작품조차 없어 아쉽습니다.”
우표 수집 5년만인 지난해에 대한민국우표전시회에 처음 출품하여 금은상을 받은 바 있는 신교수는 올해 8월에 열리는 ‘필라코리아2002세계우표전시회'에도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희귀한 우표를 어렵게 구할 때 얻는 희열보다 수업 시간에 그 우표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 더욱 기분이 좋다는 신명순 교수. 현재까지는 정치 관련 우표가 인쇄 비용 때문에 그가 집필한 정치학 교재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사진이나 그림 한 점 없는 지금의 교재에 우표를 실어 학생들이 정치학에 더욱 흥미를 가지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