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수집 대상은「바이블」과 관련된 모든 우표류이다. 10년 전 테마틱 작품으로 꾸민「크리스마스」가 국제전에서 몇차례 입상한 후 대부분의 우취인들은 필자의 테마를「크리스마스」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근래에는 12월이 다가올 무렵이면 크리스마스 우취와 관련된 원고 청탁을 받는 일이 자주 있는 편이다.
크리스마스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을 기리는 축제인데,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불과 200년밖에 안 된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우리 모두의 명절이 되어 있다.
최초의 축제를 갖게 된 것은 300년경부터로、그것도 그리스도의 탄생과는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로마 주변의 유럽 여러 종교와 경합을 벌이던 시기였으며. 또 매년 12월 25일이 되면 각 종교단체들은 수확제 · 태양제 · 사육제라는 이름으로 자기 들의 제사를 드리느라 떠들썩 했다고 한다. 그 중 그리스도 교의 큰 적이었던 미트라스교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 일이라고 정하고 태양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 황제인 콘스탄 티누스 1세는 미트라스교의 의식이 옳다고 생각되어 그 날을「태양의 날」로 정하자고 했고, 밀라노의 주교 앙브로시 오는 그 날을「예수의 탄생일」로 정하자고 하였다.
이런 연유로 해서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그 후 그리스도교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어 결과적으로 유럽 각지에 있던 기존의 제 의식이 그리스도 탄생일로 변용되어 크리스마스는 이교도 축제의 잔재를 많이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아니라 예수 탄생의 핵심적인 의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다”는 신앙 고백이다.
필자는 테마우취에 몰입한 지가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동안 작품「크리스마스」를 제작하기까지를 회상해 보면 많은 추억거리들이 구름처럼 떠오른다. 맨 처음 플랜을 만들고 효과적인 전개를 해가기 위해 관련된 책이나 자료들을 찾느라 서점 · 도서관 · 미술관 · 박물관 등을 순방했던 일, 이해하기 힘든 신학적인 부분들을 해결하고자 가톨릭 신앙강좌에 자격이 안되는데도 밀고 들어가 2년 동안이나 다니고 무사히 수료했던 일, 또 신학적 이해와 라틴어 · 이탈리아어 번역을 위해 찾았던 성직자들. 그들과의 유대관계가 지금까지 계속된 것은 큰 은총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적은 사랑이나마 실천 해 보고자 가톨릭 봉사단체에 입단하여 활동했던 일들은 필자를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로 변모시켰다.
한편 우취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었다. 희귀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구하기 위해 세계 여러 우취인들과의 펜팔은 물론 세계각국의 유명한 우표상들의 옥션에 응찰하기 위해 통신료 · 우편료, 그리고 관련 책값도 꽤나 많이 지출되었다. 어디에서 필요한 자료가 나타났다면 웬만한 약속들은 취소하고 그 곳으로 달려 갔으며, 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형편이 되는대로 가끔씩 국제전시회 참석을 위해 외유도 하였다. 역시 그곳은 너무도 좋은 곳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우표 상들의 부스를 뒤지며 환호했으며,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보는 것은 그야말로 산 교육이었다.
지면 관계상 수집하면서 겪었던 재미난 얘기들을 다 할 수 없어 아쉽지만. 그중 특별히 생각나는 일이 있어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 필라코리아 때 알게 된 시드니에 있는 한 우표상에서 산 우취자료의 이야기인데,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인도네시아 FIAP전에 출품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 우취자료를 지적하면서 우표는 진짜인데 그 위의 덮개가 모조품이라고 하면서 내 작품을 비하시켰다 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그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국제심사위원 K씨가 잘 얘기하여 큰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 값도 꽤 주고 산 자료인데 더군다나 그것뿐 아니고 그곳에서 산 비슷한 자료가 4점이나 더 있었다. 모두가 다 모조품이라 생각하니 너무도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우표상에 장문의 편지를 써 팩스로 전송하였는데 도대체 연락이 없었다. 사기를 당했나 생각하니 더더욱 화가 났다.
마침 그 무렵 싱가포르에서 FIP전이 열리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우표상도 틀림없이 그곳에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 모든 자료들을 챙겨 가지고 그곳에 갔었는데. 예상대로 그는 그곳에 와 있었다. 보자 마자 나는 흥분하여 격렬하게 항의하며 지금까지 산 자료들을 모두 돌려주면서 환불해달라고 소동을 벌였다. 그는 몹시 당황해 하면서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한참 후 내가 조용해지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절대 가짜가 아니라며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비교적 논리정연하게, 또 나중에는 자국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사람까지 모시고 와 객관적인 설명을 하였다.
그래도 미심쩍어 심사위원의 명함에 사인을 받고 일단락지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자료를 모조품이라고 맨처음 지적 했던 사람의 말이 떠올라 껍데기를 아예 떼서 버리고 볼 품은 없지만 진짜인 우표만 있는 자료를 그대로 작품에 붙여 사용한다.
고약한 한한국인 때문에 매상에 차질이 많았으리라 생각 하니 지금도 그 자료를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그는 필자의 훌륭한 거래처가 되어 요즘도 최신 정보나 자료를 보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