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기행> _ 글 김선현 시인
내가 다녀온 글을 쓰기 전에 저 체신문화 Y형께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준 데 대해서 사의를 표한다. 생전에 한 번도 못가 본데다가 일선(휴전선)이 가까운 곳이라는 마음이 약간의 두려움을 걱정했는데 Y형의 설명으로 더욱 용기를 갖었으며, 특히 신분보장을 해준 것은 여간의 도움이 아니었다. 여행도구를 구비하여 놓고 잠을 잔 몇 시간 후에 새벽잠을 깼다. 이렇게 일찍 잠을 깨어 본 것도 버스를 타 본 것도 몇 년간 처음이다.
애당초 일정한 여행목적지가 없이 그저 일선이 가까운 동해 쪽으로 가고 싶었기에 확실한 여행지는 버스 정차장에 나가서 정하고 일찍 올라가서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는 어떤 결과 혹은 어떤 일이 있을 줄 모르는 여행의 최고 기쁨이랄까, 마음속에 희망적인 희설이 가득차서 빨리 버스의 출발을 기다리며 옆 차에서 울려나오는 아침 여정, ‘통일의 그날까지’를 들고 있었는데 언젠줄 모르게 차가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을 때는 나는 잠시 동안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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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그지없이 달리고 있다. 북한강을 옆에 끼고 절벽 밑을 아슬하게 달리는 것이 어쩌면 차가 강을 허기져서 따라가는 것 같다. 누구나가 어디로 간다는 것... 그리고 끝없이 간다는 것, 이것이 그렇게도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망우리를 지나서 처음으로 시골의 큰동리가 팔당리다. 한가한 시골사람들이 나무그늘 아래서 장기를 두고 저쪽 산비알 이쪽으로는 서울에서 나왔다는 피서객들이 모래위에 천막을 짓고 배질을 하는 것이 서울 한강이나 뚝섬보다 깨끗하고 청신한 것이 훨씬 기분을 가미해 준다.
승객은 저마다 창을 내다보며 웃기도 하고 얘기도 하는데 차는 쉴새없이 달려서 양평으로 들어섰다. 바다만치 넒은 참외밭이 노랑참외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바지게에 가득 지고 시장으론지 집으론지 꿍꿍 땀흘리며 지고 간다. 저렇게 맛있는 참외를 한번 내려서 깎아 먹을까? 한두 개는 그냥도 주겠지. 그러나 요구하고 있지 않을까. 경제관념은 이런 곳이 더 할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돈이라는 불운한 털을 벗어버리고 좀 더 아니면 전적으로 정신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말할 수 없는 감동된 마음을 도의화시켰다.
여전히 눈으로는 이런 산천을 보고 가면서도 마음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들이 서로 오고 가면서 내 뿜는 몬지가 뜨겁게 내려쪼이는 태양과 함께 내 팔에 찐득찐득 땀을 내게 하면 전신은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리는 버스는 바람을 직통 받아서 들이기 때문에 그다지 더운 편은 아니었다. 수수밭을 지나서 옥수수밭으로 개울을 붙이고 있는 적은 다리를 지나 수수밭의 넓은 끝으로 다시 콩밭 아래로 버스는 날래게 달려서 홍천으로 들어섰다. 홍천은 강원도에서 춘천을 빼고서는 제일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가에서 옷을 벗고 새카만 아이들이 물장난 하는 것은 마치 물짐승이지, 사람 새끼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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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이 인제였다. 어름물 장사가 있었다. 시원하다기보다 차거운 어름을 팔면서 어찌 저렇게 땀을 흘리고 있을까? 땀이 흐르면 소매로 훌쩍 닦아버리고 또 눈을 휘둥거려 십환짜리를 바라는 것. 참 기막힌 인제, 여기저기 장병들의 막사가 태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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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가서 원통리가 나왔다. 거기서 약 삼십 분 동안 점심을 먹었다. 얼굴과 손과 옷이 새카맣다. 그러나 그렇게 기차연기처럼 독한 것은 아니었다. 해발고도 300미터에서 솟아나오는 세수용 정수에 얼굴과 손을 씻는 은혜도 큰 것이었다. 헌병, 경찰들의 조사가 더욱 심했으나 역시 검문을 받지는 않았다. 앞으로 뒤로 절벽 같은 산을 에워싸고 오닥지게 모여 앉은 조그마한 마을 원통리를 나와서 차는 실증이 나는 엔진소로 앞으로 남은 진짜 산골을 향해 고개위를 달렸다.
원통리에서 한 시간 넘어 달린 것이 겨우 이십오키로, 거기가 지금까지 말로 들어오든 진부령이다. 차는 무찌를 기세로 완강히 산을 올라갔다. 고개 위를 올라가는 마루턱에 무슨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마을을 발견하였다. 옆에 사람보고 무슨 마을을 발견하였다. 옆에 사람보고 무슨 마을이냐고 물었더니 마을이 아니고 군부대라고 하는 말에 나는 영문 모를 감탄을 하고 한참 가니 아무마을도 없는 곳에 구멍가게 하나가 있었다. 저런 곳에 누가 와서 물건을 사느냐고 물어보았드니 지나다니는 군인차들이 멈추어서 물건을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산협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진부령을 넘는 생각이다.
* 원문은 현대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으나, 당시의 시대적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체신문화에 소개된 것을 동일하게 게재합니다.
※ blog.daum.net/e-koreapost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