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우체국│프랑스
거리의 사람들 의상이나 인종은 물론 상점의 모습들로 미루어 보아서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있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여인네들은 차도르를 쓰고, 남정네들도 〈아라비안 나이트〉에라도 나올 것 같은 복장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아프리카도 오리엔트도 아닌, 파리의 북동쪽에 위치한 18구! 끌리녕구르 우체국의 지국이라 하는 바르베스 우체국에 도착하니 주변에는 높은 건물(6~7층 건물)들이 전혀 없고 우체국 정문에 조그만 광장이 있는데, 중무장한 경찰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워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축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그저 아무 일 없이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카페처럼 친근감을 주는 공간. 그런 우체국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으며, 바로 이 구역이 파리의 좀도 둑들이 홈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장물 시장이 열리는 곳이고 보면, 권총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경비를 서는 게 당연한 듯하다.
파리의 북아프리카를 찾아서
우체국 창구는 월말의 오후 2시경인데도 한산하여, 단지 서너 명의 흑인 고객이 창구에서 무엇인가를 주문하고 있었다. 민원실 바닥은 찌든 때가 붙어 있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나뒹구는 쓰레기 등으로 보아 한 달포 정도 청소가 생략된 것 같았다. 비교적 넓은 창구에는 의자나 필기 도구가 비치된 곳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픈 카운터 시스템이 도입된 대부분의 우체국과는 달리 창구와 고객 사이는 두꺼운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마이크를 이용해 고객과의 의사 소통이 이어 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10년에 전 내가 본 파리의 우체국 모습 그대로에다 쓰레기까지 곁들어져, 도저히 유럽 선진국의 한 우체국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바르베 우체국에는 약 2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곳 직원들의 대부분은 비록 열악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봉사한다는 기분으로 도시 취약 지구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우체국장 레켄느씨는 '이곳 18구의 우체국에도 고객이 대기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지요. 하지만 그런 공간은 금세 주민들의 주거 공간처럼 돼, 시간을 보내면서 읽다 버린 신문지와 음료수는 물론 식사들을 하기도 한 후 남은 음식 찌꺼기나 포장 종이 등 을 마구 창구 바닥에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체국 고객 관리와 최소한의 환경 위생 관리를 위하여는 휴식 공간을 완전히 폐쇄하는 것이 최선책 이었지요.'라고 설명한다.
현금자동인출기는 주민들의 돈지갑
가난한 지역이니 만큼 영업 실적도 중산층의 주거 지역이나 상업 지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체국 밖에 비치되어 있는 현금지급기의 이용 빈도 수는 다른 지역을 월등히 능가 하는 반면, 총 거래액은 평균치를 훨 씬 밑돌고 있다. 고객들의 평균 계좌 잔고는 낮고 1인당 1일 인출 빈도가 월등히 높은 것은 대부분 1회에 최소의 금액을 인출하며, 돈이 필요할 때 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현금인출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고액의 거대한 현금인출기가 그들의 손지갑을 대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루 종일 꾸준한 이용률을 보이는 금융 서비스와는 달리, 편지·소포 등의 우편 서비스는 대부분 오후 4시 이후부터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장물 시장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 3시간은 아랍어 통역을 고용
이런 특성 외에도 이곳에는 아랍어 통역사가 매일 3시간 정도 근무하고 있다. 상당한 고객이 불어로 하는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고, 특히 통장 개설시 불어를 읽고 쓸 수 없어 서식을 기재할 수 없는 사람이 비일비재한 까닭에 아랍어 통역사의 고객 지원은 필수 조건이다. 또한 파리의 어느 우체국이나 인력 절감과 업무 효율을 위해 자동화 코너를 설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고객 문맹율이 높아서 인지 자동화 코너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우체국 유리창엔 총탄의 흔적이…
우체국 시설 환경도 상당히 비좁고 열악할 뿐더러, 사무실이 반 지하실 형태로 되어 있는 까닭에 가능한 한 자연광을 많이 받기 위해서인지 천장 부분과 외벽을 두꺼운 유리로 장치해 놓았다. 그 유리창에는 군데군데 시멘트로 메꾸어 놓은 부분이 있어 우체국장에게 사유를 물었더니 '가끔은 총격전이 벌어지거나 지역 불량배들이 돌로 우체국 유리를 파괴하기 때문에, 새로 갈기보다는 그냥 시멘트로 막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체국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창구 정문의 유리창에도 군데군데 손상이 된 곳이 많았으나, 그냥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일전에 방문하였던 파리 3구의 마레 우체국이나, 15구의 콩벙시용 우체국, 그리고 우취가들을 위하여 특별히 운영하고 있는 사치스럽기조차 한 에펠탑 우체국의 환경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명감을 같고 이방인들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봉사하고 있다. 방문을 마치고 서둘러 리용 역으로 향하는데, 한 아랍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연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