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명인과 전통주의 끈끈한 인연
우리나라 3대 명주로 손꼽히는 이강주는 누룩과 멥쌀로 약주를 빚어 증류시켜 소주를 만들고 배와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어 숙성시킨 우리 술을 말한다. 깔끔한 뒷맛을 자랑하며 숙취가없어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배와 생강은 간을 보호해주고 소화에 도움을 주며, 특히 울금은 양기를 갖고 있어 혈압을 조절해주는 재료로 이강주에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식품이다. 황실에서 특수 재배했던 울금을 전주에서 재배하게 되었고, 여러 음식에 사용되었다. 현재 진도에서 재배한 지는 5년 정도가 되었으며 중국, 일본 등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이강주의 또 다른 특성은 바로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에서 이강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고, 고종 때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에도 국가를 대표하는 건배주로 쓰였으며,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으로 가면서 선물로 준비했던 술이다. 1974년, 그 당시 밀주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쌀이 없어 굶는 사람도 있는데 술을 만든다고 하니 나라에서도 단속이 심했다. 그러나 조 명인의 집은 문인들과 정치적 이야기가 오가던 곳이어서인지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이강주는 선친 때부터 쭉 내려왔제. 문헌에도 보면 3대 명주라는 기록도 있고 봉산탈춤에도 이강주가 나와. 사서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있는 전통술인 이강주는 황해도 해주, 전주에서 빚었어. 이강주에 들어가는 재료 중 배가 그 지방의 진상품으로 유명했는데 그래서 술에도 들어간 게 아닌가 생각해요. 어머니는 항상 술을 빚으셨어. 할아버지는 군수였고, 아버지는 도서관장을 하고 계셔서 손님 대접을 위해 밀주를 빚었제.”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술과 함께하는 삶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필연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명인의 모친께서 조 명인을 가지셨을 때 꾼 태몽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알 수 있다. “선친께서 쓴 내가 태어난 날 일기를 보면 산모가 술 빚는 가마솥이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태몽을 꾸어 이름에 솥 정(鼎) 자를 넣어 ‘정형’이라 지었다고 적혀있었제.” 술 빚는 과정과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명인은 전북대학교 농화학과(발효학 전공)를 나와 주류 공장에 공장장으로 취직하게 된다. 수석으로 졸업한 그에게 삼학소주 공장장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그는 25년간 지방 유수의 양조회사공장장을 맡아 역임하며 술 전문가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는마음 한편에 의문을 품었고, 우리의 전통주 ‘밀주’의 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가 1980년 초였다. 그는 전통주 복원 작업을 위해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국 도서관을 전전하며 전통주에 대한 문헌 수집에 열을 올렸다. 술이 있는 곳이면 산골 오지까지 찾아갈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열정이란 이름의 끊임없는 도전
전통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좋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좋은 직장을 두고 사서 고생하는 조 명인을 보고 모두가 미쳤다고 혀를 내둘렀다. 주변의 시선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술에 대한 열정만이 그를 뒤덮었다. “집을 팔아가며 전국을 돌아다녔어. 9번이나 이사하면서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고, 7번을 망하니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제. 나도 힘들었고 가족들도 마음고생을 많이 혔어. 그러나 반복되는 고난 속에서도 항아리에 술 익어가는 소리만 들으면 힘이 났어. 극복 못 할 시련은 없다고 생각하게 했제.” 세상 모두가 미쳤다고 해도 ‘언젠가 나는 빛을 본다, 언젠가는 술도 문화재로 승격된다’는 믿음으로 술을 빚었다. 그저 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그의 노력과 열정은 『다시 찾아야 할 우리 술』,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한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출판사에서 『그 집에는 술이 있다』는 제목으로 조 명인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의 책에는 술 제조 방법보다는 술의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 전통술의 특징, 일본 술, 중국 술, 양주의 특징과 제조법의 차이 등 문헌을 통한 근거 있는 자료들이 집합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그가 펴낸 책은 여전히 술의 교과서로 쓰인다. “책의 내용은 내가 몸소 체험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문헌을 찾아서 근거 있게 썼어요. 책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을 적어 내는 것이 아니야. 과학적인 제조 방법으로 만든다는 것은 옛날 책들에도 있더라고. 그래서 직접 현지에 가서 조사를 했제. 그런데 현지에서 술의 도수가 조금 높다 싶으면 35도래. 책에 그대로 쓸 수가 없어서 내가 직접 만들어가며 정확한 정보를 담으려고 애썼지.”
책 발간 5년 뒤 그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절실하고 고단했던 조 명인의 인생이 전국에 알려졌다.
책에서 드라마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강주’로 1988년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고 1996년 명인이 되었다. 조 명인은 명인협회 창립자이며 초대 회장으로 12년간 명인협회를 이끌며 명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전통 보존과 계승에 힘썼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술 한잔, 정(情) 한 모금
‘전주 이강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납품 의뢰가 들어왔다. 우체국쇼핑과는 93년도부터 인연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는 제품이 없어 판매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참 잘 팔릴 때는 몇 억은 기본이었지. 초창기 때는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우체국쇼핑 판매자들끼리도 단합이 잘되는데 서로 으샤으샤하면서 경쟁을 했응께 분위기도 좋았지. 그땐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아.” 조 명인은 이제 이강주 외에도 민속주가많이 생겨 그때의 판매 기록은 세우지 못하지만 소위 잘나가던 시절 우체국과 함께한 추억에 웃음 짓게 된다고 말한다. 90년대 초, 그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명인과 문화재라는 타이틀을 얻기 전에 전통술에 대한 책을 저술하겠다는 것, 두 번째로 술 박물관을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통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첫 번째 목표는 그의 열정으로 이루었고, 두 번째 목표인 박물관은 현재 전주 2공장에 주조역사박물관이란 이름으로 1,300여 점에 달하는 술 빚는 도구와 전통술의 민속자료로 채워져 있다. 마지막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전통술에 대해 알려주는 학교가 한 곳도 없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디 지금은 여러 곳 되더라고. 세 번째 목표는 못 허고 끝나지 않을까 생각혀. 후계자에게 넘겨야 할 것 같어.”
명인으로서 그가 제일 치중하는 것은 후계자 양성이다. 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것도 다 그 이유에서다. “후계자 양성과 이곳에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지. 강의 내용은 전통 술 제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술의 전통이 무엇이며 맥이란 무엇인가를 강조한 강의여. 내가 살아왔던, 고생했던 것을 바탕으로 정신 교육을 하는 것이여. 강의 제목은 ‘진실한 노력을 하라’ 인데 한마디로 머리 쓰지 말고 끈기 있게 노력하면 운이 따라온다 이것이여.”
학생들에게 이곳을 소개할 때 술 강의하는 곳이 아니라 인생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소개한다는 조정형 명인. 그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운명이 그대로 지나가며, 준비된 사람만이 운명을 잡을 수 있다”면서 ‘운명을 잡을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강조한다.
그의 50여 년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술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우리 술의 명인으로 술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를 지독하게 아프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한 ‘술’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술 제법에 물이 좋아야 한다고 하는디 술은 정성이 들어가야 잘 빚어져. 그래서 술은 살아 있는 것이여. 술을 잡수실 때 선친께서 써준 말이 있는데 ‘주불강권 객불고사(主不强勸 客不固辭)’가 그것이지. 정으로 먹으라는 소리보다 문맥이 그럴듯하잖여. 허허. 이 말은 주인은 술을 너무 권해도 안 되고 객은 너무 사양해도 안 된다는 말이여. 술은 정이 들어간 음식이고 정을 주는 것이니 못 먹는다고 뿌리치는 것보다 받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제. 정으로다가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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